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이 원하는 것은 격동적인 움직임이라는 것, 성찰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느낀다. 형에게는 오늘 영원한 작별인사를 할 것이다. 나는 이곳에 아무것도 남겨놓지 않을 것이다.‘내가 만약 •한다면 어떨까?‘라는 말로 나를 결박하거나 구속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 ‘만약‘이라는 말도, ‘어떨까‘라는 말도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벤야멘타 양은 이제 땅 속에 있다. 훈련생들, 나의 친구들은 일자리들을 찾아 흩어져버렸다. 그리고 여기서 만약 내가 산산조각이 나고 파멸해간다면, 무엇이 부서지고 파멸하는 것일까? 부서지고 파멸하는 것은 어느 영일 뿐이다. 나 개인은 그저 어느 영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이 펜도 던져버리는 거다. 생각하는 삶일랑 이제 집어치운다. 나는 벤야멘타 씨와 함께 사막으로 간다.보고 싶다. 황야에도 삶이라는 것이 있는지 보고 싶다. 호흡하고, 존재하고, 정직하게 선을 추구하며 살게 되지는 않을지 보고 싶다. 밤에 잠을 자고 꿈을 꿀 수 있는지도 알고 싶다.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가. 이제부터 나는 그 무엇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신에 대한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인가? 그렇다! 신은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그러니 무엇 때문에 신에 대한 생각을 한단 말인가? 신은 생각하지않는 자와 함께 간다. 자, 이제 그럼 영원한 작별을 고한다. 벤야멘타학교여. (184) - P184
여자라면 한 번이라도 겪었을, 사실은 수없이 쌓여 있지만 제정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넘겨야 했던 경험들이 떠오를 것이다. 읽기 쉽지만, 솔닛의 말 몇 마디마다 되살아나는 지난날의 불쾌들, 그 불쾌를 일으킨 말들과 행동과 사람들 때문에 읽기가 어렵다. 하지만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다. 나 스스로에게서, 그리고 모든 여성에게서 도망치지 말아야 할 책임이 더 크기 때문이다. (2026. 5. 18)
아버지는 아들에게서 성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게 법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수록 더욱 신중하게 지켜야 할 모종의 한도를 벗어나는 짓이라고 느꼈다. 따라서 아들을 나무랐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야단친 적이야 많지만, 이번만큼 호되게 꾸짖은 적은 없었다. 막 시작된 불길한 결말의 예언 같다고 할까! 아버지는 삶의 근본 감정이 모욕당한 기분이었다. 무언가 중요한 성취를 이룬 많은 남자들이 그러하듯, 그에게 삶의 근본 감정은 개인적 이익과는 동떨어진, 이른바 일반적이고 초개인적인 이익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달리 말하자면, 개인적 이익의 토대가 되는 것에 대한 진솔한 숭배였다. 그건 이익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리는 사람이 조화로운 공존과 일반적 원칙에 따르는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굉장히 중요하다. 혈통이 좋은 개가 주인의 발차기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식탁 밑의 자리를 찾아드는 것은 개의 타고난 비천함 탓이 아니라 충직함과 지조 덕분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계산속이 밝은 인간도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사람과의 관계를 진정으로 깊이 받아들이는 조화로운 인간에 비하면 절반의 성공도 거두지 못하는 법이다. (21) - P21
현대 시네아스트의 야망이자 나 자신의 야망은, 전통적으로 시나리오 작가에게 귀속된 작업까지 감당함으로써 자기 작품의 온전한 작가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전능함은 장점이나 자극이 되지 못하고 종종 불편하게 느껴진다. 자신의 주제를 완전히 휘어잡고 아무에게도 설명할 필요 없이 그때그때 영감 혹은 필요에 따라 쳐내기도 하고 추가하는 작업은 사람을 취하게도 하지만 마비시키기도 한다. 이 편의가 함정이다. 자기가 쓴 텍스트라도 자기가 침범할 수 없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게 안 되면 갈피를 못 잡게 되고 배우들도 감독을 따라 헤맨다. 혹은, 즉석에서 상황과 대사를 찍기로 했어도 ‘편집‘에서는 새로운 것과의 거리가 있어야 하고 글로 쓴 것의 독재는 영상으로 찍은 것의 독재로 대체되어야 할 것이다. 무작정 그때그때찍은 영상들로 이야기를 만드는 것보다는 어떤 이야기에 맞게 영상을 구성하는 편이 쉽다. (8-9) - P8
그래서 멀랜사는 또다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제 그녀의 배회는 전과는 달랐다. 이제 거친 남자들과는 절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고, 자신보다 나은 계층의 백인 남자들과 알고 지내고 싶어 안달하지도 않았다. 멀랜사는 이제 좀 더 진실한무엇인가를 원했다. 그녀에게 깊은 감동을 줄 뭔가를, 이제 그녀의 내면에 자리한 지혜와 함께 그녀 자신을 충만하게 채워줄 뭔가를, 정말로 온전하게 그녀를 채워 줄 뭔가를 갈망했다. (125, 멀랜사: 모두가 그녀일지도) - P125
제퍼슨 캠벨을 만나기 전 한 해 동안 멀랜사는 다양한 부류를 만났지만, 그들 누구에게도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냥 남자들을 만났고, 남자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냈고, 그러다 남자들을 떠났다. 어쩌면 그다음에는 좀 더 흥미로운 만남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매번 조금도 진지하지 않은 만남이었음을 깨닫게 될 뿐이었다. 그녀는 이제 뭐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었고, 모두들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지만, 그런 것이 조금도 즐겁지 않았다. 그런 남자들과 어울리며 배울 것은 없음을 그녀는 깨달았다. 멀랜사는 깊이 있는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원했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그런 남자를 찾았다고 확신했다. 그렇다, 깊은 가르침을 줄 수 있는 남자인지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멀랜사는 이미 그가 원하던 남자임을 확신했다. (126-127, 멀랜사: 모두가 그녀일지도) - P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