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데 정답이 어딨어 - 그때그때 나를 일으켜 세운 문장들 39
대니얼 클라인 지음, 김현철 옮김 / 더퀘스트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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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걸까? 『사는 데 정답이 어딨어』는 올해 80이 된 미국의 前 철학 교수이자 인기작가인 대니얼 클라인이 미국에서 15년도에 발표한 책인데 이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된 배경이 제법 흥미롭다. 그가 스무 살때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기로 막 결심하고 유명 철학자들의 문구를 적고, 그 아래에 자기 생각을 기록했다고 한다. 즉, 이 책은 '대니얼 클라인이 젊었을 때 그를 일으켜 세운 39개의 문장을 담은 명언집'인 셈이다. 



수십 년간 '명언 모음집'의 존재를 잊고 지내다가 우연히 발견했다고 한다. 젊은 시절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으려 하나둘 옮겨 적은 문구를 나이가 들어 다시 읽으면서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처음에는 부끄러웠다고 그는 전한다. 왜? 철학자들에게 삶의 지침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자신이 너무 순진해서 그렇단다. 이제 80대가 된 대니얼 클라인이 말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조언은 정작 학창 시절에 읽었던 철학책에서는 찾기 어려웠다고. 그러나 나이를 먹을수록 삶을 알고자 하는 욕구는 조금도 줄지 않고 오히려 더 강렬해졌다고. 



시간은 흐르고, 대니얼 클라인은 약 40년 전에 자신이 작성한 명언 모음집을 다시 펼쳐 새로운 문구를 적어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다른 이들과 공유하기로. 그는 고민했다고 한다. 격언들을 어떻게 배열해야 하는지. 나도 읽으면서 배열 기준이 궁금했는데 기준을 세우기가 어려웠다고 그는 고백한다. 바꿔 말하면 특별히 기준이 있는 게 아니니, 마음에 드는 철학자부터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다. 어느 날인가는 철학자 A의 문구가 눈에 더 들어오고, 또 어느 날인가는 철학자 B의 문구에 눈이 갈 터이니. 그의 말마따나 어쨌든 맛깔스러운 질문들이다. 다만, 중간중간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디 앨런의 영화를 좋아하거나 사무엘 베케트 또는 알베르 카뮈, 헨리 데이빗 소로우 등의 작품을 좋아한다면, 반가워할 대목도 적지 않으니 겁부터 먹지는 않아도 좋다.  



젊은 대니얼 클라인의 낡은 노트에는 누구의 명언이 들어 있을까?


에피쿠로스, 아리스티포스, 데이비드 피어스,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알베르 카뮈, 

윌리엄 제임스, 장 폴 사르트르, 프리드리히 니체, 자코모 레오파르디, 버트런드 러셀, 

랠프 월드 에머슨, 파울 틸리히, 아리스토텔레스, 장 폴 사르트르, 데이비드 흄,

레온티니의 고르기아스, 사무엘 베케트, 올더스 헉슬리, 존 바스, 존 스튜어트 밀,

피터 싱어, 니콜로 마키아벨리, 조슈아 그린, 데릭 파핏, 조지 산타야나, 

전도서(구약 성서), 샘 해리스, 프랜시스 베이컨, A. J. 에이어, 토머스 네이글,

이사야서, 블레즈 파스칼, 프랭크 클로즈,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빅터 프랭클,

애덤 필립스, 윌리엄 제임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라인홀트 니부어 (등장 순)

 


『사는 데 정답이 어딨어』에는 총 39개의 문장이 담겨 있다. 39개의 문장이 39인에게서 온 건지 궁금해 위와 같이 정리해 보니, 성경 문구를 두 번 가져온 걸 제외하면 오직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와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문구만 두 번씩 등장한다. 누가 빠졌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다. 일단, 칸트, 하이데거, 에릭 에릭슨, 키르케고르 등이 보이지 않는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가 2012년에 발표한(우리나라는 2013년) 『철학자처럼 느긋하게 나이 드는 법』을 동시에 펴들었는데, 그 책에서 인용한 철학자와 비교한 결과다. 참고로 대니얼 클라인은 비틀즈(특히 존 레넌)를 즐겨 듣고, 시나트라나 냇 킹 콜 같은 재즈 가수들의 음악을 좋아하는 듯하다.



39개의 문구 중 많은 것들이 '만약 ~라면'이란 가정에 빠지지 말고 오직 현재, 지금 여기에 집중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맺음말에서 밝히듯, 대니얼 클라인 스스로가 언제나 그 생각에 끌렸기 때문이란다. '오늘이 네 삶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고 살아'보다 '이게 두 번째 삶인 듯, 이미 첫 번째 삶을 잘못 살았다고 생각하고 살아'라는 말이 유난히 더 와 닿는 밤이다. 아래는 특별히 오래 쳐다보게 된 문구다.       


지금이 두 번째 인생인 것처럼, 

그리고 첫 번째를 잘못 살았던 것처럼 살아라.



사르트르의 이 문구는 대니얼 클라인이 파리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시절에 뤽상부르 공원에 앉아 빅Bic 볼펜으로 적어 넣었다고 한다. 그가 실존적 권태를 매우 심각하게 고민하던 시절이었다고 하는데, 결국 절망을 극복하고 삶을 다시 부여잡는 데 성공했다. 다행히도. 세월이 흘러 그는 그 시절의 고민이 헛되지 않았다며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Je ne regrette rien)를 말한다. 그의 말대로 세운 옷깃, 입에 문 담배, 그리고 에디트 피아프까지 반박할 수 없게 프랑스적이다! 젊은 대니얼 클라인의 생각대로 그의 절망은 낭만적이었다. 아니면, 그 시기가 낭만적이었거나. 




대니얼 클라인이 말한 '전설적인 문구 (인생은 구리고 너는 그렇게 살다 죽는다)'가 적힌 티셔츠를 검색해 봤다. 진짜 많이 판다. 결국 이 책에서 받은 느낌도 그렇다. 파리의 어느 공원에 앉아 담배를 입에 물고 삶이 허무하다고 생각한 대니얼 클라인처럼 누구나 삶의 허무나 실존적 권태와 싸우게 된다. 어떤 이는 자주 싸울 것이고, 어떤 이는 가끔 싸우는 그 차이밖에 없을 것이다. "Life Sucks, then you die."란 말 그대로 산다는 건 엿 같은 거고 그러다 죽는 거겠지. 하지만, 쇼펜하우어의 말대로 결국 산다는 건 누구에게나 다 똑같이 추하다는 게 그래도 조금은 위안이 되지 않을지.

삶이 엉망일 때, 삶은 누구한테나 똑같이 추하다고 생각하면 소름 끼치도록 냉정하게 위안이 된다. - 쇼펜하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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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자신이 암에 걸리면 어떤 치료를 할까? - 암 환자와 그 가족을 위한 의사의 암 치료법 24
가와시마 아키라 지음, 김정환 옮김 / 끌리는책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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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99%는 자신이나 가족이 암에 걸렸을 때 

항암제 치료를 선택하지 않는다.


내가 다니는 안과 의사는 안경을 쓴다. 그는 내게 라식이나 라섹을 권하지 않는다. 물론 내 눈 자체가 부적격일 수도 있겠지만, 특별히 권하지 않기에 '안경을 쓴 나'는 '안경을 쓴 그분'을 좋게 생각한다. 만약 안과가 아니라, 좀 더 생명과 직결된 질병이라면 어떨까? 99%의 의사가 자신이나 지인에게 항암제 치료를 권하지 않는다는 답변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면 거짓이다. 99%라는 수치에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나.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질문은 이 책 제목 그대로다. 그럼, "의사는 자신이 암에 걸리면 어떤 치료를 하나요?" 



암의 3대 요법으로는 외과수술, 화학요법, 방사선요법이 있다. 실제로 암 진단을 받고 의사가 제일 먼저 권유하는 것도 외과수술이라고 한다. 문제는 서양의학이 암의 원인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암세포를 죽이거나 공격해서 증식을 막는 데 중점을 두는 대증요법이라는 점이다. 서양의학과 한방을 통합한 (일본) 통합의료학회의 이사이자 이 책 『의사는 자신이 암에 걸리면 어떤 치료를 할까?』의 저자인 가와시마 아키라는 암의 원인에 주목하는 대체의학에 관심을 가져 서양의학과 대체의학을 통합한 치료방법을 환자가 주체적으로 선택하라고 조언한다. 



항암제로는 암이 낫지 않는다?


의사가 항암제를 거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항암제 효과가 크지 않을 확률이 높은데 반해 부작용은 큰 편이고, 이 부작용이 자칫 돌연사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미 암이 꽤 자란 경우에는 항암제가 암을 작게 줄일 수는 있어도 없앨 수는 없으며, 항암제가 심근에 타격을 입혀 부정맥이나 협심증, 심근경색, 심부전 등을 일으켜 실제로 항암제를 투여받은 환자의 1~2%는 심부전으로 사망한다고 한다. 

  

항암제 투여 중단, 왜 어렵나?


의사는 항암제 투여를 중단하지 못한다. 특히나 효과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더 그렇다. 자칫 항암제 투여를 중단했다가 환자 상태가 나빠지거나 사망하면 책임공방이 일어나거나 의료소송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 가와시마 아키라는 말한다. 먼저 (외과) 수술부터 권하는 의사는 믿지 말고, 항암제 대량 투여를 거부하고, 언제 항암제 투여를 중단할지를 정하라고. 대신에 서양의학의 최첨단 의료나 대체의학으로 시야를 넓혀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라 말한다. 그가 말하는 '다른 가능성'이란, 한의학, 침이나 뜸, 카이로프랙틱(chiropractic), 아유르베다(인도 전통의학), 온열요법, 아로마테라피, 동종요법(homeopathy). 식이요법 등이다. 하지만 그는 거듭 강조한다. 항암제가 암을 없애지 못하듯, 식이요법만으로 암을 치료할 수 없다고. 암의 원인이 다양하듯, 어느 한 가지 방법만으로 암을 치료하기 어려우니 더 넓은 시야에서 기존의 생활을 되돌아보고 다방면에서 접근하라 말한다. 



죽음의 질


젊은 나이에 폐암에 걸려 숨을 거둔 신경외과 의사 폴 칼라니티의 유작 『숨결이 바람 될 때』에서도 충분히 느꼈지만, 암 환자에게도 '삶의 질'은 대단히 중요하다. 삶을 마치는 순간까지 자신답게 살다가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누구나 원하는 욕구이자 바람이다. 막연하게 오래 살고 싶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인생에 무엇이 소중한지를 생각하며 살라는 의사의 말을 되새겨야겠다.



결국 중요한 건, 나을 수 있다는 긍정적인 사고,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다. 생활습관 개선과 스트레스 완화도 물론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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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드는 동물 목각 인형 - 따라하다 보면 작품이 되는 목조각 입문
하시모토 미오 지음, 이지수 옮김 / 심플라이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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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반려견을 내 손으로 똑같이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책은 약간의 손재주가 있으면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동물 목각 인형 만드는 법, 쉽다. 그것도 아주 쉽다. 먼저 모델이 될 동물을 관찰해 스케치하고 나무를 골라 조각하면 된다. 사실 이런 부류의 책 중에 설명이 어려운 책은 거의 없다. 막상 따라 하려고 하면 잘 안 될 뿐. 어쨌든,  '관찰→ 스케치→나무 손질 →조각' 이 4단계만 걸치면 우리 동네 흔히 마주치는 새끼 강아지도 도둑고양이도 모두 만들 수 있다는 사실! 



목각 인형 만드는 단계 


1. 스케치_첫인상 포착


2. 나무 고르기



3. 마름질하기


4. 조각하기 (대강 깎기 - 모서리 깎기 - 마무리)



5. 채색


조각 완성~!



왼쪽에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풀밭에 불편하게 앉은 여인이 바로 이 책의 저자이자 동물 목각 인형의 어머니 하시모토 미오다. 반려동물을 키우거나, 좋아하는 동물이 있다면 목각 인형으로 만들어 실제 살아 있는 동물과 나란히 놓고 보면 특별한 기분이 들긴 하겠다. 저 테이블만 보더라도 "사랑스러움 1호"와 "사랑스러움 2호"가 만나, 사랑이 폭발하고 있으니! 그나저나 혹시 저 테이블도 직접 만든 건 아닐지....



자신의 취미를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싶었던 하시모토 미오는 나무 종류와 특징부터 고양이, 펭귄, 곰, 당나귀 만드는 방법까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포트폴리오에 있는 다른 동물들을 왜 더 다루지 않았는지는 모르겠다. 혹시, 2권 내려고?


<포트폴리오> 중에서


이 고양이는 다른 작품에 비해 유난히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진짜 어디선가 많이 본 고양이 같다! 잘 만든 조각은 이렇게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보이니, 자신이 만든 조각상을 사랑한 피그말리온이 이해가 갈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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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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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는 영미권에서 'Chronicle of a Blood Merchant'로 소개되고 있는데, 자신의 피를 돈을 받고 파는 사람의 이야기{역사}로 보는 게 적절할 듯하다. 여기서 피를 파는 사람은 물론 주인공 허삼관이다. 『허삼관 매혈기』의 줄거리를 요약하면, 공장에서 누에고치로 가득 찬 수레를 미는 '노동자' 허삼관이 어느 날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로부터 "너도 피를 자주 파냐?"는 말을 들은 후, 피를 팔아 번 돈으로 식당에서 일하는 예쁘장한 허옥란을 아내로 얻고, 아이 셋-일락, 이락, 삼락-을 키우는 이야기다. 문제는 큰 아들 일락이가 허삼관이 아니라 허옥란이 결혼 전에 사귀던 하소용을 빼닮았다는 점이다.




『허삼관 매혈기』의 장점 중 하나는 인물이다. 아내와 자식을 위해 하도 피를 뽑아대 비릿한 피 냄새가 느껴질 만큼 '허삼관 매혈기를 하·드·캐·리하는 허삼관의 부성애'는 가히 압권이다. 뿐만 아니라 모든 등장인물이 하나같이 현실적이면서도 매력적이다. 억척스러운 아내 허옥란을 필두로, 세 아들과 일락이의 친부일 하소용과 그의 식구들, 허삼관과 같이 피를 팔고 돼지간볶음에 황주를 들이키던 방씨와 근룡이, 하다못해 성 사람들 전부 얼굴이 누렇게 떠도 혼자 그대로던 이 혈두까지도. 또 다른 장점은 빠른 전개다. 허삼관이 허옥란에게 청혼하자마자 벌써 두 번째 아들 이락이가 태어날 정도! 전혀 지루할 틈이 없으며, 어느 지점부터는 저러다 허삼관이 죽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책을 덮을 수도 없다. 종합하면,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피를 팔아야 했던 한 가장의 이야기를 매력적인 인물들과 함께 빠르게 전개해 나가는 와중에 익살과 해학, 그리고 코끝이 찡해지는 감동까지 작가가 놓치지 않았다는 말이다.




인상적인 장면은 왜 그리 또 많은지. 몇 달 째 죽으로 연명하다 너무 배가 고파 피를 팔아 벌어온 돈으로 온 가족이 국수를 먹으러 가면서 일락이에게만 군고구마를 사주고 데려가지 않았더니 아이가 온 동네를 울고 다니며 국수 한 그릇만 사주면 아버지로 모시겠다던 장면이나 죽어가는 하소용을 살리기 위해 지붕 위로 올라가 '아버지, 돌아오세요'를 외쳐야 했던 일락이를 위해 허삼관이 직접 자신의 얼굴과 팔에 상처를 내고 마을 사람들에게 더이상 일락이를 자신의 친아들이 아니라고 말하면 칼로 베어버리겠다고 위협하던 장면, 또 문화대혁명으로 아내 허옥란이 화냥년이라고 비난받으며 만인비판투쟁대회에 희생됐을 때 고기반찬을 밥 밑에 깔아 가져다주던 장면 등 기억에 남는 장면이 많다. 물론, 문화대혁명 때의 고생과 병든 아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죽음도 불사하고 피를 뽑아대던 이야기들은 모두 차치하고 말이다.  




하소용의 부인과 허옥란이 머리 끄덩이를 잡아당기며 싸우고 있다는 말을 전하러 온 대장장이 방씨에게 허삼관이 그랬다. 삶은 돼지가 뜨거운 물 무서워하는 거 봤냐고. 돼지라고 왜 뜨거운 물이 무섭지 않겠느냐마는 펄펄 끓는 물에 들어가 이미 온몸을 익히고 나왔으니 이제 무서워 봤자 얼마나 무섭겠나. 최대한 온몸으로 부딪혀 깨지고 부서져 보면, 더는 무섭지 않겠지. 한평생 말 그대로 가족을 위해 피와 땀을 바친 허삼관에게 이제 막 볶아낸 돼지간볶음 한 접시와 따뜻하게 데운 황주를 건넬 수만 있다면 오죽 좋을까. 허삼관, 그의 고되고 힘들었던 인생에 브라보를 외치고 싶다. 지난날, 내 아버지, 그리고 격동의 세월을 묵묵히 견뎌낸 이 땅의 모든 아버지에게 애틋함과 존경이 샘솟는 그런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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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우리 영혼은
켄트 하루프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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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 폐 질환으로 세상을 떠난 미국 작가 켄트 하루프(Kent Haruf)의 유작으로 가상의 작은 마을 홀트(Holt)를 배경으로 한다. 오래전에 배우자를 잃고 혼자 살아가는 70대 할머니(애디 무어)와 할아버지(루이스 워터스)가 주인공으로, 어느 날 할머니가 40년 넘게 이웃으로 살아온 할아버지에게 너무 외로우니까 가끔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고 제안하는 것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가끔 나하고 자러 우리 집에 

올 생각이 있는지 궁금해요.

밤을 견뎌내는 걸, 누군가와 함께 

따뜻한 침대에 누워 있는 걸 

말하는 거예요. 

나란히 누워 밤을 보내는 걸요. 

밤이 가장 힘들잖아요. 그렇죠? (p. 9)



독한 술에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느낌의 소설이다. 솔직히 다 이해하지 못한 것도 같다. 반이나 이해했을까?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배우자를 먼저 떠나 보내고 홀로 남는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짐작하기 어렵다. 사랑은 고사하고 말벗 하나 없고, 자식은 위안은커녕 짐만 되며, 시도 때도 없이 아픈 몸은 낫지도 않으니 '정말 이러다 죽는 거 아니야?'하는 걱정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은 순 거짓말, 젊어서도 아프고 늙어서도 아픈 게 인간의 운명인가 보다.  



자녀에 대한 단상

애디 할머니의 아들(진)은 엄마를 배려하지 않는다. 중년의 아들은 노모가 이웃집 할아버지랑 가깝게 지내는 게 싫다. 못마땅한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떼어놓는다. 노모의 마음을 채워줄 것도 아니면서. 하나 뿐인 아들은 노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딸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눈앞에서 누나를 잃은 진 역시 그때의 트라우마를 간직하고 있지만, 어린 자식을 잃은 엄마의 마음에 비할까? 설사 자식이더라도 '타인의 인생을 고쳐줄 수는 없다'고 말은 하면서도 모질 게 굴지 못하는 엄마의 마음은 서럽고 쓰라리다. 엄마에게는 미우나 고우나 그래도 자식밖에 없구나.  



타인에 대한 단상

세월이 흘러도 이웃들은 여전히 남에게 필요 이상의 관심을 두고 수군댄다. 하지만 애디 할머니의 말씀대로 70이 넘어서까지 뭘 그렇게 남의 눈치를 보나! 게다가 신기하게도 이웃들은 수십 년 전에 이웃이 바람피운 사연까지 기억하고 있다. 기억할 것도 많을 텐데 뭘 그리들 피곤하게 사시나. 나이를 먹으면 이웃 아니라 가족들 눈치도 보고 싶지 않을 것 같은데. 



사랑에 대한 단상 

오랜 세월이 흘러도 루이스 할아버지는 사랑했던 여인(타마라)을 잊지 못하고, 심지어 아내보다도 더 미안한 존재로 기억한다. "나는 아내보다도 타마라에게 상처를 준 게 더 한이 돼요. 내 혼이랄까, 그런 걸 실망시킨, 흙바람 부는 소도시의 평범한 고등학교 영어선생이 아닌 뭔가 다른 것이 되라는 일종의 소명을 저버린, 그런 느낌이에요. (p. 50)"라던 대목에서 순간 내 호흡이 멈춘다. 루이스 할아버지는 유부녀 타마라와 사랑에 빠지지만, 아내와 딸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며 불륜을 끝냈다. 마음속으로는 그녀를 잊지도 못하면서. 만약 루이스 할아버지가 그때 아내와 딸이 아니라 타마라를 선택했더라면 그의 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정말 '소도시의 평범한 고등학교 영어선생'이 아니라 다른 직업을 선택해 다른 삶을 살았을까? 더 행복했을까? 

우디 앨런의 영화 「카페 소사이어티」처럼 평생 함께 산 배우자가 마음속에 다른 사람을 두고 있다면, 그건 또 얼마나 슬픈 일인가?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의 소설 「스토너(Stoner)」에서 스토너와 캐서린의 관계를 떠올린다. 그때 그 시절 사랑했던 사람과 갈 수도 있었으나 '가지 않은 길'을 그토록 오랫동안 곱씹다니, 사랑이 무서운 건가 사람이 무서운 건가!   



노년에 대한 단상 

신체적으로는 쇠약할지언정 정신적으로는 (사람들의 우려와 달리)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소소한 대화가 그립고, 욕정이 아닌 애정이 필요하고, 일상을 공유할 사람을 갈망한다. 눈에 띄는 차이라면 예전처럼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뿐이다. 장시간 비행을 마치고 드디어 착륙이 코 앞이다. 멀지 않은 곳에서 사인을 보내는 관제탑이 보인다. 곧 착륙을 앞두고 있으니 '4시간 전에 비행이 어땠지?'와 같은 생각은 할 겨를도 없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할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현실에 괜히 두려움이 밀려온다. 말 그대로 뒤돌아보거나 미리 앞을 내다볼 시간 자체가 없다는 말이니. '때로는 뜻대로 살아지지 않았고 제대로 살아지지도 않았지만' 과거를 아쉬워 할 시간은 없다. '그냥 하루하루 일상에 주의를 기울이며 단순하게 살고 싶어요.'라는 애디 할머니의 말은 그래서 가슴을 더 세게 내리친다. 



기억에 남는 대목 중 하나

루이스 할아버지와 애디 할머니가 치프 크리크(Chief Creek)에서 옷을 벗고 수영하는 대목은 다음에 이어지는 상황 때문에 처연함이 가득하다. 자녀들과 이웃들의 부정적인 시선으로부터 둘은 잠시나마 자유로웠을 것이다. 아니, 반대로 잠시라도 자유롭고 싶어서 옷을 벗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제목에 대한 단상 

'밤에 우리 영혼은'이란 제목이 전해오는 느낌이 무척 좋아서 읽게 됐다. '여름날 저녁 일몰 직후 아직 하늘에 빛이 남아있을 때, 제대로 들여다보면 볼 것들이 많은 그 순간을 위한 소설'이라던 <시애틀 타임스>의 리뷰 그대로다 (어쩜 이렇게 표현이 멋진지!). 내년에 개봉하면 극장에서 봐야겠다. 그래도 로버트 레드포드 할아버지가 아닌가! 



두 사람은 나란히 누워 

빗소리를 들었다.

우리 둘 다 인생이 제대로, 

뜻대로 살아지지 않은 거네요.

그가 말했다.

그래도 지금은, 이 순간은, 그냥 좋네요.

이렇게 좋을 자격이 내게 있나 

의심스러울 정도로요. 

그가 말했다.

(p.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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