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바꾸는 생각들 - 유발 하라리부터 조던 피터슨까지 이 시대 대표 지성 134인과의 가장 지적인 대화
비카스 샤 지음, 임경은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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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이었다. 재미 삼아 만든 블로그가 대박 났다. 관심 주제에 관한 글을 올리고,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들의 인터뷰를 곁들였는데 방문자가 계속 늘더니 급기야 책으로 내자는 의뢰를 받은 것.


자, 그럼 블로그 주인은 뭐부터 할까?


블로그의 어느 부분을 책에 싣고 어디를 뺄지를 결정하는 작업에 들어갈 것이다. 목차와 챕터가 잡히면, 그 안에는 특정한 흐름이 보일 것이고.


비카스 샤 Vikas Shah의 <생각을 바꾸는 생각들>은 그렇게 완성된 책이다. 원제 'Thought Economics'는 2007년에 그가 만든 블로그의 이름을 그대로 따왔다. 세계를 '움직이는'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창조하는')건 생각이나 아이디어라고 보기 때문에 '생각 경제학'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이 책은 '세계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어떻게 할까'를 담은 책이다.



책은 인터뷰 형식인데 참여한 이들의 이름만 보면 이보다 더 화려할 수가 없다. 오죽하면 표지부터 저자보다 인터뷰에 참여한 이들을 더 부각했을까. 유발 하라리부터 조던 피터슨처럼 요새 '핫'하다는 학자들은 다 나온다. 어디 학자뿐이겠는가. 앞으로 한창 뉴스에서 보게 될 버진 그룹의 회장 리처드 브랜슨 같은 글로벌 기업의 대표부터 행위예술가로 유명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를 필두로 내로라하는 예술가들이 총출동한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연예인들은 물론이고 '나, 다니엘 브레이크'로 유명한 영화감독 켄 로치에 (다시 레알 마드리드로 돌아온) 축구 감독 카를로 안첼로티까지 실로 다양하다. 바꿔 말하면, 분야를 막론하고 누구나 알 법한 유명하다는 사람과는 죄다 저자가 인터뷰에 성공했다는 얘기다. 본인도 서문에 밝히듯이 '아니, 이 사람하고도 인터뷰를 했어?'라는 말을 들을 만큼 인터뷰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책을 내자는 의뢰를 받고 그간 작업한 걸 훑어보다가 공통된 주제를 발견했다고 했다. 그 결과 제일 첫 번째 챕터를 '정체성1'으로 정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공통점'이기 때문이란다. 책을 읽다 보면 그 말에 수긍이 간다. 각기 하는 일이 다르고, 국적도 나이도 다른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했더니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내가 누구인가?'하는 질문이었다는 얘기. 정체성이란 개인을 규정하기도 하지만, 사회나 집단을 형성하는 역할도 한다. 정체성은 자연스럽게 집단 내 소속감으로 이어진다. 소속감을 공유하는 이들에게는 고유의 문화2가 싹트기 마련이고, 그 안에는 리더가 존재하니 이야기는 리더십3기업가 정신4으로 계속된다. 그러나 제아무리 훌륭한 리더라도 빠지지 않는 게 있으니 바로 차별5갈등6. 이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민주주의7가 제시된다. 챕터는 이렇게 구성된다(숫자 표시).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레이아웃만큼이나 깔끔 그 자체.




스펙트럼은 방대한데 각각의 질문과 답변은 짧다 보니 피상적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겠다. 한 가지 장점을 꼽자면, 한 가지 (소)주제에 관해 다른 입장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글을 쓸 때 윤리적 혹은 도덕적 책임이 필요한가" 하고 묻자, 마야 안젤루와 얀 마텔의 대답은 달랐다. 마야 안젤루는 모든 이는 타인에게 도덕적 책임이 있으니 작가도 보편적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한 반면, 얀 마텔은 예술은 일종의 목격자일 뿐이고 도덕성이란 삶의 아이러니를 드러내려고 작가가 선택하는 딜레마라며 뒤로 한발 물러서는 식이다. 누구의 의견이 옳고 그르고 하는 문제는 아니니 독자가 알아서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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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견만리 : 미래의 가치 편 - 대전환, 청년, 기후, 신뢰 명견만리 시리즈
KBS 명견만리 제작진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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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발발한 이후에 나온 첫 <명견만리> 시리즈다. 이야기는 당연히 코로나 팬데믹에서 시작한다.

2021년 5월 기준 현재까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명 피해가 가장 큰 나라는 미국이다 (곧 다른 나라에 자리를 내어줄 것으로 보이지만). 실업률도 높다. 트럼프 행정부는 재난지원금을 지급했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독일은 사정이 다르다. 독일 역시 재정 위기를 맞았지만, 재난지원금은 지급하지 않았다. 쿠어츠아르바이트라는 노동시간 단축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노동 시간을 줄이면서 급여도 줄였는데, 정부가 줄어든 급여를 지원했다. 이것은 대규모 실업 사태를 막은 결정적 계기가 됐다.


팬데믹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계층은 저소득층이다. 알다시피 그들은 언제나 가장 빨리 또 가장 쉽게 일자리를 잃는다. 코로나에 걸려 죽기 전에 굶어 죽겠다는 말이 과장이나 거짓이 아니다. 국가는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해 도와보려 하지만, 단발성으로 지급하는 현금의 효력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런데 국가라고 재난지원금이 최선책이라고 생각해서 지급하는 건 아니다. 당장 우리 형편에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어서일 거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는 국면에서도 북서유럽 사람들이 삶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일 수 있었던 것은 복지국가라는 튼튼한 안전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한국과 미국이 재난지원금과 같은 고육지책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은 복지제도가 보편적으로 갖춰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p. 27'




<명견만리: 미래의 가치>편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한국이 나아가야 할 길을 '복지'에서 찾는다. 대전환의 시대를 헤쳐 나가려면 청년층부터 일으켜 세워야 한다. 그러려면 가장 시급한 게 무너진 신뢰를 구축하는 일이다. 사회 곳곳에 불신이 팽배하니 그걸 재구축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이때 발목을 잡는 게 있으니 '기후'다. 우리나라가 '기후 악당국'으로 불리는 마당이니 더 지체할 수도 없다는 이야기를 네 가지 주제-대전환, 청년, 기후, 신뢰-로 풀어낸 게 바로 '미래의 가치'다.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가장 중요한 건 기후다. 미술 시간에 환경 보호 포스터를 그리며 일회성 이벤트로 접근했다면 이젠 얘기가 다르다. 과학은 물론이고, 사회, 경제, 정치, 외교 시간에 가르쳐야 할 분야가 됐다. 일부만 관심을 갖던 이야기에서 모두의 이야기가 됐고, 먹고살기 위한 문제가 돼 버렸다. 기후 및 환경 이슈는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와도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일인데다 무엇보다 이번 팬데믹을 초래한 원인 중 하나다. 대한민국은 OECD 회원국 중 초미세먼지 오염 농도 1위로 최악의 대기오염 국가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자칫하면 2060년에는 대기오염으로 인한 조기 사망률이 중국 다음으로 높고, 경제 피해도 상당할 거라고 경고한다. 최근 몇 년간 탄소 중립 캠페인이 현저히 늘어난 이유다.



2020년 1인당 국민총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서면서 이탈리아를 앞섰다고 화제가 된 바 있다. 하지만 소득은 늘었을지언정 복지 분야는 아직 많이 미흡하다. OECD 평균과 비교해 한국의 복지지출은 최하위권이다. 출산율은 낮고, 청년층은 점점 줄고, 노년층은 계속 늘고 있는데 설상가상 청년 실업마저 심각하다. 양질의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고 앞으로 크게 개선될 방법도 딱히 보이지 않는다.


명견만리가 본보기로 제시하는 나라는 북유럽이다. 특히 스웨덴과 덴마크. 덴마크는 '청년이 행복한 나라'고, 스웨덴은 '튼튼한 복지 국가'다. 다행스러우면서도 우려스러운 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복지 부문에 지출을 늘리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이 부담해야 할 몫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으니 복지 증대에 관한 사회적 합의 수준을 어떻게 끌어올리는 가가 관건이다. 복지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걸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당장 본인이 부담해야 할 몫이 늘어난다고 생각하면 껄적지근해지는 것도 사실이니까. 걷어간 세금을 "잘"이라도 쓰면 모르겠지만, 4대강 사업처럼 이래 버리고 저래 버리는 돈은 왜 이리도 많은지. 복지 국가에서는 세금이 의무가 아니라 연대라는 사고를 심는 건 좋지만, 그러려면 세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누가 어디서 어떻게 낭비하거나 또는 중간에서 가로채지는 않는지 잘 감시해야 할 것이다.


<명견만리: 미래의 가치>는 이전 편과 다르게 네 가지 주제가 좀 더 유기적으로 연결된 게 특징이다. 네 가지 중에서 한두 가지만 열심히 노력한들 성과를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서로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기후 문제가 대전환의 시대를 야기했고, 그에 따라 국가의 공적 역할에 대한 기대와 요구가 커진 상황이다. 현시점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세대는 청년층이다. 그들이 목격한 불공정을 해소하고, 훼손된 신뢰를 복구하는 게 우선이다. 단지 그들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그들의 부모 세대와 그들의 미래 자녀 세대를 위한 것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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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피엔스, 새로운 도약 - 대한민국 대표 석학 8인이 신인류의 지표를 제시하다 코로나 사피엔스
김누리 외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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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 베를린 관광청과 상원이 제작한 코로나 바이러스 캠페인 광고가 공개된 지 이틀 만에 철회됐다. 불필요한 분노를 조장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세 번째 손가락을 쳐든 여성의 사진과 문구가 문제였다.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손가락이 여기 있습니다."


마스크를 쓰는 것에 거부감이 있는 유럽이나 북미의 다른 도시들의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이 툭하면 거리로 뛰쳐나와 시위를 벌이고, 마스크를 불태웠다. 엊그제 미국에서는 암 환자 앞에서 고의로 기침하다가 30일 징역형에 처한 사람도 있다.


그런데 마스크 착용이 정말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까? 반드시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면 무엇을 선택하는 게 더 나을까? 개인의 자유와 공공의 이익(과 안전)이 충돌하는 건 마스크뿐만이 아니다. 거리두기 단계 조정도 그렇다. 요새같이 확진자 수가 가파르게 증가할 때 정부는 거리두기를 강화해 바이러스 감염을 최대한 막아보려 하지만, 자영업자들은 먹고살기 힘들다고 반발이 거세다. 이걸 하려면 저게 눈치가 보이고, 저걸 하려면 이게 눈치가 보이는 형국이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코로나 사피엔스, 새로운 도약>은 코로나 펜데믹 이후 우리가 살아야 할, 또 만들어야 할 세상에 대한 힌트를 담고 있다. 저자로 나선 8명의 학자가 강조하는 것 중에 반복되는 두 개의 키워드는 연대와 복지다.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게 그 두 가지란 얘기다.


저자들은 유럽이나 미국이 코로나 방역에 실패한 원인을 정부의 소극적 개입에서 찾는다. 긴박한 재난 상황에서 국가가 시장에 모든 걸 맡길 때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할 때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게 증명됐지만, 여전히 많은 국가들이 소극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공공의료가 시장에 잠식된 미국이야 말할 것도 없다.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 죽어간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김누리 교수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라이피즘lifism(삶과 생존과 생명을 존중하자)을 제시한다. 자본주의가 삶과 생존, 생명을 파괴하는 안티라이프 체제라는 점에 주목하고, 연대와 복지의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장하준 교수는 지금처럼 0.1퍼센트가 99퍼센트의 부를 독식해 버리면 중산층이 붕괴해 '압정형 사회'가 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생계형 자영업자가 유난히 많아서 더 심각하다. 코로나 19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계층이 그들이기 때문이다. 노동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점점 더 늘어나는 것 역시 문제다. 그러나 우리나라 복지 제도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많이 취약하다. GDP 대비 복지지출 비율이 OECD에서 34위다. 2~3년 전과 비교해서 많이 는 게 이 정도인데 우리나라 뒤에는 멕시코, 칠레, 터키밖에 없다. G20 국가 가운데 한국보다 재정 지원을 적게 한 국가도 5개국뿐이다. 장하준 교수는 지금이야말로 경제지상주의에서 벗어나 공동체의 연대와 협력에 힘써야 하는 적기라고 말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 그 핵심에는 '복지'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이 묻는다.

'만약 백신으로도 코로나 19 사태를 완전히 끝낼 수 없다면 우리는 이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그는 경제적, 사회적 위기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부터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는 그들로부터 무너지기 때문이다. 실업자가 늘면 실업수당이 늘고, 사회적 재해가 늘며, 결국 시스템이 붕괴한다. 이때 정부가 할 일은 취약계층 보호에 집중적으로 자원을 쏟아부어 감염병의 대유행 사태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이 나올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것이다. 최배근 교수의 주장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세계 경제 불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현재 전 세계의 가장 큰 화두는 기본소득이다. 그는 기본소득에 대한 관점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기본소득은 혁신과 성장의 시드머니이고, 이는 정부와 기성세대가 기꺼이 감당해야 할 사회적 책임이라고 덧붙인다.


코로나 시대에 가장 중요한 건 연대와 복지다. 연대의 목적이 복지 증진을 위한 거라는 걸 고려하면,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복지다. 물론 쉽지 않다. 한국 사회에서 복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이리저리 새는 돈이 많아서 그런지, '퍼주기'니 '생색내기'니 하면서 반발이 심하다. 하지만 복지에 더 많은 세금이 들어가야만 하고, 그럴 수밖에 없다. 특정 계층이나 집단을 위한 게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이다. 관건은 어떻게 반발을 줄이고, 어떻게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가 하는 것이다.



여덟 저자의 이야기는 묘하게 맞물린다.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이야기하지만, 이어달리기하듯 앞사람의 주장과 뒷사람의 주장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최종 목적지 '복지'에 다다른다. 환경 이슈도 빼놓을 수 없다. 환경과 경제를 별개로 취급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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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와 함께 춤을 -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선비 정신을 찾아서
백승종 지음 / 사우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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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외부의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않는 선비의 꼿꼿함이 무엇으로 어떻게 형성되었는가에 대한 답을 여섯 명에게서 찾는다. 안중근 의사, 역관 홍순언, 의병장 곽재우, 언관 백인걸, 여성 선비 송덕봉, 심산 김창숙으로, 저자는 이들을 진정한 의미에서 최고의 선비로 평가한다.  



여기서 말하는 책이란 오락을 위한 서적이 아니요, 요리나 가사를 위한 실용적인 서적도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한 재테크 책도, 출세하기 위한 처세의 책도 아니고, 일상의 필요를 위한 기술 서적도 아니다. (중략) 이름하여 인문 서적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인간의 도리를 설명하고, 삶의 목적을 말하며,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온 내력을 기록한 책인 것이다. 오늘날의 용어를 빌린다면, 문학과 역사와 철학의 책들이다. - 2장, '선비 정신은 어디서 오는가' 중에서



저자가 꼽은 최고의 선비 6인의 공통점이 독서라는 건 예상 밖의 답변은 아니다. 흔히 '선비'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흰옷을 입은 수염 기른 남자가 책을 읽거나 붓으로 뭔가 쓰는 모습이 아닌가. 물론 그저 책을 많이 읽는다고 훌륭한 선비가 되는 건 아니다. 심산 김창숙 선생의 말씀을 빌리자면, 성인의 글을 읽고도 성인이 세상을 구제한 뜻을 깨닫지 못하는 가짜 선비가 있는 법이니까. 진짜 선비는 쉼 없는 독서와 수양으로 지식을 실천하고 사회에 공헌하는 이다.  



책을 많이 읽고 왼다고 훌륭한 선비가 되는 것이 아니다. 참된 선비가 되려면 먼저 마음을 철저하게 다스려 사私를 불식해야 한다. 사를 버려야 큰 공公을 이룬다. 나를 버려야 천하를 끌어안을 수 있다. 이기利己를 버린 사람만이 이타利他의 정치를 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수기치인修己治人이요, 참된 학문이다. - 정옥자, <시대가 선비를 부른다> 중에서 



선비 정신을 본받자고 하는 책은 이 책 말고도 많다. 그런 주장을 펼치는 책이 끊임없이 발행되는 건, 오늘날 참된 의미의 선비가 실종되었기 때문에, 턱 없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먼훗날 우리의 후손이 지금 이 시대를 기억할 때 과연 누가 선비로 역사에 살아남을까? 21세기 이순신, 안중근, 안창호, 이황, 정약용, 정도전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있을까? 부정부패가 심하던 조선 후기에는 집안에서 누구 하나 높은 벼슬을 하면, 친척들까지 농기구를 모두 내다버렸다고 한다. 부정부패는 몇 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심각하고, 금수저론 역시 온갖 패러디를 양산하며 회자되고 있다.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 고 주장하는 이들의 대척점에 서서 민중을 위한 세상의 변화를 꿈꾸는 '진짜 선비'의 출현을 고대한다. 

 


잘 알려진 사람의 여태껏 모르고 지내던 면모를 알게 되는 건 즐겁다. (아니라는 의견도 많지만) 다수에게 <홍길동전>의 저자로 잘 알려진 허균은 역시 독특하다. 인간의 욕망을 극복의 대상으로 삼은 성리학자들과는 반대로 허균은 성욕과 식욕을 중시하며 성리학이 말하는 인간 본성론에 반대했는데, 홀어머니 상중에도 기생과 어울리던 그는 정통한 성리학자들에게 강한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또, 스티브 잡스에 비견할 만큼, 뛰어난 융합형 인재로 불리는 정약용이 농업 중심의 사회를 꿈꾸다 정작 의사가 되겠다던 큰아들의 꿈을 접어버린 사실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다. 



우리나라 역대 임금 중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분 중 한 분인 정조에 대한 박한 평가는 의외지만 흥미롭다. 저자는 정조가 매우 보수적이었다고 주장한다. 자력으로 새로운 문화를 건설하려는 의지가 빈약했다며, 성리학을 내세우던 정조가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어떻게 다수의 무명 지식인을 억압했는가를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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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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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개인의 삶에 대한 공동체의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질병의 사회적 원인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지 않다. 약한 사람들은 약하지 않은 사람보다 위험한 환경에서 살고, 그래서 더 자주 아프다. 여기, 지난 몇 년간 사회적 상처가 어떻게 인간의 몸을 병들게 하는지 연구한 학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김승섭이다. 그는 사회적 관계가 인간의 몸에 질병으로 남긴 상처를 해독하는 일을 한다. 그는 흡연이나 벤젠 노출은 물론이고 사회적 고립이나 차별이 우리 몸을 어떻게 해칠 수 있는지를 알아내는 사람이다. 



그는 쌍용자동차에서 정리해고자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노동자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비롯해 살인적인 근무환경에서 일하는 병원 인턴 및 레지던트와 소방공무원들, 성소수자와 세월호 참사 희생자 등을 만나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했다. 우리 사회에 어떤 사회적 변화가 필요한지를 알리기 위해서 한 일이라고 한다. 그는 말한다. '누군가는 그들 편에 서야 한다'고. 그리고 그는 직접 그 '누군가'가 되었다. 그는 더 많은 이들이 그들 편에 서야 한다며, 쏟아지는 비를 멈출 수 없다면 함께 그 비를 맞아주자고 한다. 김영하가 자신의 소설 『오직 두 사람』의 작가의 말에 쓴 것처럼 우리도 그들을 느껴야 한다. 그들이 내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다는 사실을.



책에서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세 가지를 정리하는 것으로 리뷰를 대신한다.


첫째, 우리 사회에는 사회적 폭력에 익숙해져 자신이 차별을 당해놓고도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을뿐더러 차별을 당한 후에는 이를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오랜 폭력에 무뎌지고, 해결방법은 찾지 못한 채 저마다 바쁘게만 사니, 다른 어느 나라보다 우울증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자살률이 가장 높은 것도 이해가 된다. 우리는 차별을 인지하고, 그것을 적절한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학습이 필요하다.



둘째, 저자는 1997년 IMF 경제 위기 이후 자살률이 급격히 증가했다며 그 원인으로 비정규직 고용을 주목한다. 실제로 해고된 노동자나 실업자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경제위기로 노동자의 10%가 직장을 잃은 상황에서도 오히려 자살률이 꾸준히 감소한 나라도 있다. 스웨덴이다. 공적 안전망이 구축된 나라와 아닌 나라의 차이다.



셋째,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개선할 여지가 많다. 부정부패와 비리에 촛불을 들고 평화적으로 정권교체를 이뤄낸 성숙한 시민의식을 고려하면 더 그렇다. 이는 강남순 교수가 자신의 저서 <배움에 관하여>에서 지적한 부분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이 어떤 문제에 진보적이라고 해서 다른 문제에도 자연히 그럴 것이라고 추측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누군가 저편에서 차별받고 있는 것은 결국 이편의 삶도 일그러져 있다는 걸 의미한다'던 강남순 교수의 말을 유념해야 한다. 




저자는 말한다. 갈등을 대하는 자세가 한 사회의 실력이라고. 사회적 안전망이 제대로 확충되지 않은 현시점에서 비정규직과 정리해고는 더 늘어날 것이고, 양극화 현상 역시 더 극심해질 것이다. 지금보다 사회적 약자가 더 늘어난다는 말이다. 구의역에서 목숨을 잃은 친구는 고작 스무 살이었다. 그 친구의 가방에 들어 있던 컵라면과 숟가락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 친구를 위해서라도 똑같은 사건이 재발해서는 안 된다. 나와 내 가족, 친구, 지인만으로 내가 사는 사회가 구성되지 않는다. 구의역의 그 친구, 살인적인 스케줄에 자살을 떠올린다는 레지던트와 인턴들, 툭하면 동네북처럼 비난받는 소방공무원 등 그들이 모두 모여야 나와 당신이 사는 사회가 구성되고 완성된다. 나와 당신, 그리고 그들이 모두 함께 가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위험한 작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금연에 실패할 경우, 그 원인은 개인의 금연 의지 부족일까요, 아니면 금연 의지를 좌절시키는 위험한 작업환경일까요? 물론 둘 다 중요한 원인이고 함께 바뀌어야 합니다. 하지만 전자는 개인의 역할이고 후자는 작업장과 회사와 국가의 책임이지요. 한국사회는 전자만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은지 질문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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