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예술을 ‘엿먹이다’ - 미술비평은 어떻게 거장 화가들을 능욕했는가?
로저 킴볼 지음, 이일환 옮김 / 베가북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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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올바름이 어떻게 예술을 파괴하는가?

(How Political Correctness Sabotages Art)

 

최근 개인적으로 미술계에 관한 관심이 커지는데다 제목이 하도 도발적이어서 읽고 싶었던 책이다. 일찍이 다른 책들을 통해서 시장논리에 입각한 예술가(집단)와 비평가 간의 유착관계에 대해 알아온 터라 기대도 크고 어떤 내용일지 무척 궁금했었는데, 쉽지 않은 책이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The Rape of Masters'라는 제목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예술사에 엄청난 업적을 이루었다고 상까지 받으며 추앙받는 일부 미술 평론가들의 해석(비평)이 거장들의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작품의 의도를 왜곡하고 폄하하는 '강간'과 다름없다는 점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저자 로저 킴볼(Roger Kimball)은 일부 비평가들의 지나치게 작위적으로 확대해석되거나 특정한 의도로 재해석된  것들을 니체의 '인간은 질병에 논박을 하는 게 아니라 질병에 저항을 하는 것'이라는 말을 인용하며 그 역시 '저항'하는데, 그 과정에서 반박의 논리나 어조가 지나치게 직설적이어서 독자들에게 충분히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을까 하는 괜한 우려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비평가 집단과 저자 사이에서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하기 위해 독자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은 윈슬로우 호머의『만류』나 존 싱어 사전트의『에드워드 달리 보이트의 딸들』 등 이 책에서 다루는 화제작들부터 직접 자신의 힘으로 천천히 감상해보는 것이 아닐까 싶다.

 

길을 잃은 예술평론에 저자가 내놓은 해답은 간단하다. 예술작품 그 자체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비평은 죽었다'고들 한다. 평론가들의 해석은 일반 대중은 물론이고 예술계에서도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에프라임 키숀은 자신의 저서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에서 현대예술이 저지르고 있는 최대의 죄악으로 관객을 무시하거나 경멸하는 태도를 꼽은 바 있다. 로저 킴볼의 견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정치적 올바름이)시각적인 것을 이념적인 것으로 대체시키면서 그것은 예술을 본질적으로 비미학적이고 탈미학적인 드라마의 소품으로 전락시켜버린다. (p. 16)'고 꼬집었다. 게다가 그 대책 없는 난해함에 정신병원을 언급하는 것도 두 사람의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다.

 

고흐의『한 켤레의 신발』에 구구절절 달린 어렵다 못해 기괴한 해석에 참다못한 저자의 화가 그대로 분출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한국어판의 제목이 격한 것도 사실이다. 허나, 예술이 온갖 정치적 도구에 휘둘리고 있는 갑갑한 현실을 보다 못한 그도 예술 작품을 이해하는 데 있어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요소를 전혀 개입시키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주장은 간단하고 명확하다. 예술 작품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먼저, 또 가장 많이 고려해야 할 대상은 어떤 경우에도 작품 그 자체라는 점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푸코나 데리다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들의 의견과 정면으로 부딪치고, 이미 기득권이 되어버린 유명 비평가들과도 날 선 대립을 해야 하는데, 거듭 말하지만 그것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자 선택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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