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초 편지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야생초 편지 2
황대권 지음 / 도솔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다보면 전체적인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어느 한 구절에서 마음이 울컥 하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이 책에서는 매번의 편지마다 거의 빠지지 않고 반복되는 “이 담에 내가 살 집은” “이 담에 우리집 마당에는” 이라는 구절이 그랬다. 나이 서른에 억울하기 그지없는 간첩 누명을 쓰고 무기수가 되어 옥에 갇힌 한 남자의 출소 후 희망에 관한 이야기는 아무런 수식어 없이도 그저 마음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한 평, 또는 한 평 반의 조그만 독방에 갇혀서 척박한 운동장-운동장 흙은 물이 잘 빠지게 하기 위해 마사로 만든다. 그 흙은 물을 품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식물이 자라기 어렵다- 한 귀퉁이를 갈아 화단으로 만들고 야생초를 키우는 무기수의 지나치게 소박해서 도저히 가뭇없어 보이는 희망 탓에. 마음이 울컥 울컥.

이 책을 구입해 책장에 꽂아둔 것은 한참이나 된 일이다.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옥중 서간문집을 선물 받아 읽어본 일이 있지만 사실 나는 신영복 스타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 책도, 옥중 서간문집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아마 사지 않았을 텐데. 조선일보 선정의 이달의 책이라는 말에 그냥 샀던 것 같다. 당시 조선일보의 문화부 문학담당 기자였던 어수웅 기자의 글 쓰는 스타일도 읽는 스타일도 마음에 들어 하던 중이었기 때문에. 그리고는 그냥 밀쳐두었었다. 뭐, 구입만 해 두면 언젠가는 읽게 되지 않겠나.

책을 만나고, 작가를 만나는데도 분명 어떤 계기나 인연이 작용할 때가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다른 책들에 우선순위가 밀려 책장의 제일 바닥 일본문학계통의 책들이 두서없이 꽂힌 장소에 1년이 넘도록 나의 시선을 받지 못하고 꽂혀있던 이 책이 뽑혀 나온 것도 분명 그 어떠한 ‘인연’ 때문이었다. 하나의 인연에는 하나의 원인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올 봄, 새삼스레 목련나무의 아름다움과 목련 특유의 신비로움-이건 나중에-을 발견하면서 자연의 신비에 놀라고 있던 찰나에, KBS 제1TV의 심야 프로중 제3지대라는 프로에서 황대권이 나오는 환경 다큐멘터리의 끄트머리를 얼핏 보게 되었고(자운영 꽃을 비롯한 야생초의 꽃을 꺾어 야생초 모듬 샐러드를 먹고 있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박완서 식의 “맹렬한 적개심”을 느끼며 정원의 잡초(주로 민들레-토종이 아닌-)를 뽑아 주다 문득 종이 다를 뿐 잔디와 이 잡초들의 차이가 무엇이 있겠는가 하는 묘한 깨달음이랄까 안쓰러움도 느끼고. 어제 저녁에 보았던 KBS 환경 스페셜 “세계의 환경도시를 찾아서”(타이틀 정확하지 않음)의 쿠바의 아바나 市를 보고났더니(이 모든 것들이 요 근래 줄기차게 일어난 일들)

잊혀져 있던 이 책이 떠오른 것이다.

식물과, 환경의 이야기를 읽기 위해 꺼내든 이 책에서

“이 담에 우리집 마당엔…….” 이라는 이 구절 때문에 그저 울컥 한 마음이 들어 한 구석이 싸-아- 해 오는 경험을 하게 만들었던 멋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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