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와 동시에 나는 그 신비스러운 곳에서 그 소위가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정말이지 너무나도 놀랐어요. 그때부터는 어릿광대가 아무리 발 뒤꿈치로 딱딱 소리를 내며 발을 굴러도 별로 재미가 없었어요. 나는 넋을 잃고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죠. 이 발견을 한 뒤로는 전보다 마음이 좀 가라앉은 듯도 했고, 어쩌면 오히려 더 불안해진 듯도 했어요. 무엇인가 좀 알고 나니까 그제서야 비로소 마치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느낌이 들더란 말이에요. 내 느낌은 옳았어요. 나는 연관성을 모르고 있었거든요! 사실은 모든 것이 이 연관성에 달려 있는데 말이에요」 (33) - P33

마리아네 역시 한동안은 자신을 속일 수 있었다. 그녀는 그의 생생한 행복감을 그와 함께 나누었다. 아, 단지 이따금씩 질책의 차가운 손이 그녀의 심장을 스쳐가지만 않았더라면 좋으련만! 빌헬름의 품에 안겨 있을 때에도, 그의 사랑의 날갯죽지 밑에서 비호를 받고 있을 때조차도 그녀의 심장은 가책을 느껴야 했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혼자 있게 되어, 그의 열정이 그녀를 두둥실 떠올려 놓은 구름 위로부터 떨어져 내려와 자신의 처지를 의식할 때면, 그녀의 꼴은 참담하기 짝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천박한 혼란 속에 살면서 자신의 상황을 기만하거나 아니면 차라리 그걸 모르는 척하고 지내는 동안에는, 그래도 경박한 태도가 그녀에게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에는 그녀가 겪는 사건들이 그저 개별적인 현상에 불과한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쾌락과 짜증이 번갈아 왔고, 굴욕은 허영을 통해, 그리고 궁핍한 생활은 순간적인 풍요를 통해 보상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필요와 습관을 어쩔 수 없는 삶의 법칙이라고 자신을 정당화할 수 있었으며, 그 덕분에 그토록 오랫동안 모든 불쾌한 감정들을 그때그때 하루하루 애써 떨쳐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이 가엾은 아가씨는 얼핏얼핏 자신이 보다 높은 세계로 넘어왔다고 느끼게 되었고, 마치 위에서 내려다보듯이 광명과 기쁨의 세계로부터 자신의 황량하고 타락한 생활을 굽어보게 되었으며, 욕망만 자극시킬 줄 알았지 그와 동시에 사랑과 존경심을 불러일으킬 수 없는 여자란 얼마나 비참한 동물인가를 실감했고, 겉으로나 속으로나 아무것도 나아진 것이 없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녀에게는 자신을 똑바로 일으켜 세울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의 내부를 둘러보아도 정신은 텅 비어 있고, 마음은 기댈 곳이 없었다. 사정이 이렇게 처량하면 처량할수록 그녀는 더욱더 집요하게 연인에게 매달렸다. 아니, 그를 잃어버릴 위험이 하루하루 다가옴에 따라 열정도 나날이 더욱 커져만 갔다. (54-55) - P54

하지만 그는, 처음 그녀를 찾아가던 때에 이따금 그녀의에서 만났던 여느 배우들의 행동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쉽게 자기의 평소 생각과 일치시킬 수는 없었다. 빈둥거리며 일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자기네들의 직업과 목표에 대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그들이 어떤 극작품의 문학적 가치에 관해 이야기하고, 옳건 그르건 간에 그것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것을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언제나 이 작품이 히트를 칠까? 이것이 인기 있는 작품인가? 얼마나 오래 공연할 수 있을까? 몇 회나 공연될 수 있을까?> 하는 따위의 질문이나 대개 이와 비슷한 언급들뿐이었다. 그런 다음에는 대개 화살이 감독한테로 돌아가, 출연료를 너무 적게 준다거나이런저런 배우에게 특히 공정하지 못하다고 비난하다가 이윽고ㅎ화제는 관객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은 옳은 배우에게 갈채를 보내는 적이 거의 없다고 한탄하고, 독일 연극계가 날로 개선되고 있다. 배우가 그 업적에 따라 점점 더 높은 대우를 받고는 있지만, 정말 충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등의 말이 나왔다. 그러고 나서는 카페나 술집 얘기가 무성해져서,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으며 동료 모씨가 얼마나 빚졌는지, 그래서 봉급에 서 얼마씩이나 떼여야만 하는지가 화제에 올랐고, 들쑥날쑥한 주당 출연료 액수와 경쟁 극단의 간계에 관해서도 얘기가 되다가 끝에 가서는 결국 관객이 큰 관심을 가져주어야 한다는 사실이 다시금 문제되었으며, 국민과 세계 인류의 교양 형성에 미치는 연극의 영향도 잊혀지지 않고 언급되었다. (91-92) - P91

"... 우리는 깊은 생각 없이 방황하고 달콤한 우연에다 우리의 운명을 내맡겼다가는 나중에 그렇게 신념 없이 흔들리면서 살아온 인생의 결과에다 신의 섭리라는 이름을 붙이곤 하지요. 그러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경건하다고 믿는 것이지요" (109) - P109

"... 행복과 환락을 향해 치닫고 있는 세상 사람들을 보라구! 그들의 소망, 노력, 돈은 쉴새없이 무엇인가를 뒤쫓고 있지. 그런데 무엇을 뒤쫓고 있지? 그것은 시인이 이미 자연으로부터 얻은 것이지. 즉, 이 세상을 즐기는일, 다른 사람 속에서 자기 자신을 공감하는 일, 그리고 종종 화합이 안 되는 많은 사물들과 조화를 이루며 함께 살아가는 일이지.
무엇이 사람들을 불안하게 할까? 그것은 바로 그들이 자신의 개념들을 사물들 자체와 일치시킬 수 없기 때문이고, 향락이 그들의 손아귀에서 슬쩍 빠져 달아나 버리기 때문이며, 소망했던 것이 너무 늦게 오기 때문이며, 달성하고 성취한 모든 것도 인간의 욕망이 애초에 기대했던 만큼 그렇게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지는 못하기 때문이지. ..." (127) - P1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는 생래가 수줍은 사내였는지 모른다. 과대한 몸짓 과대한 변설, 발이 땅에 붙어 있지 않은 그 많은 자칭 타칭의 독립지사 영웅들, 권필응의 수줍음은 그러나 영웅심에 대한 강한 제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며 항상 환상을 배제하며 정확하고 적확하게 사고를 집중시킬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상대적으론 그 정확함으로 하여 그를 환상하게 된다. 믿게 된다. 불가사의한 힘을 느끼게 한다. (305) - P3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뚝도 개미구멍으로 무너진다." (368) - P368

지삼만이 거들어주었으나 왈가왈부 시시비비는 말다툼으로 번지고 관수 석포, 나중에는 강쇠까지 주먹으로 삿대질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삿대질에서 그치고 육박전으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실상 핏대를 세우고 떠들어대었지만 그들끼리의 대결이 별무효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싸우는 이들 중에서 학식이 있고 조리 있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은 석포 한 사람, 관수가 말깨나 하지만 나머지는 거의가 언문 정도를 깨친 그런 처지고 보면 실상 느낌이 있어도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며 이들이 십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행동일 뿐이다. 한데도 왈가왈부 떠들어보는 것은 먹물 먹은 사람만 대수냐, 우리도 그런 정도는 알고 있으니 무조건 승복은 아니라는 치기 어린 오기던 것이다.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환이의 능력을. 몇 사람을 거쳐서 내려오는 지시는 환이로부터, 그리고 그의 지시는 영락없이 정확한 성과를 거두어왔다. 무조건 승복이 아니라는 오기도 속셈으론 환이에 대한 관심의 표시요 신비스런 뭣으로 가려진 그의 정체를 벗겨보고 싶은 호기심이었던 것이다. (383) - P383

야무네는 숨을 할딱이며, 조그마한 것을 석이 손에 쥐여준다.
"아무래도 그냥 가기가 서분해서, 마침 떡장사가 있길래 샀다. 가믄서 입가심이나 해라."
"아지매도 참,"
"이냥, ... 서분해서 ... 부디 아금바리 해서 옛말 하고 살아라이? 우리사 머 지는 해니께...."
야무네는 눈물을 닦으며 돌아서 간다. 우두커니 손에 쥐여준 떡을 보다가 야무네 뒷모습을 보곤 하는 석이 어깨를 툭 친 관수
"어 가자. 간장 녹을 일이 어디 한두 가지가. 산 보듯 강 보듯, 가자!" (354) - P35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난은 이런 것이며 굶주림엔 체모가 없는 것이다. 제사 음식을 마을에 돌리고 혼례장을 찾아온 각설이떼에게는 술밥이 나누어지고 생일에는 며느리 손이 커서 살림 망하겠노라 하면서도 떡시루에 칼질하는 시어미 얼굴에 미소가 도는 그런 인정과 우애를 사람들은 순박한 농민들 기질이라 생각하지만 먹이와 직결되는 수성이 또한 농민들의 기질인 것을. 풍요한 대지, 삼엄하고 삭막한 대지, 대지의 그 양면 생리는 농민의 생리요, 농민은 대지의 산물이다. 좀더 날이 가물면 농민들의 눈빛은 달라질 것이다. 남의 논물을 볼 때는 야비한 도둑의 눈이 될 것이며 자기 논물을 볼 때는 도둑을 지키는 험악한 눈이 될 것이다. 그리고 으르릉거리며 시기하며 언쟁할 것이요 드디어는 괭이나 쇠스랑이 무기로 변하여 피를 흘리게도 되는 것이다. (177) - P17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 하기야 이런 철로의 축대는 다져야만 하겠지만, 식물을 키울 수 있는 능력을 잃은 이 흙을 보기란 슬픈 일이다. 이 흙도 축대 위에 있는 흙들처럼 곡식과 풀, 떨기 나무와 수목들이 자라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인간도 이와 다름없다.‘ 그는 계속 생각했다. ‘지사나 교도소장이나 순경같은 사람들에게도 이 같은 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중요한 특성, 사랑과 동정을 품을 줄 모르는 인간을 본다는 건 정말 무서운 일이다.‘
‘한마디로 그들이 법칙이 아닌 것을 법칙으로 생각하고 신이 인간의 마음속에 심어놓은 진리의 법칙을 법칙으로 인정치 않는 데 모든 문제가 있다. 그 때문에 그런 자들과 상대하는 내가 고통스러운 것이다.‘ 하고 네홀류도프는 생각했다. ‘나는 왠지 그들을 두려워하고 있다. 정말로 그들이 두렵다. 강도보다도 더. 강도에게는 그래도 연민을 바랄 수도 있으나, 그들은 인간에 대해 연민을 품지 않는다. 그들은 식물의 생장력을 마비시키는 돌과 같이 연민의 감정이 조금도 없다. 그것이 내가 그들을 두려워하는 바다. 사람들은 푸가초프나 라진을 두려워한다고들 하지만 내겐 이들이 천 배나 더 두렵다.‘ (219) - P219

‘ (...) 타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할 때는 조용히 있는 게 바람직한 일이다.‘ 네흘류도프는 그 자신에게 말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나 그 외 자기 맘에 드는 물건을 상대하는 게 낫다. 그러나 인간만은 절대로 상대하지 말아야 한다. 해악 없이 음식을 유익하게 섭취할 수 있는 건 식욕이 있을 때뿐이다. 그렇듯이 해악 없이 유익하게 인간과 사귈수 있는 건 사랑이 있을 때뿐이다. 어제 매형과의 경우처럼 사랑의 감정 없이 타인을 대한다면 늘 내 눈으로 목격했듯이 타인에 대한 몰인정과 냉혹은 한이 없어지고 내가직접 겪었듯이 자신에 대한 끝없는 고뇌 속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 정말로.‘ (221) - P221

‘그렇다.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나의 세계다.‘ 네흘류도프는 노동자들의 여윈 팔다리며 박음질이 제대로 안 된 옷, 햇볕에 그을리고 피곤에 지친, 그러나 온화한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네홀류도프는 인간다운 노동 생활에서 기쁨과 고통, 즐거움을 직접 겪고 느끼는 이들 새로운 사람들 속에서 자기를 인식하였다.
‘이야말로 진짜 상류 사회가 아닐까.‘ 아까 코르차긴 공작이 지나치며 하던 말과 하잘것없는 데 관심을 가질 뿐인 그 집안의 나태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떠올리며 네흘류도프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는 낯설고 아름다운 미지의 세계를 발견한 여행자가 맛볼 법한 기쁨을 느꼈다. (236) - P236

처음에 그는 타인의 사상을 명확하게 이해하며 자기 것으로 만드는 재질 덕분에 (...) 이 같은 재질을 높이 인정받는 교수와 학생들 사이에서도 월등 뛰어났고 자기도 이에 만족했다. 그러나 졸업한 뒤 공부를 그만두자 월등한 위치에 머무르는 일도 없어졌다. 그러자 그는 (...) 새로운 환경에서 우월자로서의 자리를 잡기 위해 이제까지의 견해를 일변시켜 자유주의자적인 온건파에서 급진적인 인민의 의지파 편에 섰다. 회의와 동요를 유발시키는 정신적, 미적인 특질이 없는 성격으로 그는 혁명가들의 세계에서 단연 그의 자존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지도자의 위치를 갖게 되었다. 그는 일단 자기 방향을 정하면 회의한다거나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에게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명확하고 간단했으며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는 실로 편협하고 치우친 견해를 갖고 있어 그에게는 모든 게 명확하고 간단한 이상 필요한 것은 그가 말한 대로 논리성을 갖추는 것뿐이었다. 그의 지나친 자만심은 사람들을 뒤로 물러서게 하거나 복종시키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그는 그를 사려 깊고 똑똑하다고 인식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만 활동했기 때문에 그들 모두가 그를 따랐고, 그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일이란 정권을 장악하고 국민대회를 열어 혁명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분명 이 대회에서 그의 정치 강령이 제의될 것이었다. 그는 이 정치 강령을 준비하면서 전반적인 문제를 다뤘으므로 반드시 이를 실행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그의 동지들은 그의 결단력과 대담함을 존경했으나 그렇다고 그에게 호감을 갖지는 않았다. 그는 누구에 대해서도사랑을 품어보지 않았고 자기와 동등한 자에 대해선 경쟁심을 가졌으며 늙은 원숭이가 새끼 원숭이를 다루듯 사람들을 다루려 했다. 타인의 두뇌와 재질을 빼앗아 자기의 재능을 사람들에게 발휘하는 데 아무런 방해가 없기를 바랐다. 그는 자기에게 순종하는 자에게만 호의를 베풀었다. (303-305) - P303

"여러가지 신앙이 있는 건 자기를 믿을 줄 모르고 남만일 믿으려 하기 때문이지. 나도 예전에 타인을 믿고 숲 속을 헤매듯 방황한 적이 있었소. 그야말로 미로여서 벗어날 수가 없었소. 구교도, 신교도, 토요안식교도, 편신(鞭身)교도, 몰로칸교도, 스코페스교도, 성직자교도, 무성직자교도 등 모두가 제 자랑만 늘어놓지. 그러니까 앞 못 보는 개처럼 헤맬 뿐이지. 영혼은 하나요. 종파는 무수하지만 나뿐만 아니라 당신에게도 저 사내에게도 영혼이 있소. 그러므로 자기의 영혼을 믿는다면 이 세상은 하나로 결합될 수가 있는 거요. 모두들 자기를 믿으면 일체가 될 수 있는 거요."
노인은 주위를 둘러보며 되도록 많은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런 신앙을 가진 지 오래되었습니까?" 네흘류도프가 말했다.
"나 말이오? 벌써 이십삼 년이나 쫓겨다녔으니 오래된 셈이지."
"쫓겨다닌다고요?"
"그리스도가 쫓겨다니듯이 나 역시 쫓겨다니고 있소. 체포되어 재판소에 끌려가기도 했고 성직자나 학자, 바리새인 앞으로 끌려간 적도 있고 정신병원에도 들어가 봤소.
하지만 아무도 나를 어떻게 할 수 없었소. 난 자유인이기때문이오. ‘네 이름이 뭐냐? 하고 묻더군, 내가 이름이라도 가지고 있는 줄 알고. 내겐 아무것도 없소. 이름도 지위도 조국도 아무것도. 그저 나일 뿐이오. 그래 이름을 묻는 그들에게 인간이라고 대답했지. 그랬더니 다음에 몇살인가? 하고 묻기에 난 이제껏 나이를 따져본 적도 없고셀 수도 없다고 대답했소. 왜냐하면 나는 이제껏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테니 말이오. 그 다음엔 ‘부모는 누구였는가?‘를 묻더군. 내겐 하느님과 땅 이외엔 부모도 없소. 그래 나의 아버지는 하느님이고 어머니는 대지라고 대답해 줬더니 ‘황제는 인정하는가?‘ 하고 묻더군. 허, 내 어찌 인정하지 않겠소. 그분은 그 자신에 대해 황제이고 나는 나 자신에 대해 황제인데. 그랬더니 나와는 얘기가 되지 않는다고 하기에 대꾸했지요. 나 역시 당신네가 말해 주길 바라지 않았다고. 그랬더니 나를 이렇게 구박하더란 말입니다." (334-336) - P334

네흘류도프에게도 정신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현상이 일어났다. 즉 처음에는 이상하고 모순적이며 우스꽝스럽다고 여겨지던 것들이, 점차 실생활 속에서 명확한 깨달음을 얻게 되자 갑자기 그의 앞에 유일한 진리로 우뚝 선 것이다. 그래서 네흘류도프는 많은 사람들이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악에서 구원받기 위한 유일한 길은, 하느님 앞에서 언제나 자신을 죄인으로 알고 자기가 남을 벌주고 선도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데 있음을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또한 교도소와 구치소 안에서 자기 눈으로 목격했던 온갖 무서운 악과 이 악을 범하는 이들의 태연함은 모두가 악인이면서도 악을 다스리려는,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하고자 함으로써 싹트는 것임을 알았다. 악한 인간들이 다른 악한 인간들을 바로잡으려 하고 그것을 기계적인 방법으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욕심 사납고 가난한 사람들이 이 헛된 징벌과 인간 교정을 직업으로 삼고, 그럼으로써 더이상 빠질 수 없을 정도로 깊은 타락의 구렁텅이로 빠지면서, 동시에 자기가 괴롭히는 사람들까지 그 구렁텅이 속으로 몰아넣는 결과를 낳을 뿐이었다. 네흘류도프는 이제 자기 눈으로 직접 보았던 무서운 일들이 어디에서 발생했는지를, 또 그것을 막기 위한 방법은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한 말-인간은 누구나 죄가 있어서, 인간을 처벌하고 교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몇 번이고 언제고 끝없이 용서를 해야 한다-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374-375) - P37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