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좌파 -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 강남 좌파 1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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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너는 좌파냐? 라고 묻는다면 나는 고개를 갸우뚱 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좌파인가?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은, 한총련이 마지막 불꽃을 장렬하게도 피워올리던 시기였다. 개인적으로, 한총련은 96년 연대사태를 마지막으로 하향길을 걸었다고 생각한다. 한총련이 잘못해서 하향길을 걸었다기보다는, 시대가 바뀌었다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내가 대학을 들어갈 때는 한국 경제 역시 마지막 불꽃을 피워 올리고 있었고, 대학 3학년 가을에 IMF가 터지면서 대학생들의 패러다임자체가 바뀌었으니까. 


하여튼, 그 한총련이 마지막 불꽃을 피워올리던 그 시점에, 나는 그 흔해빠진 가투 한번 나가지 않았던 새침때기 여대생이었다. 새침하고 해맑은 얼굴로 그들과 나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부끄럽지만 1997년 대선때 나는 아버지의 명에 따라 이회창에게 표를 던졌고, 2002년 대선때는 어령샌님의 조언에 따라 또! 이회창에게 표를 던졌다. 슬프고도 부끄러운 과거다. 그때부터였나보다. 내가 표를 준 후보는 단 한번도 대통령이 되지 못하는 징크스 같은 게 생긴 게. 젠장. 내 표는 단 한번도 대통령을 만들지 못했다. (이 징크스 때문에 2012년 대선 투표때 얼마나 망설였는지는 어리석지만 나에게는 진지한 고민이었다.) 그런 나를 정치로 눈 돌리게 한 것이 노짱 탄핵사건이었다. 그때는 주로 교보문고 앞에서 촛불 집회를 했다. 나의 첫번째 가투(?)는 교보문고 앞 촛불집회였다. 


그때부터 시작된 나의 '빠'질 역사는 유구하다. 노빠를 거쳐 유빠로 이어지고 곧 문빠에 안(철수)빠에 안(희정)빠 까지 이어졌다. 나는 정절강한 여인이므로 한번 빠질을 시작한 상대는 그 사랑을 거두지 않는바, 내 사랑의 목록은 점점 길어지고 있으되 부끄럽지 않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노짱의 탄핵사건으로 노짱에 대한 나의 사랑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사랑에 대한 역설이다. 


이놈의 책 덕후는 빠질도 책으로 시작한다. 


그때부터 우리집 책장에는 정치 경제 관련 항목이 생겨났다. 유시민의 책들을 콜렉팅하기 시작했고, 노무현 문재인의 책들에 각종 좌파(?) 정치 경제인의 책들이 줄을 이어 들어왔다.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의 자서전을 읽었다. 오바마에 노암 촘스키에 수전 손택과 하워드 진이 끼어들었다. 김어준과 이상호, 주진우의 책들도 어깨를 나란히하며 꽂혔다. 그 책들은 서재가 아닌 거실의 책장에 포진했고, 가장 당황한 사람들은 다름아닌 남편의 친구들이었다. 


경상도에서 나고 자라 날고 기는 대학을 나와 이런 저런 대기업에 다니는 그것들은, 그 책들의 목록이 나의 것이 아닌 남편의 것으로 오해했고 당황해 했다. (뭐, 굳이 따지자면 충무공이 내 책장에서 유일하게 스스로 책을 뽑아 읽는 것이 그 섹션이긴 하다.) 남편은 평소 정치색이 매우 희박하다. 굳이 따지면 "쏘세지보단 햄이 낫다. 둘다 난 안 먹지만." 수준이랄까. 


아이들이 초등 고학년이 되어가고부터 다들 주거지 고민을 시작했다. 만나서 하는 이야기는 대부분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이사의 시기라든가, 이사할 지역이라든가, 사교육의 문제라든가 아이들이 다니는 영어 어학원 이야기, 수학은 과외가 나을까 학원이 나을까. 결국 결론은 강남으로 이어졌다. 다들 조심스럽게 강남 진입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었고, 그건 충무공과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 나에게 남편의 친구가 강하게 태클을 걸었다. 좌파가 왜 강남을 가려 하느냐고. 


아니. 좌파는 강남을 가면 안되나? 왜 좌파는 가난해야 하는데? 라는 질문이 읽고 덮어두었던 이 책을 다시 펼쳐들게 만들었던 시작점이었다. 


좌파가 되기 위해서 가난해져야 한다... 라고 말한다면 나는 좌파질을 지속할 자신이 없다. 나는 내 스스로가 좌파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노무현을 좋아하고 유시민을 좋아하고 문재인을 지지하고 박원순과 안희정을 지지하는 것이 곧 좌파라면, 그래. 나는 좌파가 맞다 치자. 그렇다고 그들을 지지하기 위해 내가 강남을 가서는 안되고, 내 아이들의 사교육을 해서는 안되고, 아이들이 좋은 학벌을 가지게 하고 싶어하지 않아야 한다면 나의 좌파질은 지속될 수가 없다. 나는 좌파이기 이전에 뼛속까지 속물이니까. 


말을 뒤집어보자. 내가 노무현과 문재인과 유시민 등등으로 대변되는 그 집단을 지지 하지 않는다해도 적어도 나는 박근혜나 이명박이 속해있는 그 집단을 지지하지는 못하겠다. 그것은 "대학나온 배운 녀자" 로서의 나의 자존심 문제다. 남편의 친구가 자신은 박정희와 박근혜를 인정하고 지지한다는 말에 내 입에서 튀어나온 첫마디는 '아니 대학 나온 사람이 왜 그래요?' 였고, 그 말은 그대로 그 사람을 자극했다. 10년이 넘는 친분관계 안에서 처음으로 피튀기는 정치 설전이 오고갔고, 나는 어영부영 "아 몰라몰라 난 노빠 유빠 문빠아아아아아 할 테니 그대는 박근혜 인정하시구랴. 끝." 하고 논쟁을 끝내버렸다. 화장실에서 뒤 안닦고 나온 기분이긴 했으나 어쩔수가 없었다. 그와 나는 평소, "흥남부두 남매" 라며 서로를 지칭하고 놀았던 사이였으니(전생에 남매였다가 6.25때 흥남부두에서 헤어진 사이라고~ 남편과 그의 아내는 우릴 흥남부두 남매 또는 국제시장 남매라고 놀렸다. 게을러 터지고 이기적인-_-;;; 면이 남매라고 하지 않을수 없을만큼 꼭 닮았다고. 욕도 혼자 먹는 거 보다는 둘이 먹는게 좀 낫더라.) 이런 논쟁으로 사이가 싸해 지느니 내가 아무 생각없는 아줌마 빠순이 되는 편을 택한거였다. 


하여튼. 울 나라에서 젤로 좋다는 대학을 나온 그 사람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업적으로 잘먹고 잘살고 있으면서 그들을 욕하는 너 그럼 북한으로 가야지" 라니. 아니. 님하. 아니. 님하. 너 그 대학 나와서 그딴 말을 하면 안되지, 님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우리 오빠가 흥남부두 시절엔 안 그랬는데 환생해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입매.......


똥누고 뒤 안닦은 기분으로 그 논쟁에서 도망쳐 온 나는 책을 펼쳐들며 씩씩거렸다. 그래 나는 강남 좌파다 어쩔테냐. 강남 살면 좌파하면 안 되냐. 강남 가고 싶어하면서 좌파하면 안 되냐. 내가 정치를 할 것도 아닌데 좌파 코스프레라도 안하는 것보다는 하는게 낫지 않나.


이것이 나의 변명이다. 지속 가능한 좌파질을 하기 위하여 나는 나의 속물성과 타협한다. 그게 나쁜가? 그건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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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조새 파킹하는 소리.


어느날 뜬금없이 프리즌 브레이크가 보고 싶더라. 이 미드의 고전중의 고전 명작중의 명작(시즌 2까지만)을 처음접한 건 2008년이었다. 회사의 누군가에게 이 드라마가 들어있는 외장하드를 받아 온 충무공은 만사를 작파하고 정신없이 보고 있었다. 그때 나는 둘째를 임신중이었고, 첫째를 돌보느라 정신 없을 때라 오며 가며 충무공이 보는 걸 같이 보다 말다 했었다. 그때는 이게 뭐가 그리 재미있나, 그저 주인공 남자는 참도 잘생겼구나. 하고 말았는데 그때로부터 다시 7년이 지난 지금, 그해에 태어난 둘째놈이 초등학교를 들어가고도 2달이 지나 문득 그 드라마가 보고 싶어졌다. 고민할 게 뭐 있나. p2p 사이트에서 프리즌 브레이크 시즌 4개, 총 81편을 다운로드 받았다. 

그리고... 한 열흘 미쳤다. 하하하하하하. 

요즘 프리즌 브레이크 보고 있어, 했더니 누군가 그러더라. 

"시조새 파킹하는 소리 하고 앉아 있네."

그 시조새, 방금 파킹 끝내고 시동 껐다. ^_^


2. 그를 왜 죽여야만 했을까?


문득문득 느끼는 거지만, 미국은 슈퍼 히어로를 참 좋아한다. 영화도 그렇고, 드라마도 그렇고, 소설이나 뭐든지. 프리즌 브레이크의 슈퍼 히어로는 주인공 마이클 스코필드다. 배트맨 같은 엄청난 재력도 없고, 슈퍼맨 같이 하늘을 나는 것도 아니고 헐크같은 근육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 남자는 완벽한 외모와 측량할 수 없는 지능으로 슈퍼 히어로의 역할을 수행한다. 

뇌가 섹시한 남자를 좋아하는 나는 그에게 열광했지만 시즌 3에 들어가면서 부터는 좀 짜증이 났다. 이것드라~ 니들 뇌는 장식이냐? 스스로 생각 좀 해, 석호필한테 그만 물어봐!!! 싶었달까. 

그는 그의 뇌를, 그의 능력을 이용하고 싶어 하는 사람에 의해 끝도 없이 끌려다닌다. 시즌 1에서 정말 탈옥시키고 싶지 않았던 테오도르 백웰과 같은 인물도 어쩔수 없이 탈옥을 시켜놓고, 그가 저지르는 죄들에 대해 연대의 책임을 느끼는 섬세한 감성과 정의감을 가진 이 남자는, 그러나 연인과 조카를 구하기 위해 누군지도 모를 남자를 또다시 탈옥시켜야 한다. 

시즌 3에서 마이클은 굳이 제임스 휘슬러에 대해 알아보려 하지 않는다. 알아보려 했다면 얼마든지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주변에 굴러다니는 흔한 정보와 정보원들을 그는 애써 외면한다. 아마도 모르고 싶었을 거다. 거대악 집단 '컴퍼니'에서 구해내고 싶어하는 남자가 좋은 사람일 리가 없다. 백웰의 탈옥을 도운 것과 같은 일은 또 하고 싶지 않지만 그를 구하지 않으면 연인과 조카를 구하지 못한다. 내가 그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같은 지점이다. 정의고 나발이고 내 연인이 먼저~ 라는 바로 그 지점. 

시즌 1,2 에서부터 사람들은 마이클만 쳐다본다. 그의 입이 열려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린다. 이제 뭘 할까? 마이클? 이쪽으로 갈까? 저쪽으로 갈까? 죽을까? 살까? 숨을 쉴까? 말까?..... 시즌 1,2까지는 사람들의 그런 면이 이해되고 수긍이 간다. 그가 모두 준비한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시즌 3가 되면, 이 근육맨 형이 말이지,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동생한데 물으러 온다. 마이클, 뭘 할까? 아... 놔.... 생각 좀 하세요... 스스로도. 마이클의 옆에 있으면 사람들은 점점 생각하는 법을 잊게 되는 것 같다. 

그는 그래서 죽어야만 했을 거다. 그가 살아 있는 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의 능력을 이용하기 위해 그의 주변 사람들을 괴롭힐 테니까. 그의 죽음이 그의 가족과 연인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 된다. 그가 죽는다는 결말을 알고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지만 그렇지 않았다해도, 시즌 3쯤 가면 그의 죽음을 예감하게 된달까. 이 똘똘한 남자는 뇌종양을 스스로 발생시켜서라도 죽었을 거다, 아마. 


3. 난 스트레이트가 좋은데.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은 뭔가, 음, 매우 전형적인 미남이다.... 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 말의 뒤에 근데 왜 충무공과 결혼을 했니? 라는 질문이 붙었던 건 슬픈 비밀이다. ㅠ.ㅠ)

내가 좋아하는 얼굴은 리키 마틴이다. 그는 대놓고 게이다. (그래도 대리모를 통해 그 아름다운 유전자를 지구에 남겨준 건 참으로 고맙구려, 마틴씨. 헐헐.) 이 라인에 웬트워스 밀러를 추가한다. (밀러씨, 마틴한테 가서 대리모 섭외 방법이라도 물어 봐. 좀좀. 지구 미모의 평균을 높여보자고.)

한국 배우중에는 차승원과 이민호가 좋다. 난 느끼한 외모가 좋드라. 

뭐, 뭐가 되었건 예쁜 걸 보는 건 좋으니까. 차승원은 이제 좀 늙었지만 과거 그의 미모와 기럭지는 과연 발군이었다. 아하하하하하.

아참. 조지 클루니도 무진장 좋아한다. 여자랑 결혼해 줘서 감사해요~ 조지.


4. 충고는 듣는 편이 좋다.


프리즌 브레이크를 보기 시작했을 때 누군가의 짧은 글을 읽었다.

뒷편이 궁금해 보는 것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하루에 한편만 보세요. 안 그러면 후회하실 겁니다. 라는.

그게 무슨 소릴까 했다. 열흘도 안되는 시간동안 프리즌 브레이크를 다 보고 나니 그 말이 확 와 닿더라. 후회된다. 하루 한편만 볼 걸. 

예전에 미드 로스트가 한참 인기있을 때, 그런 말이 유행했다. '로스트 안 본 뇌 삽니다.' 또는 '로스트를 아직 보지 않은 당신이 부럽습니다.' 아아. 그 말이 이렇게 절실하게 이해 될 줄이야.

"프리즌 브레이크 안 본 뇌 삽니다." 


5. 잘생긴 남자가 나오는 또 다른 미드 추천 받아용~ 반드시 주인공이 "잘!" 생겨야 합니다!!! 막 셜록 이런거 추천하면서 보다보면 쥔공이 잘생겨 보여요~ 이런말 하면 미워할 겁니다. 진짜예용~ 프리즌 브레이크 보는 내내 드라마 스토리를 따라가는 즐거움이 절반이면 석호필 얼굴보는 즐거움이 나머지 절반이었다. 시즌이 점점 진행될수록 그의 얼굴과 몸이 후덕해 지는 걸 보는 건 좀 슬펐지만. 어이 밀러씨, 거 다이어트 좀 하지? 웨이트도 좀 하고. 응?


6. 습관


예전에 말이지, 내가 드라마를 무진장 좋아하면서,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이유는 매일 또는 매주 같은 시간에 드라마를 보기 위해 동일한 시간에 TV 앞에 앉아 있는 것이 싫어서라고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는데, 요즘은 VOD 덕분에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만큼 드라마를 볼 수 있게 되어 이제는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다는 말을 못하겠다. ㅎㅎㅎ 이건 자카르타 시절 생긴 버릇이다. 거기서는 선택의 여지 없이 드라마는 VOD로 봐야 했으니까. 재미있을 것 같은 드라마가 나오면 아껴뒀다가 완결까지 난 다음 한방에 확 땡겨 보는, 요 재미 아주 쏠쏠하다. 

그래도 프리즌 브레이크는... ㅠ.ㅠ 여전히 저는 프리즌 브레이크 안 본 뇌를 사고 있습니다. 네네.로스트 안 본 뇌 가지고 있으니 교환 가능합니다. ^________________^


7. 슬슬 돌아가야지.


그래, 이제 슬슬 돌아올 때가 됐다. 일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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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5-05-03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시마님, 왜 이리 뜸하셨나 했더니 석호필에게 가 있으셨던 거군요. 둘째가 벌써 초등학교를!! 조지클루니 부인은 조지클루니 답더라고요. 잘 살 것 같아요. 마치 아는 사람처럼 ㅋㅋ저는 아직 프리즌 브레이크 안 본 뇌입니다.

아시마 2015-05-18 18:47   좋아요 0 | URL
ㅎㅎㅎ 석호필을 거쳐 장그래하고도 다시한번 인사하고 왔어요.

미생도 참 잘 만든 드라마예요. ㅎㅎ 직장 생활을 안해본 저로서는 판타지 읽듯 읽었던 만화라 드라마도 재미있더군요.

조지 클루니 옹은 잘 살겠지요. 그분 와이프가 우리랑 동갑이던데. 그분도 그 잘난 유전자 얼른 남겨주셔야죠. 아. 난 이런거만 관심있어. ㅎㅎㅎ 둘이 닮은 사람들이 잘 산다니 잘 살겠죠 뭐. ㅎㅎㅎ 나도 막 친구인 척.

프리즌 브레이크를 아직 안 본 뇌라니, 부럽습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15-05-03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듯 올듯 안오셨던 아시마님. 한 번 글 툭, 던져놓고 또 오래 안오시고.. 이젠 자주 오시는겁니까? 네?

아시마 2015-05-18 18:48   좋아요 0 | URL
자주 올 겁니다, 네네네네네. ^^

요새는 커뮤니티에서 노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ㅎㅎㅎㅎ
 

1. 폴라북스의 이벤트에 당첨되었다.


충무공의 회사에서는 자기 개발비라는 명목으로 연간 일정금액을 지원해 주는데, 그 돈은 책 구입이라든가, 기타 등등의 항목으로 쓸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알라딘에 충무공의 계정을 만들어 두고 종종 충무공 계정으로 책을 구입한다. 얼마전 다락방의 꽃들도 그 돈으로 구입을 했다. 거 참, 회사에 제목을 제출하기는 참 거시기 한 책이었는데 말이다. 흠흠. (애들 동화책이나 학습지, 문제집은 못산다 또.)

그 폴라북스에서 다락방의 꽃들을 구입하면, 추첨으로 뭔가를 주는 이벤트를 진행했던 모양이다. 내가 기억할 리는 없고. 여튼, 아이폰에 충무공의 아이디로 로그인을 해 놓은 걸 그대로 뒀던터라, 알라딘에 접속하니 공지가 떴다. 나 폴라북스의 이벤트에 당첨되어 무려 열권의 책을 받게 되었단다, 올레~!

당첨자에게 이미 개별 공지가 갔을 거라길래, 충무공에게 물었더니 시크하게 대답해 주신다. 

'스팸인지 알았지.'

헐.


2. 해인이가 입학을 했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 초딩 둘을 둔 엄마~


3. 영동대교를 아시나요?


지난 여름에 귀국하여 작년 하반기 6개월동안, 나는 일주일에 사흘, 하루에 영동대교 두번 넘어다니는 여자였다. 다인의 영어학원 때문에. 헐헐.

그리고 올 3월부터 나는 일주일에 이틀, 하루에 영동대교 여섯번 넘는 여자가 되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ㅠ.ㅠ


4. 식기세척기


나는 사람들을 불러서 밥 해 먹이는 것을 즐긴다. 예정되어 있던 손님이나 예정되어 있지 않은 손님이나 언제 어느 타임에 찾아와도 어떻게든 한상 차려서 먹일 수 있다. 문제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집안일이 설거지라는 거지;;;;;;;;;;;;;;

내가 대학에 다닐때, 친정에는 무려 여덟명의 식구가 바글바글 모여 살았다. 결혼해서 애 낳은 언니가 육아 문제로 친정에 합가해 살 고 있을 때였다. 엄청난 설거지 양에, 엄마는 언니에게도 설거지를 할 것을 종용했지만, 언니는 엄마에게 그때 막 일반에게 퍼져 상용화되기 시작하던 식기 세척기를 사다 안겼다. 동양매직 거였다. 서너번 사용해 본 엄마는 곧 그 식기세척기를 마른 식재료 보관함으로 활용하기 시작했고, 훗날 분가하면서 그 식기세척기는 언니의 집으로 이사를 가 여전히 식재료 보관함으로 활동하셨다. 훗.

자카르타에 가기 직전 1년간 살았던 아파트에는 식기세척기가 빌트인으로 딸려있었다. 엄마의 본을 받아 당면 미역 등을 보관하는 용도로 잘 썼다. 음하하하하하하...

자카르타에서는 설거지를 해 주는 메이드가 있었고, 

귀국해서 한동안 설거지를 열심히 했는데, 책 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손목이 나갔다(어디로?). 원래 갓난 애기를 키우는 엄마들이 손목이 나간다는데, 나는 애 키우는 내내 손목 통증을 겪은 적이 없었다. 무려 천기저귀를 써서 애들을 키웠음에도! 그러다 이 집에와서 책을 꽂다가 손목의 고질적인 통증을 겪게 된 것이다. ㅎㅎ 사서 일을 하고 있는 동서를 둔 언니의 표현에 의하면, 도서관 사서의 고질적인 직업병이라나. 

손목은 나을 듯 나을 듯 낫지 않았다. 쓰지 않으면 괜찮다가 좀 과한 설거지를 한 날이면 또 파스를 붙이고, 집안 손걸레질을 좀 거하게 한 날 또 파스를 찾았다. 아너스 물걸레 청소기를 샀고,

드디어 빌트인 된 식기세척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오. 이거슨 신세계~!

도대체, 이 좋은 것을 나는 왜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것인가. 왜 얘를 식재료 보관함으로 전락시켰던 것인가. 식기 세척기가 중간에 고장나 사흘간 사용하지 못하던 동안, 충무공과 아이들은 나의 눈치를 봤다. 멘붕도 그런 멘붕이 또 있을까. 부엌이 엉망진창. 대체, 식기세척기가 없는 동안엔 밥을 어떻게 해 먹었던 것인가 싶을 정도였다. 우리 어머니 세대에서 세탁기가 상용화되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도 이랬겠지. 후후.


5. 그릇


나는 꽤 오랜 자취 생활 이후 결혼을 했기에 혼수 장만을 할 때 부엌살림을 따로 사지 않았다. 쓰던 그릇들을 그냥 이고 지고 가서 살림을 했다. 보다 못한 엄마가 한식기 10인조를 사주신게 전부였다. 짝도 안맞는 그릇들을 오래도 썼다. 

인도네시아에는 각종 도자기 회사의 공장이 있다. 덕분에 거기서는 몇몇 명품 브랜드의 그릇을 싸게 살 수 있었다. 로스트란트 몬아미나 스웨디시 그레이스, 웨지우드와 로얄알버트를 막컵으로 쓰는 이것이 리얼 럭셔뤼~! 그릇을 후질러서 친정이며 친구며 닥치는대로 나눠줬는데도 그릇은 많~이 남았다. 여전히 많~이. 더구나 내가 귀국하기 직전 인도네시아의 한국도자기 공장에서 창고 물품을 대 방출하는 세일을 했다. 내 한식기를 모두 바꾸는 것으로도 모자라, 언니의 한식기를 죄다 바꿔주었고, 엄마의 오래된 살림도 교체했다. 

남들은 김치냉장고를 넣는 자리에 그릇장을 짜넣었다. 엄마는 질색을 했지만, 10년 전 혼수로 샀던 양문형 디오스 냉장고를 자카르타에 버리고 한국와서 새로 양문형 냉장고를 샀는데, 외부는 똑같은데 내부가 광활하게 넓었다. 뭐가 끝도 없이 들어가는데 김치냉장고까지야 필요있나. 그릇장을 짜 넣어 그릇을 차곡차곡 챙겨넣었다. 

자카르타에서 컨테이너가 도착해, 짐을 정리해 넣을 때, 부엌일을 도와주러 오신 이삿짐 센터의 아주머니에게 제가 그릇이 좀 많아요. 했더니 네~ 건성으로 대답하시다가 나중에는 잔소리를 하시더라. 싸다고 이렇게 많이 사오면 어째요....;;;; 네네네. 그거 세 집으로 나눠 갈 그릇이었답니다. 

자카르타에서 짐이 오고 난 다음에 그릇을 죄다 풀어 상태를 확인하고, 다시 뽁뽁이를 구입해 그릇을 포장해서 화물택배를 불러 열박스 넘는 그릇을 창원으로 보내고도, 추석에 내려갈 때 또 그릇을 둘둘 말아 여기저기 갖다 앵기고, 1월에 친정 식구들이 집들이겸 놀러와 또 한박스 분량의 그릇을 싸가지고 가고 그리고도 남아서 설에 또 시댁에 갈 그릇을 포장하고 있었더니 충무공이 묻더라. 도대체 그릇을 얼마나 사 온거냐고. 근엄한 표정으로 대답해 주었다.


'첩에게는 아직도 열두개의 그릇이 남아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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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5-03-09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도 식기세척기를 미역과 파스타 면 등을 넣어놓는 용도로 사용 중이랍니다.

이사하시느라 고생하셨네요, 해외에서 오랫동안 사셨으니 큰 이사였겠어요. 그래도 귀국하신 것 축하드려요, 영동대교 6번씩 왔다갔다 하는 것이 만만치는 않아 보이는데... ^^ 이사, 저도 책 때문에 엄두가 안나요, 정리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뭐라 하실까 싶어서요. ㅋㅋ

아시마 2015-03-09 14:41   좋아요 0 | URL
ㅎㅎㅎ 식기 세척기는 초기 진입장벽이 좀 높은 가전 같아요. 근데 써 보면 세탁기 없이는 못사는 것과 비슷하게 될지도 ㅎㅎ
저는 책... 이삿짐 센터 분들이 정리 하겠다는 거 못하게 했어요. 책이 좀 많았어야죠. 책장도 미처 못 산 상태였고요. 처음엔 넣을 수 있는데까진 넣어드리겠다 하던 분들이 끝도 없이 나오는 책박스에 질려 그냥 서재 한가운데 책박스들 다 쌓아두고 그냥 가셨어요. 그거 혼자 정리 하느라 손목이 맛이 갔지요 ㅋ

붉은돼지 2015-03-09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벤트 당첨 축하드려요^^
저도 몇년 전에 이벤트에 당첨되어 타셴 화가시리즈 10권 받았는데 기분 좋드라구요ㅋㅋ 그 뒤론 감감 무소식 ㅠㅠ
 
홍차, 느리게 매혹되다
최예선 지음 / 모요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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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일회(一期一會)라는 말이있다. 일본에서 주로 쓰는 말인데, 한국어로 말을 하자면 일생에 단 한번의 만남 쯤으로 해석될 수 있겠다. 정확히는 일본의 다도에서, 어떤 만남이든 일생의 단 한번 뿐인 기회로 여기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이란다. 일본인들은 사람과의 만남에서 이 말을 주로 쓴다. 


나에게 차와의 일기일회는 1999년 12월, 아니면 2000년 1월쯤이다. 그 겨울의 첫폭설(첫눈이 아니다)이 내린 날이었다. 내 기억에 서울에 그런식의 폭설이 내리기 시작한 건 그 겨울부터였다. 눈이 드문 고장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그때까지 눈이란 드물고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그야말로 백설이 난분분(亂紛紛) 하던 그날 오후, 나는 선생님댁의 거실에 있었다. 넓고 잘 가꾸어진 정원에 고즈넉히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선생님과 나는 재스민차를 마셨다. 기가막힌 맛이었다. 그날의 드문드문했던 대화도 기억나지만 더 명확하게 기억나는 건 아름답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재스민의 향기와 입술에 와 닿던 찻물의 온기다. 눈 내리는 날, 창밖으로 그 풍경을 바라보며 따스하고 안락한 거실에서 마시는 차라니. 지금 생각해도 꿈결같다. 일기일회. 그 날 그 시간, 그 장소, 그리고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맛. 그 뒤 내가 마시는 모든 차는 그날의 오마쥬다.


거기서 시작한 나의 차 사랑은 처음엔 녹차였다. 5년간의 해외생활을 끝내고 돌아오니 없어져 버린 인사동 쌍계제다가 나의 단골 차가게였다. 그 겨울 이후 거기서 매년 햇차를 샀다. 곡우 이전에 따는 우전과 우전 다음에 나오는 작설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차였다. 쌍계차(화개차)는 같은 지리산에서 나는 보성차와는 맛이 달랐다. 좀 더 섬세한 맛이랄까. 


한국의 녹차를 구하기 힘들어지자 허브차로 넘어갔다. 온갖 허브를 두루 섭렵한 뒤 도착한 곳에 홍차가 있었다. 잉글리시 블랙퍼스트, 얼그레이, 다즐링.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홍차는 다즐링이다. 가향홍차중에는 유일하게 얼그레이만 좋아한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나는 남들이 술을 찾을 때 차를 찾았고, 남들이 맛있는 술을 찾아 이것저것 품목을 바꿔가며 마실 때 맛있는 차를 찾아 이것저것 품목을 바꿔가며 마셨다. 한때 나의 혈관에는 피대신 녹차와 커피, 홍차가 흘렀다.


당연히(나에게는 이게 당연한 일) 차와 커피에 대한 책도 섭렵했다. 괜찮은 책도 있고 그저그런 책도 있었다. 사실은, 그저그런 시시한 책이 더 많았다. 이 책도 차에 관련된 책들을 사 들일 때 함께 쓸려들어 온 책이었다. 시시한 몇몇 책들을 읽다가 이 책도 그저그렇겠거니 젖혀놓은 책인데, 아이허브 홍차 관련 검색을 하다 걸려든 한 블로그의 글이 인연이 되어 꺼내 읽었다. 그런데 호오- 이거 꽤 괜찮다. 


작가 최예선은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잡지사 에디터로 일을 했다. 즉, 글 쓰기 훈련이 되어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내용과 정보의 정확성에도 불구하고 글쓰기 훈련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전문가의 책들은 얼마나 나를 지루하게 만들었던가. 그 지루한 책들 속에서 이 책은 반짝반짝 빛이난다. 차에 대한 정보와 역사적인 사실을 제대로 썩 잘 버무려서 재미있는 글을 썼다. 프랑스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작가는 차와 예술을 잘 접목시켜 그저 그런 찻집 탐방기와는 전혀 다른 글이 나온다. 


작가의 차와의 일기일회는 어느해 여름 고창 선운사에서 였다. 무더운 한낮 선운사 문턱에 다다른 작가는 대웅전 옆의 자그마한 다실에서 차를 마신다. 그 무더운 날에 뜨거운 차를.


이 무더운 날에 뜨거운 차가 웬 말이냐 싶었지만, 뜨거운 물이 차를 만들어내는 2,3분의 시간이 흐르면서 세상의 더위가 한풀 꺾이고 짜증스런 마음도 서서히 풀어졌다.

.....

차를 마신 후에는 다음에 마실 사람을 위해 정갈하게 차 도구들을 헹구고 정돈해두었다. 뒷자리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조심조심 걸어 나오니 뜨거운 햇살이 어느덧 살며시 누그러져 있었다. 산을 내려가는 발길에 힘이 생겼다. 

차가 주는 치유의 힘은 이런 것이리라. 사람을 좀 더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것. 세상을 좀 더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 그리하여 미약한 인간의 힘으로도 충분히 세상을 견뎌낼 수 있게 하는 것.

p.30


아름다운 책이었다. 읽는 내내 그녀가 소개하는 홍차들을 맛보고 싶어졌다. 비록, 가향홍차는 별로고, 그녀가 무척 좋아한다는 시나몬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향신료중 하나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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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하나씩 버리기 - 아무것도 못 버리는 여자의 365일 1일 1폐 프로젝트
선현경 지음 / 예담 / 2014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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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무슨 이유로 코스트코에 가는 지(또는 가지 않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코스트코가 나의 선택을 대행해주기 때문에 간다. 코스트코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그다지 많지 않다. 예를 들어 화장실용 두루말이 티슈는 딱 두 종류, 탁상용 각티슈는 딱 한 종류, 키친 타올도 딱 두 종류 있다. 필요하면 고르는 과정은 생략한 채 있는 것들 중 하나를 그냥 집어들고 오면 된다. 고민의 과정이 생략되는 쇼핑은 심심한듯 하지만 코스트코는 그 외의 것으로 그 심심함을 채워준다. 일반마트에는 잘 없는 물건들, 게다가 갈 때마다 구성품목이 조금씩 바뀐다. 지난 크리스마스 전엔 있었던 커트러리 세트가 지금은 없는 식이다. 그러니까 매번, 코스트코가 이번엔 무슨 새로운 물건을 골라가지고 왔나, 보는 재미가 또 쏠쏠하다. 마치, 친구의 장바구니를 들여다보는 재미랄까.


내가 물건 고르는 걸 싫어하느냐고? 음, 싫어한다고도 좋아한다고도 말을 할 수 있겠다. 물건에 정을 잘 붙이는 나는, 새로운 물건을 들이기 까지가 힘들다. 올 여름 귀국을 해서, 각종 살림살이를 새로이 구비해야 할 것이 많았는데, 욕실의 비누갑이며 양치컵, 칫솔 홀더 등의 세트를 구매하는데 장장 3주가 걸렸고(안 가 본 온라인 쇼핑몰이 없다.), 집안에 놓아두고 쓸 쓰레기통을 고르는데는 닷새가 걸렸다. 이쯤되면 결정장애다. 그냥 목적에 맞는 적당한 물건을 사서 들여놓는 것을 잘하지를 못한다. 만약 그냥 샀다면 볼 때마다 고민을 한다. 내가 이거 잘 산 거 맞나? 더 좋은 물건이 있지 않았을까? 정이 붙지 않는 물건은 볼 때마다 미워지고, 미움에도 멀쩡한 물건을 버리지는 못하여 볼 때마다 괴롭다. (내가 이런 괴로움을 주변에 호소했더니 누구도 동조해주지 않았다. 그야말로 '도랏멘?' 하는 표정으로 쳐다봤을 뿐. ㅠ.ㅠ)


그래서 웬만하면 집안에 물건을 들이지 않는다. 물건에 집착하는 성격이어서. 그럼 우리집이 콘도 수준으로 깨끗해야 할 텐데 전혀 그렇지는 않다. 물건은 굳이 내가 들여놓지 않아도 얼마든지 쌓인다. 5년간의 해외생활동안 언니는 우리에게 줄 물건을 집안의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가 귀국과 동시에 대방출을 해 주었다. 대단히 감사하지만, 감사는 감사고 이렇게 난감할데가. 내 아이와 열살 가까이 차이나는 조카들의 물건을 내 아이를 생각해 소중히 보관해 준 그 마음은 감사하고, 모든 물건이 다 멀쩡하다. 특히 조카들이 쓰던 가방들만 열개가 넘게 왔는데, 이쯤되면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 내내 가방을 사지 않아도 될 정도다. 그런데...... 내 마음에 딱 차게 드는 가방이 하나도 없다. 이런 사태를 어찌하리요. 이쯤되면 고민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멀쩡한 가방이 열개가 넘는데 또 가방을 사야하나? 사자니 멀쩡한 가방들을 쳐다보게되어 민망하고 안사자니 마음이 찝찝하고 ... 작은 놈 입학을 핑계로 하나 사? 큰놈도 입학때 가방 사 줬는데. 그래도 그땐 정말 가방이 없었잖아? 이렇게 멀쩡한 것들을 두고 또 사?


이 고민을 미친듯이 하고 있을 때 마침 이 책에 눈에 띄었다. 


화가이자 동화작가 선현경은 만화가이자 에세이스트 이우일의 아내다. 이우일은 <콜렉터>를 쓴 사람이다. -한 웃기는 만화가의 즐거운 잉여수집생활-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책이다. 이 책을 한국으로 돌아온 직후에 읽었는데(2014. 7. 30) 읽는 내내 야~ 이 사람 와이프는 정말 괴롭겠다 중얼거렸더니 웬걸, <콜렉터>가 출간된지 2년 반 정도 지나자 그의 와이프가 책을 냈다. 제목하여 <날마다 하나씩 버리기>다. 


이우일의 수집품목은 다양하다. 똑딱이 카메라에서부터 홍보용 엽서, 책 띠지(아놔, 이걸 왜?), 각종 스티커(9살 내 딸의 취미다), 옷에 붙어있던 태그(헐...) 낙서된 포스트잇(이거야 화가니까 낙서도 예술이니 모을만 하겠다.), 심지어 도끼까지 모으고 있단다. LP, CD, DVD, 비디오 테이프, 책들은 뭐 말할 것도 없고. 이쯤되면 집이 집이 아니라 고물상 처럼 보일게다. 그런 이우일의 말에 따르면, 아내 선현경도 만만치 않게 레고와 플라스틱 반지를 좋아했다. 


이 두 사람이 부부로 만나 살아가니 참 볼만 했던 모양인지 작가의 친구가 '너희 집 식구들이 꼭 봐야 한다면서 다큐멘터리 한 편을 추천'한다. 그 다큐멘터리가 "죽어도 못 버리는 사람들, 호더" 였단다. 작가는 그 다큐멘터리에 충격을 받아 6년동안 살아온 집안의 물건을 적어도 하루에 하나씩이라도 내다버리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다. 그 1년간의 기록이 이 책이다. 


악세사리며 옷이며 양말에 팬티를 줄기차게 버리는 내내 작가도 끊임없이 다짐한다. 책은 버리지 않는다고. 아니, 다짐할 것도 없이 책을 버릴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는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비록 그 책들이 두겹으로 꽂혀있어, 딸이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싶어하자 집안 어딘가에 분명 있다는 걸 알면서도 새로 사 주기는 하지만. 난 원래 책 말고는 소유의 욕심이 딱히 있지 않아서 버릴 것도 별로 없다............. 라고 써 놓고 반성하는 중이다. 지금 집에는 버릴 게 없는 게 맞다. 지난 여름 근 5년간의 자카르타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하는 길에 주변에 나눠 줄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나누어 주고 버릴 것은 거의 다 버리고 왔으니. 입지도 않는 옷이며 쓰지도 않는 악세사리를 어쩌자고 그렇게 끼고 살았던 것일까. 게다가 책은...... 끝내 자카르타에서 정리를 하지 못하고 이고 지고 온 애들의 그림책이 얼마나 많은지. <달님안녕>이며 <사과가 쿵> 이며 그 몇 권의 책은 펼때마다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라 차마 남을 주지 못한다고 버티다 버티다 눈 질끈 감고 다른 책들과 함께 이웃 아이에게 넘겼다. 그야말로 눈물과 함께. 우리 아이들이 정말 너무너무 잘 본 책이야 제발 아껴줘~ 온갖 부연 설명을 다 해가며. 


그래서 안다, 이 작가가 물건을 왜 버리지 못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려야 한다는 마음도 이해하고 버리다보면 버리는 일에도 무언가 익숙해지면서 버리는 일의 상쾌함도 이해한다. 물건에 정을 붙이는 성격이라는 말이 반가웠다. 그래, 나같은 사람이 그렇게 드문 것만은 아니라니까.


그렇게 해외 이사를 하면서 반 강제로 버리고 비움을 당하고 났더니 버리고 비우는 일의 즐거움도 깨닫게 된다. 1일1폐를 일년간 해 본 작가도, 이제는 버리고 비우는 일들에 좀 더 익숙해졌기를, 더 나아가, 그분의 남편도 좀 ㅎㅎㅎㅎㅎㅎ


요즘은 종종, 지구에 대한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예전에는 무심코 하라니까 했던 분리수거라면, 요즘은 지구 환경에 대한 생각으로 아주 철저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식으로. 그리고 내가 가진 멀쩡하지만 쓰지 않는 물건들을 자꾸자꾸 주변에 나눠주려 애쓰는 중이다. 가장 최근에 나누어 준 건 아이폰용 이어폰. 그리고 멀쩡하게 서랍속에 잠들어 있는 아이폰 4 흰색을 깨워서 누군가 필요한 사람에게 주어야 할 텐데, 차마 나눠주지를 못하고 있다. 사실 지구를 생각한다면 서랍속 아이폰 4를 정리할 게 아니라, 멀쩡한 아이폰 5를 6+로 갈아타는 일부터 안해야 할 텐데 말이다. 나란 인간은 어째 이모양인지. 


어쨌든. 예전엔 무언가를 아낀다는 게 나 개인적인 차원의 알뜰함 정도로 이해되었다면 요즘은 좀 더 대승적 차원으로 받아들여진다. 자원을 아끼고 지구를 아끼고. 재미있는 건, 이렇게 무거운(?) 생각을 하면할 수록 삶은 점점 가볍고 단순해져 간다는 거다. 나도 아직 이렇게까지 말할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하여간, <콜렉터>라는 책까지 써 내며 온갖 잡동사니 수집을 하고 있는 남자와 한 집에 사는 여자가 <날마다 하나씩 버리기>라는 책을 들고 오다니 이 또한 재미있다. 


두권을 이어서 읽어보면 더 재미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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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2-01 0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재밌게 읽었어요!!! 아시마님 작년에 돌아오셨구나!! 작년엔 저도 정신없이 살았던지라 알라딘에 통 오지 못했어요~~~~^^;; 반갑네요~~~. 친구 신청도 고맙고요~~^^ 근데 저와 많이 비슷하세요!! 읽으면서 오잉?? 자꾸 이랬다니까요!!ㅎㅎㅎㅎㅎ 저도 이우일의 콜렉터 재밌었는데 사실 전 아내되는 선 현경씨가 더 좋아요. 그림도 그렇고(비밀)ㅎㅎㅎ 이 책 읽고 싶어요. 저도 하나씩 버리고 살아야겠다는 결심. (이러면서 하나 버리고 하나 사오게 될까봐 두렵긴 하;;;)

아시마 2015-02-05 16:19   좋아요 0 | URL
전 이우일이 더 좋아요. ㅎㅎㅎ 선현경은 좋은 책을 많이 쓰고, 제가 좋아하는 시인이자 수필가 황인숙 선생님하고도 친하지만요.

한국와서 제일 좋은 건 내가 보고 싶은 책을 그날 주문해 그날 받아볼 수 있다는 거요.
정말 최고예요. ㅎㅎㅎ

cyan 2015-02-01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들어 조금씩 정리하고 버려야지...를 다짐하면서도 알라딘 장바구니를 그득 채우는 저를 생각하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하루 하나 버리기를 위해 이 책을 사야할까요? ㅋㅋㅋ 이런 아이러니가 일요일 아침을 더욱 여유롭게 만들어주네요. 재미있는 글 감사합니다^^

아시마 2015-02-05 16:19   좋아요 0 | URL
인생의 아이러니죠. 버리기 위해 버리기에 관한 책을 산다는 건.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blanca 2015-02-01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앙. 아시마님 찌찌뿡. 넘 신기해요. 나 지금 이 책 읽고 있는데. 아시마님이랑 저는 겹치는 부분이 넘 많아서. 깜짝 깜짝 놀라요. 이우일 씨는 컬렉터라는 책을 썼군요. 아, 잼있네요. 이건 마치 차승원이랑 유해진이 잘 맞는 것과 비슷한 걸까요 ㅋㅋ

아시마 2015-02-05 16:22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 차승원을 무지 좋아하는지라 ㅎㅎㅎㅎ 유해진이랑 같이 있으면 그 잘생김이 더욱 돋보인다는. ㅋ 유해진도 좋아하는 배우지만 으하하하, 난 인물 좋은 남자가 좋드라~

저도 가끔 블랑카님과 저의 관심사가 비슷해서 놀라요. ㅎㅎㅎㅎㅎㅎ 직접 만나보고 싶을 때가 있죠. 언제 한번 뵈요. ㅎㅎㅎ 나 혼자 죽을 순 없다 심리로 둘째 권한다고 그랬는데, 어때요? 블랑카님도 주변 외동 엄마들에게 나 혼자 죽을 순 없다, 심리가 되시나요? ㅎㅎㅎㅎㅎㅎㅎ

조선인 2015-02-02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우일, 선현경 부부 책은 기꺼이 읽는 편인데, 이 책도 보관함에 담아야겠어요.

아시마 2015-02-05 16:23   좋아요 0 | URL
음, 부부가 작가이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서로서로 인기도 경쟁도 할까요? 판매부수 경쟁도 하고?

우리 부부는 꽤 닮았는데, 또 참 많이 달라서, 관심사나 취향이 비슷한 부부는 어떤기분일까 종종 궁금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