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 - 되풀이되는 연구 부정과 '자기검증'이라는 환상
니콜라스 웨이드.윌리엄 브로드 지음, 김동광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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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황우석과 이필상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한국의 독자들에게 쓴 서문을 통해 황우석 사태를 바라보는 외국 기자의 시선을 짧게나마 읽을 수 있었다.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던 황우석 사태는 연일 미디어를 강타했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지만, 결론적으로는 아직 끝나지 않은 문제로 잊혀져 가고 있다. 지금 황우석은, 그리고 황우석과 함께 그 엄청난 조작에 관여했던 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들은 합당한 조치에 처해졌는가? 이 책 속의 수많은 과학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만의 메커니즘 속에서 보호받으면서 우리를 비웃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비단 과학자의 기만행위뿐만 아니라 얼마 전 고려대 총장의 논문표절 사건 등을 통해 지식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기만행위들에 대해 알고 있다. 이러한 일들이, 최근에 일어난 새로운 사태가 아니라 몇 백 년 전부터 있어온 일이며, 몇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기만행위에 대처하는 방법이 변하지 않았다는 점도 놀랍다.


2. 지식의 사기꾼, 과학의 사기꾼

   책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2006년에 시아출판사에서 출판된 하인리히 창클의 『지식의 사기꾼』과 『과학의 사기꾼』을 떠올렸다. 분면 어딘가에서 읽은 기억이 있는 내용이야, 라고 생각하면서, 책장을 뒤져보니 이 두 책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나 다를까 상당 부분 같은 내용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지식의 사기꾼에서는,

   알사브티 ‘박사', 멋대로 쓰이는 지능 검사, 버트 교수가 조작한 쌍둥이 연구, 상상의 산물인 뇌신경전달물질, 베링거의 가짜 화석, 필트다운 화석을 둘러싼 스캔들


   과학의 사기꾼에서는,

   프롤레마이오스의 별자리지도, 갈릴레이의 상대성 원칙, 뉴턴의 '조작인수', 블론로의 N선, 멘델의 교배실험, 헤켈의 생물발생 법칙과 사진 조작, 카머러의 이상한 두꺼비, 과학답지 않은 리센코의 '과학', 단백질 분리 사기극, 사기로 드러난 서머린의 피부이식, 스펙터의 키나제 사건, 롱의 이상한 호지킨 세포주


등이 그러하다. 물론, 하인리히 창클이 쓴 책에는, 윌리엄 보로드와 니콜라스 웨이드의 글 상당수가 참고문헌으로 올라있다.


3. 윌리엄 보로드와 니콜라스 웨이드, 그리고 하인리히 창클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책은 아래와 같은 점에서 다르다.

   하인리히 창클의 책이 구체적인 사례들을 전달하는데 그친다면, 윌리엄 보로드와 니콜라스 웨이드의 책은 구체적인 사례와 더불어 그런 기만행위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과학자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과 과학자들이 말하는 자기규찰시스템의 세 가지 메커니즘 동료평가, 심사위원제도, 재연 등이 올바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적 시도들을 소개하면서, 과학자 사회가 어떻게 변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다. 따라서, 재미있는(?) 일화를 읽고 싶다면 과학/지식의 사기꾼을, 일화와 더불어 과학자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알고 싶다면,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을 추천한다.


   이들은 모두 이러한 과학자의 기만행위들을 1830년 런던에서 발표된 찰스 배비지의 『영국 학술의 몰락에 관한 고찰들』을 근거로 하여 ‘위조(forging)’, ‘요리하기(cooking)’, ‘다듬기(trimming)’, 그리고 ‘표절’등으로 구분하였다. 그런데, 이 두 책은 저자의 오류인지, 번역자의 실수인지는 알 수 없으나 똑같은 내용을 다르게 표현한 점이 눈에 띈다.


   『지식의 사기꾼 / 과학의 사기꾼』에서의 머리말 [학문에서 사기는 어떻게 일어나나?]의 일부 p. 8-9를 보자. 배비지도 그로 말미암아 여러 측정치를 합하여 얻어낸 중간 값이 본질마저 뒤바뀌는 정도가 아닌 한 ‘요리하기’가 반드시 해로운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그보다 더 위험해 보이는 절차를 배비지는 ‘다듬기’라고 이름 지었는데, 독일에서는 이를 흔히 ‘데이터 마사지’라고 한다. -중략- 배비지는 요리하기보다 더 위험한 사기행위를, 처음부터 자신이 설정한 값이 나오도록 측정값을 계속해서 조작하는 ‘다듬기’라고 보았다.


   그러나 『진신을 배반한 과학자들』의 2장 [역사 속의 기만행위 사례들]의 일부 p. 43을 보면,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배비지는 당시 이런 다듬기가 다른 유형의 기만행위들에 비해 그나마 덜 비난할 만한 것임을 깨달았다. “그 이유는 다듬기를 하는 사람의 관찰로 나온 평균값은 다듬기를 하든 그렇지 않든 같기 때문이다. -중략-” 배비지의 관점에서 다듬기보다 더 고약한 행위는 그가 ‘요리하기cooking)’라고 기술한 것이었다.


   과연 배비지의 견해는 두 책의 저자 중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4. 이런 일들이 비단 과학계에서만 일어나는 일들은 아니다. 논문 표절, 도용, 위조는 이미 학계에 많이 퍼져 있다. 보통 내부 고발자에 의해 밝혀질 수밖에 없는데, 만약, 누군가가 학계에서 그런 문제점을 지적하고 바로잡으려 한다면, 아마도, 그 내부 고발자는 학계에서 더 이상 활동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정말 몇몇, 양심적인 학자를 제외하고 대다수의 교수들이 자신의 양심에 아무런 죄책도 없이 그러한 일을 저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부산에 있는 모 대학 교정에 산책 삼아 나갔다가, 교수 동 앞에 푯말 - 이 연구동은 교수님들이 연구를 하는 곳이니 정숙해주십시오- 을 보고 코웃음을 치며 돌아섰다. 과연 몇 명이나 되는 교수들이 연구를 하고 있을까? 대학원 석․박사 과정생들에게 제대로 논문 지도를 해주는 교수가 몇이나 되며, 뒷날을 볼모로 삼아 자신의 연구를 그들에게 떠넘기는 교수는 또 얼마나 많은가? 내가 지나치게 부정적인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이 한국대학의 현실이다.

   몇 백 년 전에도, 이 책이 쓰인 20여 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변한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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