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A.I. 라이징 A.I. Rising, EDERLEZI RISING, 2018

감독 : 라자르 보드로자

출연 : 세바스찬 카바자, 스토야 등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작성 : 2024.10.03.

“우리는 심연의 우주 속에서 어디를 향해 유영하고 있는가.”

-즉흥 감상-

영화는 ‘2148년, 지구 전체가 자본주의에 착취되었기에, 그 균형을 되살리고자 우주개척으로 눈을 돌렸다’와 같은 안내와 함께 검은 하늘을 가리고 있는 거대한 구조물로 시작의 문을 엽니다. 그리고는 장거리 우주여행을 하기 전에 심사를 받고 있는 남자의 모습으로 시작의 문을 여는데요. 자신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의사소통이 가능한 인간형 로봇과 함께 알파 센타우리로 향하는 우주선에 몸을 싣는데…….

다른 건 일단 그렇다 치고 즉흥 감상은 어떤 의미냐고요? 음~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이번 작품을 감상하셨을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SF가 아니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다시 적어보면 ‘SF의 탈을 쓴 사이코드라마’라는 인상을 받았는데요. 위의 즉흥 감상은 느낌을 어떻게 적어볼까 고민하다가 적어본 문장입니다.

‘시작하고 얼마 있지 않고 일단 벗고 보는 영화는 결국 그것밖에 볼 게 없다’라는 것에 대해 제 생각이 궁금하시다고요? 음~ 이런 질문을 하신다는 것 자체가 이번 작품을 만나보신 분이라 생각되는데요. 아무튼, 지금까지 만나왔던 영화 중에 초반부터 노출이 많은 작품은, 사실 그것 말고는 볼 게 없긴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그런 노출까지 예술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많이 보였는데요. 혹시나 이 작품을 SF로 생각하고 만나 실망하신 분이 있다면, 선입견을 살짝 내려놓고 다시 보실 것을 권해봅니다. 그러면 영화가 조금 다르게 보일 수 있을 것이니 말이지요.

선입견을 내려놓는다는 게 생각보다 힘든 일인데, 그걸 어떻게 하면 되냐고요? 음~ 딱히 이렇다 할 방법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일단 한번 영화를 본 다음에, 뭔가 이상하다 싶은 응어리가 남으면 한동안 망각의 창고에 방치합니다. 그러다 일상생활 속에서 뭔가 번뜩이는 생각이 스칠 때 다시 꺼내보는데요. 이번 작품은 일단 SF라는 장르적 특성을 외면하고 다른 것에 집중해보기로 했습니다. 바로 시각적으로 자꾸 신경 쓰였던 부분인데요. ‘눈동자’를 다양한 방법으로 연출하고 있었다고 느낀 건 과연 저뿐이었을까요?

갑자기 웬 눈동자 타령이냐고요?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마음의 창’에서의 눈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있을까요? 안에서 밖으로? 아니면 밖에서 안으로? 그것도 아니라면 양방향? 이번 작품을 보다 보면 우주선의 분화구나 우주의 모습, 그리고 시선 등 ‘눈’을 다양한 방법으로 시각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눈동자와 시선의 방향을 중심으로 이번 작품을 만나게 되면, 처음 이 작품을 보며 뭐지 싶던 것이 조금은 이해되게 변했을 것이라 장담해봅니다.

그런데 제목이 ‘A.I. 라이징’이면 SF 아니었냐고요? 으흠. 영어 제목만 보면 그런 것 같은데, 이 작품을 IMDb에서 찾아보면 ‘EDERLEZI RISING’이라는 제목으로도 포스터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EDERLEZI’를 번역기에 돌려보니 ‘튀르키예어’라고 알려줄 뿐 의미를 알려주진 않았습니다. 대신 ‘EDERLEZI’를 따로 검색해보니 ‘전 세계 롬인들이 봄이 돌아왔음을 축하하는 축제의 이름’이라는 설명을 찾아볼 수 있었는데요. 흐음. 그렇군요. 이 작품은 인공 지능의 냉혹한 마음에도 인간을 이해하는 따뜻이 참아올 수도 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은데, 다른 분들은 또 어떻게 감상하셨을지 궁금해집니다.

그럼, 또 어떤 작품의 감상문으로 이어볼지 고민의 시간을 가져보겠다는 것으로, 이번 기록은 여기서 마칠까 하는데요. 오늘 밤에는 영화 ‘어둠의 저주 Darkness Falls, 2003’를 만나볼까 합니다.

TEXT No. 3767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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