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는 절해의 고도였다. 항쟁을 결의한 젊은이들에게 마지막 언명은 ‘광주 사수‘였다. 계엄군의 군사력 앞에 그들은 광주를 지킬 수도 없고, 도청을 지킬 수도 없으며, 사과를 받아낼 수도 없고, 민주화를 이룰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외상없는 ‘피의 값‘을 위해, 언젠가 광주 시민의 명예회복과 부활을 위해서는 누군가 거기서 죽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전쟁이나 혁명을 위해 죽음을 택한 것이 아니라 광주공동체, 민족공동체의 도덕성과 명에를 위한 것이었다. 살아남은 자들의 십자가는 그들이 용감하게 싸우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젊은이들을 희생의 제단에 바침으로써 그들이 인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