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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데 정답이 어딨어 - 그때그때 나를 일으켜 세운 문장들 39
대니얼 클라인 지음, 김현철 옮김 / 더퀘스트 / 201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걸까? 『사는 데 정답이 어딨어』는 올해 80이 된 미국의 前 철학 교수이자 인기작가인 대니얼 클라인이 미국에서 15년도에 발표한 책인데 이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된 배경이 제법 흥미롭다. 그가 스무 살때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기로 막 결심하고 유명 철학자들의 문구를 적고, 그 아래에 자기 생각을 기록했다고 한다. 즉, 이 책은 '대니얼 클라인이 젊었을 때 그를 일으켜 세운 39개의 문장을 담은 명언집'인 셈이다.
수십 년간 '명언 모음집'의 존재를 잊고 지내다가 우연히 발견했다고 한다. 젊은 시절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으려 하나둘 옮겨 적은 문구를 나이가 들어 다시 읽으면서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처음에는 부끄러웠다고 그는 전한다. 왜? 철학자들에게 삶의 지침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자신이 너무 순진해서 그렇단다. 이제 80대가 된 대니얼 클라인이 말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조언은 정작 학창 시절에 읽었던 철학책에서는 찾기 어려웠다고. 그러나 나이를 먹을수록 삶을 알고자 하는 욕구는 조금도 줄지 않고 오히려 더 강렬해졌다고.
시간은 흐르고, 대니얼 클라인은 약 40년 전에 자신이 작성한 명언 모음집을 다시 펼쳐 새로운 문구를 적어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다른 이들과 공유하기로. 그는 고민했다고 한다. 격언들을 어떻게 배열해야 하는지. 나도 읽으면서 배열 기준이 궁금했는데 기준을 세우기가 어려웠다고 그는 고백한다. 바꿔 말하면 특별히 기준이 있는 게 아니니, 마음에 드는 철학자부터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다. 어느 날인가는 철학자 A의 문구가 눈에 더 들어오고, 또 어느 날인가는 철학자 B의 문구에 눈이 갈 터이니. 그의 말마따나 어쨌든 맛깔스러운 질문들이다. 다만, 중간중간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디 앨런의 영화를 좋아하거나 사무엘 베케트 또는 알베르 카뮈, 헨리 데이빗 소로우 등의 작품을 좋아한다면, 반가워할 대목도 적지 않으니 겁부터 먹지는 않아도 좋다.
젊은 대니얼 클라인의 낡은 노트에는 누구의 명언이 들어 있을까?
에피쿠로스, 아리스티포스, 데이비드 피어스,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알베르 카뮈,
윌리엄 제임스, 장 폴 사르트르, 프리드리히 니체, 자코모 레오파르디, 버트런드 러셀,
랠프 월드 에머슨, 파울 틸리히, 아리스토텔레스, 장 폴 사르트르, 데이비드 흄,
레온티니의 고르기아스, 사무엘 베케트, 올더스 헉슬리, 존 바스, 존 스튜어트 밀,
피터 싱어, 니콜로 마키아벨리, 조슈아 그린, 데릭 파핏, 조지 산타야나,
전도서(구약 성서), 샘 해리스, 프랜시스 베이컨, A. J. 에이어, 토머스 네이글,
이사야서, 블레즈 파스칼, 프랭크 클로즈,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빅터 프랭클,
애덤 필립스, 윌리엄 제임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라인홀트 니부어 (등장 순)
『사는 데 정답이 어딨어』에는 총 39개의 문장이 담겨 있다. 39개의 문장이 39인에게서 온 건지 궁금해 위와 같이 정리해 보니, 성경 문구를 두 번 가져온 걸 제외하면 오직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와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문구만 두 번씩 등장한다. 누가 빠졌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다. 일단, 칸트, 하이데거, 에릭 에릭슨, 키르케고르 등이 보이지 않는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가 2012년에 발표한(우리나라는 2013년) 『철학자처럼 느긋하게 나이 드는 법』을 동시에 펴들었는데, 그 책에서 인용한 철학자와 비교한 결과다. 참고로 대니얼 클라인은 비틀즈(특히 존 레넌)를 즐겨 듣고, 시나트라나 냇 킹 콜 같은 재즈 가수들의 음악을 좋아하는 듯하다.
39개의 문구 중 많은 것들이 '만약 ~라면'이란 가정에 빠지지 말고 오직 현재, 지금 여기에 집중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맺음말에서 밝히듯, 대니얼 클라인 스스로가 언제나 그 생각에 끌렸기 때문이란다. '오늘이 네 삶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고 살아'보다 '이게 두 번째 삶인 듯, 이미 첫 번째 삶을 잘못 살았다고 생각하고 살아'라는 말이 유난히 더 와 닿는 밤이다. 아래는 특별히 오래 쳐다보게 된 문구다.
지금이 두 번째 인생인 것처럼,
그리고 첫 번째를 잘못 살았던 것처럼 살아라.
사르트르의 이 문구는 대니얼 클라인이 파리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시절에 뤽상부르 공원에 앉아 빅Bic 볼펜으로 적어 넣었다고 한다. 그가 실존적 권태를 매우 심각하게 고민하던 시절이었다고 하는데, 결국 절망을 극복하고 삶을 다시 부여잡는 데 성공했다. 다행히도. 세월이 흘러 그는 그 시절의 고민이 헛되지 않았다며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Je ne regrette rien)를 말한다. 그의 말대로 세운 옷깃, 입에 문 담배, 그리고 에디트 피아프까지 반박할 수 없게 프랑스적이다! 젊은 대니얼 클라인의 생각대로 그의 절망은 낭만적이었다. 아니면, 그 시기가 낭만적이었거나.
대니얼 클라인이 말한 '전설적인 문구 (인생은 구리고 너는 그렇게 살다 죽는다)'가 적힌 티셔츠를 검색해 봤다. 진짜 많이 판다. 결국 이 책에서 받은 느낌도 그렇다. 파리의 어느 공원에 앉아 담배를 입에 물고 삶이 허무하다고 생각한 대니얼 클라인처럼 누구나 삶의 허무나 실존적 권태와 싸우게 된다. 어떤 이는 자주 싸울 것이고, 어떤 이는 가끔 싸우는 그 차이밖에 없을 것이다. "Life Sucks, then you die."란 말 그대로 산다는 건 엿 같은 거고 그러다 죽는 거겠지. 하지만, 쇼펜하우어의 말대로 결국 산다는 건 누구에게나 다 똑같이 추하다는 게 그래도 조금은 위안이 되지 않을지.
삶이 엉망일 때, 삶은 누구한테나 똑같이 추하다고 생각하면 소름 끼치도록 냉정하게 위안이 된다. - 쇼펜하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