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우리 사회에는 분명히 있고 그것은 정치가들이나 활동가들이 딛고 춤을 출 수 있는 현실이라는 이름의 마루를 까는 일이다. 역사적 현실이 학자들에 의해 확보되지 못한다면 정치가들은 날아다닐 수밖에 없을 것이다. (19)

단적으로 5.18은 구조주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라 구조를 만든 사건이었고 모든 인간적 사회적 요인들을 다시 배열시킨 사건이었다. 5.18은 우리의 몸에서 출발하여 영혼을 일깨운 사건이었다. (26)

광주는 절해의 고도였다. 항쟁을 결의한 젊은이들에게 마지막 언명은 ‘광주 사수‘였다. 계엄군의 군사력 앞에 그들은 광주를 지킬 수도 없고, 도청을 지킬 수도 없으며, 사과를 받아낼 수도 없고, 민주화를 이룰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외상없는 ‘피의 값‘을 위해, 언젠가 광주 시민의 명예회복과 부활을 위해서는 누군가 거기서 죽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전쟁이나 혁명을 위해 죽음을 택한 것이 아니라 광주공동체, 민족공동체의 도덕성과 명에를 위한 것이었다. 살아남은 자들의 십자가는 그들이 용감하게 싸우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젊은이들을 희생의 제단에 바침으로써 그들이 인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58)

어떤 이념이나 사상은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문제에 관심을 갖고 모든 문제를 대면하고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며 어떤 특정한 문제들을 외면 한다면 그 이념이나 사상은 스스로 위선임을 자백하는 것이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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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레와의 이별, 그리고 첫 번째 발견: 다행히 아무도 나를 모른다> 매일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사는 모든 이들을 상상해보라. 사람들은 드러나고 보여진다. 한 개도 아닌(당연한 소리지만) 수많은 눈들을 통해서, 그게 어떨지그냥 상상해보라.
우선 언제나 사람답게 행동해야만 할 것이다. 단 하루라도 비인간적으로 살 수 없다. 내가 생각하는 비인간적이라 함은 즉 무례함, 뻔뻔함, 사악함, 더러움 같은 부정적인 성질들을 뜻한다. 사람들은 비인간적인 남들을 보고 나면 그들을 탓하는 동시에 자신을 돌아볼 것이다. 그러한 삶이다.
반면 나는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 하루 종일 그래도 된다. 일부러 사람답게 있을 필요가 전혀 없다. 아무도 나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 그 사람들이 하루 동안 얼마나 많은 말을 해야 하는지 짐작해보라. 직장에서, 집에서 배우자와 함께(아직 아이들이 부부 생활을 박살내지 않은 경우에). 나는 상황이 더 나쁠지도 모를 아이들에게도 애잔한 심정을 담아 보낸다. 아이들은 하루 종일 감시당한다. 특히 말을 배우는 시기에 그렇다. 사람들은 아이들 앞으로 몸을 기울여 ‘엄마‘나 ‘아빠‘, 또는 ‘감사합니다‘ 등 끔찍한 말들을 강요하고 얼굴을 가까이 대고 바라본다. 아이들이 그 말을 할 때까지.
곰곰 따져볼수록 기분이 개운해진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사람들은 정말 욕보고 산다. (68-69)

저게 대체 무슨 꼴이람, 하고 혀를 차며 자리에 선 채로 다른 쥐인간들을 관찰한다(나는 이제부터 이들을 ‘쥐인간‘이라고 부를 작정이다. 달리 부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노력가들은 여러모로, 그중에서도 다음과 같은 점에서 최악이다.
노력가들은 쥐인간이 되기를 미친 듯이 갈망한다.
다른 쥐인간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면서도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고 싶어 한다.
하등한 자들 가운데 가장 하등한 자들이다. 실로 쥐인간들보다 훨씬 형편없다.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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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재능말고는 그 어떤 것도 믿고 싶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정신은 너무도 남부적이었다. 따라서 자신의 결단을 막상 실행하려고 할 때, 그는 망설였다. 이 망설임은 청년들이 대양 한가운데에서 어느 쪽으로 그들의 힘을 모을 것인지 또는 어떤 각도로 돛을 올리면 바람을 제대로 받는지를 몰라서 머뭇거리는 것과 같았다. (p.44)

그녀는 이 통탄할 사건에 대해 자주 얘기했다. 자기가 너무 지나치게 사람을 믿었다고 한탄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사실 암코양이보다 더 의심이 많은 여자였다. 그녀도 여느 사람들처럼 가까운 사람은 못 믿으면서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여는 그런 여자였다. 이상하지만 사실인 이 정신 상태의 원인을 인간의 마음속에서 찾아보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한테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면서도 자신들의 허점을 그들에게 보인다. 그런 다음에는 그들이 당연히 받을 벌을 받는다고 남몰래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에게는 아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어쩔 수 없이 느낀다. 또한 그들은 자기들이 지니지 못한 장점을 지닌 듯이 보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그들은 자기들과 관계가 없는 존경과 사랑을 불시에 얻고 싶어한다. 심지어 언젠가는 그들이 그것을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를 위험조차 무릅쓰고 말이다. 결국 친구나 이웃 사람들에게 아무런 선행을 베풀지 못하고, 태어날 때부터 이익에 골똘하는 부류들이 있다. 그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을 도와주어서 자존심을 만족시키는 사람들도 있다. 즉 애정의 원(圓)이 자기들과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덜 사랑하게 되고, 멀어질수록 더욱 친절해진다. 보케르 부인은 근본적으로 치사하고 잘못된, 밉살스러운 이 두 가지 성격을 함께 지녔다. (32-33)

레스토 부인의 푸른 내실과 보세앙 부인의 장밋빛 살롱 사이에서, 으젠은 어느 강의실에서도 들을 수 없는 〈파리 법률〉을 삼 년간이나 공부한 셈이었다. 그것은 사회의 고등 법률을 구성하고 있어서 잘 습득하고 응용하면 모든 것에 이를 수 있다. (98)

한편의 세상에서는 가장 우아한 사교계의 신선하고 매력적인 인상과 경탄할 기교와 사치에 에워싸인, 젊고 발랄한 모습과 시정(詩情)이 넘쳐흐르는 정열적 얼굴들을 볼 수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가장자리에 진흙이 묻은 흉칙한 그림과 정열이 뼈와 살만 남겨놓은 얼굴만을 볼 수 있다.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자의 분노가 어떤 것인가를 보세앙 부인한테서 배웠고, 그 배움이 걸려들기 쉬운 제안들을 그는 자신의 기억에서 되살려냈다. 결국 그는 그 가르침 때문에 이 비참한 광경을 설명할 수 있었다.
라스티냐크는 성공하기 위해서, 평행하는 두 개의 참호를 뚫고 나가기로 결심했다. 즉 학문과 연애에 기대어 유명한 법학자와 사교계의 총아가 되는 것이다. 그는 아직도 어린애였다! 이 두 선은 결코 서로 만날 수 없는 점근선(漸近線)이다. (113-114)

이곳 파리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출세하는가를 알고 있나? 천재성을 떨치든지 아니면 능수능란하게 타락해야 하네, 사회 집단 속으로 대포알처럼 뚫고 들어가거나 페스트 균처럼 스며들어 가야 하네. 정직이란 아무 소용이 없네. 사람들은 천재의 위력에 굴복하고, 그것을 미워하고 비방하려고 들지. 왜냐하면 천재는 분배하지 않고 독점하니까 말일세.
천재가 버티기만 하면 사람들은 굴복하게 마련이네. 한마디로, 사람들은 무릎 꿇고 존경하는 법일세. 왜냐하면 사람들은 천재를 진흙 속에 묻어버릴 수 없으니까. 타락은 힘을 얻고 재능은 희귀한 것일세. 그래서 타락은 도처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함의 무기이고 자네는 이 타락의 첨단을 여러 곳에서 느낄 걸세. (148)

그래서 성실한 인간은 모든 사람의 적이 되어버렸네. 도대체 성실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지 알겠나? 파리에서 성실한 사람이란 입을 다물고 분배를 거절하는 사람일세. 대가를 보상받지도 못하면서 죽도록 일만 해야 하는 이 불쌍한 노예들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겠네. 나는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이 내쫓은 둔재들의 집단이라고 부르고 있어. 물론 그들이 피운 꽃에는 미덕도 있지. 하지만 또한 가난이 있는 법이야. 하나님이 최후 심판 때 결석하는 나쁜 장난을 치듯이, 나는 이 선량한 사람들의 주름살을 보네. 그러니까 자네가 서둘러 출세하기를 원한다면 벌써 부자가 되어 있거나 겉으로라도 그렇게 보여야 한다는 말일세. 부자가 되려면 선풍을 일으켜야 하네. 선풍을 일으키지 못하면, 뭣하지만, 사기쳐야 하네. 미안한 말이지만 자네가 뛰어들고 싶은 백 가지 직업에서 재빨리 성공하는 사람이 열 명쯤 있을 걸세. 세상은 이 사람들을 도둑놈이라고 부르네.
이제 자네가 결론을 끌어내 보게! 인생이란 지금까지 얘기한 그대로야. 인생이란 부엌보다 더 아름답지 않으면서도 썩은 냄새는 더 나는 거라네. 인생의 맛있는 음식을 훔쳐 먹으려면 손을 더럽혀야 하네. 다만 손 씻을 줄만 알면 되지. 우리 세대의 모든 윤리가 거기에 있네. 내가 이처럼 자네에게 세상 얘기 하는 것은 세상이 나에게 그럴 권리를 주었기 때문이야. 나는 세상을 알고 있네. (149)

이렇게 해서 일종의 숙명에 의해, 그의 생활에서 일어난 보잘것없는 사건들이 그를 인생의 흐름 속으로 밀어넣었다. 보케르 하숙집에 사는 무서운 스핑크스의 관찰에 따르면, 이 흐름 속에서는 전쟁터에서처럼 자기가 죽지 않기 위해서는 적을 죽여야 한다. 기만당하지 않기 위해서 남을 기만해야 한다. 양심과 진실은 창살 밖으로 던져버리고 가면을 써야 한다. 인정 없는 사람처럼 행세하고 스파르타에서처럼 영예를 차지하기 위해서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행운을 붙잡아야 한다. (165)

네가 꺼낸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인생의 첫머리에서 부딪히게 되는 문제야. 그런데, 너는 이 어려움을 단번에 뛰어넘고 싶은가 보지. 그러려면 이 친구야, 너는 알렉산더 대왕이 되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감옥으로 가게 되는 거야. 나는 시골에서 아버지 뒤를 이어 고지식하고 보잘것없는 생활을 하게 될 터인데 그걸로 만족하고 있어. 인간의 감정이란 가장 좁은 곳에서나 가장 넓은 곳에서나 똑같이 충분한 만족을 느낄 수 있는 법이지. 나폴레옹도 저녁을 두 번 먹지는 않았어. 성 프란체스코 교회 기숙생인 의대생보다도 애인이 더 많지도 않았어. 여보게, 우리의 행복이란 우리 발바닥에서부터 후두부까지 사이에 있는거야. 일 년에 백만 루이를 쓰건 백 루이를 쓰건, 우리 마음속에서 본질적으로 느껴지는 정도는 같은 거라네. (187)

파리 법전의 준엄한 법률에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고독한 영혼 속에서 만날 수 있다. 사회 교리에 이끌리지 않는 맑고 끝없이 계속해서 솟아나는 샘 가까이에서 살며, 늘상 푸른 나무 그늘에 서 있고 자기 자신을 스스로 깨달으며 자신을 위해 씌어진 무한한 언어를 경청하기를 즐기는 영혼! 지상의 인간들을 불쌍히 생각하면서 하늘에 날개를 펴고 끈기 있게 기다리는 영혼 말이다. (305)

「밥맛 떨어지겠소. 한 시간 전부터 영감에 대해서 온갖 얘기를 다하지 않았소? 파리라는 좋은 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의 하나는,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태어나서 살다가 죽을 수 있다는 것이오. 그러니 이러한 문명의 혜택을 누립시다. 오늘도 죽은 사람이 육십 명이나 되는데, 파리에서 죽은 그 많은 사람들에게 일일이 애도의 뜻을 표하겠다는 말이오? 고리오 영감이 뻗었다면, 본인으로서는 차라리 다행한 일이지! 영감을 좋아한다면 가서 보살피시지.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조용히 식사나 하게 해주시오」
「오! 맞았어요. 영감이 죽은 것은 본인에게는 참 다행한 일이에요! 불쌍한 영감은 일생 동안 줄곧 불행했을 테니까요」
과부가 말했다.
으젠이 보기에는 부성애의 상징이었던 이 영감에 대한 유일한 추도사란 이런 것이었다. 열다섯 명의 하숙인들은 보통 때처럼 잡담을 시작했다. 으젠과 비앙이 식사를 끝냈을 때 포크와 숟가락 소리, 대화하다가 웃는 소리, 무관심하고 식충이들인 이들 얼굴에 나타난 가지가지 표정들이 너무나 혐오스러워 두 사람은 소름이 끼쳤다. (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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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결을 따라 되짚어 보는 82년생 김지영의 생애사. 이것은 곳곳에 말을 잃고 숨어 있는 한국 여성들의 생애사이기도 하다. 살고자 하는,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지만 성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그래서 더 막막한 장벽들에 끊임없이 부딪치고 마땅한 자아 없이 여자, 딸, 엄마 김지영으로만 남은 생. 남녀불문 페미니즘에 문외한인 이들이 그에 대한 첫 감각을 다지기에 좋은 소설이다. 이 소설처럼, 많은 성 불평등이 아주 투명하게, 그렇지만 아주 깊게 배어 있다. 모든 여자의 인생에. (17.1.23)

"김지영 이제 걔랑 완전히 끝난 것 같던데?" / 예전부터 김지영한테 관심 있지 않았느냐, 관심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잘해 봐라, 우리가 도와주겠다, 하는 여러 목소리들이 계속 들렸다. 처음에는 꿈인가 했는데 곧 정신이 들면서 방 안에 있는 무리가 누군지 짐작할 수 있었다. 밖에서 술을 마시던 복학생 선배들이었다. 김지영 씨는 이제 잠도 완전히 깼고 좀 덥기도 했는데 본인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불을 걷고 나갈 수가 없었다. 본의 아니게 민망한 대화를 엿듣고 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말했다. / "아, 됐어. 씹다 버린 껌을 누가 씹냐?" /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지만 남에게 억지로 권하지는 않고, 후배들에게 밥을 잘 사주지만 되도록 함께 먹지는 않는 선배였다. 태도가 단정하고 깔끔해서 김지영 씨도 항상 좋게 생각하고 있었다. 설마설마 싶어서 귀를 쫑긋 세우고 더 유심히 들었는데, 아무래도 그 선배의 목소리가 맞았다. 취했을 수도 있고, 쑥스러운 것일 수도 있고, 친구들이 괜한 짓을 할까 봐 더 과격하게 말했을 수도 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김지영 씨의 처참한 기분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일상에서 대체로 합리적이고 멀쩡한 태도를 유지하는 남자도, 심지어 자신이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여성에 대해서도, 저렇게 막말을 하는구나. 나는, 씹다 버린 껌이구나. (…) 밤새 뒤척였다. 다음 날 아침, 김지영 씨는 숙소 근처를 산책하다가 그 선배와 마주쳤다. / "눈이 충혈됐네? 잘 못 잤어?" / 선배는 평소와 똑같이 다정하고 차분히 물었다. 껌이 무슨 잠을 자겠어요, 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김지영 씨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92-94)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이나 약속이나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132)

"그리고 잔소리 안 듣는 방법이 있긴 한데……." / "뭔데?" / "그냥 하나 낳자. 어차피 언젠가 낳을 텐데 싫은 소리 참을 거 없이,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낳아서 키우자." / 정대현 씨는 마치 노르웨이산 고등어를 사자, 라든가 클림트의 [키스] 퍼즐 액자를 걸자, 같은 말을 하는 것처럼 큰 고민 없이 가볍게 말했다. 적어도 김지영 씨에게는 그렇게 들렸다. 구체적인 가족계획이라든가 출산 시기를 얘기해 본 적은 없지만 정대현 씨도 김지영 씨도 결혼을 하면 당연히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고, 정대현 씨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김지영 씨는 그렇게 쉽게 결정할 수가 없었다. (135)

첫 직장이었다. 첫발을 내딛은 세상이었다. (…) 세상에 큰 목소리를 내는 일도,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뭔가를 만들어 내는 일도 아니었지만 김지영 씨에게는 무엇보다 즐거운 일이었다. 주어진 일을 해내고 진급하는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꼈고, 내 수입으로 내 생활을 책임진다는 것이 보람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끝났다. 김지영 씨가 능력이 없거나 성실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 되었다.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고 일하는 게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듯,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는 것도 일에 열정이 없어서가 아니다. (146)

그런데 적지 않은 언론에서 병원의 처치와 약물들이 아이에게 미칠 수 있는 인과관계도 불분명한 악영향을 언급하며 죄책감과 불안감을 안겨 주었다. 머리만 좀 지끈거려도 쉽게 진통제를 삼키는 사람들이, 점 하나 뺄 때도 꼭 마취 연고를 바르는 사람들이, 아이를 낳는 엄마들에게는 기꺼이 다 아프고, 다 힘들고, 죽을 것 같은 공포도 다 이겨 내라고 한다. 그게 모성애인 것처럼 말한다. 세상에는 혹시 모성애라는 종교가 있는 게 아닐까. 모성애를 믿으십쇼. 천국이 가까이 있습니다!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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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의 원천은 미래에 있고, 미래로부터 해방된 자는 아무것도 겁날 게 없는 까닭이다. (8)

퐁트벵은 길게 뜸을 들인다. 그는 뜸의 거장이다. 그는 오직 소심한 사람만이 뜸 들이는 걸 겁내며,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모르면서 성급 히 엉뚱한 문구들을 내뱉어 조소를 자초하고 만다는 것을 안다. 퐁트벵은 매우 장엄하게 침묵할 줄 알며 은하수조차도 그의 침묵에 감명받아 초조히 대답을 기다릴 정도다. (32)

"당신 엄마가 곧잘 당신에게 하던 말 생각나? 내겐 그 목소리가 어제처럼 생생하게 들려. 밀란쿠, 제발 농담 좀 그만둬. 아무도 널 이해해 주지 않을 거야. 넌 세상 사람 모두를 모독할 거고 끝내는 세상 사람 모두가 널 혐오하고 말 거야. 당신도 생각나?" (102)

비루한 하인들처럼 그들은 부과된 대로 인간 조건을 향유한다. 존재의 행복한 춤꾼들. 그런 반면 그, 비록 어떤 출구로 없음을 그도 알지만, 그는 그런 세상에 자신이 반대함을 부르짖는다. 그러자 그가 그 고상한녀석의 얼굴에 던져야 했을 대꾸가 머리에 떠오른다. "카메라들 아래 사는 것이 우리 조건이 되었다면 나는 그 조건에 반항하겠어. 난 그것을 선택하지 않았어!" 바로 이것이 대답이다! (113)

모든 몸짓에는 그들의 실제 기능을 넘어서, 그것들을 행하는 사람의 의도를 초월하는 어떤 의미가 있다. 수영복을 입은 사람이 물에 뛰어들 때는, 그 잠수자가 슬픔에 잠겼다 할지라도, 그 몸짓에서 드러나는 것은 기쁨 그 자체다. 누가 옷을 입은 채 물에 뛰어든다면 이는 얘기가 전혀 다르다. 익사하려는 자만이 옷을 모두 입은 채 물에 뛰어든다. 그리고 익사하려는 자는 머리부터 먼저 들어가지 않는다. 그는 자신을 떨어뜨린다. 몸짓들의 그 태고적 언어가 그렇게 하길 원하는 것이다. (141)

고인의 밤을 회상하면서 나는 실존 수학 교본 첫 번째 장들 가운데 하나에 드는 이 유명한 방정식을 상기했다. 속도는 망각의 강도에 정비례한다는 것. 이 방정식에서 우리는 여러 필연적 귀결들을 연역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이런 것, 우리 시대는 속도의 악마에 탐닉하며 그래서 너무 쉽게 자신을 망각한다. 한데 나는 이 주장을 뒤집어 오히려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 시대는 망각의 욕망에 사로잡혔으며 이 욕망을 충족 하기 위해 속도의 악마에 탐닉하는 것이라고. 그가 발걸음을 빨리하는 까닭은 사람들이 자신을 기억해 주길 이제 더는 바라지 않음을, 자신에게 지쳤고, 자신을 역겨워하며, 스스로 기억의 그 간들거리는 작은 불꽃을 훅 불어꺼버리고 싶음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고 싶어서라고.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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