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 (리커버 한정판)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평점 :
품절


꽤 오래 전에 읽은 소설이어서, 내용을 다 기억하고 있는 줄 알았다. 이번에 독서동아리에서 이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로 하고 다시 읽다 보니 이렇게 낯설수가. 어쨌든 처음 이 책을 읽었던 그때와 지금의 나 사이에 간극이 꽤 커져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자 노인은 광장 한구석, 빨간 손수레를 끌고 다니는 팝콘 장수를 가리켰다. "저 사람도 어릴 때 떠돌아다니기를 소망했지. 하지만 팝콘 손수레를 하나 사서 몇 년 동안은 돈을 버는 게 좋겠다고 결심한 모양이야. 좀더 나이가 들면 한 달 정도 아프리카를 여행하게 되겠지. 어리석게도 사람에게는 꿈꾸는 것을 실현할 능력이 있음을 알지 못한 거야."

"저 사람은 차라리 양치기가 되는 길을 선택해야 했어요."

산티아고가 소리 높여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저 사람도 그 생각을 했었다네. 하지만 팝콘 장수가 양치기보다는 남보기 근사하다고 생각한 거지. 양치기들은 별을 보며 자야 하지만, 팝콘 장수는 자기 집 지붕 아래 잠들 수 있잖아. 또 사람들도 딸을 양치기보다는 팝콘 장수와 결혼시키려 하지."

노인이 말했다.  

가게 주인의 딸을 떠올린 산티아고의 가슴 한켠이 쓰려왔다. 그녀가 사는 곳에도 팝콘장수는 있을 것이다. 

"결국, 자아의 신화보다는 남들이 팝콘 장수와 양치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되어버린 거지."

노인은 책장을 넘기고는 아주 맛있게 한 페이지를 읽었다. 산티아고는 잠시 기다렸다가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처음에 책을 읽고 있는 그에게 노인이 말을 걸어왔던 것처럼.

"왜 제게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거죠?"

"자네가 자아의 신화를 위해 살려고 하기 때문일세. 그런데 지금 자네는 포기하려 하고 있어."

p.48~49

작가는 소설의 시작부터 현실에 안주하거나 모험을 떠나지 않는 사람들을 지적한다. 팝콘 장수도 떠돌아 다니고 싶어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지만,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돈을 벌고, 한 곳에 정착하는 삶을 선택하였다. 노인은 그 이유를 그것이 남보기에 근사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노인의 입을 빌어 작가는 팝콘 장수와 같은 삶이 아니라 '자아의 신화'를 만들어가는 삶을 요구한다.

이 책을 끝까지 읽으면, 온갖 역경을 겪으면서도 산티아고는 자신의 신화를 만들어간다. 어떤 사람은 겨우 배로 두 시간만 이동하면 찾을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가보려고 시도도 하지 않는다. 산티아고는 꿈에서 보았던 보물을 찾기 위해 이집트로 가는 길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 길에서 영국인, 낙타몰이꾼, 크리스탈가게 주인, 파티마, 수도승, 연금술사, 사령관 등을 만나고 결국은 자기 자신의 신화를 만들어낸다.

작가는 산티아고의 삶처럼 우리가 살기를 바랐을 것이다. 자기 자신의 신화를 찾아 떠나지 않는 사람은 불행하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우리들, 인간의 마음은 그 보물에 대해서는 거의 얘기하지 않아. 사람들이 보물을 더이상 찾으려 하지 않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어린아이들에게만 얘기하지. 그러고는 인생이 각자의 운명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그들을 이끌어가도록 내버려두는 거야. 불행히도, 자기 앞에 그려진 자아의 신화와 행복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은 거의 없어. 사람들 대부분은 이 세상을 험난한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지.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세상은 험난한 것으로 변하는 거야. 그래서 우리들 마음은 사람들에게 점점 더 낮은 소리로 말하지. 아예 침묵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우리의 얘기가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기를 원해. 그건 우리가 가르쳐준 길을 따라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는 걸 바라지 않는다는 뜻이지. p.214

자기 앞의 보물, 자기만의 신화, 운명이 가리키는 행복을 찾아 떠나는 삶을 살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불행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떤 이는 '모험'을 통해 짜릿한 행복을 찾을 수 있겠지만, 어떤 이는 '펀안함'과 '안락함'이 최고의 행복일 수 있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행복의 모습은 다양하다. 산티아고는 자신의 보물을 찾아 떠났고, 그 보물을 결국은 찾아내었다. 산티아고의 행복은 돈을 다 빼앗기는 일을 두 번, 세 번을 겪고, 목숨을 잃을 뻔하면서 찾아낸 것이다. 사실 나는 그런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싶지 않다. 작가는 각자의 운명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떠나지 않은 삶을 고통스럽다고 표현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고통과 위험을 감수하면서 자기의 신화를 찾아 나선 이들이 모두 산티아고처럼 보물상자를 찾아낼 수 있을까? 현대 사회의 기회는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 누군가는 보물상자를 찾을 것이고, 누군가는 보물상자를 찾기 전에 목숨을 잃을 것이다.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모두 이루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주지만 모두가 보물상자를 가질 수는 없다. 산티아고처럼 떠나는 이가 있다면, 팝콘장수처럼 남아 있는 자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둘은 각자의 방식대로 행복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었던 2001년에는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를 열고 희망의 열기가 가득했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그때는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할 것만 같았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처럼 살아서는 안될 것만 같았다. 산티아고처럼 미지의 세계를 향해 떠날 용기가 필요했던 시대였다. 지금은 어떤가? 그런 무모한 도전보다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소확행의 시대가 아닌가. 그 작은 행복마저도 누리기 쉽지 않은 시대기 때문에 더 소중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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