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스타게이트-아틀란티스 Stargate: Atlantis Season 4, 2007~2008
제작 : 조셉 말로찌, 폴 멀리
출연 : 조 플래니간, 토리 히긴슨, 레이첼 러트렐, 레인보우 선 프랭크스, 데이빗 휴렛 등
작성 : 2009.01.04.
“아앗 카터 누님! 이곳에서 뵙게 되니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즉흥 감상-
한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연속극의 형태를 가진 작품들은 감상문을 쓴다는 사실 자체에 부담이 있었던지라, 한 번 두 번 미룬다는 것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흘러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럼, 반가운 얼굴이 나온다는 것은 좋았지만 어째 이야기가 끝나버릴 것 만 같다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소개의 시간을 조금 가져볼까 하는군요.
작품은 페가수스 은하계의 레플리케이터에게 반격도 아닌 선재공격을 한 대가로 아틀란티스 기지에 직접적인 반격을 시작한 레플리케이터에 대항하다가 결국 행성을 떠나게 되었던 것에 이어, 그 과정에서 중상을 입게 된 위어박사가 있게 되었다는 것으로 시작의 장을 열게 됩니다.
그렇게 행성에서의 탈출은 성공 했지만 새로운 행성에 착륙하기까지의 많은 어려움이 발생하게 되고, 그것들을 해결하기 위한 여러 이야기들이 있게 되는데요. 그 과정에서 그들의 지휘자였던 위어박사를 잃게 되자 그동안 우리은하계와 페가수스 은하계간 중간 정거장에 있던 사만다 카터 대령이 아틀란티스의 지휘자로 오게 되는 것으로 본론으로의 문이 열리게 됩니다.
계속해서 크리스털을 기반으로 살아가고 있던 생명체와의 조우, 새로운 연합이라 할 수 있을 ‘유목민’들과의 접촉, 기억을 잃어버린 아틀란티스 원정대의 혼란 속에서 이 모든 것을 해결해보고자 노력하게 되는 맥케이 박사의 활약, 테일라 쪽 사람들의 축제일에 정착지를 찾게 된 닥터 켈러와 테일라는 아소스인들이 사라져버렸음을 알게 되고, 사라져버린 테일라 쪽 사람들의 정보를 얻고자 ‘베디난’ 중에서도 ‘예언자’를 만나게 되고, 레플리케이터를 무력화하기위한 무기를 만들고자 레이스의 기술력을 응용하려는 과정에서 맥케이 박사의 동생이 납치당하게 되고, 약간의 사고를 동반하는 지극히 일상적인 아틀란티스의 생활 속에서 무엇인가 ‘레플리케이터 화’된 것이 드러나는 등 아틀란티스 원정대의 살아남기 위한 이야기가 계속되지만…….
이번 감상문을 작성하며 조사과정을 통해 접하게 된 정보지만, 카터 누님이 아닌 그동안 미운 털 고운 털 다 박혀버렸던 울지 씨가 다음 이야기 묶음에 지휘관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도 잠시, 다음 이야기 묶음이 그 자체로 종영처리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는데요. 그저 안타까운 마음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뭐 ‘스타게이트: 유니버스 Stargate: Universe, 2009’라는 새로운 시리즈의 정보를 드디어 IMDb.com 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는 사실에 신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해보려합니다.
역사의 변주곡이라고도 말해지는 신화. 문득 베르나르 베르베르 님의 소설 ‘신 Nous les Dieux, 2004’까지 읽고 있어서인지 ‘우리는 어떤 신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의문을 떠올려 볼 수 있었는데요. 심심하면 역사 왜곡이니 날조니 말하면서 정작 우리 자신의 것은 잘 지켜나가고 있지 못한 실정에 대해, 단지 미국은 그들만의 신화가 없기 때문에 이런 자유로운 상상력이 허용… 아. 네. 캐나다와의 합작이기 때문에 미국 이야기만 하는 것은 문제가 좀 있군요. 아무튼,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기술력의 문제라기보다 다양한 문화에 대한 열린 자세의 부제와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 스스로 편식화 하고 있는 장르 문학을 감지하고 있는 편이다보니 계속되는 다방면으로의 시도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 뿐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제가 좋아하는 SF 중 ‘파이널 컨플릭트 Earth: Final Conflict, 1997’라는 외화드라마를 처음 봤을 때는 작품의 영상적인 기술력보다는 탄탄한 이야기구조에서 매력을 느꼈었기 때문에 푹~ 빠져볼 수 있었던 것 처럼 말이지요.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문화의 불균형과 같은 이상한 소리를 적어버렸습니다. 그래도 이런 작품들을 볼 때마다 안타깝게 그 존재감을 잃어버리는 국내 SF작품들이 떠오르곤 한다는 점에서, 이렇게라도 한번씩 ‘제 기록을 읽어주시는 분들은 국내 작품 중 어떤 장르문학을 많이 접하시는지요?’라고 물음표를 던져본다는 것으로, 이번 기록은 여기서 마쳐보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