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독서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다보면, 이상하게 그 책과 관련된 경험을 할 때가 많다. 왜 그럴까? 단순한 우연? 아니면, 그쪽으로 감각이 열려 있기 때문에? 이유야 어찌되었건, 어떤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특정한 책을 찾아 읽는 경우도 있지만, 전혀 목적없이 단순히 선택한 책에서 책을 읽을 당시에 생각하고 있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거나 같은 고민을 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거나 우연히 그 책을 읽는 동안 그 책의 저자에 관한 이런 저런 정보를 입수하게 되거나 하는 경우도 있다. 이건, 책을 읽는 큰 재미중의 하나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그랬다. 

난 원래 유시민을 좋아한다. 노짱의 주변 인물로서의 유시민도 좋아하지만, 지식인으로서의 유시민 역시 좋아한다. 어느쪽을 더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나로서는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다.  

유시민의 신간이 나왔다길래 무슨 책인지도 모르면서 일단 주문부터 해 넣으면서, 그 무렵 나는, 예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다면, 예전의 그 재미를 느끼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우혁의 퇴마록을 다시 읽기도 했고. 퇴마록 국내편과 세계편을 다 읽고 난 뒤에 잡은 이 책에서 하고 있는 이야기도 바로 그 이야기다. 비록 나는 10년 전의 책을 이야기 하고, 유시민은 30년 전의 책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게다가 나는 대중 소설을 다시 읽고 있고 유시민은 위대한 인류의 고전을 이야기 하지만. (아, 창피하다.) 

퇴마록을 읽고 난 내 생각도 그거였다. 이 책이 과연 10년 전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그 책이 맞는가, 내가 읽은 퇴마록은 어디로 갔는가. 유시민은 E.M.카의 말을 빌어, 한 역사가는 같은 책을 두번 쓸 수 없다, 라고 말을 하고 있지만, 독자 역시 같은 책을 두번 읽을 수는 없나보다.  

책의 후반부를 읽고 있던 어제, MBC 일요 인터뷰의 대상은 유시민이었다. 독서를 잠깐 중단하고 TV를 켜서 유시민을 봤다. 강퍅하게 마른 뺨이며, 날카로운 눈매며, 이 사람은 나이를 참 특이하게 먹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 헤어스타일! 너무 거슬렸다. 아놔... 난 왜 이런게 눈에 들어오는 것인가.  

거기에서 유시민은, 별로 걸러지지 않은 어구들을 사용하며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고, 민주당을 비판하고, 한나라당은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라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얼굴이 그다지 나이를 먹지 않듯(그렇다고 유시민이 동안이라는 말은 아니고... 예전엔 노안이었다가 이제는 나이에 가까이 다가간다는 말도 어색하고... 흠. 여튼 이 문제는 이 글의 토픽이 아니니 잠시.) 말도 그다지 나이를 먹지 않는다. 여전히 뾰족뽀족 상대의 의표를 찌르고 피아를 분명하게 나누고, 어지간히 공격적으로 말을 한다. 

 헌데 책은, 그다지 공격적이지 않다. 말과 글의 차이인 걸까, 정치인 유시민과 지식인 유시민의 차이인 걸까. 이 책에서도 유시민은 여전히 예리하고 뾰족하지만, 공격적인 뾰족함은 아니다. 난 어떤 위치의, 어떤 입장의 사람을 불문하고, 똘똘한 사람은 무작정 좋은데, 이 책은 유시민의 똘똘함이 어디에서 기인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딴소리지만, 내가 박근혜나 정몽준을 싫어하는 건, 그 얼굴의 맹~한 느낌때문이다. 사업에 능하고 처세에 능하고 이런걸 다 떠나 이 둘은, 참 맹해 보인다. 게다가 맹~한 느낌의 얼굴이 악해 보이는 경우는 잘 없는데-악한 바보를 본 적이 있나- 이 둘은 맹한데다 천하고 탐욕적이기까지 하다. 어익후.) 

 그리고 창피하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20대에, 이런 책들을 읽었단 말이지... 맹자와, 사기와, 유한 계급론과, 진보와 빈곤을, 역사는 무엇인가를.  

소설에 편중되어 있는 나의 독서를 무척이나 반성하면서. 

 생각해보면, 세상을 보는 틀 자체가 달라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사회과학적인 지식을 기반에 두고, 세상을 보는 사람과, 소설이 세상을 보는 틀이 되는 사람. 어느쪽이 낫다 못하다를 떠나, 어쨌든, 뭐, 기초가 튼튼해야 응용이 나오는 거니까.  

지식인 유시민, 글 참 잘 쓴다. 진짜로 잘 쓴다. 꽤 어럽고 난해한 내용의 책들에 관한 리뷰 아닌 리뷰인데도 쉽게 술술 읽힌다. 정치인 유시민의 그 예리함과 뾰족함이 훨씬 잘 다듬어져 있어서 읽는 내내 편안했다. 

유시민이 말한다. 

"긴 세월이 지나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음으로써 나는 과거의 나 자신과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p.313) 

라고. 책을 읽다보면 마주하게 되는 이런 우연한 마주침은 독서를 계속하게 하는 큰 힘중의 하나다. 며칠 전의 내가, 하고 있던 바로 그생각이니까. 그 책을 읽던 시기의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어떤 수준이었는지를 무척 선명하게 느끼게 해 주는 경험. 

 

그것이 비록, 유시민은 <종의 기원>등을 비롯한 인류의 고전이었고, 나는 고작 이우혁의 <퇴마록>이라 하더라도. 

유시민이라는 이름을 배제하고서라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만한, 책에 관한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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