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판타지
김별아 지음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가족은 나에게, 또 누구에게나 태생적 트라우마다. 선택할 수 없었던 나의 가족. 내 부모님과 형제들이 나라는 인간을 선택할 수 없었듯(그들은 고작 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 정도를 선택할 수 있었을 뿐이다.) 나 역시 그들을 선택할 수 없었다.

내 부모님은 선량한 분이셨고, 평범한 분이셨고, 누구나가 다 그러하듯 여러가지의 장점과 더불어 여러가지의 약점도 겸비하신 분이셨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본래 그러하여서 나 역시 약점을 발견하는데에는 천리안보다 더 밝은 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장점은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그들의 장점은 당연한 것이되고, 단점은 너무도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하여, 나의 사춘기는 고민과 미움으로 얼룩져 넘어갔다.

사랑도 미움도 본시 그것을 받는 사람보다 그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더욱 괴롭히는 법이라, 나는 가족에 대한 애증으로 괴로웠다. 미워하되 마음껏 미워할 수 없었고, 사랑하되 온 마음을 다하여 사랑할 수도 없었다. 사랑과 미움이 엉망으로 혼재된 나의 마음은 나를 잡아 뜯고, 내 주변의 사람들을 괴롭혔다. 사랑하여서 미웠고, 미워서 사랑하였다. 그들이 가진 단점이 나를 괴롭게 만들었고, 그 단점을 가진 사람이 나의 가족이기에 더욱 괴로웠다.

때때로. 멀리 떨어져서 보면 본질이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멀리서 보면, 그가 가진 장점과 단점이 여실히 드러나게 된다. 그리하여 단점은 단점으로 인정하고 포용할 수 있게 되고, 장점은 장점으로 인정하며 사랑할 수 있게 된다. 가족간 문제해결의 첫걸음은 어쩌면 한걸음 떨어져서 바라보는 그것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족관계의 이야기를 다룬 수많은 책을 읽으면서 결국 내가 배운 것은 그것이었다. 그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에 내 가족의 이야기를 환치시켜 놓고, 남의 이야기를 읽듯 내 가족들의 내면을 읽었다. 타인의 내면을 짚어내고, 그들을 이해하는데는 그리도 너그럽고 유연하였던 내가, 어찌하여 가장 너그럽고 유연한 자세를 지녀야 했을 내 가족의 문제에는 그리도 각박하고 모질게 굴었던 것인가.

이 책은, 가족관계의 이야기를 다루는 책으로서는 그다지 썩 좋은 책은 아니다. 작가 김별아의 시선은 아직도 설익었고, 그녀의 이해도는 그다지 깊지 못하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가진 시선과 가장 닮아있는지도 모르겠다. 해서 지금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책인지도. 필요한 책이었지만 도움이 되는 책은 아니다. 그저 내가 지금 서 있는 위치만을 선명하게 밝혀줄 뿐, 그 위치에 도움이 될만한 조언은 없다. 그러나 막상, 그 때문에, 이 책은 도움이 된다. 그야말로 그녀의 책에 등장하는 말 "액티브 리스닝"에 해당하는 책이랄까.

가족은 결국, 누구에게나 태생적 트라우마, 태어나면서부터 지고 갔어야 할 까다로운 숙제, 평생동안 풀어나가야 할 이야기.

김별아는 어느정도는 독선적이면서, 어느정도는 잘난 여자의 시선으로, 아직은 설익은 깊이로 그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나쁘지 않았다.

내 가족들을, 더 많이 사랑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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