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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악사
한수산 / 삼진기획 / 1986년 7월
평점 :
품절
한수산은 참 기묘한 작가다, 박범신과 더불어.
대중 소설과 순수소설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서서, 대중적 감성을 순수하고 현란한 문체로 그려낸다. 박범신이 『깨소금과 옥떨메』류의 청소년 소설을 써 내고 있을 때, 한수산은 『가을 나그네』『거리의 악사』『아프리카여 안녕』『바다로 간 목마』등을 내 놓고 “딸에게 읽히고 싶은 소설”을 썼다고 했다. 그런 류의 소설들이 유행하고 있을 때(80년대 초중반) 그는 그야말로 대중적인 감성의 작가인가 싶다가도 81년 필화사건을 생각해 보면 단순한 대중소설 작가라고 말하기도 힘이 들고……. (그 필화사건은 3여년의 절필로 이어진다.)
『부초』나 최근작『까마귀』등에서 보여주는 사회의식과, 88년의 돌연한 도일(그는 자신을 고문한 보안사의 우두머리-노태우-가 대통령이 되는 꼴은 볼 수 없어 한국을 떠난다.) 등의 행적을 보면 그 시대의 다른 작가들보다 훨씬 강렬한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나 싶다가도, 끝내, 그가 말한 ‘딸에게 읽히고 싶은 소설’로 들어오면 무너져 내린다.
그의 문체는 단아하게 섬세하고, 그의 사유는 투명하게 맑다. 그야말로 사춘기의 여고생들이 열광할 법한 문체. 그 아름다운 문체가 통속적인 이야기들을 통속적이지 않게 바꾸어 놓는다. 경희대 국문과 출신-황순원의 제자- 답다.
소설의 내용은 간단하다.
여고시절의 친구인 재희와 서하가 한 남자로 얽히는 이야기. 부자였던 재희와 가난했던 서하. 여고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을 하는 대신 서하가 일했던 조그만 회사 중앙건설의 사장 아드님 윤수. 윤수와 결혼하는 재희, 윤수의 아이를 낳는 서하. 젊은 나이에 암으로 죽어버리는 서하 그녀.
그야말로 70년대식 ‘미워도 다시 한 번’ 스토리 아닌가.
이것을 한수산은 섬세한 묘사와 재치 있는 말장난으로 특화(特化)시킨다. 문체와 디테일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