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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님
야마다 에이미 지음, 김옥희 옮김 / 민음사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다섯 편의 소설이 실린 단편집을 세 번째 소설 〈피에스타〉에서 give up해 버렸다. 맙소사. 자존심 상했지만 어쩔 수 없다. ‘연애소설의 대가’라는 수식어에 속아 읽어보지도 않고 줄줄이 구입해 버린 야마다 에이미의 다른 소설들이 책장에 꽂혀 나를 비웃었다. 달라는 사람이 있으면 줘 버려야겠다, 생각했다.
요시모토 바나나나 에쿠니 가오리 류의 소설을 기대했던 나에게 야마다 에이미는 좀 쎘다.
읽다가 버려둔 소설은 늘 찜찜하다. 뭔가, 숙제를 덜한 것 같고, 수학 문제를 풀다 젖혀둔 것 같고. 게다가 누군가가,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가, “그래도 끝까지 읽어봐요. 괜찮은데.” 라고 말을 해 버리면 어쩔 수가 없잖은가. 다시 펼쳐야지. 단편집이 좋은 이유가 뭐겠어. 도저히 못 읽어! 라 외쳤던 <피에스타>는 그냥 넘겨버리고 다음 단편 <공주님>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오호, 이게 대박이다!
첫 소설 〈메뉴〉의 첫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목을 메고 죽은 어머니의 아래에서 요구르트의 맛을 음미하는 유치원생이라니, 뭔가 대단히 쿨 하지 않은가. 스스로를 ‘히메(공주)’라 칭하는 〈공주님〉의 여주인공 진짜 이름이 ‘히메코’였다니. 역시나 대단히 쿨하다.
오, 멋져, 멋져, 라고 읽기는 하는데, 읽고 난 다음이 뭔가, 독특한 느낌이다. 유쾌하진 않지만 가볍고, 경박하진 않지만 즐거운 일련의 인물들은, 그러나 돌아서는 순간 매우 무겁고 불행한 인물로 읽힌다. 그야말로 공주님 또는 도련님답게 고개를 꼿꼿이 들고 살아가지만 뭐랄까, 자존심으로 인하여 자신의 상처를 죽어도 드러내지 못하겠는 유치한 치기가 ‘쿨’한 행동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처럼 비친달까.
어쨌든, 오, 멋지다.
ps. 일문 번역에는 확실히 김난주가 발군. 김옥희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단편집『도마뱀』에서도 그랬지만 역시나 중언부언 알아듣기 힘든 스타일로 번역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