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곽재구의 신작 에세이집 <우리가 사랑한 1초들>을 읽었다. 판단은 일단 보류. 이 사람 글은 좋을 땐 참 좋은데, 음. 뭔가. 싶을 때가 있어서. 그래도 별 세개 반은 일단 주고. 

그 책에 그런 말이 나온다. 세상에서 네번째 아름다운 학교 라는. 정확한 문장을 옮겨보면 이렇다.  

이 학교는 지상에서 네번째 아름다운 학교입니다.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첫째와 둘째 셋째 학교를 알지 못합니다. 빠따바반이 지금까지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학교의 모습이지만 이보다 더 아름다운 학교가 이 세상 어딘가에 세개쯤은 더 있어도 좋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곽재구, <우리가 사랑한 1초들>, 톨, 2011, p. 47  

요즘 나는 남편과 곧잘 페이스 타임으로 노는데, 약간 사오정끼가 있는 이분(실제 신체검사에서 청력 약화 소견이 나왔음!)에게는 정말 딱 맞는 소통의 방법이 되셨다. 그 전까지 우리의 대화는 보통 거의 동일한 단어들을 사용하게 되는데, 대부분은 이러했다. 

"뭐해?"
"책 봐."
"무슨 책?"
"블라블라블라...(책제목, 또는 저자 이름 등등등)"
"뭐라고?"
"블라블라블라... 라고."
"몰라몰라몰라?"
"아니, 블라블라블라!"
"아, 울라울라울라... 무슨 책 제목이 그러냐?"
"울라울라울라 아니고 블라블라블라아아아아!!!"
"니가 아까는 줄라줄라줄라 라며."
"됐어! 이 사오정!!" 

요즘은, 똑같은 질문에 그냥 화면으로 비춰준다. 그럼 그나마 노안은 안 오신 이분, 책 제목이랑 저자명이랑 잘 읽어주신다. 그러고는 묻는다. 

"무슨 책인데?
"뭐 이러쿵저러쿵 하는 책이야."
 

그럼 반드시 하시는 말. "무슨 그런 책을 읽냐." -_-;;; 

이번에 읽던 책은 다이애너 개벌든의 <아웃랜더>와 <호박속의 잠자리> 7권을 사흘간 달렸다. 2004년에 마지막으로 읽고 덮어뒀다가 다시 꺼내 읽었는데 여전히 완전 재미있음. 역시나 남편님하와 같은 질문을 반복한 끝에, 

"내 인생의 10대 소설 안에 들어가는 책이라 할 수 있지." 

라는 말을 무심코 덧붙였더니 그런 말 절대 놓치지 않는 이분, 바로 질문한다. 

"그 10대 소설에 들어가는 다른 책은 뭔데?" 

그래서 꼽아본 내 인생의 10대 소설들. 

 

이런 이야기 나올 때마다 영원한 1순위. 

토지.  

p.s 문득 자랑질. 나 토지 1번에 박경리 선생님 저자 싸인 받아놨다아아아아!!! 

 

 

빠질 수 없는 2순위  

빨간머리 앤.  

빨간머리 앤이랑 토지는 내가 몇번이나 읽었을까 곰곰 생각중. 각각 10번은 넘지 않았을까? 뭐가 날 이리 매료시킨 걸까.  

p.s. 문득 추가, 앤 번역 판본 모으고 있음. 

그리고 이번엔, 

 

 

 

박완서 선생님의 책은, 음, 뭔가를 딱 하나 찝어서 말을 할 수는 없고, 그냥, 박완서 선생님의 책들, 이라고 넣어줘야 할 것 같은. 

이래서 목록은 무한대로 길어지고 있음. 이건 뭔가 반칙같지만, 뭐 어쩌라고, 어느 한권을 뽑아낼 수가 없는데. 3순위에 놓는 것도 이건 뭔가 아닌듯. 에세이를 뺀 것도 죄송스러움. 내 인생관 사고관 가치관에 너무나 지대한 영향을 주신 분이신 관계로다.

 

 

 

드디어 나온 단행본. 이 책 이후로 김훈 선생은 많은 글들을 써 냈지만 여전히 이 책의 아우라를 벗어나지 못하셨다는 느낌. 

p.s. 나 또 자랑질. 이 책이 동인문학상을 타기 직전 2001년 생각의 나무에서 은빛 장정으로 나온 적이 있다는. 그 책 되게 예쁜데, 나 가지고 있다눈!!!  

 

그리고, 5,6,7,8,9는 여전히 블랭크인 상태로. 

다이애너 개벌든의 <아웃랜더>랑 <호박속의 잠자리>(둘다 아웃랜더 시리즈.) 

이 책은 나에게 영어공부에 대한 열망... 이라기 보다는 어쩔수 없는 필요성을 자극하는 책.  

현대 문화센터가 다음 시리즈들을 번역해 주기만을 정말 간절히 바라고 있건만... 

2006년에 출간되리라던 시리즈 3편 번역본은 여전히 감감 무소식임. 현대 문화센터는 각성하라! 

음, 그리고 순위 외지만 11번쯤엔. 

<앰버 연대기> 넣어주겠음. 

 

 

 

ps. 문득, 

서재 식구님들, 잘 계셨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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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1-09-15 0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 인생의 10대 소설이라... 재밌어요.

아시마 2011-09-16 16:44   좋아요 1 | URL
ㅎㅎㅎ 이런 줄세우기 좋아하는 저는 .... 좀 쫌스럽고 많이 촌스럽고 꽤나 편협하지요.ㅎㅎㅎ 그러나, 이런 줄세우기, 재미있죠?

다락방 2011-09-15 09: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시마님! 왜이렇게 오랜만에 오셨어요.
저 이 페이퍼 클릭하기 전에 막 두근두근 했거든요. 뭐가 있을까, 나랑 겹치는게 있을까, 하면서 말이지요. 그런데 한권도 겹치지 않아서 좀 놀랐어요. 생각해보니 아시마님은 주로 국내소설을 애정하시고 저는 번역소설을 애정하지요. 겹칠 이유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저도 [토지]는 좋았어요. 한번 밖에 읽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아시마님도 아웃랜더 읽으셨군요! ㅎㅎ 젊은 청년 제이미 ㅎㅎㅎ
좀 자주 오셔서 글 좀 써주세요, 아시마님!! 네?!!(안그러면 즐찾 빼버릴거에욧! 흥!)

아시마 2011-09-16 16:52   좋아요 1 | URL
젊은 청년 제이미는 겨우 23살. 그러나 최고의 남주여요.

즐찾 빼신다는 말은.... 열심히 써 보렵니다 ㅎㅎㅎ 잘좀.

Ps. 또 문득 자랑질, 저 지금 아이 패드로 서재질 중!!!

blanca 2011-09-16 0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저도 모르게 기다렸나 봐요. 아시마님의 강추 리뷰를 읽고 <토지>를 읽은 게 올해의 유일한 의미 있닌 일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칼의 노래>의 아시마님 평에 동의해요. 얼마전 이런 생각도 했어요. 김훈에게 이순신이 임해서 ^^;; 김훈이 받아 쓴 것 같다고.

아시마 2011-09-16 16:53   좋아요 1 | URL
김훈이 이순신에게 임햤단 말엔 저도 격하게 공감가요.
 
소년을 위로해줘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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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살부터 29살까지, 꼬박 4년간, 나는 대여섯명의 소년들의 국어 선생님이었다. 우연히 시작된 중3, 16살 남자 아이 대여섯명의 그룹과외는 꾸준히 이어져 대학 입시를 마치고나서야 끝이났다. 열여섯살부터 열아홉살까지, 그 나이대의 소년들은 청년과 소년이 혼재된 상태로 한없는 예민함과 지독한 둔감함이 엉망으로 뒤엉켜 있었다.  

소년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은 흥미로웠다. 여자형제밖에 없는데다 여중 여고 출신인 나에게 그 전까지 소년이란, 내가 알지못하는사이 환상만을 잔뜩 가지게 된 괴 생명체와 비슷했다. 익스트림한 스포츠를 즐기고, 냄새를 잔뜩 풍기며, 말은 할 줄 아나 싶게 말을 안하고,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화를 내는 단순하기 그지 없는, 뭔가 인간 같기는 한데 동물 쪽에 더 가까워 보이는 뭐, 그런 존재였다. 나에게 그런 환상(?)을 가지게 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남자 형제를 가진 여중 여고 친구들의 하소연이었고.  

그러다 내가 만난 16살 소년 여섯은, 16살 나의 여중 3학년 시기와 별 다를 것 없는 아이들이었다. 상냥해 보이는 눈을 가진 아이도 있었고, 음침한 표정의 아이도 있었지만, 스물 여섯이 봐도 열여섯의 아이들은 그냥 아이였다, 사실은, 성별이 거세된 '아기'라는 느낌이 훨씬 강했다. (음, 동네 분위기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얌전한 아이들이기는 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열일곱살이 되면서 아이들은 혼란스러워했다. 자신이 남자라는 것, 그것도 여자와 대비되는 남자라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은 자신에게 무엇이 씌워지는지를 느끼는 듯 했다. 여자보다 용감해야 하고, 나중에 아내와 자식들을 부양해야 하니까 여자보다 공부도 잘 해야 했다. 혹시나 여자친구가 생기면 남자니까 당연히 돈도 많이 부담해야 하고, 혼자 돌아오는 밤길도 무섭지 않은 척 해야 했다. 무엇보다, 위로 따위는 필요없는, 씩씩하고 용감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렇게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은 그것자체로 짐이었다.  

한때 아기 같았던 그 아이들은 어느새 '가오'를 잡으면서 소년이 되어갔다. 공부를 잘하거나 못하거나 착하거나 아니거나 순진하거나 발랑까졌거나 다 상관없이 그 아이들을 설명할 수 있는 단 한단어가 '가오' 였다. 그놈의 '가오'는 Y유전자에 별책부록도 아닌 합본부록으로 딸려오는 모양이었다. 열일곱살인 그 애들은 스물일곱살인 내 앞에서도 가오를 잡고 싶어했다. 가오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그애들은 남자고 나는 여자니까.

   
 

-낸시 스미스라는 여자가 쓴 시에 이런 대목이 있어. 
재욱 형이 시를 읊기 시작했다.
-스스로는 강한데도 약한 척해야 하는 게 지겨운 여자가 한 명 있는 곳마다, 상처받기 쉽지만 강하게 보여야만 하는 게 피곤한 남자가 하나 있다. 항상 모든 걸 다 알아야 한다는 기대에 부담을 느끼는 소년 한 명이 있는 곳에, 자신의 지성을 믿어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지쳐버린 소녀가 하나 있다. 그리고.......
시는 술 한모금을 마신 뒤에 다시 이어졌다.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는 소리를 듣는게 지겨운 소녀 한 명마다, 자신의 연약하고 흐느끼는 듯한 감성을 숨겨야 하는 소년이 한 명 있다. 

-p. 341 

 
   

부들부들, 열일곱 소년이 잡는 가오는 뭔가 애처로운데가 있었다. 한순간에 무너져 버릴 게 뻔해서도 그랬고, 스스로가 자신의 가오에 확신을 갖지 못해서도 그랬고, 자신이 왜 가오를 잡아야 하는지를 확신하지 못해서도 그랬다. 그 가오에 속아주면 끝까지 가오를 잡아야 할 그애들의 어깨가 안타까웠고, 가오 그만 잡지, 좀? 이라고 그 어깨를 두드려 주려 하면 자존심을 송두리째 침해받은 듯 펄펄 뛰어 어려웠다. 가오를 건드리지 않으며 위로를 해 준다는 건 고난이도의 기술이 필요한 분야였다.  

그놈의 '가오'가 '갑빠'로 옮겨가면 그나마 다루기가 좀 낫더라는 게, 열여섯부터 열아홉까지, 그리고 다시, 그 아이들이 대학생과 군바리, 복학생이 되는 것을 간간히 지켜본 나의 경험담이고. 그리고, 올해 마흔을 찍으신 분을 데리고 살면서 보니 그놈의 '가오'는 평생을 잡고 사는, 몸 속에 y 유전자가 존재하는 한 계속 되는 것이더라는 거, 그리고, 가오를 잡는 한, 소년들은 죄다 위로가 필요하더라는 거. 그게 나의 결론이기도 하고. 

다시, 소년의 이야기와 이 소설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생각해보면, 청소년기의 우리가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가,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였다. 그리고 실제로 청소년기에 했던 대부분의 고민들을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정말 별 것도 아닌 것이었다. 그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아픔이었는데 어른이 된 지금 들여다보니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는 그런 고민들이었다. 그런 일들 하나하나에 그리 울고 웃었다니 정말 대단한 열정이었다고밖에.  

그런 대단한 열정에 감탄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 대단한 열정으로 했던 그 많은 고민들, 그것들이 얼마나 아프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또한 잊혀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아무리 하찮은 것들이었다고 해도, 당시의 나에게는 생사의 기로와 세상의 존폐위기와 맞먹는 것들이었던 것이지. 그것또한 진실.  

이 책은 그 하찮은 것들에 대한 소년들의 고민을 보여준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한낱 '가오'로 보일 뿐인 그것이 소년에게는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은희경은 놀랍도록 잘 그려낸다. 와. <새의 선물>에서의 진희와 이 소설 연우는 본질적으로 다른 인물로 느껴질 정도다. 은희경, 많이 컸구나!!!(이런 건방진 말이라니...;;;;) 

보너스 트랙은 없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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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3-07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종종 느끼는건데,
아이에게도, 같이 있는 어른에게도 가장 힘든 시기가 중학교 시기인 듯 해요.
남자아이들이 더 심하고, 여자아이들도 성격에 따라서는 참 어렵게 보내죠.
극과 극을 달리고... ^^

제 딸 코알라가 벌써 초등학교 5학년에 되면서, 참 생각이 많아요!

참...... 제가 아시마님의 전에 페이퍼를 보고 재봉이 너무 하고 싶어졌거든요.
그래서 요즘 배우면서, 재봉틀도 사고, 내친 김에 오버록 기계도 샀어요!
아시마님, 그때 그 페이퍼 다시 감사드려요!

아시마 2011-03-10 13:45   좋아요 0 | URL
헉, 오버록까지 사셨군요!
제가 저희 충무공에게 맨날, 누가 나한테 와서 "야옹아 '오바로꾸(오버록이라는 건 아실테고. ^^)' 사주께 따라가자." 그러면 냅다 따라갈거라고 협박질 중인 그 오버록! ㅠ.ㅠ 아아, 부럽슴다.

전 지금도 그렇지만, 중학교때는 많이 둔감하고 많이 예민한 아이여서, 혼자 힘들었어요. 엄마가 굉장히 둔한 성정이라 그게 오히려 도움이 되었던 것 같기도 하구요. 얼마전에 사춘기를 호되게 앓고 있는 옆집 애를 보고 혼자 에구... 너도 크느라 욕본다, 중얼중얼 했는데, 생각해보니 그애도 한국 학년으로는 중학생이네요. 전 중3-고2까지가 많이 힘들었던듯.

그나저나, 재봉틀은 뭐 사셨어요?

따라쟁이 2011-03-14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다보니 저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생각나네요. 남녀 공학이거든요. 네. 그녀석들도 가오를 잡으면서 이제 남자가 됐어요. 그래서 애처로울 때도 있어요. 최근에 한녀석 아버님이 장기 이식수술을 받으신 경우도 그랬고요. 일은 다 치루고 나서.. 그랬더라.. 하면서 지난간 옛이야기 하듯이 이야길 건내더라구요.
너는 결혼도 했고, 신경쓰게 하기 싫었다고 하면서.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내려놓지 못하는 그놈의 가오는... 어디에서 풀고 좀 쉴 수 있으려나..싶네요.

양철나무꾼 2011-03-19 0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고 아들이 중3이 되었죠.
전 이 책을 아줌마의 마음에서 읽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아직 아이가 소년의 한가운데 있지 않아서 비껴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요즘 이땅의 소년, 소녀들 좀 안됐어요.
성정을 발현할 시간 따윈 없으니까 말이죠~^^
 
신 기생뎐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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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05년이었는지, 2006년이었는지 그해의 동인문학상 후보작품 10편 중 하나였다. 그 시기에 나는, 문학상 수상작은 물론 후보작품들을 아주 열심히 독파해 나가던 중이었던 관계로 이 책도 읽었다. 열심히.  

이 책 읽고, 첫 생각은, 이런 작품까지 후보로 넣어주다니 동인상도 다 됐군, 이었다. -_-(아아, 난 요즘 리뷰가 거칠어지고 있다. ㅠ.ㅠ)  

기생이라니 누구나 혹할만한 소재다. 이 책의 작가는 나름대로는 자료 조사도 잘 했다. 자료조사는 잘 했는데, 그 자료를 자기 것으로 소화해 내지를 못했다. 자료와 이야기가 따로논다. 그건 이 책의 최대 단점이다. 작가가 자료를 자기 것으로 소화해 내지도, 그렇다고 버리지도 못한채 어정쩡하게, 그냥 머물러있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그대들이 하고 싶은 말을 놓치지 않고 쓰겠노라고"(p. 255)하더니 후반부로 갈수록 기생들이 하고 싶은 말을 받아 적느라 이야기는 난맥상이다.  

특히 <집사의 사랑>편에서 타박네의 기생들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호통을 치는 대목과, <서랍이 많은 사람> 부분에서 하루코의 난고촌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는 어이가 없을 정도다. 이거야, 소설을 쓰겠다는 거냐, 말겠다는 거냐. 이럴 거면 사료집을 편찬해야지.  

인물은 다들 전형적이고 평면적이다. 이것이 이 소설의 또다른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부엌어멈은 부엌어멈의 전형성을 획득하고 있을 뿐 어떤 개별성이 없다. 다른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이거야, 현대판 장화홍련인 것이다. 각 인물의 개연성도 필연성도 개별성도 없이, 각자의 포지션에서 각자의 역할에만 충실하다. 그러니까, 계모는 계모로서의 역할에, 의붓 언니는 의붓언니의 역할에, 구박받는 전처의 딸은 그 역할에만 충실한 것처럼, 그 외의 어떤 가능성도 없는 것처럼. 

소재는 독특하고 발상도 좋았는데,  

거기까지가 이 소설의 한계인 건가. 

ps. 아, 난 투덜이 스머프가 되어버리고 만 건지도.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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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오페르 2011-02-05 09: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같은 제목의 영화인가 드라마도 있지 않나요? 이게 원작인가...

아시마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곳에선 어떻게 설을 보내나 궁금하네요.ㅎ

아시마 2011-02-05 14:37   좋아요 1 | URL
영화는 2006년인가 만들어 진걸로 알고 있고, 최근에 임성한(막장 작가로 유명한 그 임성한이요. ㅎㅎㅎ)이 극본을 쓰는 드라마로 제작되어 방영되고 있죠. 서사는 영 볼품없는 소설인데(뭐, 전반적으로 별로예요) 막장으로 만들수 있는 요소가 몇가지 있는 소재라서, 임성한과 결합했으니 재미있을수도... 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러나 저러나 안볼테지만. ^^
잊고 있던 책인데, 알라딘에서 띄우길래 다시 꺼내 읽고 리뷰 써 봤어요. 처음 읽었을 때도, 이번에 읽을 때도 여엉, 별로예요. -_-;;;

여기는 뭐, 한국하고 비슷하게 설을 쇠요. 떡국 끓여먹고, 만두도 빚어 먹고. 저는 안빚었지만요. 주변에 만두 빚으신 분들이 나눠 주셔서 맛나게 먹었답니다. ^^
루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0^

따라쟁이 2011-02-09 2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드라마는 제법 재밌다고 하던데.. 그게 그러니까 막장요소 덕분인건가요?

리뷰는 참 신기해요. 책을 읽고 좋았다고들 하시면 오와.도대체 얼마나 좋길래? 하고 읽어보고 싶고, 이렇게 별로라고하시는 글을 읽으면 음.. 뭐가 얼마나 별로길래.. 하고 읽어 보고 싶어져요. ㅎㅎ


아시마 2011-03-10 13:46   좋아요 1 | URL
너무나 늦은 답글이지만;;;;; 떠비.

그게 그러니까, 제 생각에는 막장요소 때문인듯. 임성한이 워낙에 막장요소를 막장스럽게 잘 요리를 해 내는 작가니까, 그런 부분도 작용 하겠죠.

ㅎㅎㅎㅎㅎㅎ 저는 남들이 별로라는 책은 별로 안궁금하던데, 대신, 나는 재미있게 읽었는데 남들이 별로라고 하면, 나의 보는 눈을 의심하는 쪽이기는 합니다. ^^;;;
 
행복한 만찬 - 공선옥 음식 산문집
공선옥 지음 / 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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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 충무공은 종종, 회사를 그만 둔 뒤엔 뭘 해먹고 살까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데, 그때마다 빼놓지 않고 생각하는 업종이 <떡국장사>다. 명동 어딘가 쯤에(그러니까 말하자면 충무공의 회사 근처에) 작은 떡국집을 열어서 아침과 점심에는 '내가 끓인' 떡국을 팔고, 점심과 저녁에는 빨갛게 끓인 경상도 특유의 소고기 콩나물국을 끓여서 팔면 대박이 날거란다. 대박이야 나겠지만 남는 건 없을텐데.  

2. 충무공은 내가 끓인 떡국을 좋아하는데, 어느정도냐면, 어느해인가의 설날 아침 시댁에서 시어머니가 떡국을 끓이러 부엌으로 들어가자 부리나케 따라 들어가 "어머니, 떡국은 다인엄마더러 끓이라고 하세요." 라고 말을 할 정도다.(아들이란 키워봐야 다 이런다. 그래서 난 딸만 낳았다. 아, 참 잘했다. ^_______^) 우리 시어머니, 결혼하고 첫해 설날, 우리 아들들은 떡국을 싫어해, 라더니 웬걸 형님 말씀을 들어보니 아주버님도 충무공만큼이나 떡국을 좋아한단다. 그러니까 어머님의 아들 둘은 어머님의 떡국을 싫어했나보다.  피식.

3. 사실은 나도 친정엄마의 떡국을 싫어했다. 친정에서는 멸치다시물로 떡국물을 쓴다. 그나마도  어렸을때 설이라고 집에서 떡국을 먹은 기억은 별로 없고, 잘사는 외가집이나 가야 떡국을 먹을 수 있었다. 외숙모 떡국의 국물 베이스가 멸치였는지 소고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반드시 있었던 게 소고기를 볶아 만든 고명이었다. 어렸을 때는 국물에 풀어지는 그 소고기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똑같은 계란인데도 황백 지단으로 부쳐 놓은 계란은 그지없이 화려했고. 어느해엔가 내가 하도 떡국을 잘 먹어 굳이 떡국떡을 조금 얻어와서 집에서 먹으라 끓여주었더니 먹지도 않는다고 등짝을 얻어맞기도 했다. 엄마의 떡국은 멸치비린내가 너무 강했고,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소고기 고명도 없었다. 어린마음에, 그 소고기 고명은 부유한 외가의 상징 같았다.   

4. 나는 양지로 국물을 내서 떡국을 끓인다. 나의 떡국은 시어머니의 것과도 친정엄마의 것과도 외숙모의 것과도 다르다. 나는 최고급 양지를(난 좋은 고기를 보면 떡국을 끓이고 싶어한다.) 작게 썰어 달군 냄비에 참기름을 조금 두르고 달달 볶아 물을 붓고 국간장으로 간을 한 뒤 푹 끓여 국물이 우러나면 거기에 떡국을 집어 넣고 계란을 풀고 파를 썰어넣어 끓인다. 먹기 전에 구운 김을 바수어 넣어준다. 충무공은 내 떡국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재작년 8개월간 혼자 외국생활을 하며 두달에 한번씩 집에 돌아올 때, 무조건 한두끼는 떡국을 먹기를 원했을 정도다. 계절이나 세시에 관계없이. 우리집은 떡국을 아무때나 먹었다. 한국에선.

5. 이곳에서는 1++ 등급은 고사하고, 양지다운 양지를 구할 수가 없다. 한우가 얼마나 우월한 품종의 소인지, 외국에 나와보면 알게된다. 특히 국을 끓여보면, 소고기 특유의 누린내가 핏물을 빼도 빼도 빼도 지워지지가 않는다. 이것저것 사다가 시도해 보았으나 매번 실패였다. 한국에서 끓이던 것처럼, 달군 냄비에 소고기를 달달 볶아 물을 부어 끓이는 방법으로는 도저히 먹을만한 떡국이 나오지를 않았다. 결국 양지(라고 짐작되거나 점원들이 주장하는 부위)를 뭉근하게 고아 육수를 내고, 거기에 소고기를 볶아 고명을 올렸다. 남편도 나도 떡국 국물에 풀어진 소고기의 깔깔함이 싫었다. 한때는 그렇게 맛있었던 소고기 고명이, 어쩌면 그렇게 맛이 없는지.  

6. 외가에 가서 떡국을 먹을때면, 국물에 떡만 담긴 그릇이 나오고 고명이 담긴 그릇 네개가 상 위에 놓여있었다. 황백지단과 볶은 소고기와 김. 나는 볶은 소고기를 양껏 푹푹 덜어넣어 먹고 싶었지만 외숙모의 눈치가 보여 그러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마음 좋고 우리 자매들을 특히 예뻐했던 외숙모, 게다가 음식 인심까지 좋았던 외숙모가 까짓 소고기 고명 따위로 눈치를 준다거나 했을리는 없을텐데 혼자 그렇게 눈치를 봤다. 그 소고기 고명, 이제는 넘치도록 먹을수가 있게 되었는데, 양력설이 보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집 냉동실에 그대로 있다. 아무도 안먹는다. 내일은 우리 애 밥 볶아 먹일때나 넣어먹여야 겠다.  에이 참. 맛도 없다.

추어탕은 내게 가을의 풍성함과 함게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결핍감을 동시에 일깨우는 음식이 되었다. 추어탕을 먹을 때면 기쁨과 슬픔을 함께 먹는 기분이 든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토지를 물려받지 못한 가난한 할아버지의 작은아들의 딸이다, 작은집 애다. 작은집들은 추어탕을 별로 안 끓여 먹는다. 더구나 딸만 있는 작은집이니. 추어탕은 아들 많은 큰집들에서 끓인다. 가을 저녁이면 세상의 큰집들은 아들들이 잡아온 미꾸라지로 추어탕을 끓이느라고 부산하다. 

p. 232

 

그때, 멸치비린내 가득하던 엄마의 떡국을 그냥 좀 참고 먹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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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1-15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갑자기 떡국 먹고 싶어요... 거기다
아시마님의 페이퍼를 읽으니, 맛없는 떡국을 먹는 우리 신랑이 너무 불쌍해지는걸요. 이긍. 그러고 보면 울 신랑은 마누라 잘못 만난 듯... 어제두 다퉜는뎅.

아시마 2011-01-15 20:42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저의 떡국은 저희 신랑이나 맛있다고 하는 거죠. 아마 마녀고양이님의 신랑은 마녀고양이님의 떡국이 세계최고인줄 알고 계실겁니다. 내심 나 회사 관두면 우리 마나님 떡국집 셔터맨 또는 배달맨 해야지, 하는 꿈을 꾸실지도.

떡국 참 맛있죠, 여기서는 떡도 맛난게 없고 고기는 아무리 최고급 호주산 와규라고 해도 누린내가 나요. 한우 먹던 입으로는 괴롭습니다. ㅎㅎㅎ 한국서 구워먹을땐 호주산이라도 국끓일 때랑 애들 이유식은 꼭 한우 썼더니, 저희 따님들, 호주산으로 소고기 무국 끓여주면 쳐다도 안보십니다. -_-;;;;;;;

저희도 맨날 다투고 화해하고 그렇죠 뭐. 신랑들은 다들 철이 없으셔서리.

덕수맘 2011-01-19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시마님은 요리도 잘하시는 군요^^*ㅋㅋ저는 늘상 요리할때 되면 재미있기는 한대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해서 제가 생각할떄는 맛나는데..ㅋㅋ우리신랑이 요리를 더 잘해서인지...ㅋ
제가 요리하면 좀 뭔가 부족한가봐여..헤헤 근데 저도 떡국 완전 사랑해요..근데 시댁할머님께 떡국 좋아한다고 말했다가..ㅋㅋ매번 떡국을 해주셔서..ㅋㅋ힘들었던 기억이...새록새록 나네요~

아시마 2011-01-30 18:33   좋아요 0 | URL
요리를 잘 하지는 못하고... ^^ 시어머니가 워낙 음식을 못하시는 관계로다, 요리를 잘 하는 척은 하고 삽니다. 뭘 만들어도 시어머니가 만든것보단 무조건 맛납니다. -_-;;; 게다가 남편은 대학때부터 집을 떠나 살았던지라, 뭔가 가정식 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의 맛의 기준이 제가 만들어 준 음식이 되어버린듯 해요. ㅎㅎㅎ 시어머니 음식솜씨가 한정식집 수준인 친구가 있는데, 그것도 참 괴로운 일이더군요. ^^

전 떡국 완전 사랑해요. 아마 일년내내 떡국만 매 끼니 먹으라고 해도 별로 어려워하지 않고 먹을걸요. 문제는 제 입맛에 맞는 떡국은 저만 끓인다는 거. -_-+ 전 맛없는 떡국은 혐오합니다.

따라쟁이 2011-01-24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떡국은 별로 좋아라 하지 않는데. 뭔가 글을 읽으니까. 한그릇 먹어 줘야만 할것 같군요. 음... 내일 점심은 떡만두국으로 하겠어요!

아시마 2011-01-30 18:36   좋아요 0 | URL
전 떡국은 좋아하지만 떡만두국은 별로더라구요. 떡국도 좋아하고 만두국도 좋아하는데 떡만두국은... 흠... -_-;;;

제가 자란 경상도 지방은 설에 만두를 빚지 않거든요. 만두를 설에 빚는 전통은 아마 경기 이북 지방에서만 그러는 것 같더라구요. 그러니까 경기, 서울 개성 이런 지방은 만두를 꼭 빚어 먹고, 당연히 떡국이 아닌 떡만두국을 먹는 것 같던데.... 그러고보면 입맛이란 참 보수적인듯.

답글이 늦었지만, 떡만두국은 맛나게 드셨나요, 새신부님? ^^

양철나무꾼 2011-02-01 0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에서 음식의 정갈함이 배어나는 듯 해요.

저희 시댁에선 고기를 아주 많이 넣은...떡국에도 미역국에도 그만큼의 고기가 들어가줘요.
전 멸치로 국물내고,그 위에 양지머리 결대로 찢어 올리고,황백 계란 지단 붙여올린 그 떡국을 끓여내고 싶은데 말이죠.

한국이 아닌 곳에 계신가 보죠,
한국 식으론 명절인데...떡국 드실 수 있으려나요?
어찌 되었건 명절 잘 지내세요~^^

아시마 2011-02-04 11:31   좋아요 0 | URL
명절 잘 지내셨나요? ^^
전 어제 떡국 잘 먹었습니다. ㅎㅎㅎ 양지머리 대신 치마살로 국물을 냈죠. 치맛살은 그나마 결대로 쪽쪽 찢어지니까요. 남편은 여전히 투덜대더군요. 이맛이 아니야, 이 맛이 아니야, 이래가며. 한대 때려 주고 싶은거 참느라 힘들었습니다. ㅎㅎㅎ
 
욕망의 응달 박완서 소설전집 5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1993년 9월
평점 :
절판


박완서 선생님의 작품은 대부분 최소한 한번은 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은 뜻밖에 낯이 설었다.  

이 책은 약간, 파격적이다. 전혀 박완서 스럽지 않으면서 어떤 면에서는 가장 박완서 스럽다. 나는 이 책을 93년에 나온 세계사판 박완서 전집에서 읽었지만, 이 책은 실제 1978년 <여성동아>(문예지가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해 주기 바람)에 1년 반동안 연재되었던 소설이다.  

사실 작가들은 연재와 비문학지에 작품 발표라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 한때는 신문 연재 소설이 소설의 대표적인 발표 지면이었고, 실제 신문 연재 소설중에 박완서의 휘청거리는 오후(동아일보)나 최인호의 상도(발표지 기억안남. 신문이었음) 박경리의 토지 5부 (문화일보)등은 장편 소설로서의 훌륭한 성취를 이루어 내지만, 대부분 비문학지에 연재되는 소설은 통속성을 배경으로 깔고 있다는 혐의의 시선을 짙게 받는다.  

그리고 이 소설은, 박완서의 소설 중 가장 통속적이다. 숲 속의 별장 같은 집에서 이루어지는 일종의 밀실, 그곳에 모여든 각자 모두 구린 구석이 있는 사람들, 그리고 한명 한명 죽어나가는 상황. 그리고 유일하게 순결한 누군가에 의한 범인 탐색. (오, 이쯤되면 크리스티 여사가 부럽지 않지 않나?) 

그리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물들에 대한 묘사는 박완서스러움을 잃지 않지만, 어차피 상황이나 인물 모두가 너무나 드라마틱한 관계로 박완서의 묘사는 빛을 그다지 발하지 못한다. 사실 이쯤되면 앗, 박완서 선생님의 작품에도 오롱이 조롱이가 나오는 건가, 싶기까지 하다. 어떤 상황의 어떤 인물에게도, 그리고 어떠한 관계에도 충분히 그럴법한 이유를 제공해 주는게 박완서 선생님의 최대의 장점인데, 이 작품에서는 그런면이 부족하다.  

주인공 자명과 민우의 관계가 사랑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도 억지스럽고, 사실 자명이 민우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억지스럽다. 이야기는 미혼모인 자명이 민우의 유혹(?)에 이끌려 6살난 아들 윤명을 데리고 저택집으로 들어가 저택집의 과거와 비밀, 2살 어린 시어머니 소희 부인의 비밀을 하나하나 추적하고 밝혀내는 구도를 취하고 있는데, 자명이 이 저택집으로 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부자연스러운데다 인물들이 죄다, 지나치게 드라마틱하다. 게다가 도무지 이유없이 등장했다 사라져버리는 인물들이 너무나 많다. 예를 들자면, 윤명의 아버지인 윤재. 윤재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자명이 윤재의 집에서 당하는 수모는, 이야기 그 자체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자명의 배경으로 그런 장치를 해 놨었어야 했나 싶고(그냥 사연있는 미혼모쯤으로도 충분했을 것 같은데) 민우의 어머니가 굳이 등장해야 하는 이유도 모르겠고, 영우의 어머니는 더욱 갑작스럽다. 박완서의 소설에서는 사실 이렇게 군더더기 인물이 거의 없는 편인데 이 소설은 유난하다. 이야기는 지나치게 전형적인 구도로 흘러가고, 결말은 더욱 작위적이다. 박완서 선생님 작품이라고 하기엔 이 작품은 뭔가, 죄송스럽게도 2%가 부족하다.  

그래도 어쨌든, 박완서 선생님도 이런 소설을 쓴 적이 있다고, 한국적인(?) 추리소설은 이런게 나온다고, 박완서 스럽게 가독성은 역시 최고라고. 주저리 주저리.  

2010.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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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1-10 0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완서님이 쓰셨다는 데, 제목을 보곤 모르겠더니...내용을 보니 읽은 책이네요~^^
저 이 책에 추리소설이라고 이름 붙이는 게 쫌 남사시려웠는데...ㅠ.ㅠ

아시마 2011-01-10 15:19   좋아요 0 | URL
전 솔직히... 추리소설이라고 이름 붙이는 게 남사시러웠던 정도가 아니라, 이 책을 박완서 선생님의 작품으로 인정하고 싶지가 않아요. -_-;;;

매문이 필요하신 분도 아니었을텐데.. 왜 이런 글을 쓰셨을까요? 에효.

아, 맞다. 근데 이 소설의 아우라가 한참 뒤, 2000년대에 쓰신 "아주 오래된 농담"에서 풍겨져 나와요. 저는 이 두 장편이 은근히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더라구요. 내용하고는 전혀 상관없이, 뭐랄까 사람들의 속물성이 가지고 오는 그 기묘한 은밀함에 대한 탐구? 뭐 그런거요. 아직 정확히 머릿속으로 정리가 안되어서 말이 막 꼬이네요. -_-;;;

여튼, 마음은 아프지만 의미는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에(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런식의 추리기법을 차용한 소설은 전혀 쓰시지 않으셨어요.) 리뷰 한편 남겼어요. ^^;;;

78년작이니까요. 소설가도 변신을 하지만 대한민국의 소설작법도 눈부신 발전을 이루던 8-90년대 아니겠어요. 이해해야지요. 하하하... 그 시기 나온 한국 추리는 다 요모냥 요꼴... ;;;;

blanca 2011-01-10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소설이 있었어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도 아니고--;; 근데 박샘이 의외로 통속적인 즐거움을 주는 지점을 잘 아시는 것 같아요. 일단 너무 재미있잖아요. 정말 너무 훌륭한 작가인데 재미 없는 작품을 쓰는 이들도 많아서....

그런데 저는 왜 자꾸 혼자서 박완서샘 책 전작주의를 90%는 했다,고 착각하는 거죠? ㅋㅋㅋ 캐면 또 나오고 또 나오고. 아시마님, 저 담주에 이사가는데 <도시의 흉년>은 아주 어수선한 가운데 주문해서 읽어야 할 것 같아요. 서울 진짜 너무 추워요. 여하튼 아시마님이 돌아오셔서 저는 너무 기쁘다는^^;;

아시마 2011-01-11 16:10   좋아요 0 | URL
박완서 샘 작품을 전작하시려면 일단 세계사판 장편소설 전집(19권까진가 나와있고요)이랑 문학동네에서 나온 단편소설 전집 6권+푸르매 출판사에서 나온 <환각의 나비>라는 박완서 문학상 수상작 모음집을 읽으면 큰 줄기는 잡히는 거고, 나머지는 에세이집들이랑 근간이라고 보시면 되요. 아주 오래된 농담 이후의 책들은 아직 전집으로 들어가지 않았고, 여행기랑 일기도 따로 있고 박완서 선생님 작품 해설집이랑 작가앨범(웅진판), 작가세계에서 나온 박완서 편, 뭐 이런것들까지 챙기면 한 80%쯤은 전작 콜렉션 하신 셈이 되요. 워낙에 다작하시는 분인데다 예전에 나왔던 에세이 중에 절판된 것들이 좀 있어요. 소설로만 다작이 아니고, 에세이랑 산문들도 워낙에 많이 쓰셔서... 짧은 산문인데도 정말 버릴것이 없다는게 박완서 샘의 장점이죠. 저도 옛날 80년대 초반에 나온 에세이집 <혼자 부르는 합창>은 아직 구해보지 못했어요.

아, 도시의 흉년은 세계사판 박완서 전집에 상, 하 두권으로 들어가 있구요, 그거 말고, 하권 이후의 이야기가 있는 속편이 또 있는데, 그건 새로 발간하지 않으시는 듯 해요. 저도 예전 세로읽기로만 읽었던 기억이 나요.

<도시의 흉년>은 박완서 샘 작품 중에 제가 또 특별나게 손꼽는 작품이거든요. 빠져드시면 ㅎㅎㅎㅎㅎㅎ 짐정리가 늦어지실 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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