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해야 할지는 당신 자신이 오래전부터 알고 있습니다. 충분히 현명하시니까요. 술을 마시지 말 것이며 말을 자제할 것이며 음탕에 빠지지 말 것이며 특히 돈을 지나치게 숭배하지 말 것이니, 우선 당신의 술집부터 닫으시지요, 다 닫을 수는 없다면 두서너 곳만이라도. 무엇보다도, 정말 무엇보다도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그러니까 디드로 얘기 말씀이십니까, 예?"

"아니요, 디드로 얘기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그 거짓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는 결국 자기 내부에서도, 자기 주위에서도 어떤 진실도 분간하지 못하게 되며, 그리하여 자기 자신도, 타인들도 존경하지 않게 됩니다. 아무도 존경하지 않게 되면 사랑하는 법을 잊어버리게 되고, 사랑이 없는 상태에서 마음껏 즐기고 기분을 풀자니 정욕에, 조잡한 음욕에 빠져들게 되고 결국 완전히 짐승과 다름없는 죄악의 소굴로 빠져들게 되는 법이니, 이 모든 것이 사람들과 자기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거짓말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쉽게 화를 낼 수 있습니다. 정말이지 화가 나는 것도 이따금씩 아주 통쾌한 것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또한 사람이란, 아무도 자기의 화를 돋우지 않았건만 그저 저 혼자 잔뜩 화가 났노라고 지어내고 멋진 그림을 만들어 내기 위해 장식 삼아 거짓말과 과장을 부풀리고 말꼬리를 물고 늘어져 겨우 콩알 몇 개로 산 하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그 자신이 이 점을 잘 알면서도 그럼에도 스스로 버럭 화를 내는데, 그것도 통쾌할 때까지, 커다란 만족을 얻을 때까지 화를 내서 모욕감에 시달리다가 결국엔 상대방을 진정으로 적대시하기에 이르는 것입니다……. 자, 일어나서 앉으시지요, 정말 부탁입니다, 실은 이것조차도 모두 거짓 시늉이 아닙니까……." (92-93)

먼저 말을 꺼내는 일도 드물었다. 만약 이런 때에 누가 이 청년을 바라보면서 그가 무엇에 흥미를 느끼고 그의 머릿속에 가장 자주 떠오르는 생각이 무엇인지를 물어보고 싶어졌다면, 정말로, 그를 바라보면서는 답을 얻을 수 없었을 터이다. 그런데 이따금씩 집 안에서도, 심지어 마당이나 거리에서도 걸음을 멈추고 서서 생각에 잠긴 채 약 십 분씩이나 그렇게 서 있는 일이 있곤 했다. 관상학자라면 그의 얼굴을 들여다본 뒤 여기에는 어떤 상념도, 어떤 생각도 없으며 그저 어떤 관조만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을 법하다. 화가 크람스코이의 그림 중에 관조자라는 제목의 훌륭한 그림이 한 점 있다. 겨울의 숲이 묘사되어 있고, 숲속 길에 다 헤진 카프탄을 입고 짚신을 신은 한 농부가 길을 잃은 채 아주 깊은 고독에 잠겨 홀로 서 있는데, 꼭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지만 실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관조‘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누가 그를 툭 친다면, 그는 꼭 잠에서 깬 양 몸을 부르르 떨면서 상대방을 바라보겠지만, 무슨 영문인지 통 모를 것이다. 사실, 그 즉시 정신을 차리긴 해도 그에게 이렇게 서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물어본다면 분명히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며, 하지만 그 대신, 분명히 관조하는 동안 받은 인상은 자기의 내부에 감춰 둘 것이다. 그에게 소중한 것은 바로 이 인상들이어서, 분명히 의식도 하지 못하면서 살금살금 인상들을 축적하고 있는 것인데─무엇을 위해서, 왜 그러는지도 물론 알지 못하며서 말이다. 어쩌면 수많은 세우러 동안 인상들을 축적한 뒤 갑자기 모든 것을 내던지고서 편력 생활과 수도 생활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떠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어쩌면 갑자기 고향 마을에 불을 질러 버릴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민중들 사이에는 이렇게 관조하는 자들이 상당수 있다. 분명히 바로 이런 관조자들 중 하나가 바로 스메르쟈코프이고, 또 분명히 그 역시 거의 목적도 아직 모르면서 자신의 인상들을 탐욕스럽게 축적하고 있는 것이리라. (266-267)

"(…) 자, 이제 떠납니다, 하지만 카체리나 이바노브나, 당신이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형뿐이라는 것을 알아 두십시오. 모욕감이 클수록 형을 많이, 더욱더 많이 사랑하게 되실 테죠. 자, 바로 이것이 당신의 파열과 같은 사랑의 실체입니다. 당신은 형을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그러니까 당신을 모욕한 형의 모습을 사랑하고 있는 겁니다. 만약 형이 개과천선한다면, 당신은 당장 형을 내버릴 테고 사랑은 싹 식어 버릴 겁니다. 그러니까 당신에게 형이 필요한 건 당신이 얼마나 대단할 정도로 신실한지를 지켜보면서 동시에 형이 얼마나 신실하지 못한가를 꾸짖기 위해서죠. 이 모든 것이 당신의 오만함에서 비롯되는 겁니다. (…)" (401-402)

"(…) 사실 그때 그 아이가 당신 형의 손에 입을 맞추면서 ‘아빠를 용서해 주세요, 아빠를 용서해 주세요.‘라고 소리치면서 얼마나 큰 수모를 견뎌 냈는지는 오직 하느님만이, 그리고 저만이 알 겁니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은─다시 말해 당신의 아이들이 아니라 우리 같은 사람의 아이들, 멸시당하고 살지만 정신은 고귀한 가난뱅이들의 아이들 말입니다요─아홉 살 나이에 이미 세상의 진실을 터득하게 되는 겁니다요. 부자들이라면 어림도 없습죠. 그들은 평생 동안 이런 깊은 곳을 연구할 리도 없지만, 나의 일류쉬카는 광장에서 그의 손에 입을 맞추던 그 순간, 바로 그 순간에 진리가 무엇인지를 깨달아 버린 것입니다. 이 진리가 그 아이의 내면으로 들어온 순간, 그 아이는 영원히 씻지 못할 상처를 입었던 것입지요." (429-430)

"(…) 내가 지금 여기 앉아서 스스로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아니? 내가 삶을 믿지 않을지라도, 소중한 여인에게 환멸을 느끼고 또 사물의 질서에 대해서도 환멸을 느낄지라도, 심지어 반대로 모든 것이 무질서하고 저주받은, 어쩌면 악마의 혼돈이라는 확신이 생겨날지라도, 그리고 인류의 환멸이 제아무리 무섭게 나를 내리칠지라도─나는 어쨌거나 살고 싶고, 일단 이 잔에 입을 댄 이상, 그것을 완전히 물리치기 전까지는 절대로 입을 떼지 않을 거야! 그래 봤자, 서른 살쯤 되면 아마 다 마시지 않았더라도 잔을 내던지고 떠날 테지만…… 어디로 떠날지는 몰라도 말이야. 하지만 내 나이가 서른 살이 되기 전까지는, 이건 분명히 알고 있지만, 나의 젊음이 모든 것을─온갖 환멸과 삶에 대한 온갖 혐오를 압도해 버릴 거야. 나는 스스로에게 나의 내부의 이 광적이고 어쩌면 점잖지 못한 삶의 욕망을 압도할 만큼 강한 절망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 존재할까 하는 질문을 수도 없이 던져 보았지만, 그런 건 없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어. 물론 이번에도 서른 살 전까지에 국한된 얘기이긴 한데, 서른 살이 넘으면 나 스스로가 그러기 싫어질 것 같아. 이 삶의 욕망을 어떤 폐병쟁이 같은 코흘리개 도덕주의자들은 종종 비열한 것이라고 부르는데, 특히 시인들이 그렇지. 사실, 이건 부분적으로 카라마조프적인 특성이긴 하고, 이 삶의 욕망이라는 건 어쨌거나 너의 내부에도 틀림없이 도사리고 있는데, 하지만 이게 왜 비열하다는 거니? 우리의 행성에는 아직도 끔찍할 정도로 많은 구심력이 작용하고 있어, 알료샤. 살고 싶어, 난 논리를 거역해서라도 살고 싶어. 내가 비록 사물의 질서를 믿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봄이면 싹을 틔우는 끈적끈적한 이파리들이 내게는 소중하고, 푸른 하늘도 소중하고, 가끔씩은 별 다른 이유도 없이 정이 가는 어떤 사람들도 소중하고, 오래전부터 더 이상 신뢰를 상실해 버렸지만 그럼에도 오래 묵은 기억 때문에 마음으로 존중하고 있는 인류의 어떤 위업도 소중해. 자, 생선 수프가 나왔구나, 맛있게 먹어라. 멋진 생선 수프야, 이 집이 요리를 꽤 잘하거든. 난 유럽에 다녀왔으면 싶어, 알료샤, 여기서 출발할 거야. 그래 봤자 내가 가는 곳이 묘지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가장, 가장 소중한 묘지이다, 이 말씀이지! 그곳에는 소중한 고인들이 잠들어 있고, 그들 위에 서 있는 비석들은 모두가 그토록 열렬하게 지나간 삶을, 자신의 위업과 자신의 진리와 자싱늬 투쟁과 자신의 학문에 대한 그토록 열정적인 믿음을 말해 주고 있어, 미리부터 알 수 있는데, 나는 땅에 엎드려 이 비석들에 입을 맞추면서 울 것이며─그러면서도 동시에 이 모든 것은 진작부터 묘지에 불과할 뿐,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내 온 마음으로 확신하고 있을 테지. 내가 우는 것도 절망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눈물을 흘림으로써 행복감에 젖었기 때문일 거야. 자기 자신의 감동에 흠뻑 젖어드는 것이라고나 할까. 봄날의 끈적끈적한 잎사귀 그리고 파란 하늘이 나는 좋아. 정말로! 이건 머리나 논리의 문제가 아니야, 이건 마음속으로, 뱃속으로 사랑하는 거야, 자신의 최초의 젊은 힘들을 살아하는 거지……. 내가 이렇게 허튼소리를 잔뜩 늘어놓았는데, 그중 뭐라도 좀 이해하겠니, 알료쉬카?" (481-483)

"반드시 그래, 형 말대로 논리에 앞서, 반드시 논리에 앞서 삶을 살아해야 하고, 그때야 비로소 나는 삶의 의미도 이해하게 될 거야. 바로 이런 생각이 이미 오래전부터 내 머릿속에 떠오르곤 해. 형의 일도 이제 절반은 다 된 거야, 이반, 성취된 거라고. 살고 싶어 하니까 말이야. 이제 형은 형의 나머지 절반을 두고 노력하면 돼, 그러면 형은 구원받은 거야." (483)

"그래, 첫째, 뭐 러시아식으로 하기 위해서랄까. 러시아인들은 이런 주제를 놓고 대화를 나누게 되면 더할 나위 없이 멍청한 방식을 취하거든. 둘째, 또, 멍청하면 멍청할수록 본론에는 더 가까워지는 법이야. 멍청하면 멍청할수록 더욱 더 분명해지는 거고. 멍청함은 간결해서 교활하게 굴 줄 모르지만, 똑똑함은 잔머리를 굴려서 감쪽같이 숨어 버릴 궁리만 하거든. 똑똑함은 비열하기 십상이지만, 멍청함은 솔직담백하고 정직하거든. 나는 사태를 내가 절망하는 것에까지 이르게 했고, 그 때문에 내가 그것을 멍청하게 제시하면 할수록 나에게는 그만큼 더 유리한 거야." (495-496)

" (…) 너는 사람은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지만, 알고 있느냐, 바로 이 지상의 빵의 이름으로 지상의 정신이 너한테 반기를 들고 일어나서 너와 싸워 너를 이길 것이며, 모두들 ‘이 짐승과 비슷한 자, 이 자야말로 우리에게 천상의 불을 가져다주었다!‘라고 외치면서 그를 따를 것임을. 수세기가 지나면 인류는 지혜와 과학의 입을 빌려 범죄란 없고 고로 죄도 없으며 있는 것은 오직 배고픈 자들뿐이라고 공언하게 될 것임을 알고 있느냔 말이다. ‘일단은 먹여 살려라, 그런 다음에 그들로부터 선행을 요구하라!‘ 바로 이런 말이 쓰인 깃발을 들고 너에게 대항하여 너의 사원을 허물어뜨릴 것이다. 너의 사원이 있던 곳에는 새로운 건물이 세워질 것, 무서운 바벨탑이 새롭게 세워질 것이니, 비록 그것은 이전 것과 마찬가지로 완성되진 못하겠지만, 하지만 어쨌거나 너는 이 새로운 탑을 피하여 인간들의 고통을 천 년은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면 그들은 천년간 자신들의 탑을 세우느라 괴로워하다가 결국엔 우리에게로 올 테니까! 그들은 그러면 다시금 지하의 숨겨진 카타콤을 샅샅이 뒤져 우리를 찾아낼 테고(우리는 다시금 추방당하고 박해받을 테니까) 우리를 향해 울부짖겠지. ‘우리를 먹여 살려 주십시오, 우리에게 천상의 불을 약속했던 그들은 그것을 주지 않았습니다.‘라고. 그때 우리는 비로소 그들의 탑을 완성시킬 것이다. 무릇 먹을 것을 주는 자가 탑을 완성하는 법인데, 오직 우리만이 너의 이름으로 먹을 것을 줄 테니까, 너의 이름이라는 건 물론 거짓말이지만. 오, 우리가 없다면 그들은 결코, 결코 스스로 먹을 것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여전히 자유로운 채로 남아 있는 한, 어떤 학문도 그들에게 빵을 주지 못할 것이니, 그들은 결국에 가선 자신들의 자유를 우리의 발 아래로 갖다 바치면서 우리에게 ‘차라리 우리를 노예로 삼아도 좋으니 먹여 살려 주십시오.‘라고 말할 것이다. 마침내 그들은 자유라는 것과 누구에게나 넘쳐날 만큼의 지상의 빵이란 서로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을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인데, 왜냐하면 자기네들끼리 그것을 분배할 능력이 없는 족속이니까! 또한,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점도 확신하게 될 텐데, 왜냐하면 그들은 나약하고 악덕하고 하찮은 반역자들일 뿐이니까, 너는 그들에게 천상의 빵을 약속했지만, 다시금 반복하건대, 그것이 약하고 영원히 악덕하고 영원히 배은망덕한 인간 종족의 눈에 과연 지상의 빵에 비길 수 있을까? 그리고 만약 천상의 방의 이름으로 수천, 수만 명의 인간들이 너의 뒤를 다른다고 해도, 천상의 빵을 위해 지상의 방을 멸시할 만한 힘이 없는 수백만 명, 수억 명의 인간들은 어떻게 될까? 너에게는 고작해야 수만 명에 불과한 위대하고 강한 자들이 더 소중하고, 나머지 수백만 명, 약하지만 너를 사랑하는, 바다의 모래알 같은 수많은 인간들은 그저 위대하고 강한 사람들을 위한 재료가 되어야 한단 말이냐? 천만에, 우리에게는 약한 자들도 소중해. 그들은 악덕으로 똘똘 뭉친 반역자들이지만, 결국에 가서는 그들이야말로 고분고분한 자들이 될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그들의 선두에 서서 그들의 자유를 대신 견뎌 줌으로써 그들 위에 군림하는 것에 동의했기 때문에 울이ㅔ게 경외심을 가질 것이며 우리를 신으로 간주할 것이니─그리하여 그들에게 있어 자유롭게 된다는 것은 결국에 가서는 끔찍한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너에게 복종하고 있으며 너의 이름으로 그들 위에 군림하노라고 말할 것이다. (…) " (533-534)

" (…) 이 점에서 너는 옳았어. 왜냐면 인간 존재의 비밀은 그저 사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서 살 것인가에 있으니까. 자신이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에 대한 확고한 관념이 없다면 인간은, 설령 그의 주위가 온통 빵 천지라 할지라도, 사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며 지상에 남느니 차라리 스스로를 박멸할 것이다. 그래, 이건 그렇다고 쳐도, 실제로는 어떤 결과가 나왔느냔 말이다. 너는 인간들의 자유를 지배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지 않았는가! 아니, 설마 너는 인간에게 있어 안정, 심지어 죽음이 선악의 인식에 있어서의 자유로운 선택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을 잊었던 것이냐? 인간에게 양심의 자유보다 더 매혹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하지만 이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도 아무것도 없지. 자, 인간의 양심을 단번에 영원히 안정시킬 확고한 근거들 대신에─너는 전부 비상하고 아리송하고 애매모호한 모든 것을 선택, 즉 전부 인간들의 힘으론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선택했고, 결과적으로 마치 그들을 전혀 사랑하지 않는 꼴이 되어 버렸으니─더욱이 이렇게 한 자가 도대체 누구냔 말이다. 그들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내놓으러 온 그자가 아니더냐! 인간의 자유를 지배하는 대신에 너는 그것을 증대해서 인간의 영혼의 왕국에 영원토록 고통의 짐을 지워 준 것이었다. 너는 인간이 너에게 매혹되고 사로잡힌 채 자유롭게 너를 따를 수 있도록 자유로운 사랑을 바랐다. 앞으로 인간은 확고한 고대의 법칙 대신, 그저 너의 형상만을 자기 앞의 길잡이로 삼은 채 무엇이 선이며 무엇이 악인가를 자유로운 마음으로 몸소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됐다─하지만 너는 선택의 자유와 같은 무서운 짐이 인간을 짓누른다면 결국에 가서 그가 너의 형상과 너의 진리를 거부하고 논박을 하리라는 걸 정녕 생각하지 못했더냐? 그들은 결국에 가서는 진리는 네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소리칠 것인데, 왜냐면 그들에게 그토록 많은 근심거리와 해결할 수 없는 과제들을 남겨 줌으로써 너는 그들을 그 무엇보다도 큰 혼란과 고통 속에 방치한 셈이니까. 이런 식으로, 네가 직접 자신의 왕국을 파괴할 기초를 마련한 것이 됐으니, 이 점에서 그 누구도 더 이상 비난하지 마라. 실상, 네가 제안받았던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니었더냐? (…) " (536-537)

" (…) 인간도 너를 따라서 기적 따위는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 신과 함께 머물길 희망했다. 하지만 너는 인간이 기적을 거부하는 그 순간 곧바로 신을 거부하게 될 것이라는 걸 모르고 있었던 것이니, 인간은 신보다는 기적을 추구하는 법이거든. 인간이란 기적 없이 남아 있을 힘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새로운 기적을, 이제는 자기 자신의 기적들을 잔득 만들어 낼 것이며 백번이나 반역자에 이단에 무신론자였다고 할지라도 이제는 마법사의 기적, 아낙네들의 마법 앞에 고개를 숙일 것이다. 너는 사람들이 너를 조롱하고 약 올리면서 너에게 ‘십자가에서 내려와 봐라, 그러면 우리는 네가 정말 그자라는 것을 믿게 될 것이다.‘라고 외쳤을 대도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네가 내려오지 않은 것은 이번에도, 인간을 기적의 노예로 만들고 싶지 않아서, 기적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믿음을 갈망했기 때문이었다. 자유로운 사랑을 갈망했지, 인간이 단번에 영원토록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위력 앞에서 불가항력적이고 노예적인 황홀에 빠지는 것을 갈망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바로 여기서도 너는 인간들을 너무도 높이 평가했는데, 그들은 비록 반역자로 창조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물론 노예들이거든. 주위를 둘러보고서 판단해 봐라, 이렇게 15세기가 지났으니 가서 그들을 한번 봐라. 네가 너 자신의 지위로까지 올려놓은 자가 과연 어떤 자들이냐? 맹세코, 인간은 네가 생각했던 것보다 약하고 저급하게 창조되었단 말이다! 인간이 네가 행한 것을 행할 수 있을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인간을 너무도 존경한 나머지 너는 마치 그를 더 이상 동정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 꼴이돼 버렸고, 이는 인간으로부터 너무도 많은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그것도 인간을 자기 자신보다 더 많이 사랑했던 그자, 바로 그자가 말이다! 인간을 덜 존경했더라면, 그래서 인간에게서 더 적은 것을 요구했더라면, 이것이 더 사랑에 가까웠을 것인데, 인간의 짐이 더 가벼웠을테니까 말이다. 인간은 약하고 비열하다. (…) " (538-540)

" (…) 그래, 어떤가, 우리말이 옳으냐, 아니면 거짓말이냐? 어쨌건 그들은 우리가 옳다는 것을 확신할 것인데, 이는 너의 자유가 그들을 얼마나 끔찍한 노예 상태와 혼돈으로 이끌었는지를 상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 자유로운 정신, 과학은 그들을 험난한 협곡으로 끌고 가서 저 기적들과 저 해결할 수 없는 비밀들 앞에 세울 것이며, 그러면 그들 중 어떤 자들, 즉 반항적이고 사나운 자들은 스스로를 박멸할 것이고, 또 다른 자들, 즉 반항적이되 허약한 자들은 서로서로를 박멸할 것이며, 나머지들, 즉 허약하고 불행한 자들은 우리의 발 아래로 기어와 우리를 향해 이렇게 울부짖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당신이 옳고 당신만이 그분의 신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렇게 당신에게 돌아왔으니,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구원해 주십시오.‘라고. 그들은 우리에게서 빵을 받으면서 우리가 그들의 빵을, 그것도 바로 그들 자신의 손으로 획득한 빵을 그들에게 나눠 주기 위해서 무슨 기적 나부랭이도 행하지 않고 그들에게서 가져간다는 것을 분명히 보게 될 것이며, 우리가 돌덩어리를 빵으로 바꾼 것이 아님을 보게 될 것이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빵 자체보다는 그 빵을 우리의 손에서 받고 있다는 그 사실에 기뻐 날뛸 것이다! 왜냐면 우리가 없었던 이전에는 그들이 획득한 빵이 그들의 손 안에서 그저 돌덩어리로 바뀌었지만, 우리에게로 돌아온 이후에는 돌덩어리 자체가 그들의 손 안에서 빵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기억할 테니까. 단번에 영원히 복종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그들은 너무도, 너무도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그러니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인간들은 불행해질 것이다. 말해 봐라, 이런 몰이해를 제일 많이 조장한 자가 누구란 말이냐? 누가 양떼를 분산시켜 양떼를 미지의 길로 뿔뿔이 흩어 놓았단 말이냐? 그래 봤자, 양떼는 새로이 모여 새로이 복종하게 될 것이며, 이제는 영원히 그럴 것이다. 그럼녀 우리는 그들에게 조용하고 겸손한 행복을, 원래 타고나길 허약한 존재들에게 알맞은 행복을 줄 것이다. 오, 우리는 그들을 설득하여 마침내 오만하게 굴지 못하도록 할 것이니, 이는 네가 그들을 잔뜩 치켜세워 오만하게 구는 법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이 허약한 자들, 그저 애처로운 어린애들에 불과하지만 어린아이의 행복이 그 어떤 것보다 더 달콤하다는 것을 그들에게 증명할 것이다. 그들은 잔뜩 겁을 집어먹고 우리를 우러러볼 것이며 두려움에 떨면서 마치 어미 닭의 품을 찾는 병아리 새끼들처럼 우리에게 바싹 달라붙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놀라고 경외심을 가질 것이며, 우리가 이토록 강력하고 현명하여 폭풍우처럼 날뛰던 수십억의 양떼를 길들일 수 있었다는 점을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우리가 진노라도 할라치면 그들은 곧 힘을 잃고 벌벌 떨 것이며 그들의 머리는 겁을 먹고 그들의 눈은 어린아이나 여자처럼 걸핏하면 눈물에 젖겠지만, 우리가 손끝만 까딱해도 그들은 금세 너무도 쉽게 즐거워하면서 웃을 것이며 해맑게 기뻐하고 어린아이처럼 행복하게 노래를 부를 것이다. 물론, 우리는 그들에게 노동을 시키겠지만,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에는 그들을 위해 어린아이들의 노래와 합창, 순진무구한 춤으로 가득 찬, 어린아이들의 놀이와 같은 삶을 만들어 줄 것이다. 오, 우리는 그들의 죄도 용서해 줄 것이니, 그들은 약하고 힘없는 자들인지라 자신들이 죄를 짓는 것마저도 허락한다는 이유로 우리를 어린아이들처럼 사랑할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의 허락을 받고 행해진 것이라면 어떤 죄든 사하여질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죄 짓는 것을 허락하는 것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며 이 죄에 대한 벌은 응당 우리가 떠맡겠노라고. 그렇게 정말로 우리가 그것을 떠맡을 것이고, 그들은 우리를 하느님 앞에서 그들의 죄를 대신 짊어진 은인인 양 떠받들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에게 어떤 비밀도 숨기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나내나 정부와 함께 살지 말지를, 아이를 가질지 말지 등 모든 것을─그들의 복종의 여부에 따라서─허락하든지 금지하든지 할 것이며, 그들은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우리에게 복종할 것이다. 그들은 양심의 가장 고통스러운 비밀들을 전부, 그야말로 전부 우리에게 가져올 것이고, 우리는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며, 그러면 그들은 우리의 결정을 기쁜 마음으로 ㅁ디을 것인데, 왜냐하면 그것이 개인적으로 자유롭게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하는 지금의 끔찍한 고통과 거대한 근심으로부터 그들을 구원해 줄 것이기 때문이지. 따라서 그들을 통치하는 수십만 명의 사람을 제외하면 수백만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질 것이다. 그저 우리만이, 비밀을 간직한 우리만이, 오직 우리만이 불행해질 테지. 이렇게 수십억의 행복한 갓난애와 선악의 인식이라는 저주를 떠맡은 수십만명의 수난자들이 있게 되겠지. 그들은 조용히 죽어 갈 것, 너의 이름으로 조용히 사라질 것이며 무덤 뒤에서 오직 죽음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비밀을 간직한 채 다름 아닌 그들의 행복을 위해서 천상의 영원한 보상을 미끼로 내걸고 그들을 유혹할 것이다. 왜냐면 설사 저세상에 뭔가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물론 그들과 같은 자들을 위한 것은 아닐 테니까. 사람들의 말이나 예언에 따르면 네가 와서 다시 승리할 것이며 너의 선택받은 자들, 너의 오만하고 강력한 자들과 함께 올 것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그들은 오직 자기 자신을 구원했을 뿐이지만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했노라고 말할 것이다. 도, 짐승 위에 올라타 신비를 손에 쥐고 있는 탕녀가 치욕을 당할 것이라고, 나약한 자들이 다시금 반역을 일으켜 그녀의 왕의를 갈기갈기 찢고 그녀의 ‘더러운‘ 몸뚱어리를 발가벗겨 보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때 분연히 일어나서 너에게 죄라는 것을 몰랐던 수십억의 행복한 갓난애들을 가리켜 보일 테다. 그들의 행복을 위해 그들의 죄를 스스로 떠맡았던 우리들, 그 우리는 네 앞에 서서 말할 것이다. ‘할 수 있다면, 감히 그럴 용기가 있다면, 우리를 심판해 보라.‘라고. 꼭 알아 둬, 나는 네가 두렵지 않아. 곡 알아 두라고, 나도 한때 광야에 있었고 나도 메뚜기와 풀뿌리로 연명했으며, 나도 네가 사람들을 축복해 주었던 그 자유를 나도 축복했고 ‘수를 채우고 싶은‘ 열망을 품고 너의 선택받은 자들, 강력하고 강한 자들의 대열에 합류할 준비가 되어 있었음을. 하지만 정신이 번쩍 들었고 그러자 이 광기에 봉사하는 것이 싫어졌어. 나는 돌아와서 너의 위업을 수정한 자들의 무리에 합류했다. 나는 오만한 자들을 떠나, 겸손한 자들의 행복을 위해 이 겸손한 자들에게로 돌아왔다.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실현될 것이며 우리의 왕국은 건설될 것이다. 너에게 반복하건대, 내일이면 너는, 내가 손끝을 까딱하기가 무섭게 네가 우리를 방해하러 왔다는 이유로 너를 태워 버릴 저 장작불에 뜨러운 석탄을 집어넣기 위해 달려들 저 온순한 양떼를 보게 될 것이다. 누구보다도 먼저 우리의 장작불로 태워 버릴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너니까. 내일 너를 화형에 처하겠다. Dixi. (내 말은 끝났다.)" (544-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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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숙: (...) 어느 푸른 저녁에 대한 시작 메모에서 기형도는 비트겐슈타인의 유명 한 문장을 인용해요. 그러니까, "내 책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이 책에 씌어진 부분과 씌어지지 않은 부분이 그것이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부분은 이 두번째 부분이다. (...)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문장에 이어 기형도는 말해요. "그러나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거의 필연적이며 이러한 불행한 쾌락들이 끊임없이 시를 괴롭힌다." 그렇죠. 말할 수 ‘있는‘ 것을 ‘잘‘ 말하는 것이 산문의 영역이고, 말할 수 ‘없는‘ 것에 언어를 접근시키는 하염없는 시도들이 시를 쓰는 거겠죠.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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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나와 다를 바 없는 나, 지금도 여전히 그러한 내가 언젠가 재판을 받고 일말의 의심도 없이 괴물, 풍속을 해친 자, 암잘자로 여겨지리라고, 인류가 끔찍해하는 대상, 하찮은 이들의 조롱거리가 되리라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에게 인사를 건네는 대신 침을 뱉게 되리라고, 한 세대가 모두 만장일치로 나를 생매장하고 재미있어하리라고 내 상식으로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이처럼 기이한 격변이 일어났을 때, 불시에 그 일을 당한 나는 우선 매우 당황했다. 흥분과 분노로 인해 나를 진정시키는 데 십 년은 족히 걸린 착란 상태에 빠져버렸고, 그러는 동안 오류에 오류를 거듭하고 잘못과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하며 부주의하게도 내 운명을 이끌어가는 자들에게 수많은 수단을 제공했으며, 그들은 그 수단을 교묘하게 사용해 내 운명을 돌이킬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8-9)

나는 이 글을 감추지도 보여주지도 않겠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누군가 이 글을 내게서 앗아간다 하더라도 그것을 썼던 즐거움이나 그 내용에 대한 기억, 이 글을 낳은 고독한 명상들, 내 영혼이 다할 때에만 그 원천이 소멸될 고독한 명상들을 빼앗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처음 재난이 닥쳤을 때 운명에 맞서지 않고 지금과 같은 결심을 했더라면, 사람들의 모든 노력과 온갖 가공할 만한 술책이 내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고, 어떤 음모로도 내 휴식을 방해할 수 없었으련만. 이제는 그들이 성공하더라도 앞으로의 내 휴식을 방해할 수 없는 것처럼. 그들이 나를 모욕하며 마음껏 즐기게 내버려두라. 내가 나의 결백을 즐기고 그들의 뜻과는 반대로 평화롭게 생을 마감하는 것을 그들이 막지는 못하리라. (17)

나는 살기 위해 태어났으나 살아보지도 못한 채 죽어간다. (22)

이런 식으로 매사에 올곧고 솔직한 태도가 세상에서는 끔찍한 죄가 되어버린다. 그들처럼 거짓되거나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다는 점 말고는 다른 죄가 없는데도, 나는 동시대인들에게 고약하고 잔인한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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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1
테네시 윌리암스 지음, 김소임 옮김 / 민음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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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스: (마침내) 무슨 일이죠? 길을 잃었나요?
블랑시: (약간 신경실적으로) 사람들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가다가 묘지라는 전차로 갈아타서 여섯 블록이 지난 다음, 극락이라는 곳에서 내리라고 하더군요.
유니스: 여기가 거기예요.
블랑시: 극락이라고요?
유니스: 여기가 바로 극락이에요.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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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0
세스 노터봄 지음, 김영중 옮김 / 민음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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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일이 지나갔다. 지타는 그 이탈리아인을 만나 잠을 잤고, 그는 그녀의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그가 그녀의 사진을 찍을 때마다 인니는 조금씩 암스테르담 공기 속에서 조금씩 망가져 분해되었다. 새로운 사랑은 옛 사랑을 불태워 버리는 화장터였다. 그래서인지 어느 날 코닝 광장을 걸어갈 때 한 줌의 재가 인니의 눈 속으로 들어갔다. 지타가 입으로 그 재를 핥아 내지 않았더라면 빼낼 수 없을 게 뻔했다. 지타는 그의 건강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29-30)

인니는 세 가지 일을 확신했다. 지타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 자기는 죽지 않았다는 것, 내일이면 주식 거래가 팽이처럼 잘 돌아갈 것이라는 것. (36)

이 스키 챔피언은 철학으로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신문과 잡지에 정기적으로 사진이 실리는 이 사팔뜨기 학자에게 그는 무엇을 원하는 것인가? 생각, 생각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는 책을 많이 읽었다. 책을 많이 읽은 것뿐만 아니었다. 그가 본 것들, 영화, 그림은 그의 감정 속에서 변형되곤 했다. 즉시 단어로 표현될 수 없는 감정, 감각, 인상, 관찰에서 우러나오는 수많은 무형의 것, 그것이 그의 사유 방식이었다. 사람들은 그 무형의 것을 단어로 감쌌지만 표현되지 않는 것이 언제나 더 많았다. 훗날 정확한 답을 원하거나 정확한 답을 줄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과 관계하는 한 이에 대한 불안감은 일어나게 마련이다. 모든 것에 내재되어 있는 수수께끼 같은 것이 재미있었다. 사람들은 매사에 너무 많은 질서를 부여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질서를 부여했다면 필연적으로 무엇인가를 잃었을 것이다. 신비한 것들은 그 신비한 것들에 대해 세밀하게, 조직적으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 신비로워진다는 것을 그는 아직 깨닫지 못했다. 그는 혼란스러운 감정 속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감정을 카드에 분류하여 옮겨 놓기 위해서는 성인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 사람들은 갑자기 다 살았다는 생각과 실제로 죽음에 한 발짝 다가섰다는 생각이 앞설 것이다. (81)

온몸을 토해내는 기분이었다. 그것도 모자랐다. 남아 있던 공허한 감정도 모두 밖으로 튀어 나가고 싶어 했다. 구토는 결사적으로 위로 치밀어 올라와 목덜미를 잡아 당겼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밑에 있는 정원의 어두운 구멍을 보았다. 빙빙 돌던 회전 운동은 이제 수그러들었으나 그는 사력을 다해 창틀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의 생명 전체가 밖으로 나갈 태세였다. 수년 동안 다리와 뇌에 잠복해 있던 신비스러운 실체들이 갑자기 울부짖으면서 육체에서 해방되려 했다. 기억과 굴욕만 가득 들어찬 엄청난 잡동사니들, 참을 수 없는 외로움, 모든 것이 한꺼번에 저 정원의 어두운 웅덩이 속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눈에 보이지 않도록 없어져야만 했다. 모든 것이 쉬어 부패한 독성 덩어리처럼 집 밖으로 자신과 함께 영원히 분해되어 없어지는 곳으로 내다 버려져야 했다. 인니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고 싶지 않았다. 생전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그 생각은 실현 가능한 일이었다. (130)

그의 삶은 여자들을 축으로 하여 돌아갈 것이다. 그는 잠시 스쳐 가는 사람들, 여자 친구들, 창녀들, 낯선 여인들 속에서 삶을 다시 찾을 것이다. 여자는 세계의 지배자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여자가 그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그는 누군가를 ‘소유‘했다던가 ‘정복‘했다던가 하는 느낌은 결코 느끼지 않을 것이다. 또는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즉 그가 여자에게 절대적으로 헌신한다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어떤 어리석은 전문 용어를 고안해 낸다든가 하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세계가 하나의 수수께끼라면 여자는 수수께끼를 작동시키는 동력이다. 그들, 오직 여자만이 이 수수께끼의 출입이 허용된다.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있다면 그건 여자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남자와의 우정은 아주 멀리 갈 수 있지만 거기에는 사물의 이성적 측면이 남아 있다. 그러나 남녀 간의 우정에는 여자가 갖고 있는 특별한 무엇이 존재한다. 여자는 말보다 더 정직하고 솔직하다. 여자는 매개체이다. 여자는 인니에게 스스로 여자라고 느끼게 해주었고, 인니는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가 신체적으로 여자이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여자와 함께 있으면 남자인 자신의 몸에서 묘한 양성의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신화에서 새의 모습을 한 인간이 있는 것처럼 그는 여성화된 남자였다. 그는 남자들이 여자를 대하는 태도가 못마땅했다. 그도 똑같은 행동을 하지만 동기는 달랐다. 그는 그가 무엇을 찾는지 알고 있었다. 섹스는 절대로 문제의 핵심이 아니었다. 섹스는 다만 황홀케 하는 매개체일 뿐이다. 여자들, 모든 여자는 신비의 빛 안으로, 신비의 빛 근처로 가기 위한 수단이다. 여자는 신비의 지배자이고 남자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가 나중에야 비로소 말할 수 있는 문제지만, 남자를 통해서 세계가 어떻다는 것을 배우며, 여자를 통해서 세계가 무엇인지를 배운다. (139-140)

인니는 비록 현재의 삶이 무의미할지라도 자신의 삶의 방식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삶에는 공허, 고독, 불안과 같은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메워 주는 보상 또한 있게 마련이다. (156)

그녀는 인니 앞에 마주보고 똑바로 섰다. 그녀의 키는 그와 거의 같았다. 그는 그녀의 푸른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들은 서로 진지해졌다. 그러나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진지함이었다. 하부 구조가 없는 진지함. 그녀는 아직까지 고생이 뭔지 모르고 산 것 같았다. 그것 또한 우연이 아니었다. 인니는 사람들이 고생을 하려 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어 왔다. 그래서 오늘날 사람들은 대부분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는다.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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