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레와의 이별, 그리고 첫 번째 발견: 다행히 아무도 나를 모른다> 매일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사는 모든 이들을 상상해보라. 사람들은 드러나고 보여진다. 한 개도 아닌(당연한 소리지만) 수많은 눈들을 통해서, 그게 어떨지그냥 상상해보라.
우선 언제나 사람답게 행동해야만 할 것이다. 단 하루라도 비인간적으로 살 수 없다. 내가 생각하는 비인간적이라 함은 즉 무례함, 뻔뻔함, 사악함, 더러움 같은 부정적인 성질들을 뜻한다. 사람들은 비인간적인 남들을 보고 나면 그들을 탓하는 동시에 자신을 돌아볼 것이다. 그러한 삶이다.
반면 나는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 하루 종일 그래도 된다. 일부러 사람답게 있을 필요가 전혀 없다. 아무도 나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 그 사람들이 하루 동안 얼마나 많은 말을 해야 하는지 짐작해보라. 직장에서, 집에서 배우자와 함께(아직 아이들이 부부 생활을 박살내지 않은 경우에). 나는 상황이 더 나쁠지도 모를 아이들에게도 애잔한 심정을 담아 보낸다. 아이들은 하루 종일 감시당한다. 특히 말을 배우는 시기에 그렇다. 사람들은 아이들 앞으로 몸을 기울여 ‘엄마‘나 ‘아빠‘, 또는 ‘감사합니다‘ 등 끔찍한 말들을 강요하고 얼굴을 가까이 대고 바라본다. 아이들이 그 말을 할 때까지.
곰곰 따져볼수록 기분이 개운해진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사람들은 정말 욕보고 산다. (68-69)

저게 대체 무슨 꼴이람, 하고 혀를 차며 자리에 선 채로 다른 쥐인간들을 관찰한다(나는 이제부터 이들을 ‘쥐인간‘이라고 부를 작정이다. 달리 부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노력가들은 여러모로, 그중에서도 다음과 같은 점에서 최악이다.
노력가들은 쥐인간이 되기를 미친 듯이 갈망한다.
다른 쥐인간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면서도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고 싶어 한다.
하등한 자들 가운데 가장 하등한 자들이다. 실로 쥐인간들보다 훨씬 형편없다.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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