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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의 괴로움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수윤 옮김 / 정은문고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읽은 날 : 2024.8.11.
요즘 집의 책장을 교체하고 있다. 집에 있는 가장 오래 된 책장은 결혼 할 때 장만한 맞춤 책장이다. 요즘은 그런 걸 안 팔던데, 내가 결혼을 하던 2000년대 중반에는 10센치 단위로 책장을 제작해 주는 곳이 있었다. 나는 600 짜리 2개와 400 짜리 2개, 도합 2미터의 책장을 맞추었다. 재질은 MDF에 나무문양 필름지를 씌워 가격이 쌌다. 높이 2미터, 칸수는 일률적인 여섯 칸에 깊이는 24센치였다. 그 이후로는 아이들 그림책 전용의 깊고 칸이 큰 데다 그림책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칸살이 유난히 두꺼운(3센치였다) 책장을 주로 구매했다. 그리고 집의 책이 7000권(아이들 용 그림책 포함 숫자다)을 넘어서던 순간부터 나는 내가 소유한 책의 권수를 세는 것을 포기했다. 자카르타로 가기 직전의 일이었다.
그 7000권의 책은 컨테이너에 실려 태평양을 건넜고, 자카르타에서 꿋꿋이 5년을 살아내다가 다시 태평양을 건너 한국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자랐고, 책장은 구조조정의 칼바람을 맞았다. 유아용 그림책을 시작으로 아이들의 성장에 맞춰 아동용 책을 주변에 나눠주며 그림책 전용 책장들을 처분했다. 큰 책 전용 책장을 처분한 곳에 성인 도서용(성인도서라는 말의 어감은 참 독특하군.) 책장을 사서 넣었다. 결혼할 때 샀던 것과 같은 맞춤형 책장은 더 이상 판매하는 곳을 찾을 수가 없어 비슷한 책장을 찾다 정착한 것이 데코라인이라는 저가 가구 브랜드에서 만들어 파는 ‘바론’ 이라는 모델이었다. 높이는 185, 제일 위 칸까지 책을 꽂으면 7칸이 되는, 깊이는 24센치의 책장이었다. 물론 재질은 여전히 MDF에 나무 필름지를 씌운 것(도장도 아니다)이어서 무척 쌌다. 이 책장을 버리고 저 책장을 구매하며, 집안의 책을 바꾸는 것과 동시에 책장도 세대교체를 이루어 냈다. 성공적인 세대교체였다.
한동안은 또 그 책장에 만족하며 잘 지냈다. 깊이가 비교적 얕은 편이라 자리 차지를 많이 하지 않았고, 7단으로 쌓을 수 있으니 수납능력도 좋았다. 문제는 책이 점점 늘어나면서, 책장을 더 둘 공간은 도저히 나오지 않는데 책이 포화상태(또는 그 이상...)가 되면서 발생했다. 처음에는 세로로 꽂은 책의 윗 공간에 가로로 책을 수납하는 것으로 어떻게 만회해 보려 했다. 작가별, 분야별로 잘 정리되어 있던 책 수납의 기준이 책 크기를 기준으로 바뀌어 가며 책장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박완서의 책 옆에 서보 머그더의 책이 꽂히고, 교코쿠 나스히코의 책 위에 앙투안 갈랑의 천일야화가 가로로 눕혀지는 식이었다. 과거 “이 많은 책들 중 니가 원하는 책을 찾을 수는 있니?”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당연하지!”라고 대답했던 나의 자랑 섞인 답변이 무색하게, 어떤 책이 어디에 꽂혀있는지 전혀 파악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당연하지라고 외치던 시절의 나로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장서가들의 고민 ‘이 책이 분명 집안 어딘가에 있는데 못 찾겠어.’를 넘어 ‘우리 집에 이 책이 있던가.’의 황당한 고민이 나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순간이었다. 테트리스 쌓기를 한 책들은 허리를 굽혀 들여다보지 않는 한 찾을 수 없게 숨어버린다. 예전이라면 김연수 옆에 김영하가, 박완서 위에 박경리가 있어 책을 찾는 것이 일도 아니었는데 이제는 작가 분류가 엉망진창이 된 위에 책등을 보기도 어려워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책을 찾는 것은 진정 난망한 일이 되고야 만다. 그런데도 나는 그 와중에도 책을 끊임없이 사들이고 있었다. 책은 책장 앞 방바닥은 물론 집안의 빈 공간이라면 어디에나 그냥 쌓여가며 책 탑을 지었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단칸방 시절에 마지막으로 살았던 아파트는 목조였기 때문에 책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내려앉았다. 문을 여닫기가 어려워진 것은 물론이고, 벽에 금이 가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너무 위험해서 좀 더 잘 지은 고급아파트로 이사를 하였다.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진 고급 아파트라서 아무리 책이 많더라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아파트에서도 책의 무게 때문에 마루 바닥이 내려앉고 말았다.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진 건물이라도 일반적인 아파트는 콘크리트 위에 나무로 마루를 깐다. 그런데 이 마루 공사가 부실했던 것이다.
다치바나 다카시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청어람 미디어, 2001, p.90
다치바나 다카시는 단칸방의 사과 궤짝 시절로 시작하여 방 두 칸 아파트, 세 칸 아파트 시절을 거쳐 결국 자신의 장서로 가득한 자신만의 서고로 된 건물을 짓기에 이른다. 그 유명한 고양이 빌딩이다. 집에서 가까운 10평 정도의 토지에 철근 4층 건물(지상 3층, 지하 1층)의 빌딩을 신축하여 약 35,000권의 책을 꽂을 수 있는 서가를 만들었다니. (다치바나 다카시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청어람 미디어, 2001, p.98) 부럽지만 현재의 나로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이다. 일단은 집에서 가까운 10평 정도의 토지가 없다.
책장은 엉망진창으로 뒤섞인 채, 새로 사들인 책은 집안 여기저기 아무데나 쌓아올려진 난장판의 가운데 나는 도저히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맥을 놓았다. 정리할 길이 무망한 책장은 그저 수납장의 역할만을 하고 있을 뿐 ‘책장’ 으로서의 기능은 정지된 상태였다. 책장은 단순히 책을 꽂아두는 수납공간이 아니라 그 내용물을 보여줌으로써 그 책장 소유자의 내면까지 보여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의미 없는 주장에 경도되어 있던 나는 이제 나의 책장을 보기 두려울 지경까지 가고 있었다.
그렇게 1년이 가고 2년이 갔다. 그 와중에도 책은 꾸준히 늘었고. 고양이 빌딩이라도 생기지 않는 한 이 난장판을 해결할 길이 보이지 않았으니 책장에 관한 한 그냥 맥을 놓은 상태였다. 북 호더가 되어간다는 자책도 함께.
어느 날 침대 발치 벽에 둔 책장이 눈에 들어왔다. 책의 무게로 칸이 눈에 띄게 휘어 책들이 가운데로 몰려 있었다. (그 책들은 민음사판의 세계문학전집이었다.)다 똑같은 책장이지만 한꺼번에 사들인 것은 아니라 연식이 다 제각각이었다. 침대 발치 벽에 놓인 그 책장은 아마도 ‘바론’ 시리즈 중에서는 가장 먼저 우리집에 들어왔던 놈 같았다. 유심히 보니 뒷판도 벌어져 있었다. 책장이 망가진 거다. 그 순간 머리를 치고 간 생각. ‘새로운 책장을 둘 자리가 없어? 그렇다면 있는 책장을 수납력이 더 높은 놈으로 바꾸면 될 거 아니야?’ 나로서는 코페르니쿠스에 버금갈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었다.
개 눈엔 똥만 보인다고, 원래도 어딜가나 책장을 눈여겨 보았다. 정확히는 그 책장 속 ‘책’을 보았었다. 이제는 분야를 조금 바꿔 책장을 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책장을 쓰나. 이케아를 비롯한 수납력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가구를 파는 곳에 가 보았고, 목공소나 가구 제작을 하는 곳에 책장 제작 가격을 문의하고 다녔다. 더 이상 MDF 재질의 책장은 사고 싶지 않았다. 원목으로 된, 튼튼하고 야무진 놈으로. 모든 기준은 최대한 적은 바닥 공간을 차지하면서도 얼마나 많은 책을 꽂을 수 있는가에 집중되었다. 높이도 깊이도 재질도 딱 내 마음에 차는 책장을 몇 군데서 발견했다. 가구점에서 발견한 것이었으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다 개인의 집이었다. 가까운 사람도 있고 안면만 있는 사람도 있었으나 얼굴에 철판을 깔고 물어보았다. 이 책장 어디서 사나요? 답변은 민망할만큼 똑같았다. “맞춘 거야. 공방에 의뢰해서.” 친절하게 공방의 위치와 연락처를 알려주신 분도 있었다. 많았다. 그러나 원목으로 책장을 제작하는 것은 의외로 많이 비쌌다. 뭐, 의외가 아닐 수도 있지만. 게다가 주변의 조언은 너무 다양해서 오히려 헷갈렸다. 그냥 네모 반듯한 원목판을 목공소에 치수를 재서 주문을 해 켜달라고 해라, 피스 박을 곳에 구멍도 내 달라고 해라, 집에 와서 니가 조립만 하면 된다, 그건 의외로 쌀 걸? 이라는 조언이 가장 구체적이고도 합리적인 듯 보였다. 그러나 내 남편과 나는 손을 가장한 발만 네 개 달린 인간이라 나무판을 켜와서 책장을 조립한다는 선택지는 애초에 과감히 지워버렸다.
아. 원목으로 된, 칸이 그다지 깊지 않고 높지 않은 책장을 ‘적당한 가격’으로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기성품 책장은 26-30 센치 정도의 깊이에(‘바론’ 시리즈가 개중 얕아서 24센치다) 각 단의 높이 또한 28-30 정도로 고정되어 있었다. 단 높이 조절이 가능한 책장도 있기는 했으나 전체 단이 6단으로 되어있어 내겐 크게 의미없는 기능이었다. 책을 꽂았을 때 책 위의 남아있는 공간은 나에게는 죽은 공간인 셈이었다. 인테리어 상의 아름다움이고 뭐고 다 필요 없이 나는 꽂아둔 책 위로 남는 공간이 거의 없기를 바랬다, 더 이상 책으로하는 테트리스는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내가 원하는 것을 주저리주저리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럼 그건 맞춤을 하는 수 밖에 없어라고 대답을 하거나 꽤 많은 비율의 사람이 ‘보지 않는 책은 상자에 넣어 어딘가에 넣어두지 그러니’ 라는 조언을 했다. 그 비율은 정말로 높았다. (남편을 포함 부모님의 조언도 그랬다.)
이 책 『장서의 괴로움』에 등장하는 많은 장서가들도 의외로 책을 상자에 보관하는 선택을 하고 있어 나를 기함하게 했다. 책을 그저 구입하고 소유한다는 사실 자체에 천착하는 것인가? 물론 서점에서 내가 읽을 책을 고르고 구입하는 기쁨이 독서의 즐거움에 버금간다는 사실은 나도 인정한다. 이미 많은 연구 결과에서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ott 사용자들이 실제로 시청하는 시간만큼 많은 시간을 목록 검색에 소비하고 있다고 밝힐 정도니까. 그건 일종의 ‘미리 맛보는’ 즐거움이다. 어린왕자의 그 유명한 말 “네가 네시에 온다고 하면 난 세시부터 행복할거야.” 류의, 이 컨텐츠를 소비할 거라는 예상만으로 이미 즐거운 거다. 그러나 말이다. 다시 생각해 보면, ott의 경우 그 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이용 요금을 지불하는 기간 안에서 만큼은 이미 내가 소유한 것으로 간주해야 하고 그 타이틀(책으로 치자면 책등)은 언제나 내 눈앞에 환히 펼쳐진다. 책으로 치자면 책등이 잘 보이게 꽂아둔 거나 진배없다. 그런데 책을 책등을 볼 수 없는 박스에 넣어 깊숙한 곳에 수납한다? 이건 소유하고 있되 소유하지 않은 셈이다. 꺼내 볼 수 없는데 가지고 있으면 뭐하냐고. 책이 대체 뭐라고. 금덩이도 아니고. 순금은 나날이 값이 오르니 걍 쌓아두면 부자가 되지만 책은 쌓아둔들 처치 곤란의 애물일 뿐이다. 나에게 책을 상자에 넣어 어딘가에 쌓아두라는 말은 책을 갖다 버리라는 말과 동급이었다. 동일한 이유로 꽤 많은 사람이 제안한 2중 레일책장도 고려 사항에서 제외했다. 책등이 보이지 않는 수납은 책을 왜 사는지 근본적인 의문을 가지게 한다, 나에게.
책을 아름답게 정리해 주위에 진열해놓고 늘 책등을 바라보며 그것들에 빙 둘러싸여 살고 싶다.
오카자키 다케시, 『장서의 괴로움』, 정수윤 역, 정은문고, 2014, p.120
이거라고,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책등을 봐야 한다고. ‘책이 사는 집’을 짓는데 성공하고 이 꿈을 이룬 네기시 데쓰야 역시 결국은 ‘책을 위한 특수한 집’을 짓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심지어 건축가를 고용해 설계과정에서부터 자신에 맞추었고, 책장 역시 제작을 해서 들여온다. 부유한 쌀집 아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저는 책이 제 눈에 안 보이는 게 싫어요.”(p.130) 저도요, 저도요!!!
그렇게 고민하는 내게 누가 지나가는 말처럼 툭, 던졌다. DVD장을 검색해 보지 그러니.
그리고 나는 외쳤다. 이걸 왜 이제야!
깊이는 20센치다.(브랜드가 다르지만 19센치짜리도 있다) 바론보다 4센치 얕다. 고작 4센치의 차이가 대체 뭐라고,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울 집 책장 전체를 생각하면 결코 적은 면적이 아니다. 게다가 깊이의 제한에 걸려 책장을 넣지 못했던 몇몇 공간에도 이 정도 깊이라면(고작 20센치 아닌가) 책장을 넣을 수가 있다. 무엇보다 8단이다. 그 위 천장까지의 공간에 한 단을 더 올려서 책장 하나가 9단의 수납력을 가지게 된다. 바론이 7단이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이건 혁명수준인 거다. 심지어 뒤판이 뚫린 디자인도 있다. 전등 버튼이나 콘센트의 위치 때문에 책장을 놓을 수 없던 자리도 책장을 놓을 수 있게 되는 거다.
미송 원목으로 주문을 해도 가격은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다. 무엇보다 일시불로 한 번에 돈을 낼 필요가 없으니(주문 제작이 아니라 기성품을 사는 거니까) 내 금전 사정에 맞춰 한 달에 한 두 개씩 천천히 바꿔 나가면 된다. 책장을 하나씩 바꾸니까 체력적인 부분도 안배가 된다.(책정리는 의외로 꽤 중노동이고, 손목 터널증후군은 사서들의 직업병이다. 나는 애 둘을 독박육아-진짜 말 그대로 남편도 없이 오롯히 혼자 독박육아하던 시절이 있다-할 때도 멀쩡했던 손목이 자카르타에서 귀국 후 책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아작이 난 경험이 있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신국판 이상의 책은 크기가 안 맞아 꽂을 수 없다는 거. 이 단점을 무시할 수 있는 이유라면 요즘 나오는 대부분의 책은 신국판보다 작은 국판 이하의 책이라는 점과 이 브랜드에서 책장용으로 7단짜리도 제작해 나온다는 거. 책의 상황을 봐 가며 8단과 7단을 적절히 섞어 주문하는 걸로 해결했다.
한번에 하나씩 두 개씩 기존 책장을 빼고 DVD 장으로 바꿔 나가며 책장의 책들을 정리했다. 바닥에 쌓여있던 책들이 제 자리를 찾아갔고, 책 분류 기준은 다시 크기가 아니라 작가와 장르가 기준이 되었다. 물론 신국판 책들은 여전히 약간의 장애로 남는다. 전작주의자인데다 한 작가의 책은 한곳에 모아 두는 것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거슬릴 때가 많다. 특히 옛날에 나온 책들-민음사판!-이 대부분 신국판이다. 대충 눈을 질끈 감고 7단과 8단을 나란히 놓아 가능하면 가까운 곳에 두는 걸로 타협한다.
그렇게 집안의 책장을 대부분 교체했다.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성공적인 3차 세대교체다. 심지어 책장에 다음에 구입할 책을 대비한 여유 공간도 둘 수 있다. 처음 책을 모으기 시작할 때 내가 그러했듯, 구입해서 아직 읽기 전의 책을 모아 두는 전용의 공간도 마련했다. 맞다. 그땐 그랬다. 구입한 모든 책은 일단 읽고 나서 책장에 넣었더랬다. 분류에 맞게, 제 자리를 찾아서 잘. 아. 그랬던 적도 있었다, 내가.
이런 나와 20년째 살고 있는 나의 남편은 책을 사고, 모으고, 읽고, 책장을 정리하는 일련의 행위들을 내 취미생활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말려도 소용없음을 넘어 이것이 내게 얼마나 큰 기쁨과 안정을 주는지 알게 되었으니. 본디 마누라가 행복해야 남편도 행복한 법.
자, 그러면 이렇게 물어 볼 수 있다. 책을 왜 그렇게 많이 사고 또 모으니. 답은 하나다. 좋아하니까 그렇다. 하지만 이렇게 때로 패닉 상태에 이르게 될만큼의 수집에는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생각해 본다. 내 수집의 원인을. 나의 원인은 결핍에 있었다. 물론 ‘책’ 자체에 결핍되어 있지는 않았다. 과거 나의 독서력은 지금의 내가 생각해도 남부럽지 않다. 빌려서 읽은 것이기는 했지만. 그러니 다시 말해야 한다. 나는 ‘책 소유’에 결핍되어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우리 엄마는 억울해할 것이다. 가끔은 “내가 어떻게 그 형편에 너에게 그 책들을 사 줄 생각을 했는지 지금도 신기해.” 라고 말씀하고 가족 모두가(나도 물론!) 고개를 끄덕일 정도니까. 36권짜리 삼성출판사 판 한국문학 전집이 집에 들어오던 날의 기쁨은 지금도 선연하다. 집안의 경제력은 둘째치고, 공간적 형편만을 고려해도 말도 안 되는 책 구매였다. 거실도 없이 방 두 칸만 있는 셋집에 여섯 식구가 살던 시절이었으니.
다섯 살 때였나봐요. 어느 날 동네에서 놀고 있는데 피아노를 실은 트럭이 와서 우리집 앞에 서는 거예요. 난 지금도 그때의 흥분을 잊을 수가 없어요. 우리 아빠가 바로 그 시절을 놓치고 몇 년 뒤에 피아노 백 대를 사줬다고 해도 나한테 내게 그런 감격을 느끼게 만들지는 못했을 거예요.
김한길, 『눈뜨면 없어라』, 해냄, 1993, p.292
대학 면접을 보러 엄마와 서울로 올라가던 고속버스 안에서 이 글을 읽었을 때, 내가 완벽하게 공감할 수 있었던 건 삼성출판사판 한국문학전집이 들어오던 날의 기쁨을 알기 때문이다. 그 이후 내 모든 책 구입의 기쁨은 그때의 오마주다. 이에 비길만한 기쁨이라면, 글쎄. 처음으로 직장을 가지고 박경리의 나남출판사판 토지 전질을 구매해 받은 그 순간이려나.
엄마는 애를 썼지만 나의 욕망을 채우기엔 부족했다. 결국 결핍에서 수집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결핍에 기원을 둔 수집은 난잡해 진다. 그것은 콜렉트collect이기는 하나 콜렉션collection이라고 말할 수 없다. 애초에 결핍되어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취향이나 안목을 가질 수가 없다. 안목과 취향이 결핍된 수집품은 결국 물건들의 집합일 뿐이다. 책은 나의 거의 유일한 욕망의 대상이었고, 세상에 책이라 이름 붙여진 것은 무엇이든 나의 수집의 대상이 되었다. 그 결과 내 서재, 아니 책장은 몹시도 난잡한 리스트를 가지게 된다. 내가 결코 읽지도 않을 책, 나의 취향과 전혀 관련이 없이 그저 ‘책’이기 때문에 수집된 것들, 그 수집은 20년 넘게 이어지며 웬만한 전셋집을 구할만큼의 돈을 때려부은 다음에야 어느 정도 가라앉기 시작했다. 드디어 결핍이 어느 정도 채워진 모양이다. 이제 나는 책을 뽑기 시작했으니까. 내가 읽지 않을 책을 책장에서 뽑아내면서 (물론 한권의 책을 책장에서 뽑아내어 버리기까지 몇 번이나 몸살을 앓기는 한다) 이제는 슬슬 책장 다이어트를 고민하고 있으니까.
이번 책장의 3차 세대교체를 진행하는 중에 여러 번 놀랐고, 여러 번 중간에 멈추었다. 내가 이런 책을 가지고 있었구나, 놀랐고 이 책 진짜 재미있겠다고 책장 앞에 퍼져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문득, 국립 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을 떠올렸다. 넓은 방 하나에 단 두 개의 반가사유상만을 전시해 놓은 공간. 절제를 통해 오롯이 그 하나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힘.
취미가 그래서 여기저기 박물관을 많이 다녔다. 국립중앙 박물관과 박물관장 개인의 수집이 만들어낸 개인 박물관의 차이는 그 절제에 있었다. 절제할 수 있는 힘은 선택과 집중이 무엇인지 알게 한다. 국립 중앙박물관조차 ‘사유의 방’ 과 같은 절제의 힘을 구사할 수 있게 되기까지 해방 후 70여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나는 중앙청-일본총독부 건물- 시절의 국립중앙박물관을 가 본 옛날 사람이다. 그때의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는 음,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개막식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우리 이런 거 이런 거 이런 거 있다, 대단하지!” 라고 외치는 듯한.)
책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나치게 많은 책은 진짜 좋은(이 ‘좋은’ 이란 기준은 지나치게 개인적이어서 아무런 객관성을 가지지 못한다.) 책을 묻히게 만든다. 내가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잊게 만들고 결국 전부를 종이 쓰레기로 만들어버린다. 결국 수집을 완성하게 하는 것은 버림이다.
직업상의 이유로 노년기에 접어든 분의 책 목록을 정리해 줄 일이 종종 있다. 주로 교수 직종에 종사하고 있던 분들의 책은 본인에겐 보물이었으나 자녀에겐 처치곤란의 애물이다. 기증 의사를 밝혀도 받아주는 곳도 거의 없어 통째로 버려지는 경우가 꽤 많다. 책이라는 게 그렇다. 본인에게 ‘좋은’ 책이 타인에게도 ‘좋은’ 책은 아니어서. 특정 몇몇 책을 제외한다면 나이 먹은 책은 시간과 함께 그 가치도 상실해 버린다. 사람도 책도 늙으면 효용가치를 잃는다.
나도 나이를 먹으니 내 주변의 사람들도 제법 나이를 먹었다. 내가 책장을 찾는 중이라는 말을 했을 때 그분들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난 요즘 책을 정리하고 있어.’ 박완서의 수필집 『호미』에도 기증받거나 선물 받은 책 정리를 하는 얘기가 나온다. 다시 한번, 수집을 완성하는 것은 버림이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책장 앞에 섰다. 책장을 더 사는 것이 아니라 있는 책들을 솎아 버려야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무엇을 남겨두고 무엇을 팔지에 대해 이렇다 할 기준은 없다. …… 책을 처분할 때 필요한 건 ‘으음……’이 아니라 ‘에잇!’이라고 믿으며 기세 좋게 책의 벽을 무너뜨렸다. 나중에는 ‘불타버렸다고 생각하자’ 하고 넘어갈 수 있을지 없을지가 관건이구나 싶었다.
오카자키 다케시, 『장서의 괴로움』, 정수윤 역, 정은문고, 2014, p.215
그러다 이 구절을 만난 거다. 책을 처분할 때 필요한 건 ‘에잇!’ 이라는 기합이다. ‘불타버렸다고 생각하자’는 마음이다. 라고 생각하니, 자카르타 시절, 나는 이미 물에 젖은 책 한묶음을 버린 적이 있다. 심지어 그 책들 중엔 김훈 선생의『칼의 노래』 초판본이 있었다. 그 책이 아직 동인문학상의 수상작이 되기 전, 생각의 나무에서 은빛 양장표지의 아름다운 장정으로 찍어낸 그 책. 게다가 그 옆엔 역시나 김훈 선생의 『자전거 여행』초판본도 있었다. 물론 둘 다 저자 사인본이었다. 에어컨에서 물이 새는 탓에 일어난 사고였고 난 물에 젖어 퉁퉁 분 그 책들을 이고 지고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 가서 통하지 않는 한국말로 울며 책임지라고 떼를 쓴 전적을 가지고 있다. 그때의 그 살점이 떨어지는 듯한 통증을 떠올리니(정말 실제적인 통증이었다. 도대체 대책이 없는 그 책의 표지 김훈 선생의 사인 부분만 뜯고 나머지 책들을 내다 버릴 때 나는 진심으로 울었다.) 아직은.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오카자키 다케시 씨도 나와 비슷했나보다.
사십 대 때는 아직 그럴 수 없었다. 오십 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이러한 심경에 다다르도록 나를 이끌었다. 이제 그리 오래 살 수는 없을 거야, 라는 생각 말이다.
오카자키 다케시, 『장서의 괴로움』, 정수윤 역, 정은문고, 2014, p.215
나는 아직은 사십대이고, 아직은 그럴 수가 없는 나이인 게다. 이 구절에 기대어 책 솎아내기를 대충 얼버무리며 아직은 이라고 중얼거렸다. 자신이 책을 정리하고 있음을 말한 분은 60대 중반에 접어든 분이셨고, 그분 역시 나에게 아직은, 이라고 말씀하셨으니까.
그래, 결국은 버려질 것임을 알고 있다. 이 책들은 박완서가 그러하였듯, 언젠가는 내 손으로 정리해야 할 것임도 알고 있다. 이 책의 정리를 내 사후에 내 아이에게 맡기지 않으리라는 다짐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눈앞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펼쳐진 책등이 보이는 책장은 왜 이렇게나 나를 뿌듯하고 즐겁게 만드는 걸까. 결국은 다 버려질 것들인데.
책의 효용가치는 읽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2024.8.19. by. ashi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