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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온도 (100만부 돌파 기념 양장 특별판) - 말과 글에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다
이기주 지음 / 말글터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언어의 온도』보다 한 해 먼저 선보인 『여전히 글쓰기가 두려운 당신에게』보다 확실히 디자인이나 편집이 더 세련돼졌다. <말·글·행>으로 이어지는 구성은 깔끔하나 분량이 많아서인지 가슴으로 이어지지 않고 그냥 눈으로만 읽히는 글들도 종종 눈에 띈다. 저자는 서문에서 '적당히 뜨거운 음식을 먹듯 찬찬히 곱씹어 읽어달라' 하지만, 만약 어느 신문이나 잡지에 한 꼭지씩 연재된 글이었다면, '오늘 글은 좀 심심한걸'이라고 반응하는 날도 있었겠다.
SNS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느라 바쁘다. '잘 말하기'와 '잘 쓰기'를 가르치는 책이 쏟아져 나오지만,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먼저 남의 이야기를 잘 듣고, 남이 쓴 글을 많이 읽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다만,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남의 글을 정독할 만한 시간적 그리고 심리적 여유를 잃어가는 게 문제다.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우리 가슴에 그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는 커다란 구멍이 나 있기 때문 (p. 63)'에 그렇다. 이기주의 『언어의 온도』는 우리 가슴에 나 있는 그 커다란 구멍을 인지하게 하고, 나의 이야기를 넘어 너, 그,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완곡하게 말한다. 왜? 세상 사람 누구나 우주만 한 크기의 사연 하나쯤은 가슴속 깊이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당신의 사연은 무엇일까? 이 책을 읽는 동안, 나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질 것이다. 가깝게는 부모님과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친구들, 동료 및 선후배들, 게다가 오늘 하루 나를 스쳐 지나간 이들까지도.
『언어의 온도』에서 반복되는 몇 가지 키워드
1. 위로_헤아림이라는 땅 위에 피는 꽃
어떤 환자와 보호자 아내의 대화를 듣고, 이기주는 논어에 나오는 한 구절 '애지욕기생愛之欲其死, (사랑은 사람을 살아가게끔 한다)'을 떠올렸다 했다. 그의 글을 읽고 나니 사랑만큼이나 사람을 살게 하는 건, 위로인 듯하다. 위로가 사람을 살아가게끔 한다. 때로는 사랑보다 더.

2. 어머니_신이 선사한 첫 번째 기적
『언어의 온도』에는 저자의 부모님, 좀 더 정확히는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여기저기 묻어난다. 당장 내일이 어버이날이라 더 그렇지만,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고마움을 자극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잘 지내냐? 한 번 걸어봤다" 시집간 딸이 잘 지내나 궁금해 전화해 놓고 그냥 걸어봤다는 아버지의 말뜻을 어떻게 모를 수 있겠나? 아버지의 "한 번 걸어봤다"는 흡사 이석원의 『언제 들어도 좋은 말』에서 석원의 속을 태우던 여인의 "뭐 해요?"만큼이나 가슴을 가득 채운다.
저자가 5월을 제일 좋아한다 했던가?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그리고 성년의 날까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주변 사람들을 챙기느라 바쁜 달이다. 미루고 미루다 5월에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언어의 온도』는 여러모로 5월과 잘 어울리니까.

3. 틈_채우고 메우는 일보다 더 중요한 그것
작은 사찰 마당 한가운데에 세워진 석탑에 세월과 비바람을 견딘 흔적이 가득하다. 주지 스님이 말씀하신다. 탑이 오히려 너무 빽빽하거나 오밀조밀하면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폭삭 내려앉는다고. 스님 말씀대로 채우고 메우는 일보다 더 중요한 건, 틈을 만드는 일이다.
소란스러운 것에만 집착하느라, 모든 걸 삐딱하게 바라보느라 정작 가치 있는 풍경을 바라보지 못한 채 살지 말고, 가슴을 쿵 내려앉게 만드는 그 무엇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살아 가지 말라 했다.
중요한 건, 틈이요, 공백이다. 정말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무언가 소중한 걸 잊고 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때 공백이 필요하단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진정한 '나'를 만나기 위한 것이고,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또한 사실은 '나'를 알기 위함이라 했던가. 바쁘게 살면 살수록 '나'는 보이지 않고, 빽빽한 하루에 정작 '나'를 위한 시간이 없다. 그럴 때면, 잠시 쉬어가도 좋다. 너무 빽빽하게 살다 보면, 곧 지나갈 비바람에도 맥을 못 추고 쓰러지기 마련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