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재능말고는 그 어떤 것도 믿고 싶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정신은 너무도 남부적이었다. 따라서 자신의 결단을 막상 실행하려고 할 때, 그는 망설였다. 이 망설임은 청년들이 대양 한가운데에서 어느 쪽으로 그들의 힘을 모을 것인지 또는 어떤 각도로 돛을 올리면 바람을 제대로 받는지를 몰라서 머뭇거리는 것과 같았다. (p.44)

그녀는 이 통탄할 사건에 대해 자주 얘기했다. 자기가 너무 지나치게 사람을 믿었다고 한탄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사실 암코양이보다 더 의심이 많은 여자였다. 그녀도 여느 사람들처럼 가까운 사람은 못 믿으면서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여는 그런 여자였다. 이상하지만 사실인 이 정신 상태의 원인을 인간의 마음속에서 찾아보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한테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면서도 자신들의 허점을 그들에게 보인다. 그런 다음에는 그들이 당연히 받을 벌을 받는다고 남몰래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에게는 아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어쩔 수 없이 느낀다. 또한 그들은 자기들이 지니지 못한 장점을 지닌 듯이 보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그들은 자기들과 관계가 없는 존경과 사랑을 불시에 얻고 싶어한다. 심지어 언젠가는 그들이 그것을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를 위험조차 무릅쓰고 말이다. 결국 친구나 이웃 사람들에게 아무런 선행을 베풀지 못하고, 태어날 때부터 이익에 골똘하는 부류들이 있다. 그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을 도와주어서 자존심을 만족시키는 사람들도 있다. 즉 애정의 원(圓)이 자기들과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덜 사랑하게 되고, 멀어질수록 더욱 친절해진다. 보케르 부인은 근본적으로 치사하고 잘못된, 밉살스러운 이 두 가지 성격을 함께 지녔다. (32-33)

레스토 부인의 푸른 내실과 보세앙 부인의 장밋빛 살롱 사이에서, 으젠은 어느 강의실에서도 들을 수 없는 〈파리 법률〉을 삼 년간이나 공부한 셈이었다. 그것은 사회의 고등 법률을 구성하고 있어서 잘 습득하고 응용하면 모든 것에 이를 수 있다. (98)

한편의 세상에서는 가장 우아한 사교계의 신선하고 매력적인 인상과 경탄할 기교와 사치에 에워싸인, 젊고 발랄한 모습과 시정(詩情)이 넘쳐흐르는 정열적 얼굴들을 볼 수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가장자리에 진흙이 묻은 흉칙한 그림과 정열이 뼈와 살만 남겨놓은 얼굴만을 볼 수 있다.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자의 분노가 어떤 것인가를 보세앙 부인한테서 배웠고, 그 배움이 걸려들기 쉬운 제안들을 그는 자신의 기억에서 되살려냈다. 결국 그는 그 가르침 때문에 이 비참한 광경을 설명할 수 있었다.
라스티냐크는 성공하기 위해서, 평행하는 두 개의 참호를 뚫고 나가기로 결심했다. 즉 학문과 연애에 기대어 유명한 법학자와 사교계의 총아가 되는 것이다. 그는 아직도 어린애였다! 이 두 선은 결코 서로 만날 수 없는 점근선(漸近線)이다. (113-114)

이곳 파리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출세하는가를 알고 있나? 천재성을 떨치든지 아니면 능수능란하게 타락해야 하네, 사회 집단 속으로 대포알처럼 뚫고 들어가거나 페스트 균처럼 스며들어 가야 하네. 정직이란 아무 소용이 없네. 사람들은 천재의 위력에 굴복하고, 그것을 미워하고 비방하려고 들지. 왜냐하면 천재는 분배하지 않고 독점하니까 말일세.
천재가 버티기만 하면 사람들은 굴복하게 마련이네. 한마디로, 사람들은 무릎 꿇고 존경하는 법일세. 왜냐하면 사람들은 천재를 진흙 속에 묻어버릴 수 없으니까. 타락은 힘을 얻고 재능은 희귀한 것일세. 그래서 타락은 도처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함의 무기이고 자네는 이 타락의 첨단을 여러 곳에서 느낄 걸세. (148)

그래서 성실한 인간은 모든 사람의 적이 되어버렸네. 도대체 성실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지 알겠나? 파리에서 성실한 사람이란 입을 다물고 분배를 거절하는 사람일세. 대가를 보상받지도 못하면서 죽도록 일만 해야 하는 이 불쌍한 노예들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겠네. 나는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이 내쫓은 둔재들의 집단이라고 부르고 있어. 물론 그들이 피운 꽃에는 미덕도 있지. 하지만 또한 가난이 있는 법이야. 하나님이 최후 심판 때 결석하는 나쁜 장난을 치듯이, 나는 이 선량한 사람들의 주름살을 보네. 그러니까 자네가 서둘러 출세하기를 원한다면 벌써 부자가 되어 있거나 겉으로라도 그렇게 보여야 한다는 말일세. 부자가 되려면 선풍을 일으켜야 하네. 선풍을 일으키지 못하면, 뭣하지만, 사기쳐야 하네. 미안한 말이지만 자네가 뛰어들고 싶은 백 가지 직업에서 재빨리 성공하는 사람이 열 명쯤 있을 걸세. 세상은 이 사람들을 도둑놈이라고 부르네.
이제 자네가 결론을 끌어내 보게! 인생이란 지금까지 얘기한 그대로야. 인생이란 부엌보다 더 아름답지 않으면서도 썩은 냄새는 더 나는 거라네. 인생의 맛있는 음식을 훔쳐 먹으려면 손을 더럽혀야 하네. 다만 손 씻을 줄만 알면 되지. 우리 세대의 모든 윤리가 거기에 있네. 내가 이처럼 자네에게 세상 얘기 하는 것은 세상이 나에게 그럴 권리를 주었기 때문이야. 나는 세상을 알고 있네. (149)

이렇게 해서 일종의 숙명에 의해, 그의 생활에서 일어난 보잘것없는 사건들이 그를 인생의 흐름 속으로 밀어넣었다. 보케르 하숙집에 사는 무서운 스핑크스의 관찰에 따르면, 이 흐름 속에서는 전쟁터에서처럼 자기가 죽지 않기 위해서는 적을 죽여야 한다. 기만당하지 않기 위해서 남을 기만해야 한다. 양심과 진실은 창살 밖으로 던져버리고 가면을 써야 한다. 인정 없는 사람처럼 행세하고 스파르타에서처럼 영예를 차지하기 위해서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행운을 붙잡아야 한다. (165)

네가 꺼낸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인생의 첫머리에서 부딪히게 되는 문제야. 그런데, 너는 이 어려움을 단번에 뛰어넘고 싶은가 보지. 그러려면 이 친구야, 너는 알렉산더 대왕이 되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감옥으로 가게 되는 거야. 나는 시골에서 아버지 뒤를 이어 고지식하고 보잘것없는 생활을 하게 될 터인데 그걸로 만족하고 있어. 인간의 감정이란 가장 좁은 곳에서나 가장 넓은 곳에서나 똑같이 충분한 만족을 느낄 수 있는 법이지. 나폴레옹도 저녁을 두 번 먹지는 않았어. 성 프란체스코 교회 기숙생인 의대생보다도 애인이 더 많지도 않았어. 여보게, 우리의 행복이란 우리 발바닥에서부터 후두부까지 사이에 있는거야. 일 년에 백만 루이를 쓰건 백 루이를 쓰건, 우리 마음속에서 본질적으로 느껴지는 정도는 같은 거라네. (187)

파리 법전의 준엄한 법률에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고독한 영혼 속에서 만날 수 있다. 사회 교리에 이끌리지 않는 맑고 끝없이 계속해서 솟아나는 샘 가까이에서 살며, 늘상 푸른 나무 그늘에 서 있고 자기 자신을 스스로 깨달으며 자신을 위해 씌어진 무한한 언어를 경청하기를 즐기는 영혼! 지상의 인간들을 불쌍히 생각하면서 하늘에 날개를 펴고 끈기 있게 기다리는 영혼 말이다. (305)

「밥맛 떨어지겠소. 한 시간 전부터 영감에 대해서 온갖 얘기를 다하지 않았소? 파리라는 좋은 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의 하나는,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태어나서 살다가 죽을 수 있다는 것이오. 그러니 이러한 문명의 혜택을 누립시다. 오늘도 죽은 사람이 육십 명이나 되는데, 파리에서 죽은 그 많은 사람들에게 일일이 애도의 뜻을 표하겠다는 말이오? 고리오 영감이 뻗었다면, 본인으로서는 차라리 다행한 일이지! 영감을 좋아한다면 가서 보살피시지.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조용히 식사나 하게 해주시오」
「오! 맞았어요. 영감이 죽은 것은 본인에게는 참 다행한 일이에요! 불쌍한 영감은 일생 동안 줄곧 불행했을 테니까요」
과부가 말했다.
으젠이 보기에는 부성애의 상징이었던 이 영감에 대한 유일한 추도사란 이런 것이었다. 열다섯 명의 하숙인들은 보통 때처럼 잡담을 시작했다. 으젠과 비앙이 식사를 끝냈을 때 포크와 숟가락 소리, 대화하다가 웃는 소리, 무관심하고 식충이들인 이들 얼굴에 나타난 가지가지 표정들이 너무나 혐오스러워 두 사람은 소름이 끼쳤다. (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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