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이런 것이며 굶주림엔 체모가 없는 것이다. 제사 음식을 마을에 돌리고 혼례장을 찾아온 각설이떼에게는 술밥이 나누어지고 생일에는 며느리 손이 커서 살림 망하겠노라 하면서도 떡시루에 칼질하는 시어미 얼굴에 미소가 도는 그런 인정과 우애를 사람들은 순박한 농민들 기질이라 생각하지만 먹이와 직결되는 수성이 또한 농민들의 기질인 것을. 풍요한 대지, 삼엄하고 삭막한 대지, 대지의 그 양면 생리는 농민의 생리요, 농민은 대지의 산물이다. 좀더 날이 가물면 농민들의 눈빛은 달라질 것이다. 남의 논물을 볼 때는 야비한 도둑의 눈이 될 것이며 자기 논물을 볼 때는 도둑을 지키는 험악한 눈이 될 것이다. 그리고 으르릉거리며 시기하며 언쟁할 것이요 드디어는 괭이나 쇠스랑이 무기로 변하여 피를 흘리게도 되는 것이다. (177)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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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을 좋아하는 경향은 악습이 되기 쉽고, 남을 꺾으려고 하기 때문에 남의 말에 반발하는 데만 정신을 쏟기 일쑤이고 흔히 사귀기 까다로운 사람이 되기 쉽다. 사람을 사귈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 해도 이것이 원인이 되어 모처럼 주고받은 이야기를 불쾌한 것으로 망쳐 버릴 뿐 아니라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고 적의를 품게 만들기도 한다. (...) 그러나 그 후 내가 주의해 보니 생각이 깊은 법률가나 대학 교수들, 그리고 에딘버러 출신을 빼고는 이런 악습에 빠진 사람은 거의 없었다. (29) - P29

그리하여 무엇이든 덮어놓고 반박하거나 반대하며 대드는 것을 피하고, 소크라테스의 논법에 따라 상대방의 말에 겸손하게 질문을 하거나 의문을 표시하는 방법을 쓰기로 하였다. (33) - P33

현명하게도 포프(1688~1744, 영국의 시인)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사람에게 무엇을 가르치려고 할 때에는 가르치지 않은 것처럼 해야 한다. 그 사람이 모르는 것이라도 마치 그 자신은 그것을 잊은 것처럼 말해야 한다."
그는 또 우리에게 "틀림없는 일이라도 조심해서 말하라."고 권하고 있다. (34)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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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는 흙먼지를 뒤집어쓴 자가 추구할 때 비로소 숭고하다. (2025.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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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기야 이런 철로의 축대는 다져야만 하겠지만, 식물을 키울 수 있는 능력을 잃은 이 흙을 보기란 슬픈 일이다. 이 흙도 축대 위에 있는 흙들처럼 곡식과 풀, 떨기 나무와 수목들이 자라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인간도 이와 다름없다.‘ 그는 계속 생각했다. ‘지사나 교도소장이나 순경같은 사람들에게도 이 같은 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중요한 특성, 사랑과 동정을 품을 줄 모르는 인간을 본다는 건 정말 무서운 일이다.‘
‘한마디로 그들이 법칙이 아닌 것을 법칙으로 생각하고 신이 인간의 마음속에 심어놓은 진리의 법칙을 법칙으로 인정치 않는 데 모든 문제가 있다. 그 때문에 그런 자들과 상대하는 내가 고통스러운 것이다.‘ 하고 네홀류도프는 생각했다. ‘나는 왠지 그들을 두려워하고 있다. 정말로 그들이 두렵다. 강도보다도 더. 강도에게는 그래도 연민을 바랄 수도 있으나, 그들은 인간에 대해 연민을 품지 않는다. 그들은 식물의 생장력을 마비시키는 돌과 같이 연민의 감정이 조금도 없다. 그것이 내가 그들을 두려워하는 바다. 사람들은 푸가초프나 라진을 두려워한다고들 하지만 내겐 이들이 천 배나 더 두렵다.‘ (219) - P219

‘ (...) 타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할 때는 조용히 있는 게 바람직한 일이다.‘ 네흘류도프는 그 자신에게 말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나 그 외 자기 맘에 드는 물건을 상대하는 게 낫다. 그러나 인간만은 절대로 상대하지 말아야 한다. 해악 없이 음식을 유익하게 섭취할 수 있는 건 식욕이 있을 때뿐이다. 그렇듯이 해악 없이 유익하게 인간과 사귈수 있는 건 사랑이 있을 때뿐이다. 어제 매형과의 경우처럼 사랑의 감정 없이 타인을 대한다면 늘 내 눈으로 목격했듯이 타인에 대한 몰인정과 냉혹은 한이 없어지고 내가직접 겪었듯이 자신에 대한 끝없는 고뇌 속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 정말로.‘ (221) - P221

‘그렇다.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나의 세계다.‘ 네흘류도프는 노동자들의 여윈 팔다리며 박음질이 제대로 안 된 옷, 햇볕에 그을리고 피곤에 지친, 그러나 온화한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네홀류도프는 인간다운 노동 생활에서 기쁨과 고통, 즐거움을 직접 겪고 느끼는 이들 새로운 사람들 속에서 자기를 인식하였다.
‘이야말로 진짜 상류 사회가 아닐까.‘ 아까 코르차긴 공작이 지나치며 하던 말과 하잘것없는 데 관심을 가질 뿐인 그 집안의 나태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떠올리며 네흘류도프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는 낯설고 아름다운 미지의 세계를 발견한 여행자가 맛볼 법한 기쁨을 느꼈다. (236) - P236

처음에 그는 타인의 사상을 명확하게 이해하며 자기 것으로 만드는 재질 덕분에 (...) 이 같은 재질을 높이 인정받는 교수와 학생들 사이에서도 월등 뛰어났고 자기도 이에 만족했다. 그러나 졸업한 뒤 공부를 그만두자 월등한 위치에 머무르는 일도 없어졌다. 그러자 그는 (...) 새로운 환경에서 우월자로서의 자리를 잡기 위해 이제까지의 견해를 일변시켜 자유주의자적인 온건파에서 급진적인 인민의 의지파 편에 섰다. 회의와 동요를 유발시키는 정신적, 미적인 특질이 없는 성격으로 그는 혁명가들의 세계에서 단연 그의 자존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지도자의 위치를 갖게 되었다. 그는 일단 자기 방향을 정하면 회의한다거나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에게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명확하고 간단했으며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는 실로 편협하고 치우친 견해를 갖고 있어 그에게는 모든 게 명확하고 간단한 이상 필요한 것은 그가 말한 대로 논리성을 갖추는 것뿐이었다. 그의 지나친 자만심은 사람들을 뒤로 물러서게 하거나 복종시키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그는 그를 사려 깊고 똑똑하다고 인식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만 활동했기 때문에 그들 모두가 그를 따랐고, 그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일이란 정권을 장악하고 국민대회를 열어 혁명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분명 이 대회에서 그의 정치 강령이 제의될 것이었다. 그는 이 정치 강령을 준비하면서 전반적인 문제를 다뤘으므로 반드시 이를 실행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그의 동지들은 그의 결단력과 대담함을 존경했으나 그렇다고 그에게 호감을 갖지는 않았다. 그는 누구에 대해서도사랑을 품어보지 않았고 자기와 동등한 자에 대해선 경쟁심을 가졌으며 늙은 원숭이가 새끼 원숭이를 다루듯 사람들을 다루려 했다. 타인의 두뇌와 재질을 빼앗아 자기의 재능을 사람들에게 발휘하는 데 아무런 방해가 없기를 바랐다. 그는 자기에게 순종하는 자에게만 호의를 베풀었다. (303-305) - P303

"여러가지 신앙이 있는 건 자기를 믿을 줄 모르고 남만일 믿으려 하기 때문이지. 나도 예전에 타인을 믿고 숲 속을 헤매듯 방황한 적이 있었소. 그야말로 미로여서 벗어날 수가 없었소. 구교도, 신교도, 토요안식교도, 편신(鞭身)교도, 몰로칸교도, 스코페스교도, 성직자교도, 무성직자교도 등 모두가 제 자랑만 늘어놓지. 그러니까 앞 못 보는 개처럼 헤맬 뿐이지. 영혼은 하나요. 종파는 무수하지만 나뿐만 아니라 당신에게도 저 사내에게도 영혼이 있소. 그러므로 자기의 영혼을 믿는다면 이 세상은 하나로 결합될 수가 있는 거요. 모두들 자기를 믿으면 일체가 될 수 있는 거요."
노인은 주위를 둘러보며 되도록 많은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런 신앙을 가진 지 오래되었습니까?" 네흘류도프가 말했다.
"나 말이오? 벌써 이십삼 년이나 쫓겨다녔으니 오래된 셈이지."
"쫓겨다닌다고요?"
"그리스도가 쫓겨다니듯이 나 역시 쫓겨다니고 있소. 체포되어 재판소에 끌려가기도 했고 성직자나 학자, 바리새인 앞으로 끌려간 적도 있고 정신병원에도 들어가 봤소.
하지만 아무도 나를 어떻게 할 수 없었소. 난 자유인이기때문이오. ‘네 이름이 뭐냐? 하고 묻더군, 내가 이름이라도 가지고 있는 줄 알고. 내겐 아무것도 없소. 이름도 지위도 조국도 아무것도. 그저 나일 뿐이오. 그래 이름을 묻는 그들에게 인간이라고 대답했지. 그랬더니 다음에 몇살인가? 하고 묻기에 난 이제껏 나이를 따져본 적도 없고셀 수도 없다고 대답했소. 왜냐하면 나는 이제껏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테니 말이오. 그 다음엔 ‘부모는 누구였는가?‘를 묻더군. 내겐 하느님과 땅 이외엔 부모도 없소. 그래 나의 아버지는 하느님이고 어머니는 대지라고 대답해 줬더니 ‘황제는 인정하는가?‘ 하고 묻더군. 허, 내 어찌 인정하지 않겠소. 그분은 그 자신에 대해 황제이고 나는 나 자신에 대해 황제인데. 그랬더니 나와는 얘기가 되지 않는다고 하기에 대꾸했지요. 나 역시 당신네가 말해 주길 바라지 않았다고. 그랬더니 나를 이렇게 구박하더란 말입니다." (334-336) - P334

네흘류도프에게도 정신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현상이 일어났다. 즉 처음에는 이상하고 모순적이며 우스꽝스럽다고 여겨지던 것들이, 점차 실생활 속에서 명확한 깨달음을 얻게 되자 갑자기 그의 앞에 유일한 진리로 우뚝 선 것이다. 그래서 네흘류도프는 많은 사람들이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악에서 구원받기 위한 유일한 길은, 하느님 앞에서 언제나 자신을 죄인으로 알고 자기가 남을 벌주고 선도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데 있음을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또한 교도소와 구치소 안에서 자기 눈으로 목격했던 온갖 무서운 악과 이 악을 범하는 이들의 태연함은 모두가 악인이면서도 악을 다스리려는,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하고자 함으로써 싹트는 것임을 알았다. 악한 인간들이 다른 악한 인간들을 바로잡으려 하고 그것을 기계적인 방법으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욕심 사납고 가난한 사람들이 이 헛된 징벌과 인간 교정을 직업으로 삼고, 그럼으로써 더이상 빠질 수 없을 정도로 깊은 타락의 구렁텅이로 빠지면서, 동시에 자기가 괴롭히는 사람들까지 그 구렁텅이 속으로 몰아넣는 결과를 낳을 뿐이었다. 네흘류도프는 이제 자기 눈으로 직접 보았던 무서운 일들이 어디에서 발생했는지를, 또 그것을 막기 위한 방법은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한 말-인간은 누구나 죄가 있어서, 인간을 처벌하고 교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몇 번이고 언제고 끝없이 용서를 해야 한다-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374-375) - P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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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과 사건을 바라보는 화자의 정서와 시각이 틀어져 있어 소설을 읽는 즐거움이 희박하다. 무엇보다 자신의 왜곡된 행동을 가부장제와 결혼 제도의 불합리로 정당화하는 흐름 때문에 이입이 어렵다. 아니 에르노처럼 처절하게 솔직하지도 않다. 늦어도 2000년대에 결혼 생활을 한 여성들이라면 모를까, 지금 같은 때엔 ‘본인이 결혼해놓고 거기다 이혼도 안 할 거면서 왜 그러세요‘ 소리만 나오는 피해의식과 수동적 궤변들이 있다. 다만 그 덕분에 ˝습관적 거짓말˝을 하는 자들의 사고 흐름을 체험할 순 있다. 만성적인 무력감과 공허함, 우울감으로 점철된 수동적 인생의 자기 변론. 물론 이것까지 의도되어 쓰인 것 같진 않고. 소설 내내 나이브하게 쓰여진 문장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아주 가끔 와닿는 문장들이 있다. (25.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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