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심리학
정동섭 지음 / 학지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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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며 여기에 예외는 없다"던 파스칼의 말대로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지만, '행복'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적다. 문제는 저마다  행복을 자기식대로 해석하다 보니 그것을 쫓거나 만들어가는 방법이 잘못될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이 책은 행복을 긍정심리학의 관점으로 접근하며 '행복이 무엇이고, 어떤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며, 무엇이 있으면 행복해질까'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행복은 의무다 

행복은 모든 사람의 의무다. 요새는 대부분이 '살맛 안 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찍이 아인슈타인은 "인간은 인간을 행복하게 하려고 태어났다"고 했고, 헤르만 헤세는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세상에 왔다"고 했다. 결국, 지금 '살맛 안 나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 되는데, 요새 우리나라처럼 국가가 국민으로 하여금 의무를 이행할 수 없게 만들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행복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저자는 행복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내가 행복해져야 다른 사람도 행복해진다며 '좀 더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각자가 행복해야 한다. (p. 47)'고 주장한다. 당연히 나의 행복을 위해 타인의 행복을 위협하는 일은 없는 걸 전제로 한 말일 테지만, '타인의 희생을 전제로 한 내 행복'으로 자칫 잘못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 약간은 우려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 '행복은 연쇄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에 행복이 큰 폭으로 증가하면 2km 반경에 사는 친구들은 25% 더 행복해지고 친구의 친구들은 10%, 친구의 친구의 친구들은 약 5.6% 더 행복해진다. (p. 48)'는 대목이 나오는데 설명이 덧붙여지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행복을 어떻게 수치화했을까 하는 의문은 남는다. 

  


행복은 창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체 행복은 추구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발견해야 하는 걸까?

저자는 행복은 추구할 것도, 발견할 것도 아니며 창조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자체가 목표가 될 수 없는, 다른 것들이 만들어내는 부산물이라는 말인데 이는 '스스로 행복을 얻기 위해 노력하라'던 칸트의 주장과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행복의 세 가지 구성 요소

학자들은 행복이 세 가지로 구성된다며 아래와 같이 비율을 밝히고 있다. 

· 타고난 유전자와 기질적 성향 - 50%

· 처한 상황 - 10%

· 의도적으로 선택한 활동 - 40%


흥미로운 점은 많은 긍정심리학자도 타고난 성향 등의 유전적 요인이 행복의 구성 요소 중 절반을 차지한다는 데 동의한 점이다. 외국의 많은 학자가 "한국인은 좀 더 행복해질 필요가 있다"고 권고하는 것처럼, 우리나라는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고, 실제로도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적은데 그럼 이건 한국인의 유전자나 기질적 성향과 관련이 있다고 봐야 한단 말인가?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이 아무리 '대부분의 사람은 행복하기보다는 불행하다'고 하긴 했지만, 그럼 우리나라엔 많아도 너무 많은데?



행복은 현재에 있다

전쟁과 가난을 경험한 한국 사회는 경쟁을 통해 가파르게 성장해왔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현재를 희생하며 미래만을 위해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한 단계에 도달하면, 그것을 온전히 누리기도 전에 바로 그다음 단계를 위해 또 현재를 반납한 점이다. 그런데 오로지 '내일'을 위해 어제와 오늘, 그리고 또 다른 어제와 오늘을 그렇게 제물로 바쳐야 한다면, '행복한 현재'란 영원히 없다. 현재를 즐기다 영원히 뒤처질 것만 같은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사회적 분위기나 '지금 그러고 있을 때니?'하는 식으로 바라보는 시선 때문이다. 결국 '노오력이 배신당하는 헬조선'에서 행복하려면, 사회구조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는 말이 된다. 구조적으로 지나친 경쟁을 자제하고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 풍토를 조성해야만 구성원들의 인식이 바뀔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요?"라는 질문에 '행복해요'라고 응답하는 사람이 많은 나라에서는 오로지 미래의 행복을 위해 살지 않고 현재와 미래의 행복을 함께 고려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저자는 행복의 조건으로 수용자산(acceptance resources), 즉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꼽는다. 관계란 인간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며, 가장 큰 행복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믿음에서 생겨난다고 말하고 있는데, 요새 같이 진정한 '관계 맺기'가 어려운 시대에는 행복 역시 사람들로부터 달아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행복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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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비서들 - 상위 1%의 눈먼 돈 좀 털어먹은 멋진 언니들
카밀 페리 지음, 김고명 옮김 / 북로그컴퍼니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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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대를 졸업하고 가까스로 학자금 대출을 갚아나가는 30세 '흙수저' 티나 폰타나가 주인공이다. 그녀는 졸업 후 6년째 미디어 재벌 로버트의 비서로 일하고 있는데 악덕 사업가로 알려진 그는 유독 그녀를 신임한다. 어느 날 로버트의 전용기에 문제가 생겨, 티나는 급히 자신의 신용카드로 그의 비행기 좌석을 예약하는데 결제 금액이 취소된 후에 실수로 환급까지 받게 된다. 환급 받은 2만 달러 짜리 수표를 기념 촬영하던 티나는 계좌로 자동입금된 수표를 보고, 충동적으로 학자금 전액 상환 버튼을 누르고 만다. 하지만 곧 경영관리팀 비서, 에밀리 존슨이 이를 발각하고 자신의 학자금 7만 달러도 상환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문제가 커지기 시작한다. 



작품 속에서 눈여겨볼 만한 것이 많은데 첫째는 '타인은 생지옥이니 사람은 섬으로 살아야 한다'던 티나가 동년배와 우정을 쌓으며 사회성을 회복해 나가는 과정, 둘째는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나 잘하는 일이 뭔지도 모른 채 일단 '발부터 들이밀어 넣은 회사'에서 6년을 비서로 일하는 동안 등한시해온 자신의 능력과 꿈을 찾아가는 과정, 셋째는 제아무리 '노오력'해도 개선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뉴욕 '흙수저'의 초라한 현실, 넷째는 재벌과 비서라는 대립 구도를 통해 강조되는 부의 불평등한 분배, 다섯째는 악덕 재벌이라고는 하나 유독 자신에게만은 친절했던 보스를 속인 후 티나가 겪는 내적갈등, 여섯번째는 페미니즘 로드무비의 정수인 <델마와 루이스>를 연상시키는 티나 & 에밀리 조합을 비롯해 비서 3인방 진저 로이드(법무팀장 비서)릴리 매드슨(회계팀장 비서)웬디 챈(디지털팀 비서)을 축으로 한 '누가 봐도 수상한데 왠지 안쓰러운 빈손연합'의 행보이다.


읽는 내내 여러 작품이 떠오른다. 먼저, 어시스턴트의 고군분투는 로렌 와이스버거의 히트작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생각나고, 개성이 뚜렷한 사회초년생들이 뉴욕에서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는 데이비드 블레딘의 「월 스트리트 몽키」와 닮았고, 가진 것이라곤 빚밖에 없는 '뉴욕 흙수저'의 삶은 이지민의 「청춘극한기」에 나오는 연봉 300만 원짜리 작가, 한국 흙수저 옥택선의 삶과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뉴욕을 배경으로 한다고는 하나 우리의 현실과도 크게 다르지 않고, 분량 또한 부담 없으니 가볍게 기분전환용으로 읽기에 제격이다. 모든 여성을 홀릴 만한 치명적 매력남이 등장하고, 패션 감각이 뛰어난 여성과 모자란 여성이 친구(내지는 공모자)가 되고, 아무 때나 빵빵 터지는 유머코드와 적재적소에 깔린 비속어, 무하마드 알리처럼 절대 포기할 줄 모르는 불굴의 여주인공, 그리고 안줏거리처럼 등장하는 유명 연예인(여기서는 조지 클루니)까지 칙릿(chick-lit)의 흥행 요소가 모두 들어 있다. '이거 범죄 아니야?"라며 5인방의 행위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만 않는다면, 학자금 대출금을 갚기 위해 시작된 '우연한 도둑질'이 어쩌다 로빈훗의 혁명이 되어버린 뉴욕의 5인조 도둑비서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저자 카밀 페리가 <에스콰이어>지에서 어시스턴트로 일한 경력이 있어서 그런지, 2-30대의 '폭풍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통쾌한 흙수저의 복수극을 완성했다. 여기서 '판타지 로맨스'는 덤이다. 
 


참, '티나-케빈', '티나-에밀리' 조합에서 보여지는 티나의 속마음이 특히 재미있다. 이를 테면, 초반에 케빈이 티나에게 관심을 보이며 같이 햄버거 먹는 게 어떠냐고 물으면, 티나는 "내가 (너와)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해"라고 답하는 식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칙릿에 등장하는 매력남에게는 몇 가지 규칙이 있는 것 같다. 일단, 상위 5%에는 해당할 듯한 준수한 외모의 소유자이면서도 패션감각은 엉망이(어야 하)며, 여자관계는 결벽증 환자처럼 깔끔하고, 예쁘고 섹시한 여성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외모를 덜 꾸미는 여주인공에게 호감을 갖는다. 직업은 전문직이며 넉넉한 가정에서 자랐음에도 불의를 참지 못하는 대쪽같은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유독 여자친구에게만은 어딘가 나사가 하나 빠진 듯한 치명적인 약점을 종종 드러낸다. 마침, 케빈 역시 변호사라 그런지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마크 다아시를 떠올린다.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로버트와 에밀리, 그리고 케빈이다. 이미 영화화 작업이 진행 중이란다. 과연 허당 미남 케빈은 누가 맡을지 기대되고, 악덕 사업가이면서도 유독 특정인에게만은 인간미를 풀풀 풍기는 로버트는 이름 그대로 로버트 드 니로가 제격일 것 같다.





이 나라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를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대학을 나와서 열심히 일하면 중산층으로 남부럽잖게 살 수 있다던 말이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지난 30년 동안 정치와 경제 지형이 변하면서 현재의 20대와 30대가 중산층이 되겠단 꿈을 이룰 가능성은 부모 세대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적어졌습니다. 우리가 게을러서, 직업의식이 투철하지 않아서, 과소비에 취해서 그런 게 아닙니다. 진짜 이유는 바로 우리가 이 시대의 피해자이기 때문입니다. (P.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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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수업 - 하루에 하나, 나를 사랑하게 되는 자존감 회복 훈련
윤홍균 지음 / 심플라이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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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으로 뉴스를 검색하면 인간관계에서부터 가정, 교육, 연애, 스포츠, 그리고 정치까지 다양한 결괏값이 나온다. '자·존·감'이란 말이 들어가지 않을 때가 없는 것 같다. 정말 문제는 자존감일까?

  

'정신 건강의 척도'라고도 불리는 자존감은 흔히 '자신을 사랑하는 정도'로 여겨지는데, 자존감에는 아래와 같은 세 가지 기본 축이 있다. 

자기 효능감: 자신이 얼마나 쓸모 있는 사람인지 느끼는 것

자기 조절감: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본능

자기 안전감: 안전하고 편안함을 느끼는 것으로 자존감의 바탕

 

 

많은 이가 저마다 가장 보기 좋아 보이는 삶의 단면을 SNS에 공개한다. 이를 허세라고 부르든 표현의 자유라고 부르든 진짜 문제는 이런 (대체로 설정됐거나 의도된 상황에서 찍은) 사진을 본 주변인들이 상대적 박탈감이나 우울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예전에 한 여론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60% 이상이 타인의 SNS를 보고 박탈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가뜩이나 한국 사회에서는 체면이나 남의 이목에 많이 집착하니 스트레스가 더 클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런 일로' 상대적 박탈감이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면, 당신은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철학자 마르틴 부버(Martin Buber)는 '나라는 인간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뿐이고, 자신과 똑같은 존재가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만약 똑같은 존재가 있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까지 말했다. 모두가 다른 존재이므로 행복 요소도 다를 수밖에 없다. 자존감이란 '자신에 대한 평가'라고 하는데, 그럼 남의 잣대로 나를 평가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애초에 평가 기준이 잘못됐는데 그걸로 우울해 하고 또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그거야말로 너무 '우울하다.' 

 


저자는 며칠 전에 문화일보와 인터뷰를 가졌다(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6101201032512047001). 프롤로그에도 밝히듯, 본인도 예전에는 자존감이 낮았지만, 자존감을 회복하면서 행복해졌단다. 불행하다고 느낄 때는 자존감이 낮았고, 행복하다고 느낄 때는 자존감이 높았으니, 자존감 회복이란 결국 행복해진다는 말과 같다. <르 파리지엥> 선정 '2014년 최고의 책'으로 꼽혔던 소설가 그레구아르 들라쿠르의 「행복만을 보았다」에 이런 문구가 있다. '사람들이 널 아무리 아프게 해도, 네가 그 상처를 더 헤집어 놓아서는 안 된다'고. Part 6 '자존감 회복을 위해 극복할 것들'을 약간의 문학성을 가미해 한 문장으로 요약하라면 그 말로 대신하겠다.

 

 

저자의 의견에 쉽게 동의하지 않게 되는 부분도 있기는 하다. Part 3 '자존감이 인간관계를 좌우한다' 중에 '나는 대한민국의 직장인들이 직장과 직업, 꿈을 좀 더 명확하게 구분했으면 한다. (p. 89)'라는 대목이 나온다. '사축'으로 살지 말라던 도서들이나 「강신주의 다상담」에서도 볼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직장과 인생의 분리'란 결코 쉽지 않을뿐더러('쉽다 어렵다'가 아니라 '가능과 불가능'으로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을'만의 다짐으로 될 일도 아니다. '퇴근 후 회사 생각 금지'란 문구를 접할 때마다 답답하다. 갑이 먼저 나서야 하는 일이고, 조직 내부에 능동적으로 변화하려는 의지가 있어야만 하는 문제라고 본다.   

 

참, '걷기' 열풍은 이 책에서도 이어지고 있어 흥미롭다. '걷지 않으면 내 두뇌가 잠든다'고 말한 몽테뉴를 비롯해 많은 철학자가 '걷기(또는 산책)애호가'였는데, 결국 걷기가 몸과 마음을 모두 건강하게 하는 최고의 보약인가 보다. 저자가 말하기를, 부정적인 생각의 회로가 우리를 괴롭힐 때는 뇌의 양쪽을 번갈아가면서 자극을 주는 양측성 자극 운동을 하는 게 좋은데 걷기가 바로 대표적인 양측성 자극 운동이라고 한다. 참고로, 자유형, 배영은 양측성 자극이지만 접영이나 평영은 아니고, 복싱은 양측성 자극이나 골프나 공 던지기는 아니라고. 저자는 걷기 외에 '나비의자 기법'이라는 것을 추천한다. 아무래도 조만간 '걷기'를 다룬 책을 읽어야겠다. 

 


아무쪼록 디자인에서부터 구성까지 전반적으로 따뜻하고 친절한 느낌을 자아낸다. 문장은 술술 읽히고,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 볼 만한 문제들을 다 모아두었다. 또, '하루에 하나, 나를 사랑하게 되는 자존감 회복 훈련'이라는 부제에 맞게 한 꼭지가 끝날 때마다 '자존감 향상을 위해 오늘 할 일'이라는 코너를 마련해 독자의 참여를 유도한 것도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한 마디로 '바닥난 자존감을 높여주는 자존감 회복 연습을 위한 워크북'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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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아웃 네이션 - 2022 세계경제의 운명을 바꿀 국가들
루치르 샤르마 지음, 서정아 옮김 / 토네이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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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 브릭스를 중심으로 거대 신흥국 열풍이 불면서 경제성장의 황금기가 열렸다. 그 정점에 달했던 2007년에는 세계 183개 국가 중에서 단 3개국을 제외한 180개국의 경제가 성장했고, 그중 114개국이 5% 이상의 성장률을

보였다. 급성장하는 경제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조차 감소하던 이른바 골디락스 경제(Goldilocks economy)의 시기였는데 1990년대 초 공산권이 몰락하면서 인력과 자본, 재화가 유입된 덕분이고, 무엇보다도 전 세계적인 유동성 팽창으로 말미암은 결과였다. 그런데 금융위기가 세계를 강타하고 2008년이 되면서 이들 신흥국의 무역수지도 급감하고 있다. 경제 중력의 기본 법칙에 따라 거대 신흥국들의 경제가 다시 기존 수준으로 돌아가는 가운데, 세계적인 경기침체를 돌파해 다가오는 2020년 가장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국가는 어디일까? 이 책은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는데,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이제까지 브릭스에 대한 예측과 극명한 대비'가 흥미로움을 더한다.

 

모건 스탠리에서 신흥시장 부문 총괄사장인 저자 루치르 샤르마는 250억 달러의 신흥시장 자산을 운용한단다. 현장 전략과 계획 수립차 한 달에 일주일 이상 신흥국을 방문한다는 그는 해당 국가의 암시장에서부터 최상위 부유층과 정치권의 동향까지 분석한다고 하는데 이 책은 15년간의 그러한 경험과 연구의 결과물이다. 유명 경제지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작성한다는 그는 전문가와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가장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추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는데, 과연 그 말처럼 책에 대한 국내외 평을 봐도 모두들 경제서답지 않게 쉽게 잘 풀어냈다는 칭찬 일색이다.

 

이 책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온 신흥강국 브릭스(BRICs)를 국가별로 들여다보며 그들이 왜 이 총체적 난국을 타개해 나갈 수 없는지를 조목조목 설명한다. 저자의 풍부한 경험과 지식이 집대성된 이 책의 장점은 브릭스 각국에 대한 상세한 정보와 가장 최근의 소식을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입장에서 전달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너무 낙관적으로만 봐 왔구나 생각이 들 정도로 저자가 전달하고 있는 이야기들은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것들과도 많이 달랐다. 게다가 이 책을 더 눈여겨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글로벌 위기를 당당히 이겨내고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나라, 그의 표현대로 '브레이크아웃 네이션(Breakout Nation)'이라고 점쳐지는 국가 중에 우리나라가 속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브릭스에 대한 적나라한 지적과는 확연히 다르게 지나치리만치 긍정적이다. 세계 경제를 올림픽으로 치자면, 우리나라에 '금메달'을 기꺼이 주겠노라고 말할 정도이니. 그런데 우리나라 대기업에 대한 칭찬이나 통일에 대한 긍정적인 해석은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려운 부분이고, '이 정도의 경제 규모를 갖춘 나라에서 서비스 부문과 내수시장이 그처럼 장기적인 정체를 겪는 것' 역시 그의 말마따나 쉽게 간과할 수 없다.

 

이미 세뇌당한 것인지 그가 지적한 브릭스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가진 잠재적 가능성에 대해서는 쉽게 포기되지 않는다. 중국이 아무리 급부상해오고 있다고 할지라도 아직은 미국 경제 규모의 30%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미국 국민도 중국(의 급부상)에 대한 두려움이 점점 커져만 가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우리는 중국의 부상도 물론이지만, 미국의 원기회복도 두렵긴 마찬가지다. 소프트산업과 문화산업처럼 고부가가치산업으로 인한 부의 창출과 축적은 부러울 따름이고, 급하락 중이라는 원자재 가격은 미국에도 호재가 되고 있으니 말이다. 새로운 시대의 브레이크아웃 네이션은 "바람이 불지 않으면 노를 저어라"라고 충고하지만, 노를 젓는 것도 젓는 건데,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방해가 되는 건 비단 바람의 유무만이 아니다. 바람의 세기와 방향, 간격과 주기도 신경써야하고, 바람이 아닌 다른 요인들에 대한 대처까지 생각해내야 하는 우리는 진정 '브레이크아웃'하기 위해 아직 해야 할 숙제가 많다.

 

아무쪼록 그동안 브릭스만 강조해오던 차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의미 있는 책이다. 마찬가지로 평소 멀게만 느껴지고 국내 언론에서도 잘 다루어지지 않던 나이지리아, 폴란드, 체코, 인도네시아 등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됐다. 그가 말한 대로 우리에게 조만간 핑크빛 미래가 펼쳐질지 지켜보자. 2020년이라고 하지만, 사실 얼마 남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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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예술을 ‘엿먹이다’ - 미술비평은 어떻게 거장 화가들을 능욕했는가?
로저 킴볼 지음, 이일환 옮김 / 베가북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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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올바름이 어떻게 예술을 파괴하는가?

(How Political Correctness Sabotages Art)

 

최근 개인적으로 미술계에 관한 관심이 커지는데다 제목이 하도 도발적이어서 읽고 싶었던 책이다. 일찍이 다른 책들을 통해서 시장논리에 입각한 예술가(집단)와 비평가 간의 유착관계에 대해 알아온 터라 기대도 크고 어떤 내용일지 무척 궁금했었는데, 쉽지 않은 책이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The Rape of Masters'라는 제목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예술사에 엄청난 업적을 이루었다고 상까지 받으며 추앙받는 일부 미술 평론가들의 해석(비평)이 거장들의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작품의 의도를 왜곡하고 폄하하는 '강간'과 다름없다는 점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저자 로저 킴볼(Roger Kimball)은 일부 비평가들의 지나치게 작위적으로 확대해석되거나 특정한 의도로 재해석된  것들을 니체의 '인간은 질병에 논박을 하는 게 아니라 질병에 저항을 하는 것'이라는 말을 인용하며 그 역시 '저항'하는데, 그 과정에서 반박의 논리나 어조가 지나치게 직설적이어서 독자들에게 충분히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을까 하는 괜한 우려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비평가 집단과 저자 사이에서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하기 위해 독자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은 윈슬로우 호머의『만류』나 존 싱어 사전트의『에드워드 달리 보이트의 딸들』 등 이 책에서 다루는 화제작들부터 직접 자신의 힘으로 천천히 감상해보는 것이 아닐까 싶다.

 

길을 잃은 예술평론에 저자가 내놓은 해답은 간단하다. 예술작품 그 자체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비평은 죽었다'고들 한다. 평론가들의 해석은 일반 대중은 물론이고 예술계에서도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에프라임 키숀은 자신의 저서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에서 현대예술이 저지르고 있는 최대의 죄악으로 관객을 무시하거나 경멸하는 태도를 꼽은 바 있다. 로저 킴볼의 견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정치적 올바름이)시각적인 것을 이념적인 것으로 대체시키면서 그것은 예술을 본질적으로 비미학적이고 탈미학적인 드라마의 소품으로 전락시켜버린다. (p. 16)'고 꼬집었다. 게다가 그 대책 없는 난해함에 정신병원을 언급하는 것도 두 사람의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다.

 

고흐의『한 켤레의 신발』에 구구절절 달린 어렵다 못해 기괴한 해석에 참다못한 저자의 화가 그대로 분출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한국어판의 제목이 격한 것도 사실이다. 허나, 예술이 온갖 정치적 도구에 휘둘리고 있는 갑갑한 현실을 보다 못한 그도 예술 작품을 이해하는 데 있어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요소를 전혀 개입시키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주장은 간단하고 명확하다. 예술 작품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먼저, 또 가장 많이 고려해야 할 대상은 어떤 경우에도 작품 그 자체라는 점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푸코나 데리다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들의 의견과 정면으로 부딪치고, 이미 기득권이 되어버린 유명 비평가들과도 날 선 대립을 해야 하는데, 거듭 말하지만 그것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자 선택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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