아틀라스 세계는 지금 - 정치지리의 세계사 책과함께 아틀라스 1
장 크리스토프 빅토르 지음, 김희균 옮김 / 책과함께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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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한국은 FTA(자유무역협정)기사가 연일 넘쳐난다. 한미FTA에 이어 한-EU FTA 협상이 진행중이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세계무역은 있는 자들의 잔치상이 되어가고 있다. 뭐 그런 일이 한 두해 이어진 일도 아니고, 좁게 보면 국내경제도 세계경제와 똑같이 굴러간다. 기업 간의 이윤 경쟁이 국가 간의 이윤경쟁으로 확대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그런 시점에 이 책은 우리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그런데 왜 하필 지도인가? “지도가 현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지도를 그리는 것이다”라는 말은 지금 그려져 있는 지도가 절대적인 진실이 아니란 말이다. 그러니까 정치나 경제와 같은 힘의 논리에 의해 지도는 변해왔고 또 앞으로도 변할 것이다. 앞으로의 지도가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지만, 과거와 현재의 지도는 그동안 어떤 사건이 어디에서 발생했는가에 따라, 그 의미가 어떻게 달라지는 지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머리말에서는 이렇게 밝히고 있다. 미국인들과 유럽인들이 이란을 ‘지정학적 골칫덩어리’로 보는 한 이란을 이해할 수 없다. 이란의 시각에서 이란을 볼 필요가 있다.(p.10)라고. 그러니까, 적어도 이 책이 지향하는 바는 어느 국가, 어느 대륙을 자신들의 눈으로 비판하고 재단하려는 것이 아니라, 각 대륙, 각국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내고,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여진다. 그 의지만은 아주 높이 살만하다. 프랑스 아르테 방송의 다큐멘터리 <지도의 이면>을 책으로 풀어내기 위해 수많은 자료들을 지면에 옮겨놓은 수고 또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이 책의 곳곳에는 세계에 대한 편협한 시각에서 탈피하려는 원래의 의도에 부합하는 꼭지가 있는가 하면, 유럽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곳이 드문드문 드러난다. 경쟁상대인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과, 아시아의 경우 경제대국으로서의 일본이나 잠재적인 구매력을 가진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 등이 그러하고, 유럽연합에 회원국이 되려는 국가나, 그들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하는 유럽연합의 태도(궁극적으로는 유럽연합에 이익인가 아닌가로 판단하고 있는 사실)에 대한 비판이 지나치게 약한 점이 그러하다. 나름대로는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한 듯 보이나 실상은 그들도 유럽연합의 대변자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TV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옮겨오면서 설명과 화면이 동시에 제공되는 형태 때문에 지면이 복잡하게 구성된 것은 책을 읽는데 조금 불편했다.


 그러나 이런 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지도를 통해 세계 정치경제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고, 각국의 이해관계를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잘 풀어낸 점은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은 몇몇 강대국이나 경제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수많은 나라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적이었던 국가가 서로의 이익을 위해 손을 잡을 수도 있고,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혹은 경제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군사력(또는 핵무기)을 과시하기도 한다. 이 책 속에서 한국이라는 나라는 관심의 대상이 되지도 못했지만(분쟁지역인 독도문제에 있어서도 일본 중심적 서술로 일관되어 있다) 오늘의 우방(미국)이 내일의 적(미국)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알 일이다.


 최근의 지도의 변화는 미국이 빠지면 이야기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그 영향력이 아주 커졌다. 미국이 내세우고 있는 여러 가지 기치 중에서 아주 중요하게 취급되었던 ‘민주주의의 수호’는 냉전체제 이후 급격하게 그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사실, 냉전체제 당시에도 정말로 미국이 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해 그렇게 싸웠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국의 이익이 걸려있지 않다면, 자국의 안보가 문제되지 않는다면 절대 개입하지 않았을 일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거대해진 미국의 정치적 영향력(돈과 군사무기로 점철된)은 확장일로에 있다. 저자는 (미국의) 30만 명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바쳐 유럽의 민주주의를 지켰다는 점만큼은 두고두고 기억해야할 것(p.56)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과연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이었는지는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미국은 보스니아나 코소보의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상황이었는데도, 발칸반도에 미국의 첨예한 이익이 걸려있지 않다고 판단(p.57)하여 개입하지 않았다. 탈레반 정권의 뿌리는 파키스탄이며 1998년 핵실험으로 핵클럽에 가입한 이후, 이란과 북한의 핵개발을 지원하고 있다는 의심도 받고 있는 상태다.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알카에다와 탈레반을 뒤에서 떠받치고 있는 것은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는 이라크가 아니라, 파키스탄이기 때문(P.118)인데도 미국은 파키스탄을 공격하지 않았다. 마약이 가장 많이 나가는 곳이 미국이기 때문에, 미국은 마약 생산지 콜롬비아를 노릴 수밖에 없으며 북동부를 통과하는 카뇨리몬 송유관이나 경제적 이권도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2004년에만 콜롬비아에 700만 달러의 지원금을 주었다. 미국의 이익에 관계없는 일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개입을 하든지, 개입을 하지 않든지, 뭔가 선택을 해야 할 시점에 미국은 항상 정치적인 손익계산을 한다.(P.166) 그러나 이것은 유럽연합도 마찬가지이다. 대규모 난민이 유럽으로 몰려드는 사태를 감당(P.167)해야 하기 때문에 아프리카나 중동 지역에 개입하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연합군이 쿠르드족을 보호하기 위해 감시체제에 들어간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쿠르도족 지역 내에 있는 유전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p.113)였음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이 책에서는 유럽연합의 꼼수에 대해선 특별한 비판을 가하지 않고 있다.)


 아시아에 대한 저자의 관심은 주로 중국, 일본, 인도 등에 집중되어 있다. 그렇지만 세계 경제대국인 일본에 비해 중국에 대해서는 약간의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또한 분쟁지역으로서의 독도에 대한 발언도 일본 쪽 견해에 따르고 있다. 즉, “우리는 그곳이 일본해라고 알고 있지만, 한국은 동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P.143)고 하며 일본 쪽 주장에 어울릴 지도를 보여준다. 여기서 “우리”라는 것은 저자나 아르테 방송국이 아니라 유럽연합을 의미하는 듯하다. 며칠 전부터 국제수로기구(IHO)에서 동해와 일본해를 동시 표기하는 문제가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무슨 특별한 때나 되어야 동해니, 독도니 하는 문제를 들고 나오는 것도 문제고, 일본에 대해 적극적인 반대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이 책을 읽는 것은, 세계의 구도가 어떻게 개편되어가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특히 미국과 유럽연합 등의 경제대국이 이끌어가는 구도가 뻔히 눈에 들어올 뿐만 아니라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자국의 번영과 안녕이지 세계평화와 지구의 안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허울좋은 세계화도 결국은 강대국과 경제대국을 위한 세계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아니 이미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그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묘책은 없는 것일까? 이란이나 북한이 핵무기로 무장하려고 하는 이유도 다 살기 위해서가 아닌가. 쥐도 도망갈 구멍을 놓고 쫓으라했다. 핵무기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핵무기를 만들려고 하는 국가를 위협하거나 제재를 가할 것이 아니라 이미 핵무기를 가진 자들부터 비핵화되어야한다. 물론, 어려운 일이겠지만, 결국은 핵무기를 가진 자들이 큰소리치는 세상에서, 절벽 끝까지 다다른 국가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또 무엇이 있을까? 환경문제도 그러하다.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이 자기네들이 개발하고 파헤칠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저질러놓고 후진국들이 살아보겠다고 힘쓰는 걸 환경보호니 뭐니 하면서 거창한 이유로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세계사는 오늘도 힘의 논리에 지배를 받고 있다. 오늘은 집에 세계지도를 사다가 하나 붙여볼까. (^^)


 사족, 15-49세 에이즈 환자 지도(p.217)에 나타난 한국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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