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삶
레아 징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p. 147

에로스는 포로스(풍요)와 페니아(빈곤)의 아들이라서 다음의 상황에 처한다. 첫째로 그는 항상 가난하며, 사람들이 은밀히 상상하듯 결코 부드럽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그보다는 거칠고 불결하며 맨발로 정처 없이 떠돈다.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본성에 따라 언제나 맨바닥에 눕고, 문밖에서, 거리에서, 하늘 아래 노천에서 잠을 자고, 안식을 누리지 못한다. 그리고 아버지한테서는 선한 것과 아름다운 것을 쫓아다니는 성향을 물려받았으며, 아버지를 닮아서 남성적이고 영리하고 대담하다. ㄷ범한 사냥꾼이며, 영원히 술수를 부리고, 인식을 갈망하고, 교활하다. 일평생 철학자고 이대한 마법사고 독살자고 궤변가다. 그 본성에 따라서 영원히 살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 플라톤의 "향연"

 

에로스는 모차르트를 이야기하는데 딱 적당한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만 알고 있었을 뿐이지만-혹은 영화 아마데우스의 이미지- 책을 읽은 지금, 에로스만큼 모차르트에게 적당한 단어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콘스탄체는 그러한 에로스-모차르트-를 사랑한 여인이자 에로스-모차르트-가 사랑한 여인이다.

 

이 이야기는 코차르트의 죽음에서부터 시작한다. 모차르트가 죽은 후 콘스탄체는 [소문]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만, 그 소문을 모두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p.10 지금 이 시간에 결정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머지않아 자신을 향한 공격의 화살이 되어 날아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p.26 눈 앞에 선해요. 소문들... 곪은 내장같은 소문들, 터져서 모든 것을 오염시키는 소문들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같다고요.

 

p.28 하지만 걱정하지 말아요. 사람들이 소문으로 우리 아버지는 쓰러뜨릴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절대로 아니에요. 이제 나를 내버려둬요. 나는 소문들과 함께 살 수 있어요. 거의 모든 것과 함께 살 수 있다고요.

 

모차르트의 음악은 몰라도 모차르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게다가 얼마 전에는 모차르트 탄생250주년이다 뭐다해서 시끄럽기도 했고, 또, 아이의 태교를 시작할 때 흔히들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몇년 전 개봉했던 아마데우스라는 영화도 있다. 그런데, 그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에 대해서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을까? 사실, 나는 유명인의 가족들이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대중에게 인기있는 연예인의 온갖 사생활들을 다 이야깃거리로 삼아서는 그의 가족들의 대소사까지 전부 알려주는 연예뉴스의 가벼움에는 이미 질려버린 탓이다. 그런데, 나는 왜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에게 관심을 가지는가?

 

그것은, 콘스탄체에게 씌워진 악녀캐릭터 때문이다. 천재의 아내로 살아야했던 한 여인의 삶이 평탄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천재란 어떤 사람들인가? 나는 천재를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시대나 주위 사람들을 의식해서는 그의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열정이 제대로 분출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인간이 되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는 일이다. 모차르트만 해도 그렇다. 모차르트는 다른 일을 하는 순간에도 악상이 떠오르면 악보를 그려내야만 했던 사람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그 대상이 황제라해도 하고야 마는 사람이다. 벌어들이는 수입에 비해 지나친 낭비를 하면서도 그게 낭비인지도 모르고 살만큼 경제관념이 철저하지도 못했던 사람이다. 악보는 기가 차게 그려내면서도 그 손으로 제입에 들어가는 음식조차 제대로 못먹은 사람이다.

 

나라면 그런 남자와는 단 하루도 살지 못했을 것 같다. 그러나 콘스탄체는 모차르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았고, 모차르트의 음악적 열정을 이해했고, 그랬기에 그 모든 것을 감내할 수 있었다. 세간의 사람들을 그런 그녀를 모차르트를 이용해 돈을 벌어들이려고 하는 악녀로만 보았다. 모차르트 생전에, 그녀가 한 일은 오로지 모차르트를 내조하는 일밖에 없었는데도 말이다.

 

어쨌든, 그녀는 모차르트를 너무나 잘 이해했기 때문에, 그의 음악 작업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함께 할 수 있었다. 모차르트 역시 그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너무나 잘 알았다. 모차르트가 콘스탄체에게 보낸 편지는 그러한 모차르트의 마음을 잘 대변해준다. 콘스탄체 없이는 모차르트도 없었을 것이다.

 

콘스탄체를 비난하는 많은 목소리들은 결국, 그들 역시 모차르트를 이용해 한몫 벌려는 사람들의 목소리다. 그녀를 비난하고, 그녀를 악녀로 만들어 그녀의 것을 뺏으려는 사람들의 목소리다. 콘스탄체가 스무번이 넘는 이사를 하고, 모차르트의 낭비를 참아내고,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면서도 모차르트를 몰아세우지 않고 그의 음악작업을 오히려 격려했다는 것을 알고 나면 그녀가 모차르트 사후에 모차르트의 이름으로 부를 창출한다하여도 그 누구도 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다. 콘스탄체가 모차르트의 이름으로 벌어들인 수입이라는 것도 결국은 저작권이나 초상권 뭐 이런 등등의 권리이지 않은가?

 

대중 연예인들이 소문에 휘둘리다 사라져가는 모습 - 죽음을 택하거나 연예계에서 사라지거나 - 을 자주 본다. 이제는 그러한 것이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그러려니 하지만, 소문이 사람을 어떻게 피페하게 만드는지는 한번쯤 생각해보아야할 일이다. 지금은-사후에- 모차르트의 명망이 하늘을 찌르는 듯하지만, 그가 살았던 시대에는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던 모차르트가 그만큼의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콘스탄체의 덕분이 아니었을까? 모차르트가 죽을 때 제대로 된 장례도 치르지 못할 정도로 궁핍했었기 때문에 그의 묘지조차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지만, 그나마 콘스탄체가 그의 작품을 지켜냈기 때문에 현재의 명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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