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 그 나이 먹은 당신에게 바치는 일상 공감서
한설희 지음, 오지혜 그림 / 허밍버드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렇게 슬픈 제목이 또 있을까? 나 역시 이제 '막돼먹은 영애씨'와 제법 비슷한 처지가 되어가니 『나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가 그저 남의 얘기로만 읽히지 않는다. (미혼) 남성 독자나 기혼 여성이라면 어떻게 읽을지 살짝 궁금해질 만큼 이 에세이에는 대한민국 3~40대 싱글 여성이 겪을 법한 감정이 거의 다 들어 있다.  




예를 들어, 결혼을 재촉하던 부모님은 어느새 "우리 딸은 독신이다"라고 대외적으로 발표해서 놀라게 한다거나(#2, 막상 결혼의 압박이 사라지면) 결혼해서 애 낳고 사는 친구로부터 혼자 사는 게 최고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거나 (#7, 다시 태어나면 누가 되고 싶어?) '유부녀 - 이혼녀 - 노처녀'의 서열에 대한 의문을 비롯해 신체 노화에 따른 당혹스러운 감정, 그리고 '그 나이에'라는 말로 모든 걸 정리하려 드는 자들에 대한 불편함까지 모두 다 담아냈다.




우리 사회는 유난히 "나이"에 대한 압박이 강하다. 획일화된 삶을 강요하고 또 강요받는 우리에게는 그 나이에 지켜야 하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그 나이에 맞지 않는 그런 옷을 입어서는 안 되고, 그런 머리를 해서도 안 되고, 그런 화장을 해도 안 되고, 더는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그 암묵적인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나잇값 못하는 인간'이 되는데, 간혹 로맨틱 판타지가 더해지면 '영애씨'나 '브리짓 존스'가 되는 영예를 누리기도 한다. 물론 현실성이 떨어지는 가정이기는 해도 말이다. 




동년배가 '아무 일'을 수차례 겪는 동안, 그것들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당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이들'은 '그 나이에 왜 그러냐?'는 비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한설희 작가는 말한다. 자신처럼, 영애씨처럼, 그 나이에도 여전히 남들 다 겪는 일을 겪지 못하거나 겪지 않고 불완전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래도 느긋하게 살자고. 물론 어떤 상황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위축되지도 않고,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살아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나이에 대한 짐을 내려놓고, 나만의 페이스대로 늦으면 늦은 대로 그렇게 살아도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평생 뭐든 남보다 느리게 살아왔다면, 남들 다 겪는 일 역시 좀 늦게 겪거나 더러는 건너뛰면 어떤가? 그게 원래 본인의 페이스인 것을.




그러니 쫄지 말고, 당당히 고개 들고 삽시다. 그리고, 옆에서도 '그 나이에 왜 그러고 사냐?'고 무안하게 말하지 맙시다. 알아서 살지 않겠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