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독서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다보면, 이상하게 그 책과 관련된 경험을 할 때가 많다. 왜 그럴까? 단순한 우연? 아니면, 그쪽으로 감각이 열려 있기 때문에? 이유야 어찌되었건, 어떤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특정한 책을 찾아 읽는 경우도 있지만, 전혀 목적없이 단순히 선택한 책에서 책을 읽을 당시에 생각하고 있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거나 같은 고민을 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거나 우연히 그 책을 읽는 동안 그 책의 저자에 관한 이런 저런 정보를 입수하게 되거나 하는 경우도 있다. 이건, 책을 읽는 큰 재미중의 하나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그랬다. 

난 원래 유시민을 좋아한다. 노짱의 주변 인물로서의 유시민도 좋아하지만, 지식인으로서의 유시민 역시 좋아한다. 어느쪽을 더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나로서는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다.  

유시민의 신간이 나왔다길래 무슨 책인지도 모르면서 일단 주문부터 해 넣으면서, 그 무렵 나는, 예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다면, 예전의 그 재미를 느끼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우혁의 퇴마록을 다시 읽기도 했고. 퇴마록 국내편과 세계편을 다 읽고 난 뒤에 잡은 이 책에서 하고 있는 이야기도 바로 그 이야기다. 비록 나는 10년 전의 책을 이야기 하고, 유시민은 30년 전의 책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게다가 나는 대중 소설을 다시 읽고 있고 유시민은 위대한 인류의 고전을 이야기 하지만. (아, 창피하다.) 

퇴마록을 읽고 난 내 생각도 그거였다. 이 책이 과연 10년 전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그 책이 맞는가, 내가 읽은 퇴마록은 어디로 갔는가. 유시민은 E.M.카의 말을 빌어, 한 역사가는 같은 책을 두번 쓸 수 없다, 라고 말을 하고 있지만, 독자 역시 같은 책을 두번 읽을 수는 없나보다.  

책의 후반부를 읽고 있던 어제, MBC 일요 인터뷰의 대상은 유시민이었다. 독서를 잠깐 중단하고 TV를 켜서 유시민을 봤다. 강퍅하게 마른 뺨이며, 날카로운 눈매며, 이 사람은 나이를 참 특이하게 먹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 헤어스타일! 너무 거슬렸다. 아놔... 난 왜 이런게 눈에 들어오는 것인가.  

거기에서 유시민은, 별로 걸러지지 않은 어구들을 사용하며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고, 민주당을 비판하고, 한나라당은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라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얼굴이 그다지 나이를 먹지 않듯(그렇다고 유시민이 동안이라는 말은 아니고... 예전엔 노안이었다가 이제는 나이에 가까이 다가간다는 말도 어색하고... 흠. 여튼 이 문제는 이 글의 토픽이 아니니 잠시.) 말도 그다지 나이를 먹지 않는다. 여전히 뾰족뽀족 상대의 의표를 찌르고 피아를 분명하게 나누고, 어지간히 공격적으로 말을 한다. 

 헌데 책은, 그다지 공격적이지 않다. 말과 글의 차이인 걸까, 정치인 유시민과 지식인 유시민의 차이인 걸까. 이 책에서도 유시민은 여전히 예리하고 뾰족하지만, 공격적인 뾰족함은 아니다. 난 어떤 위치의, 어떤 입장의 사람을 불문하고, 똘똘한 사람은 무작정 좋은데, 이 책은 유시민의 똘똘함이 어디에서 기인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딴소리지만, 내가 박근혜나 정몽준을 싫어하는 건, 그 얼굴의 맹~한 느낌때문이다. 사업에 능하고 처세에 능하고 이런걸 다 떠나 이 둘은, 참 맹해 보인다. 게다가 맹~한 느낌의 얼굴이 악해 보이는 경우는 잘 없는데-악한 바보를 본 적이 있나- 이 둘은 맹한데다 천하고 탐욕적이기까지 하다. 어익후.) 

 그리고 창피하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20대에, 이런 책들을 읽었단 말이지... 맹자와, 사기와, 유한 계급론과, 진보와 빈곤을, 역사는 무엇인가를.  

소설에 편중되어 있는 나의 독서를 무척이나 반성하면서. 

 생각해보면, 세상을 보는 틀 자체가 달라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사회과학적인 지식을 기반에 두고, 세상을 보는 사람과, 소설이 세상을 보는 틀이 되는 사람. 어느쪽이 낫다 못하다를 떠나, 어쨌든, 뭐, 기초가 튼튼해야 응용이 나오는 거니까.  

지식인 유시민, 글 참 잘 쓴다. 진짜로 잘 쓴다. 꽤 어럽고 난해한 내용의 책들에 관한 리뷰 아닌 리뷰인데도 쉽게 술술 읽힌다. 정치인 유시민의 그 예리함과 뾰족함이 훨씬 잘 다듬어져 있어서 읽는 내내 편안했다. 

유시민이 말한다. 

"긴 세월이 지나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음으로써 나는 과거의 나 자신과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p.313) 

라고. 책을 읽다보면 마주하게 되는 이런 우연한 마주침은 독서를 계속하게 하는 큰 힘중의 하나다. 며칠 전의 내가, 하고 있던 바로 그생각이니까. 그 책을 읽던 시기의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어떤 수준이었는지를 무척 선명하게 느끼게 해 주는 경험. 

 

그것이 비록, 유시민은 <종의 기원>등을 비롯한 인류의 고전이었고, 나는 고작 이우혁의 <퇴마록>이라 하더라도. 

유시민이라는 이름을 배제하고서라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만한, 책에 관한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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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하도 미친듯이 사제끼니, 이런 저런 태클을 걸어보던 남편님. 

남편이 태클을 건다고 내가 책을 사지 않을 손가. 

이런 책 수집은 아이가 태어나고 세배쯤 늘어나 버렸다. 내 책도 사고 애들 책도 사고. 

태클도 걸어보고 말려도 보고 이것저것 다해보다가 지친 남편님하가 하도 투덜거리길래, 

내가 당당히 말했다. 

"남편아, 내가 다른 건 안 사잖아. 내가 사는 건 오직 책 뿐이잖아. 내가 비싼 화장품을 사기를 하니(두번의 임신 출산을 거치면서 있던 화장품 다 썩어서 버리고, 새 화장품 아예 안사서 지금 내 화장대는 재봉틀용 탁자로 둔갑했고, 얼굴에 찍어바르는 걸로는 스킨하나, 수분 크림 하나, 비비크림 하나 콤팩트 하나가 끝.) 밍크를 사니. 고작 책 몇권 사는 걸로 왜 그래." 

했더니, 우리 훌륭하신 남편님하 말쌈. 

"차라리 밍크를 사!" 

진짜? 남푠아, 사실 내가 밍크도 딥따 좋아하걸랑... 사라면 살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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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09-11-03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전 그 심정 알아요. 저도 책구매때문에 여자이기를 포기하고 살았거든요. 화장품이나 옷 이런 거 사느니 책 사 읽고 그게 삶의 즐거움이었어요. 딸랑 티하나로 몇년을 버티기도하고...근데 올해부터는 좀 변화를 주고 싶어서..제가 변했어요.제가 이제 딱 마흔이거든요. 책 사 제끼냐고 추레한 저한테 친정엄마가 하다 못해 이렇게 말하더라구요. 이쁘게 하고 살 날 얼마 안 남았다고. 50 넘으면 아무리 이쁘게 하고 싶어도 이뻐질 수 없다고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렇더라구요. 이제 이쁘게 할 날 겨우 10년밖에 안 남았구나 싶어서..요즘은 화장도 하고 옷도 사 입고 그래요. 대신 예전에 예스와 알라딘 모두 플래티튬 회원이었는데 지금은 알라딘만 플래티늄 회원이에요.
전 남편이 책 산다고 아무 소리 안해서 고마워요. 어떤 때는 회사에서 나오는 복지비180만원 전부 책을 샀는데 것도 아무소리 안 하더라구요^^ 문제는 저와 남편의 책 취향이 너무 틀려요. 흑흑

아시마 2009-11-03 16:51   좋아요 0 | URL
전 뭐... 어지간히 사야지요. 울 동네 알라딘 택배 아저씨를 거의 매일 만나는 지경이니 말 다했죠. 재활용 쓰레기 남편이 버리는데 버릴때마다 열받아 씩씩대며 들어와서는 밍크 사라고 외쳐대길래, 한동안 모아서 주문하느라 골머리좀 앓았었다는. 뭐. 제가 남편이라도 열받을 것 같긴해요. 울 남편은 책 취향이 다른 정도가 아니라, 남편은 안 읽고 전 미친듯이 사제끼고 읽어제끼고 그런다는 게 문제랄까요.
책 산다고 암말 안하는 남편님 부럽습니다. ㅠ.ㅠ
전 남편 명의 가족 카드 사용하고 있는데 매번 카드 짤림의 위협을 느끼며 살고 있다는... 그래도 고맙죠 뭐. 어쨌든 남편이 돈 벌어서 제 책 사주는 거니까. 저도 7년째 알라딘 플래티넘이예요. 으하하하... 알라딘에서 나 상안주나 몰라요.
 

나는 독서 그 자체도 좋아하지만, 책 수집에도 열광한다.  그렇다고해서 뭐, 고가의 고서적을 수집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고, 책 그 자체를 좋아하는 거다.  해서 내가 사는 책들은 내가 읽지 않은 신간 서적과 예전에 재미있게 읽은 책의 비율이 7:3 정도 된다.

역시나, 책을 별로 좋아하지도, 잘 읽지도 않는 남편은, 읽은 책을 왜 사냐고 묻지만, 예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새로 읽는 기쁨이 얼마나 쏠쏠한데. 

요즘은 이우혁의 퇴마록을 다시 읽고 있다. 

이 책, 한참 인기있을 때 책 대여점에서 열광적으로 빌려봤던 책인데, 이런 저런 사정상 가볍게 읽을 거리들을 많이 마련해두는 게 필요해서 알라딘 중고샵에 나왔을때 냉큼 사뒀다가 읽고 있는데,  

오오, 역시 너무너무 재미있다. 

옛날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은, 책 그자체의 기쁨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내가 이 책을 읽을 무렵의 기분을 되살려준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마치 내가 이 책을 처음 읽던 10대 후반 20대 초반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달까. 책을 읽을때의 감상만이 떠오르는 게 아니라 그 시절의 내 생각들 느낌들 이런게 참 애틋한 색채를 가지고 떠오른다.  

그래서 예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읽는 건, 일종의 과거에 대한 추억이 된다. 

그나저나, 내가 퇴마록을 산 걸 알면, 울 남편은 기절할지도. 

결혼해서 책장에 떡하니 꽂힌 김용의 사조 삼부곡 시리즈를 보더니 이게 뭐냐 묻길래, 영웅문 모르냐고, 영웅문의 정식 완역판이다 했더니, 울 남편 말쌈. 

"난 무협지를 사서 보는 사람은 처음봤다." 그러더군. 

더 중요한 건, 남편이 읽은 몇 안되는 내 책중 한권이 김용의 의천도룡기 1번이라는 거. 그 뒤로는 읽지도 않더라. 아니 어떻게, 1번을 읽었는데 2번을 읽지 않을수가 있지? 울 남편이 책에 관한한 나란 인간이 미스테리 하듯, 나 역시도 책에 관한한 내 남편이 참으로, 참으로, 참으로 미스테리하다. 어떻게 뒷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을수가! 신기한지고. 

여튼. 그 유명한 사조삼부곡을 사는 걸로도 어이없어 한 사람인데, 퇴마록 산거 알면 기절할거다. 음하하하하하하... 내 배를 째시오, 남편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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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인은 21개월 무렵에 통글자들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읽은 글씨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옆의 소화전에 있던 "소" 라는 글자. 

걷기도 늦었고, 말문도 빨리 트인 편이 아니어서 기대도 안했는데, 따로 가르친적도 없는 "소"를 읽은 것이다.  하긴, 돌이 좀 지나고부터 책 제목을 말하면 책등만 보고 뽑아오긴 했었다.

그러더니 27개월 무렵엔 웬만한 통글자는 거의 다 읽었고, 

33개월에는 한글을 뗐다고 말을 해도 좋을 정도에 이르렀다. 36개월인 지금은, 웹서핑을 하는 내 옆에서 내가 뭘 보는지 읽는다. 내가 읽고 있는 책도 읽고.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 알라딘~" "아주 특별한 요리 이야기, 존 란체스터."뭐 이런 식으로. 헐헐. 가끔은 뜨끔할때도 있다.  민망한 제목의 책을 읽고 있을땐.

 다인책은 전집보단 단행본이 훨씬 많은데, 대충 헤아려보면 한 7-800권 되는 것 같다. 전집 단행본 다 포함해서. 이제 한글을 자유롭게 읽으니까 책 제목을 읽는 것 쯤이야 일도 아니다 싶긴 한데, 그래도 오늘 놀라운 일을 하나 했다. 

 다인이 한동안 케빈 헹크스의 <내사랑 뿌뿌>라는 책을 많이 봤었다. 뭐 그래도 특별히 좋아하는 책이라고까지 말을 할 건 없지만 자주 손이 가는 책이기는 한듯 해서, 오늘 케빈 헹크스의 또다른 책 <우리 선생님이 최고야>를 사서 책장에 꽂아 줬다. 새로 산 책들은 한동안 새로 산 책들끼리 모아서 꽂아 줬다가 나중에 같은 작가별로 모아서 꽂아주는 편이라, 두권의 책은 각각의 장소에 꽂혀 있었는데, 

자기전에 책을 읽어주겠다고 했더니, 새로산 책 중 <우리 선생님이 최고야>를 뽑고는 망설이지도 않고 서슴없이 <내사랑 뿌뿌>를 꽂아둔 곳으로 가서는 그 책을 또 뽑아서 두권을 함께 들고왔다. 음하하하하하하... 작가를 인지하고 있다는 것도 놀랍고, 책 꽂아 둔 장소를 외고 있다는 것도 놀랍다.  

난 아마, 천재를 낳았나보다.  

초정 김상옥 선생님이 첫손자를 낳은 장녀 훈정씨에게 "네가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 이라고 했다는데,  

아마 내가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도 다인을 낳은 일 같다. 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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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특별히 좋아하는 취향의 책이 있게 마련인데, 나의 경우는 음식과 관련된 책이 그렇다. 

요리책 그 자체만도 좋아하지만(집에 요리책만 한 스무권 된다.) 요리사가 주인공인 책이나, 음식을 조리하는 장면이 나오는 책들, 음식에 대한 추억을 다룬 책들을 환장하게 좋아한다. 

우선 박완서 선생님의 <그 남자네 집>  

어라, 그런데 이 책, 표지가 바뀌어서 나왔구나. 흠. 예전 표지가 나은데.

어쨌든. 박완서 선생님의 묘사력은 정말 발군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중에서도 이 책에서는 주인공 <나>의 시댁(정확히는 시어머니와 남편)의 식문화가 다루어진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철철이 해먹는 계절음식에 관한 묘사는 웬만한 우리 음식문화 소개서보다 낫다. 

결혼을 하고 친정어머니가 마련해준 이바지인 고기를 들고 시댁에 가던날로부터 이집의 "내 생전에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시집의 식도락"(p.136)은 기미를 보이기 시작한다.  

"부엌에서 양념 다지는 소리가 어찌나 요란하게 나는지, 식칼 밑에서 도마의 톱밥이 튀는 게 보이는 듯 했다."(p. 117) 라니. 이 맛깔진 묘사는 박완서가 아니면 도저히 안된다.  

물론 이 책은 음식에 관한 책만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이, 주인공 시집의 식도락이, 주인공은 도저히 못견뎌하는 그 식도락이 엄청난 즐거움을 준 것만은 사실.   

자, 이번에도 역시 박완서 선생님이 먼저 나온다.  

이 책은 유명 문인들이 쓴, 자신들의 기억속에 강렬하게 남아있는 음식에 관한 글이다. 음식 그 자체에 관한 글도 있고, 음식에 관련된 추억에 관한 글도 있고. 

특별한 음식에 관한 건 박완서 선생님의 <메밀 칼싹둑이>나 <참게젓>에 관한 글이 되겠고, 평범한 음식에 얽힌 자신의 삶의 내력에 관한 이야기라면 공선옥이나 이오덕 선생님의 말 그대로 흰 쌀밥 한그릇에 대한 이야기겠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건 그 음식을 먹는 사람들과, 그 음식에 관련된 이야기이지 음식 그 자체는 아닌것이다.  

이번엔 말 그대로 맛 산문집인 윤대녕의 어머니의 수저다. 

어머니의 수저라는 제목 그대로, 이 책은 새로운 음식, 특별한 음식을 소개하기 보다는 음식을 매개로 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글이다.  

이 책과 비슷한 책으로  

이 책, 성석제의 음식에 관련된 산문집 소풍이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 성석제를 딱히 좋아하진 않는데(성석제의 글 스타일은 나와는 뭔가 맞지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아, 난 왜 이 거창한 부사어를 이리도 주구장창 쓰게 되는 것일까.) 이사람, 글 참 잘 쓴다.  

글 잘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그 글을 좋아하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인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성석제의 그 포즈랄까, 유머랄까, 그런게 뭔가 거슬린다. 아주 많이.  

어쨌든 이 책에서 인상적인 건, 냉면에 관한 부분이다. 

 "내 주변에는 냉면광들이 많다. (중략) 내가 아는 한 어떤 음식도 냉면처럼 열렬한 신도를 거느리고 있지 못하다. 비빔밥, 육개장, 찰떡 뒤에 '광'자를 붙였다 떼보면 냉면의 위대성을 쉽게 알 수 있다.
음식 이름 뒤에 '광'을 붙일 만한 것은 그 음식이 그만큼 중독성이 있어서일 것이다.도대체 냉면에 무슨 맛이 있기에 사람을 중독 시키는가.
(중략)
간단한 듯하면서 이토록 까다로운 음식이 없고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이 많은 음식도 따로 없다."
(p. 149-150) 

나도 냉면광이다. 비빔냉면은 명동 <함흥냉면>이 최고다. 

 이번엔, 별로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시인 박형진의 "꼴까닥 침 넘어가는 고향 이야기" 되시겠다.  

이 책에 나오는 음식들은 요즘은 거의 보지 못하는 음식이다. 박형진의 어린시절에 먹었던 고향음식이거나, 시골음식이니까. 요즘이야 직접 청국장을 띄워먹는 집이 적어도 도시에서는 없으니까.  

신기한건, 남자가 어떻게 이렇게 음식 조리법을 잘 알고 있을까 하는 거다. 그렇다고해서 고춧가루 몇숟갈 이렇게 계량된 조리 레시피가 나오는 건 아니고, 음식을 만드는 절차나 재료들이 상당히 자세히 묘사된다. 읽다보면 정말로 침이 꼴딱 넘어간다.  

 

 

이번엔 김훈이다.  

이 책은 여행기다. 우리나라 국토를 자전거로 여행하며 쓴 정말 무시무시하게 잘 쓴 기행 산문집이다. (이 책처럼 잘 씌어진 여행기를 또 발견하긴 힘들듯.) 

그런데, 이 책에서도 내 눈을 잡아 끄는 건 음식에 관한 부분들이다. 봄날 남해안을 여행하며 먹는 봄나물 된장국에 관한 이야기. 

"냄새 만으로도 냉이국이란 걸 알아 맞혔다. 아내는 기뻐했다. 국 한 모금이 몸과 마음속에 새로운 천지를 열어 주었다. 기쁨과 눈물이 없이는 넘길 수가 없는 국물이었다. 국물 속에 눈물이 섞여 있는 맛이었다. 겨울 동안의 추위와 노동과 폭음으로 꼬였던 창자가 기지개를 켰다. 몸 속으로 봄의 흙냄새가 자욱이 퍼지고 혈관을 따라가면서 마음의 응달에도 봄풀이 돋는 것 같았다."
(p. 35-36)  

"쑥 된장국의 냄새는 그것을 먹는 인간에게 괜찮다, 다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마침내 돌아가야 할 곳의 정갈함을 일깨우기도 한다. 그 풀은 풀의 비애로써 인간의 비애를 헐겁게 한다."
 (p.39)

새 봄에 먹는, 봄나물을 넣어 끓인 된장국을 이렇게 묘사할 수 있는 사람은 김훈 밖에 없다. 봄이 되어 봄나물을 넣은 국물을 떠먹을때면 자동반사처럼 이 구절이 떠오른다.  

재첩국에 대한 묘사는 또 어떻고. 

"하동 재첩국은 순결한 원형의 국물이다. 여기에는 잡것이 전혀 섞여있지 않다. 이 국물이 갖는 위안의 기능은 봄의 쑥국과 거의 맞먹는다. 이것은 하나의 완연한 세계를 갖는 국물이다. 이런 국물은 흔치 않다. 재첩은 손톱 크기만한 민물 조개다. 재첩국은 이 조개에 소금만 넣고 끓인 국물이다. 다 끓었을 때 부추를 잘게 썰어넣으면 끝이다.
그 맛은 무릇 모든 맛의 맨 밑바닥 기초의 맛이다. 맺히고 끊기는 데가 전혀 없이 풀어진 맛이다. 부추가 그 풀어진 맛에 긴장을 준다. 오장을 부드럽게하고 기갈을 달래준다.옛 의학서에서는 재첩이 삶에 기진맥진한 사람들의 식은땀을 멈추게 해준다고 적혀 있다.푸른 부추가 뽀얀 국물에 우러나서 그 국물의 빛깔은 새벽의 푸른 안개와도 같다."
(p.99-100) 

하동과는 제법 거리가 있는데도 친정동네에는 재첩 철 무렵이 되면 새벽녘에 재첩국을 파는 차가 온다. 엄마는 가끔 그 국을 사다가 아침에 주곤 했다. 먹어보면 안다. 재첩국은 김훈과 같이 묘사할 수 밖에 없는 맛이란 걸.  김훈의 글을 읽다보면 서정적 묘사란 이런 것이구나 싶다.  

이 재첩국에 대한 묘사는 훗날 김훈의 또다른 소설 <현의 노래>에서 변주되어 나온다.  

"재첩국 국물은 그 어둠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국물을 넘길 때, 왕의 목울대가 흔들렸다. 국물은 왕의 마른 창자에 스몄다. 엷고도 아득한 국물이었다. 아득한 국물은 창자 굽이굽이와 실핏줄 속으로 깊이 스몄다. 국물은 연기처럼 퍼졌다."
김훈, <현의 노래>, 생각의 나무, 2004, p.40 

 

 

이제 10개월, 세상 태어나 첫 감기를 앓고 있는 작은놈의 숨소리가 고되다. 

글 그만쓰고 들어가 애를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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