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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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 짜리 장편 소설의 최대 미덕은 아무래도 흡입력이라고 생각한다. 폭풍우 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소설의 이야기 그 자체에 푹 빠져서 정신없이 책을 읽고 나서 고개를 들어보면 네다섯 시간이 훌쩍 지났다는 것을 알았을 때에만 느낄 수 있는 어떤 만족감 같은 것.

이 책은 바로 그러한 만족감을 준다.

인도 폰디체리에 사는 신을 사랑하는 소년 파이가 캐나다로 이민을 가는 도중에 배가 난파하여 호랑이랑 단 둘이 표류하게 되는 이야기 그 자체도 재미있지만 파이가 아직 인도에 살던 시절 힌두교와 이슬람교 기독교 이 세가지 종류의 종교 모두에 깊게 빠져들어 진심으로 신을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 그것도 재미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우 유머러스한 문체를 가지고 있다. 읽는 내내 낄낄 소리내며 웃었으니까.

16살 된 소년과 뱅골 호랑이 한 마리가 폭이 5미터쯤 되는 배를 타고 227일간 태평양을 표류하게 되는 이야기. 호랑이는 소년의 도움으로 연명하고 소년은 호랑이로 인해 삶의 의지를 얻는다. 결국 "절망은 호랑이보다 훨씬 무서운 것" 이니까 말이다.

읽는 내내 16살 소년의 순수함 때문에, 야생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동물원 출신의 뱅골 호랑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물이기에 순수 할 수 밖에 없는 그들 때문에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문체에 키들키들 웃으면서도 가슴 한켠이 아릿했다.

읽고 나선 황당하게도, 나는 신을 얼만큼이나 순수하게 사랑하고 있을까? 라는 질문을 나에게 던지게 되던 소설.

정말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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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펭귄클래식 50
제인 오스틴 지음, 김정아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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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새로운 소설을 읽고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된다는 것은 또다른 새로운 세계에 접하는 일이다. 책은 책이 없었다면 결코 알지 못했을 새로운 세계들을 내게 보여준다. 나는 책을 통해 신석기 이전의 세계들을 체험하며 중세와 섭정 시대의 유럽을 본다. 조선시대의 의식주를 보고 휴머노이드와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미래를 본다. 작가의 상상력 또는 복원력은 이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것들 중의 하나다. 그리고 기록과 재현 능력 또한.

이 소설은 상상력과 복원력에 의한 소설이라기 보다는 기록과 재현능력에 의한 소설이다. 제인 오스틴이 작가 본인이 살아가던 시대의 특성과 체험을 생생하게 기록해 현대에 재현해 낸다. 체험만이 가지고 올 수 있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소설이다.

사실, "오만과 편견" 이라는 소설 제목만 가지고는 뭔가 심오한 철학을 담은 소설이라는 "편견"을 가지기에 충분하다. 사실 이 제목은 작가의 주제 의식을 함축하는 동시에, 두 남녀 주인공의 성격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단어이기도 하다. 제인 오스틴의 또 다른 소설 『분별력과 감수성 Sense and Sensibility』가 분별력이 뛰어난 앨리너와 감수성이 풍부한 마리앤 자매의 이야기인 것처럼. 결국 이 제목은 작가의 또다른 소설 『엠마 Emma』의 제목과도 일맥상통한다. 주인공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낸 제목을 쓰는 것과 이름 그 자체를 제목으로 쓰는 것은 제목에 주제의식을 담느냐 아니냐 정도의 차이를 가질 뿐 동일 선상에 방법 같다. 아마도, 제인 오스틴은 이런 식의 제목 붙이기를 좋아했던 모양이다. 그녀가 마흔 한살에 죽었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선함과 악함" 등의 제목이 붙은 소설이 줄줄이 나오지 않았을까.

이 소설은 오만(해 보이는)한 남자주인공 "피츠월리엄 다아시" 씨와 남자주인공에 대한 편견에 빠져 그의 진실을 알아보지 못하는 여자주인공 "엘리자베스 베넷" 양의 알콩달콩 사랑이야기다. 거기에 곁다리로 끼어드는 둘의 어머니 베넷 부인의 이야기며 장황한 콜린스 씨의 편지와 인사는 빼놓을 수 없는 양념이다.

사실 현대의 로맨스 소설을 10권만 읽은 독자라면 이 책의 내용은 별스러울 것이 없다. 어쩌면 아주 진부한 이야기 일 수도 있겠다. 게다가 견문이 짧을 수 밖에 없었던 당시 여류작가의 특성일까, 특별한 경치 묘사도 없다. 그러니까 풍경화를 즐길 기회도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을 여타 로맨스 소설과는 다르게 만들어 주는 요소는 좀 과장되긴 했으나 인간의 심리에 대한 예리하고도 재기 넘치는 풍자(콜린스 씨의 장황하기 이를 데 없는 인사와 편지를 보라! 어찌 웃지 않을 수 있겠는가.)와 당시의 중류 사회의 생생한 생활상 묘사 등이다.

사실, 이 소설은 군데군데 헛점이 있다. 자신의 하인이나 친구에게는 그리도 칭송받는 다아시 씨의 성품이었지만, 초반부에 나오는 그의 모습은 오만하다못해 재수없기까지 하다. (엘리자베스가 치를 떨 만 하다.) 그랬던 그가 엘리자베스를 사랑하는 것까지는 그런대로 이해할 수 있으나 행동이 급선회 하는 것에 대한 설명은 충분치 못하다. 아니 행동이 급선회 했다기 보다, 초반부 네더필드 에서의 그의 행동이 왜 그랬는지에 대한 설명이 빠졌다. 펨벌리(다아시 씨의 본가)의 하녀장과 그의 소작농들에 대한 설명에 의하면 그는 온갖 선량함과 덕행의 표상같은 인물이었으니까. 마찬가지로, 그동안의 오만하기 그지없었던 행동이 펨벌리에서 엘리자베스를 만나면서 완전히 달라지는 것에 대한 설명 또한 충분하지 않다.

작가는 전지적 작가 시점을 견지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여주인공 엘리자베스의 심리만을 들여다 보고 있었던 셈이다. 다아시 씨에 비하여 엘리자베스의 심리변화는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오니까.

이런 허점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1700년대 말, 영국 중류층의 생활상과 그들의 심리, 그들의 오만과 그들의 편견을 생생하게 그려냄으로써 생명을 얻는다. 작가의 수다(물론 인물의 입을 통해 나오는 것이기는 했으나)가 이렇게 유쾌하게 느껴지는 소설도 오랜만이다. 로맨스 소설의 원전으로 꼽아도 전혀 지나치지 않다.

단순히 재미있다, 라고 말하기엔 넘치도록 유쾌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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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강 밤배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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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을 택하는 사람들의 유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 미안해 다. 최근 이은주의 유서에서도 다른 말은 흐릿한데 "엄마 미안해, 정말 미안해."라는 말만은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그 미안해라는 말은 살아남은 사람이 지고가야 할 고통에 대한 미안함이겠지.

이 책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고통에 관한 이야기이다. 밤에 하얀 강을 배를 타고 건너는 것 처럼 몽환적인 주술을 통하여 남은 사람들은 그 고통을 건너 새로운 생활을 영위할 힘을 얻는다.

그래서 이 소설은 참 다정하다. 감수성이 지나쳐서 때로는 질려버릴 듯했던 그 문체마저도 이 소설의 분위기와 이야기엔 절묘하게 어울려 실연한 사람에게 유행가 가사가 가장 큰 위로가 되는 것 같은 그런 효과를 낳는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 중에선 『키친』이후로 가장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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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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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과외했던 아이중에,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서 4년을 살고 온 아이가 있었다. 특별히 친한 아이는 아니어서 다른 생각은 별로 나지 않는데, 무슨 이야기 도중이었는지 "중국 사람은 식탁 빼곤 다 먹어요." 라는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아주 엽기적이라는 표정으로, 그럼에도 어느면 익숙해져 있다는 표정으로 해 준 이야기를 듣고 내 머릿속엔 의자를 들고 씹어먹는 중년 아저씨나 접시를 아그작 아그작 깨 먹는 아이가 떠올라 한동안 괴로웠었다.

몇천년을 이어온 도저한 문화의 힘이란 그런 것일까, 현대가 되어도 과거가 사라지지를 않는다. 현재와 과거의 교묘한 혼재가 현대의 중국이라고 하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중국 변방의 어딘가에서는 아직도 우죽우죽 피를 팔러가는 허삼관이 있을 것 같다.

이 이야기는 아주 코믹하다. 유쾌하다고 썼다가 얼른 우습고 코믹하다, 라고 바꾸었다. 유쾌,라는 말의 그 쾌 라는 단어에 포함된 산뜻한 느낌이 이 책에는 없다. 코믹하고 우스우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찡한 이야기다. 그게 피를 팔아서 만들어진 이야기일까.

주인공 허삼관은 인생의 고비마다 피를 팔아 그 고비를 넘긴다. 허옥란과 결혼을 하기 위해서도 피를 팔고(정확히는, 피를 판 돈이 생기자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고,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자 그제야 허옥란에 관한 생각을 한 것이다.) 자신을 오쟁이진 남편으로 만든 첫째 아들 일락을 위해서 또 피를 판다. 중국 공산 혁명과 문화 혁명기를 넘기면서 허삼관의 피는 자신이 아닌 아이들을 위해 팔기 시작하고, 그 피를 판 돈으로 흉년에 자신의 아이인 이락과 삼락만을 데리고 국수를 먹으러 가면서 그 국수값의 1/3에 해당하는 돈을 일락에게 쥐어주며, "너는 내 친아들이 아니니 내 피를 판 돈으로 산 국수를 먹일 수는 없다."라고 말하는 모습에서도 미워지지가 않는다. 더구나, 끝내는 일락이를 업고 국수를 먹으러 가지 않는가.

아버지 허삼관에게서도 친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홀대를 받고 다들 친 아버지라 이야기 하는 하우량에게서는 아들로서 인정도 받지 못하는 일락은, 그러나 "네가 친아들이었다면 너를 가장 사랑했을 거야."라는 허삼관의 말에 행복하다. 허삼관도 그러하기에 행복하다.

간염에 걸려 병원에 입원한 일락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진창길을 걸어 사흘 또는 닷새마다 피를 파는 허삼관의 모습은 코믹하면서도 찡하다.

작가 위화는 이 모든 이야기들을 심리묘사를 하나도 하지 않고 대화와 서술만으로 처리해 낸다. 심리묘사가 없는 소설임에도 그 어떤 심리묘사보다도 훨씬 절절하게 그 심리가 가슴에 와 닿는다. 오히려 심리에 대한 이해의 폭을 작가가 제한하지 않음으로써 더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해 놓은 장치다.

정말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다. 중국 특유의 능청스러움이 곳곳에 배어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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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이어령 지음 / 문학사상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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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령샌님의 그 예리한 명문을 좋아한다. 박학다식함과 다양한 관심사에서 흘러나오는 그 눈부신 레토릭에는 60년대의 그 사람들이 그랬듯 나 역시 찬사를 아니바칠 수는 없다. 뛰어난 작가라는 데는 동의하지 못하나 뛰어난 문학 평론가, 문화 평론가라는 데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어령샌님은 확실히, 복잡한 현상들을 단순화 시키고, 그것들에서 공통점을 뽑아내어 화려한 비유를 구사해내는 데는 발군의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이야기들만을 가지고서도 그는 우리나라 최고의 석학, 천재라 칭하기 아깝지 않다. 그야말로 천재니까. 한 분야에 깊은 조예를 가진 사람도 천재이듯, 얕지만 그토록 다양한 방면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천재는 천재다. 곡학아세도 천재적으로 해 낸달까. 그래서 밉지가 않다.

한국 문화론의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이 책은, 두고두고 이어령 선생님을 찬양하는 소재로 쓰이면서 또한 공격하는 소재로 쓰였다. 지프차(서양문물)에 타고 바라본 동양, 이라는 소재의 한국문화를 비하하는 내용의 이 책은 한 시대(60년대)를 풍미한 베스트 셀러였고, 전쟁 직후의 참담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학과 엽전의식에 훌륭한 증거가 되었다. 게으름의 상징같은 장죽과, 허위의식의 상징인 갓, 무식함의 상징같은 한복 바지, 관광을 하러가서는 도시락만 까먹고 오는 무지. 그것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은 독자들의 가슴에 깊이 박혔다. 그리고 80년대를 넘어서면서 이어령이라는 한 사람을 공격하는 재료가 되었다. 당신은, 그렇게도 한국 문화를 비하했던 사람이 아닌가, 당신이 과연 한국의 석학이라 칭해져도 좋은 일인가.

가끔. 선생님의 옆에서 선생님을 뵈올때면, 그 순진함에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사람을 기함시킬만큼 순진하기만 한 면이 있는 우리 선생님은 순진한 만큼 솔직하고, 솔직한 만큼 꾸밈이 없다. 그리고 이 책에서도 그분의 그러한 솔직함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20대의 중반을 지나면서, 전쟁직후의 한국, 그 참담함 속에 써 내려갔던 이 책을 70세 기념 전집의 첫번째 책으로 내 놓으면서도 어령 샌님은 자신의 잘못과 판단 미스를 숨기거나 꾸미려고 하지 않았다. 게으름의 상징이었던 장죽을 노인 우대와 과학적인 산물로 다시 묘사하고, 허위의식의 상징이었던 갓을 아름다운 것, 우리 민족이 멋있는 민족이었음의 증거로서 내 놓고, 무식함의 상징같았던 한복 바지의 그 넓은 허리를 넉넉한 포용력으로, 관광을 하러 가서는 도시락만 먹고오는 무지를, "먹는" 행위를 통하여 외부의 세계조차 나의 내면으로 받아들이려 하는 훌륭한 예술 정신인 것으로 묘사해 내면서, 어령 샌님은 솔직하고 순수하게 말한다.

그 책을 쓰던 40년 전의 나는 어렸고, 당시의 한국은 지독한 가난과 배고품으로 움츠러 들고 있던 땅이었느라고. 나는 그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무언가 따끔한 일침을 가하여 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기를 바랬노라고. 그래서, 그때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노라고, 그게 틀린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고.

그 솔직함이, 그 순수함이 의외로 가슴을 울렸다. 자신이 했던 말을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존심 때문이든 무엇 때문이든간에 그대로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틀린 것을 틀렸다고 지적할 줄도 알고, 그것을 바꿀 줄도 아는 그 당당함이 멋있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생각의 깊이가 깊어지고 폭이 넓어지면서 무언가에 대한 판단은 얼마든지 바뀐다. 그 바뀌어가는 모습조차도 긍정하는 눈으로 볼 수 있게 해 주는 책. 

난 어령 샌님이 참 좋다. ^______________^

ps. 이 책의 문장들은 사실, 어령샌님 특유의 눈부신 레토릭이 별로 없다. ^^;;; 레토릭을 기대한다면 『말로 찾는 열두 달』을 읽어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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