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우리 영혼은
켄트 하루프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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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 폐 질환으로 세상을 떠난 미국 작가 켄트 하루프(Kent Haruf)의 유작으로 가상의 작은 마을 홀트(Holt)를 배경으로 한다. 오래전에 배우자를 잃고 혼자 살아가는 70대 할머니(애디 무어)와 할아버지(루이스 워터스)가 주인공으로, 어느 날 할머니가 40년 넘게 이웃으로 살아온 할아버지에게 너무 외로우니까 가끔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고 제안하는 것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가끔 나하고 자러 우리 집에 

올 생각이 있는지 궁금해요.

밤을 견뎌내는 걸, 누군가와 함께 

따뜻한 침대에 누워 있는 걸 

말하는 거예요. 

나란히 누워 밤을 보내는 걸요. 

밤이 가장 힘들잖아요. 그렇죠? (p. 9)



독한 술에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느낌의 소설이다. 솔직히 다 이해하지 못한 것도 같다. 반이나 이해했을까?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배우자를 먼저 떠나 보내고 홀로 남는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짐작하기 어렵다. 사랑은 고사하고 말벗 하나 없고, 자식은 위안은커녕 짐만 되며, 시도 때도 없이 아픈 몸은 낫지도 않으니 '정말 이러다 죽는 거 아니야?'하는 걱정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은 순 거짓말, 젊어서도 아프고 늙어서도 아픈 게 인간의 운명인가 보다.  



자녀에 대한 단상

애디 할머니의 아들(진)은 엄마를 배려하지 않는다. 중년의 아들은 노모가 이웃집 할아버지랑 가깝게 지내는 게 싫다. 못마땅한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떼어놓는다. 노모의 마음을 채워줄 것도 아니면서. 하나 뿐인 아들은 노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딸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눈앞에서 누나를 잃은 진 역시 그때의 트라우마를 간직하고 있지만, 어린 자식을 잃은 엄마의 마음에 비할까? 설사 자식이더라도 '타인의 인생을 고쳐줄 수는 없다'고 말은 하면서도 모질 게 굴지 못하는 엄마의 마음은 서럽고 쓰라리다. 엄마에게는 미우나 고우나 그래도 자식밖에 없구나.  



타인에 대한 단상

세월이 흘러도 이웃들은 여전히 남에게 필요 이상의 관심을 두고 수군댄다. 하지만 애디 할머니의 말씀대로 70이 넘어서까지 뭘 그렇게 남의 눈치를 보나! 게다가 신기하게도 이웃들은 수십 년 전에 이웃이 바람피운 사연까지 기억하고 있다. 기억할 것도 많을 텐데 뭘 그리들 피곤하게 사시나. 나이를 먹으면 이웃 아니라 가족들 눈치도 보고 싶지 않을 것 같은데. 



사랑에 대한 단상 

오랜 세월이 흘러도 루이스 할아버지는 사랑했던 여인(타마라)을 잊지 못하고, 심지어 아내보다도 더 미안한 존재로 기억한다. "나는 아내보다도 타마라에게 상처를 준 게 더 한이 돼요. 내 혼이랄까, 그런 걸 실망시킨, 흙바람 부는 소도시의 평범한 고등학교 영어선생이 아닌 뭔가 다른 것이 되라는 일종의 소명을 저버린, 그런 느낌이에요. (p. 50)"라던 대목에서 순간 내 호흡이 멈춘다. 루이스 할아버지는 유부녀 타마라와 사랑에 빠지지만, 아내와 딸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며 불륜을 끝냈다. 마음속으로는 그녀를 잊지도 못하면서. 만약 루이스 할아버지가 그때 아내와 딸이 아니라 타마라를 선택했더라면 그의 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정말 '소도시의 평범한 고등학교 영어선생'이 아니라 다른 직업을 선택해 다른 삶을 살았을까? 더 행복했을까? 

우디 앨런의 영화 「카페 소사이어티」처럼 평생 함께 산 배우자가 마음속에 다른 사람을 두고 있다면, 그건 또 얼마나 슬픈 일인가?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의 소설 「스토너(Stoner)」에서 스토너와 캐서린의 관계를 떠올린다. 그때 그 시절 사랑했던 사람과 갈 수도 있었으나 '가지 않은 길'을 그토록 오랫동안 곱씹다니, 사랑이 무서운 건가 사람이 무서운 건가!   



노년에 대한 단상 

신체적으로는 쇠약할지언정 정신적으로는 (사람들의 우려와 달리)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소소한 대화가 그립고, 욕정이 아닌 애정이 필요하고, 일상을 공유할 사람을 갈망한다. 눈에 띄는 차이라면 예전처럼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뿐이다. 장시간 비행을 마치고 드디어 착륙이 코 앞이다. 멀지 않은 곳에서 사인을 보내는 관제탑이 보인다. 곧 착륙을 앞두고 있으니 '4시간 전에 비행이 어땠지?'와 같은 생각은 할 겨를도 없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할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현실에 괜히 두려움이 밀려온다. 말 그대로 뒤돌아보거나 미리 앞을 내다볼 시간 자체가 없다는 말이니. '때로는 뜻대로 살아지지 않았고 제대로 살아지지도 않았지만' 과거를 아쉬워 할 시간은 없다. '그냥 하루하루 일상에 주의를 기울이며 단순하게 살고 싶어요.'라는 애디 할머니의 말은 그래서 가슴을 더 세게 내리친다. 



기억에 남는 대목 중 하나

루이스 할아버지와 애디 할머니가 치프 크리크(Chief Creek)에서 옷을 벗고 수영하는 대목은 다음에 이어지는 상황 때문에 처연함이 가득하다. 자녀들과 이웃들의 부정적인 시선으로부터 둘은 잠시나마 자유로웠을 것이다. 아니, 반대로 잠시라도 자유롭고 싶어서 옷을 벗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제목에 대한 단상 

'밤에 우리 영혼은'이란 제목이 전해오는 느낌이 무척 좋아서 읽게 됐다. '여름날 저녁 일몰 직후 아직 하늘에 빛이 남아있을 때, 제대로 들여다보면 볼 것들이 많은 그 순간을 위한 소설'이라던 <시애틀 타임스>의 리뷰 그대로다 (어쩜 이렇게 표현이 멋진지!). 내년에 개봉하면 극장에서 봐야겠다. 그래도 로버트 레드포드 할아버지가 아닌가! 



두 사람은 나란히 누워 

빗소리를 들었다.

우리 둘 다 인생이 제대로, 

뜻대로 살아지지 않은 거네요.

그가 말했다.

그래도 지금은, 이 순간은, 그냥 좋네요.

이렇게 좋을 자격이 내게 있나 

의심스러울 정도로요. 

그가 말했다.

(p.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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