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트먼이 간파한 것처럼, 우리의 임무는 이 세상을 읽는 것이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에게는 세상이라는 방대한 책이야말로 지식의 유일한 원천이기 때문이다. (책 읽기의 은유, 249) - P249

우리 존재는 읽은 만큼 성장한다. 그 순환이 완성되는 과정은 단순히 지적인 과정만은 아니라고 휘트먼은 주장했다. 다시 말해 표면적으로는 지적으로 읽어 어떤 의미를 파악하고 어떤 사실들을 자각하지만, 그와 동시에 무의식적으로도 텍스트와 독서가는 서로 한데 얽히면서 새로운 차원의 의미를 창조해 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텍스트를 섭취하여 텍스트가 가두고 있던 무언가를 풀어낼 때마다 그 텍스트의 깊은 곳에서는 우리가 아직 파악해 내지 못한 다른 무언가가 새롭게 태어나게 된다. 휘트먼이 자신의 시를 거듭 손질하고 다시 펴내면서 믿었던 것처럼, 어떠한 책 읽기도 결코 완성이 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책 읽기의 은유, 254) -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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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티 비숍이 외로움을 탄다는 사실은 심리학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러나 케이티의 외로움은 대중가요나 잡지에서 다루는 가볍고 얕은 고독보다 훨씬 더 무겁고 깊었다. 사실 케이티는 사회적 환경만이 아니라 자신의 생리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심각한 문제와 씨름하고 있었다. 그 문제는 사회적 유대감의 수준을 아주 높게 설정한 유전적 경향에서 비롯되었다. 외로움을 연구하는 우리는 그런 상태를 뒤집어 말해 사회적 유대감의 부재에 지나치게 민감하다고 표현한다.
(...)
그녀는 정확히 무엇이 자신을 괴롭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자신의 문제를 파악한 순간 환경을 완전히 바꾸어 보기로 했다. 그 이전에는 완전히 혼자 사는 게 필요하다고 스스로 판단했다. 사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적 유대감이 느슨한 환경이 아니라 좀 더 의미있는 유대감이었다. 유전적으로 높이 설정된 수준에 적합한 유대감을 말한다. (12-13) - P12

(…) 외로움이 오래 지속되면 "자신의 굴레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뮨제가 해결되지 않음을 설명해 준다. 예컨대 체중을 감량하고, 패션에 변화를 주고, 이상적인 배필을 만난다 해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외로움의 고통은 파괴력이 아주 강하다. 그런 생리적, 행동적 파괴 현상은 유대감을 상실했다는 느낌을 만성적인 상태로 만든다. 이러한 상태를 개선하려면 먼저 외로움이 우리의 생리와 진화에서 맡는 복잡다단한 역할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케이티 비숍처럼 기름진 음식을 먹고 TV 드라마 재방송을 보는 것으로 기분을 전환하려고 해 봤자 상황만 악화될 뿐이다. (17-18) - P17

사회적 유대감과 만족감을 얻는 비결은 자신의 심리적인 인식의 방해를 받지 않는 것이다. 특히 위협을 느끼는 데서 비롯되는 현실 왜곡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 사회적 유대감을 느끼면 사회적 고통과 위기의식이 사라져 진정으로 다른 사람과 한데 어울릴 수 있다. 이처럼 부정적인 자극이 없으면 우리는 진정한 유대감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유대감이 사회 인지를 편향시키기는 하지만 이 경우는 자신을 고양시키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까지 함께 도와주는 긍정적이고 관대한 방향으로 경도된다. 사회적으로 만족감을 느낀다고 해서 반드시 파티의 스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관대하고 낙관적인 영향력 때문에 다른 사람이 더 즐겁고 재미있다고 느끼게 된다.
사회적으로 만족을 느끼는 문제에 관한 우리의 연구 결과 중 가장흥미로운 사실은 사회적 고통과 그 고통이 야기하는 왜곡된 사회 인지가 전혀 없는 이런 성향이 우리를 아주 안정되고 건전한 상태로 유지해 준다는 점이다. 우리가 사회적 유대감을 느낄 때는 외로움을 느낄 때보다 동요도 덜하고 스트레스도 적게 받는다. 일반적으로 말해 유대감을 느끼면 적대감도 적게 느끼고 우울증도 적어진다. 이 모든 것이 우리 건강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30-31) - P30

외로움은 사회적 유대감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자극제 역할을 한다. 따라서 외로움은 사회적 신호를 받아들이는 우리 수신기의 감도를 높여 준다. 하지만 동시에 외로움은 그것이 상징하는 뿌리 깊은 두려움때문에 수신된 사회적 신호가 처리되는 과정을 방해한다. 그래서 실제로 전달되는 메시지의 정확도를 떨어뜨린다. 외로움이 오랫동안 계속되면 ‘높은 감도‘와 ‘메시지의 부정확성‘이라는 이중 효과 때문에 우리는 사회적 신호를 오해하게 된다. 다른 사람은 감지하지도 않고, 감지한다 해도 달리 해석하는 신호를 곡해하게 된다. (45) - P45

그러나 외로움이 일으키는 방어적 사고, 즉 외로운 사회 인지는 일단 촉발되면 사소한 일도 하늘이 무너진 듯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우리가 외로울 때는 부정적 상황에 더욱 예민하게 반응할 뿐 아니라 긍정적 상황에서 위안을 충분히 얻지도 못한다.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은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위안을 얻을 때도 그런 위안이 기대했던 것보다 만족스럽지 않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
무리나 동료와 섞여 있을 때 안전하다고 느끼고, 의도치 않게 혼자있을 때 위험하다고 느끼도록 진화된 생명체의 경우 고립감과 위협 인식이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켜 경계심을 고조시킨다. (49) - P49

그러나 그 불편한 상태가 외로움이라면 거기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가 상대방과 유대를 맺고 싶어 해야 한다. 이러한 유대를 맺기 위해서는 자유가 있어야 하고, 어느 정도는 같은 시간표에 동의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조건이 맞지 않으면 좌절감 때문에 적개심이나 우울증 혹은 절망에빠질 수 있으며, 사교술만이 아니라 자제력까지도 잃을 수 있다. 그럴 경우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쾌락으로 고통을 덮어 버리려는 욕구가 자제력을 억눌러 난잡한 성생활이나 폭음과 폭식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런 부정적인 행동이 생활 속에 자리 잡으면 자기방어적인 행동이나 냉담함 또는 도발적인 행위가 겉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한다. 그 결과 사회를 비관적으로 보려는 생각이 굳어져 다른 사람들로부터 실제로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 이렇게 마음에 상처를 입은 데다 따돌림으로 모욕까지 당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상황은 더욱더 극단으로 치닫는다. (52) - P52

그런데도 쿵족의 생활 방식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ustralopithecus afarensis)라는 작은 원인류에서 훨씬 똑똑하고 훨씬 협동적이며 심지어 이타주의적이기도 한 호모 사피엔스로 발전한 장기간의 진화 과정을 통해, 인류의 조상을 만들어 낸 사회적인 힘을 가장잘 보여 주는 사례다. 우리가 아는 농경 이전의 사회 전부가 이런 똑같은 기본적 구조를 갖는다. 혹독한 환경에서 겨우 살아남았지만 그래도 그들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그들이 유지해 온 사회적 유대감과 호혜적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 준다. 이런 자연 상태에서는 원시적인 정부나 영국인 철학자가 사회적 유대감과 협동을 강압적으로 끌어낼 필요가 없다. 자연은 모든 사물이 연결된 관계다. 그 관계가 단절되면 조절 장치가 무너지고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다. 사회적 차원에서만이아니라 세포 차원에서도 엄청난 혼란이 일어난다. (87)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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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게 아니다. 리카는 인정했다. 그렇다, 줄곧 기다렸다. 줄곧 이렇게 애무 받고 싶었다. 소중한 것을 다루듯이 아름다운 것을 어루만지듯이 이렇게 만져주길 바랐다. 줄곧 기다렸다. 줄곧.
(...) 리카는 굳이 착각해본다. 자신이 그들과 같은 20대의 입구에 있는, 미래에 대책없는 희망을 품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으면서,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쉽게 사람을 좋아하고 쉽게 사랑에 빠지고, 쉽게 몸을 허락하고 쉽게 미래를 약속하는 이름 없는누군가라고 착각해본다. 오랜 세월 남편의 손길을 받은 적 없는 불쌍한 아내가 아니라, 앞으로 실컷 성을 구가할 분방한 젊은이라고 착각해본다. 고타의 어깨를 안은 왼손 약지에 반지라곤 껴본 적도 없다고 착각해본다. (154) - P154

리카는 이건 마치 아이를 차에 태워둔 채 파친코에서 넋을 잃고 놀아버린 기분 같다고 생각했다. (293) - P293

보고서에 쓰여 있는 그들의 교제는 리카와 고타의 그것과 전혀 달랐다. 평일에 마도카의 수업이 끝난 뒤 만나서, 대학가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고타는 전철로 그녀의 하숙집 가까운 역까지 데려다준다. 휴일에는 번화가에서 영화를 보기도 하고 아이쇼핑을 하기도 하고, 아주 가끔 가까운 곳으로 드라이브를 간다. 마도카의 하숙집에서 보낼 때도 있다. 고타의 맨션에 마도카가 왔다는 보고가 없는 것은 고타가 자신에게 의리를 지키기 위한 것일까, 리카는 생각했다. 월세를 내고 있는 것은 자신이니까. 마찬가지로 의리인지, 아니면 애정 표현의 하나인지 리카에게 받은 돈을 고타가 그 교제에쓰는 모습은 없었다. 아마 고타의 수입으로 충당될 수수한 데이트였다. 거기에 스위트룸 온천여행도 택시도 샴페인도 고급 레스토랑도 존재하지 않는 것에, 리카는 안도하고 동시에 절망했다. 두사람은 자신들처럼 강한 끈으로 맺어져 있지 않고, 아마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거라는 안도와 자신은 이 두 사람 같은 깨끗하고 건강한 관계를 절대 만들 수 없다는 절망이었다.
세 군데 탐정 사무실에 낸 돈은 모두 250만 엔이었다. (308) -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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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보이와 함께하는 삶에서 내가 무엇을 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깨끗한 옷을 입고 근사한 서재에서 조용히 책을 읽는 모습을 상상할 때도 있었지만, 마구에 기름을 칠하거나 소박한 요리를 많이 만들거나 이른 아침 헛간에서 카우보이가 암소 몸속에 두 손을 집어넣고 송아지가 잘 나올 수 있게 송아지를 돌리는 동안 그를 돕는 모습을 상상했다. 이런 문제와 일들은 명료할 것이고 나는 이들을 명료하게 해결할 것이다. 읽고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겠지만, 많이 읽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그리 많이 알고 지내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읽고 생각하는 일에서 은밀한 자유를 더 많이 누리게 될 텐데, 카우보이는 늘 내 곁에 있을지라도, 내가 하는 일을 알려고 하지 않고 그냥 놔둘 것이다. 나는 읽고 생각하면서 더 이상 쑥스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교수, 143-144) - P143

마침내 인생의 중반쯤에 이르면, 당신은 모든 것이 결국 무라는걸, 성공도 결국 무라는 걸 알 만큼 똑똑해진다. 하지만 처음에 그토록 힘들게 자신을 무엇으로 보는 법을 이미 배운 사람이 이제 어떻게 자신을 무로 보는 법을 배울까? 너무 혼란스럽다. 당신은 결국 당신이 무엇이라는 걸 배우느라 삶의 절반을 보내고, 이제 당신이 무라는 것을 배우느라 나머지 절반을 보내야 한다. 이제까지 부정의무였고, 이제 긍정의 무가 되길 원한다. 나는 새해의 요 며칠 동안, 무가 되려고 애썼지만, 지금까지는 상당히 어렵다. 오전 내내 나는 무에 꽤 가까웠지만, 늦은 오후가 되면 내 안의 무엇이 힘을 쓰기 시작한다. 이런 일이 여러 날 일어난다. 저녁쯤 되면 나는 무엇으로 가득 차고, 그건 못되고 조급한 무엇일 때가 많다. 그래서 이쯤 되자 나는 목표를 너무 높게 잡았다고, 어쩌면 무는 처음부터, 지나친 목표였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당분간 나는 그냥, 매일, 평소의 나보다 조금 더 적어지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새해 결심, 238-239) - P238

당신도 알다시피 상황이 문제다. 갈가리 찢은 티슈 조각을 내 양쪽 귀에 넣고 또 넣고 스카프로 내 머리를 에워싸 동여맬지라도 나는 이상한 사람이 정말 아니다. 혼자 살 때 나는 내게 필요한 모든 고요를 가졌었다. (이상한 행동, 166)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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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아마도 관점의 문제일 것이다. 자기 자신은 물론 타인의 욕구에 밀착해서 살아가는 한, 타인의 시선과 기대를 끊임없이 예측하면서 사는 한, 세상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반면 더 이상 자기도 없고 타자도 없는 순간, 그때부터 시야가 넓어지고 수많은 소실선이 무한으로 뻗어나가듯이 세상은 고정된 사고에서 벗어나 감미롭도록 다양하게, 아득하게 나타난다. (들어가는 글, 12) - P12

그러나 다시 한 번 카프카가 우리에게 길을-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진정한 길을"- 열어준다. 왜냐하면 카프카는 눈에 띄게 행동하든 그렇지 않든 그 자체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라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세계를 보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신은 으뜸이 아니요, 세상의 중심도 아니고 기원도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떠받치고, 자기 자신이나 타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각각의 사물, 존재, 순간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아는 헛바람, 허깨비, 기만에 불과하고 타자는 폭군 혹은 환상일 뿐이니까. (들어가는 말, 27)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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