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다가, 울컥 - 기어이 차오른 오래된 이야기
박찬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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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날 : 2024.4.27


한때 쉐프의 에세이가 쏟아지던 시기가 있었다. 요리가 여전히 여성적인 무엇인가 인 가운데 그래도 진짜 요리사는 남자라는 인식이 공고해 지던, 그 진짜 요리사는 '요리사'가 아니라 '쉐프'라는 익숙하고도 낯선 호칭과 지칭을 사용해야 한다던. "예, 쉡!" 이라는 말과 "봉골레 하나." 라는 말이 유행하는 우스개로 떠돌던 그때. 2010년 경의 이야기다. 쉐프라는 직업이 각광받기 시작해 드라마로까지 쓰여졌는지, 드라마 <파스타>가 주목을 받자 쉐프들이 인기몰이를 하기 시작했는지 전후관계는 명확하지 않다. 내 기억상. 어쨌든 그 시기를 전후로 하여 글 쓰는 쉐프들이 나왔다. 자신의 레시피를 한두 개 곁들이고, 요리 철학과 가게를 열기까지의 이야기며 요리를 배우던 시절에 대한 추억담을 담은 책은, 솔직히 말해 대부분은 시류에 편승한 뻔한 책이었고 대부분은 단권으로 끝이났다. 


박찬일은 그 과정에서 나에게 걸려든(?) 작가 쉐프(또는 쉐프 작가) 였다. 여타 쉐프의 에세이와 다르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어라, 뜻밖에 글을 아주 잘 쓰는 에세이스트였다. 이후 박찬일의 책은 빼놓지 않고 꼬박꼬박 사서 읽었다. 


이분의 이력은 그 빼어난 글 솜씨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중앙대 문창과를 나왔다. 졸업은 못했고, 중간에 그만두고 잡지사 기자로 또 몇 년간 글밥을 먹다, 결혼도 한 주제에 혼잣몸으로 훌쩍, 이탈리아의 어느 소도시에 이태리 요리 유학을 갔다. 아내가 벌어 부쳐주는 돈으로 이태리 요리를 배웠고, 귀국해 쉐프가 되었다. 신기한 사람이다. 요리도 재능이듯 글쓰기도 재능의 영역이라 그 이후로 10여권 넘는 음식에세이를 써 내고 또 곧잘 베스트셀러의 목록에 올려놓는다. 요즘은 TV에 음식 이야기를 하느라 가끔 나오기도 하더라. 이분의 음식은 먹어본 바 없어 모르겠고, 글쓰기 재능은 보통을 넘는다. 


박찬일의 글을 읽을 때 가끔은 한창훈과 겹쳐 보일 때가 있다. 한창훈 역시 진짜 끝장나게 잘 쓴 음식 에세이를 한 권(사실은 두 권이지만 두 번째 나온 글은 별로 말하고 싶지 않으므로.) 내놨다.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라는 부제를 단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라는 제목의 책. 그런 공통점 때문에 박찬일과 한창훈이 겹치는 건 아니고, 박찬일과 한창훈의 글 둘 다의 바닥에 깔려 있는 페이소스 때문이다. 페이소스라고 하니까 잘 안 와 닿는다. 그냥 청승이다. 


한창훈의 청승은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기로 하고, 박찬일의 청승은 묘하게 덤덤하다. 청승이 어떻게 덤덤할 수 있는지는 박찬일의 글을 읽다보면 알게 된다. 청승스럽다고 해서 슬픈 이야기라는 건 아니다. 기쁜 이야기라고 해서 청승이 없다는 것도 아니다. 박찬일의 글을 읽다보면 이 사람은 세상을 산다는 게 결국 슬픈 일이구나, 슬픈 가운데서도 기쁨이 없지는 않은, 그러나 세상 사는 것은 다 어렵고 힘이 들어서 내가 사는 것도 힘들고 네가 사는 것을 보는 것도 힘들고 그러니 청승스러운 일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왕이면 오래 살아야 한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쁜 기억도 막 쌓아서 나중에 죽어도 아무런 미련을 갖지 않게"(p.32) 그렇게 꾸역꾸역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청승스럽다. 


박찬일은 이 청승을 굳이 자랑스럽게 휘두르지 않는다. 그렇지만 딱히 숨기지도 않는다. 그야말로 덤덤하게, 덤덤하게 글을 쓴다. 제목대로 '밥 먹다가, 울컥' 한 이야기들을 모은 책이어서 청승스러운 게 아니라 박찬일의 글 바닥에는 모두 그런 덤덤한 청승이 있는데 이 책이 유독 좀 더 그 청승스러운 감정 쪽이 강조되었다. 다른 에세이들은 쉐프의 음식 에세이 답게 음식과 식재료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는데 이 책은 감정 이야기가 더 많다. 그럼에도 산뜻하게 읽히는 건 박찬일의 글쟁이로서의 재능이고. 


밥 먹다가, 울컥 이 아니라, 글읽다가 울컥 했다. 그것도 글의 제일 초입에. "나는 결국 평생을 살아도, 옛날만 사는 것 같다."(p.8) 라는 구절에. 어쩌면 박찬일의 글이 청승스러웠던 게 아니라 글을 읽는 내 감정이 내내 청승스러웠던 것인지도. 


이러나 저러나, 박찬일의 음식 에세이는 정말로 좋다. 


by 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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