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일주일에 세번, 음식 쓰레기통에 스티커를 붙여 밖으로 내놓는다. 그때마다 나는 냉장고에서 썩어가는 야채와 과일들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버리곤 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나의 생활은 적어도 지금까지의 행동과는 달라질 것이라 믿는다.

 

이 책에서는 세계의 한쪽에서는 먹을 것이 넘쳐나고 비만에 시달리고 있는데, 또 한쪽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어가고 있는 현실을 아이와 아버지의 대화를 통해 쉽게 풀어내고 있다. 세계를 살펴볼 것도 없이, 우리 나라, 아니 내 주변을 둘러봐도 이러한 불합리를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학교에서 주는 무료급식으로 끼니를 떼우는 아이들이 넘쳐난다. 한 학교에 3-40명이 넘는다는 말도 있다. 그 아이들이 굶는 이유와 책임을 어디다 물어야 할까? 그들의 부모가 게으르고 나태해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실업자가 넘쳐나고, 한부모 가정이 넘쳐나는 사회적 구조를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을터이다.

 

이 책에서는, 수천만명이 기아로 사망하고, 수억명이 만성적인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것의 주범은 살인적이고 불합리한 세계경제질서 (p.22) 라고 말한다. 그 세계 경제 질서를 좌지우지하는 선진국들(이른바 강대국들)과 다국적기업들, 세계 시장의 가격을 쥐락펴락하는 거대 자본들의 각성이 필요한 때이다. 물론 그들의 최고 목표는 이윤의 극대화이다보니 그런 각성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르겠다.

 

기아로 허덕이는 나라들을 살펴보면, 그들 나라에서 농산물을 생산할 수 없어서라기보다 자유무역협정이나, 식민지정책의 잔재로 계속되고 있는 단일농작물의 재배 등에 의한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그 나라에서 생산, 소비가 가능한데도, 다른 나라의 잉여농산물이 싼 가격으로 시장을 점령해버리면 그 나라의 농가들은 더이상 생산을 할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에 생산을 포기하게 된다. 또, 선진국들이 필요로 하는 농작물만을 생산하는 단일농작물재배 시스템이 되어버리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결국 주식이 되는 농작물(자동차나 공업제품과는 달리 생존을 위협하는 품목이다)을 자급할 수 없게 되니 다른 나라에서 수입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가격이 터무니없이 높아져 버린다면??

 

지금 한미FTA협정으로 시끄럽다. 한두해 있어 온 일도 아니지만, 그동안 저게 뭐 그리 큰 문제일까 생각했었다. 싼 농산물을 들여와서 먹을 수 있다면 좋은 일 아닌가 라는 안일한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주는 참혹함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의약품도 그렇다. 축산업을 통해 양질의 가축을 길러 풍요롭지는 않아도 자급이 가능했던 나라가 의약품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면서 축산업을 더이상 유지할 수 없었다는 내용을 보면 어느 하나 자유로운 것이 없다.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자는 식의 협정이라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줘도 손해볼 것 없고 받으면 좋은 강대국의 입장일 뿐이다.

 

신자유주의라는 이론을 등에 업고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강대국들의 횡포는 이제 극에 달한 듯 하다. 국가를 떠나 자유롭게 무역을 하도록 하자는 허울 좋은 껍데기에 둘러싸여 그 이면을 보지 못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대량생산이 가능한 경제력과 기술을 가진 강대국과, 소규모 생산밖에 할 수 없는 나라들이 어떻게 같은 조건이라 할 수 있을까? 결국 강대국들에 의해 경제를 잠식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이다.

 

이 책 속의 아이도 그렇지만, 나도 항상 가진 의문이 하나 있다. 왜 남아도는 농작물을 기아로 허덕이는 이들에게 주지 않고 바다에 버리거나, 땅을 갈아엎어버리거나 하면서 없애버릴까? 결국은 그것 역시 무지막지한 경제 논리 속에 가려진 이유, 즉, 이윤 극대화가 최대의 과제이기 때문이었다.

 

또, 자연재해 등과 같은 어쩔 수 없는 사건에 의한 기아 외에도, 전쟁이나 내전때문에 기아에 시달리는 국가들도 있다. 미국이 잘하는 짓(?)이 있지 않은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남의 나라 내전 문제에도 거침없이 참견하고 전쟁을 선포하는 짓... 그런 짓도 골라가며 한다는 사실을 아는가?

 

쿠웨이트와 그 석유는 서방 강대국의 경제에 대단히 중요하지만, 아프리카 내전은 선진국들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지. (p.89)

 

미국의 국제기업이 그때까지 누려온 많은 특권들이 침해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란다. (p.101)

 

부르키나파소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도 아니고 자원이 풍부한 나라도 아니니까. (p.143)

 

그러니까, 자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거나 자국 기업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발벗고 나서지만, 자국과는 아무 관련이 없을 때에는 한마디로 쌩깐다(--)는 사실이다. 세계 평화 수호자라는 탈을 쓰고 그 이면에서는 이리 저리 자를 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인간은 살기 위해서는 밥을 먹어야 한다. 인간이 인간다워지기 위한 최소한 조건 중에서도 음식은 가장 중요하다. 인간의 존엄성이 어떻고 인권이 어떻고 떠들기 전에 가장 최소한의 조건조차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것인가는 말하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저자는 기아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국이 자급자족 경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이룩하는 것 외에는 진정한 출구가 없다. (p.152)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밀어붙이기식의 FTA협정에서 자유로워져야 할 것이다. 누구를 위한 자유무역인가??

 

그리고, 이 책에서는 내 지식의 단순함을 일깨워준 대목도 있었다.

식료품을 실은 비행기가 수단 남부의 관목지대 위를 낮게 날면서 그 화물을 연신 떨어뜨리는 사진, 그리고 바싹 마름 덤불 속에서 거의 다 죽어가는 사람들이 나타나 화물 쪽으로 몰려드는 장면이었지. 사진 설명에는 "드디어 구호의 손길이 수단에 닿다"라고 적혀 있었어. 정말 현실과는 동떨어진 사진들이지. 하지만 실제로 구호활동은 그런 장면과는 크게 다르단다. 전문 의료지식을 바탕으로 대단히 면밀하게 이루어지거든. (p.59)

 

즉, 이런 식의 구호활동은 그저 그림일 뿐 현실이 아니란 것이다. 우리가 아플 때를 생각해 보자. 허약해진 몸의 기운을 북돋우고 추스리기 위해 먼저 위에 부담이 되지 않는 음식부터 먹기 시작을 한다. 그것도 어려울 때는 주사를 맞아 기력을 회복한 다음에 음식을 먹는다. 그런데 하물며, 만성적으로 굶고 있는 이들에게 적절한 처치 없이 곧바로 음식을 먹게 한다는 건 비상식적인 일이다. 음식을 주기 전에 의사의 진료와 처방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 내전이나 전쟁으로 인해 기아에 시달리는 지역에서는 특히 더 조심스러워야 한다. 하늘에서 떨어뜨린 화물을 줍기 위해 뛰어가다 지뢰를 밟거나 하여 다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한장의 사진을 통해 우리가 할건 다했다는 생각을 갖게 되고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진정 우리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다같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케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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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11-18 22:09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갈라파고스 2007년 11월 도서목록에 있는 책으로 2007년 11월 8일 읽은 책이다. 관심분야의 책들 위주로 읽다가 알라딘 리뷰 선발 대회 때문에 선택하게 된 책인데, 이런 책을 읽을 수록 점점 내 관심분야가 달라져감을 느낀다. 총평 물질적 풍요로움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이기에 이 책에서 언급하는 "기아의 진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막연하게 못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