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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치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지 ㅣ 쏜살 문고
이지원 지음 / 민음사 / 2016년 7월
평점 :
『명치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지』는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가르치는 교수이자 번역가로도 활동 중인 이지원의 산문집으로 오늘날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한 번쯤 느껴봤을 만한 크고 작은 이슈를 다룬 책이다. 아래는 이 책에서 다루는 불만의 몇 가지 예다. 당신도 분노한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 매일 같이 스팸 메일을 보내오는 "거지 같은" 회사에 불만을 느낀 적이 있나요?
· 제대로 뜯어지지 않는 과자 봉투에 분노해 회사로 전화를 걸고 싶었던 적이 있나요?
· 자기 연민의 질척한 감정을 즐기는 변태적 성향을 반영하는 말, '멘붕'이 듣기 싫은가요?
· "바퀴벌레처럼 무분별하게 증식하는" 넘쳐나는 멘토들과 그들의 강연에 회의적인가요?
· 대형마트나 버스정류장처럼 공공장소에서 기본예절조차 지키지 않고,
타인과의 시간약속을 우습게 저버리는 사람들을 참을 수 없나요?
· 동네 주민들이 뭘 좋아하는지 관심도 없다가 프랜차이즈에 사라진 동네 마트가 답답하게 느껴지고,
그 덩치에 고작 골목 상권을 위협하는 대기업의 작태가 혐오스러운가요?
명치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지는 일단 재미있다. 탁월한 형용사 선택과 자주 튀어나오는 비속어 퍼레이드에 입이 떡 벌어지고, 시각디자인과 교수는 원래 욕도 이렇게 고급스럽게 하나 싶을 정도로 우아한 디스의 향연에 넋이 나갈 지경이다. 또 대기업은 물론이고 특정 이해집단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고 오히려 실명까지 모두 공개하는 어디서도 보기 힘든 울트라 초특급 '모두까기'에는 감탄이 절로 난다. 좀처럼 보기 힘든 실명공개에 속이 다 시원하다. 정말 말 그대로 '교수님, 개간지!'난다.
물론 이런 식의 글이나 화법 또는 이런 화법을 구사하는 인물에게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저자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다 좋은 게 좋은 건데 왜 그리 매사에 불만이 많냐?'며 불편해한다. 그러나 '다 좋은 게 좋은 거야'라는 말의 허점은 두 가지다. 첫째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지만) 집단 구성원 모두에게 좋다고 해도 각자에게 좋은 정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형평성의 문제이고, 둘째는 그 '다'가 누구의 시점에서 본 '다'냐는 것인데, 반드시 고의로든 실수로든 누락되는 인물이 있을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그러니 반박을 해도 좋으니, 일단은 이들의 주장을 들어본 다음에 하면 좋겠다.
사실 문제 제기는 문제 묵인보다 훨씬 수고스럽다. 좋은 소리는커녕 욕 안 들으면 다행이고, 더러는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보다 질적으로 더 나은 사회, 헬조선에서 헬이란 글자를 떼어버리기 위해서는 저자처럼 수고스러움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고, 아니 많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저자가 그랬다. 오늘날 우리는 만든 사람 없이 만들어진 물건에 둘러싸여 살아간다며 사람과 사물의 관계를 올바르게 맺어 주는 배려가 귀한 세상이라 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의견이 다르다고 서로를 비난하고 공격하는가 하면, 우리를 둘러싼 물건은 최대이윤 추구라는 목표 아래 사용자의 목숨을 우습게 보고 위협한다. 하루에도 수도 없이 멘붕에 빠지고 힐링을 찾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고급스러운 디스를 선보이는 디자인과 교수의 모두까기는 다음 두 가지를 위한 것이 아닐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식, 그리고 사람과 사물 사이의 배려. 자칫하면 '명치 맞을' 만큼 비상식적이고 배려 없는 행동을 알아서 하지 않는 것, 이 두 가지만으로도 우리는 헬조선을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