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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 공지영 에세이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2월
평점 :
난 공지영이 글을 참 잘 쓴다고 생각한다. 그 글의 내용이 어떠하고 그 글의 가치가 어떠하고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어떤 스킬로서, 속된말로 하는 글빨로서, 그녀는 쉽게 잘 읽히는 글을 쓴다. 나는 그런 면에서 그녀가 괜찮은 작가라기 보다는 돈 값을 하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원래 뭐, 돈이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너는 나보다 이걸 더 잘하니까, 내가 돈을 주고 너의 그 스킬을 사겠다. 그런 차원에서 생각하면, 글쓰기에 관한한 꽤나 고급한 스킬을 가지고 있으므로 돈 주고 사는 것이 별로 아깝지 않다. 아아, 내용에 관한 이야기는 차치해 두자니까.
음, 난 잘 몰랐는데, 공지영에게 태클거는 사람들이 되게 많은가보다. 난 진짜로 잘 몰랐는데, 공지영 소설이며 에세이 몇권 읽고 나니까, 인제 막 잘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람들이 공지영에게 되게 태클많이 거나보다. 그렇게. 그리고 공지영은 사람들이 자기한테 태클거는게 너무너무 억울한가보다. 책마다 안나오는데가 없네?
사실 전작 <즐거운 나의 집> 읽으면서도 사실 이 장면에서 빵 터졌었다. (아마 작가도 웃으라고 쓴 장면 같으니까 막 웃어주기로 했다.)
"야! 너....... 반말하지 말라고 했잖아. 그리고 그래! 나 이뻐! 얼굴도 매꼬롬해. 근데 너는? 너! 못생겼으면 아무 말이나 해도 되는 거야? 못생기면 다야?"
공지영, <즐거운 나의 집>, 푸른 숲, 2008, p.120
우와, 우하하, 이거 뭐야, 이거 이거 뭐야, 우하하, 이거 왜 이래?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이거 자전적 소설 아냐? 우하하하하하하, 완전 배를 잡고 데굴데굴 굴렀는데, 이 책에선 서문에서부터 빵빵 터졌다.
가끔 어딜가서 밥이라도 먹을라치면 처음 만난 분들이 약간 놀라면서 "어머 공지영 씨, 정말 소탈하고 재미있는 분이군요?" 하곤 했다. 나로 말하자면, "저 원래 그런데요. 어릴때부터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p.5)
그러니까 작가는 지금 본인 입으로, 나 소탈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야. 라는 말을 하고 있는 거잖아. 그것도 무려,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말을 해 준다는 엄청난 위세를 등에 업고. 못살아 못살아. 자뻑도 이쯤되면 너무너무 귀여워서, 응응, 그래, 당신 사실은 되게 소탈하고 재미있는 사람인데 주변에서 너 이쁘다고 괜히 태클걸고 괴롭혀서 힘들지? 라고 토닥토닥해주고 싶어진달까.
예전에 김별아의 에세이집 <식구>를 읽다가 거기에 나온 엄청난 작가로서의 자의식에 뭔가 기묘하게 존경(오해마시라, 작가 정신에 대한 존경이 아니고, 나 작가요 하는 자의식에 대해서니까.)같은 걸 느낀적이 있는데(지금도 말하지만 그 글의 포스는 엄청났다. 흠. 생각난 김에 옮겨볼까.)
그럼 도대체 내가 집에서 하는 일들은 다 무언데? 식사 준비, 빨래, 청소, 장보기, 공과금 처리, 친족 관리, 거기다 아이의 양육에 관한 일 전부를 패키지로 하고 있는데, 그리고 남는 '여가'에 내 인생 전부를 쏟아 부어도 모자랄 소설을 쓰느라고 맨땅에 헤딩을하고 있는데,
김별아, <식구>, 베텔스만, 2005, p.40
내가 느낀 것과 같은 포스를 느끼신 분 또 없으신가. 하여간 뭔가 그 기묘한 엇박자의 느낌은 느낌인데, 딱히 뭐라고 말을 해줄수도 없고, 그냥 아아, 그렇군요. 하고 인정하게 만드는. 아, 이 단어 이상하게 일본풍의 냄새가 나서 쓰기가 싫었는데 여기엔 가장 합당한 단어같다. 말 그대로 엄청난 박력이 느껴진다.
흠. 딴소리가 길었다.
난 개인적으로 작가의 에세이집도 무척 좋아하는 편인데, 어떤 작품이 나오게 된 배경이랄까 그런 것들을 살짝 엿보는 듯한 느낌도 들고, 작가를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기분도 되고, 그런 에세이집을 읽고나면 아무래도 작품에 대한 이해도 좀 더 깊어지는 경향이 있고 해서, 게다가 글 잘 쓰는 사람이 쓰는 에세이는 그 자체로 재미있으니까, 대부분 찾아서라도 읽는 편이다.
이 책은 소설가 공지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녀의 주변에 모여 말 그대로 사소한 것들에 대해 수다를 떠는 재미를 느끼게해 주는 책이었다. 다만, 글 전체에서 풍겨나오는 그 기묘한 포스에 대해서 아무렇지도 않게(가능하면 그 포스를 느끼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재미있게 읽어질 법하다.
공지영은, 그간 내가 너무 진지한 글들을 써 와서 사람들이 날 너무 무게감 있게 보는데 사실은 나 유쾌한 사람이야, 라는 말을 하고 싶어한 것 같은데, 읽는 내내, 음, 전제도 결과물도 다 인정은 못하겠지만, 여튼 글은 재미있고, 잘 썼다 싶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예전 소설들에서 보아온 공지영을 확인한 느낌이었달까.
음. 이러나 저러나 재미있는 에세이라는 사실만은. 서문에서부터 그랬듯, 읽는 내내 빵빵 터진다. 여러가지 의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