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만찬 - 공선옥 음식 산문집
공선옥 지음 / 달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 충무공은 종종, 회사를 그만 둔 뒤엔 뭘 해먹고 살까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데, 그때마다 빼놓지 않고 생각하는 업종이 <떡국장사>다. 명동 어딘가 쯤에(그러니까 말하자면 충무공의 회사 근처에) 작은 떡국집을 열어서 아침과 점심에는 '내가 끓인' 떡국을 팔고, 점심과 저녁에는 빨갛게 끓인 경상도 특유의 소고기 콩나물국을 끓여서 팔면 대박이 날거란다. 대박이야 나겠지만 남는 건 없을텐데.  

2. 충무공은 내가 끓인 떡국을 좋아하는데, 어느정도냐면, 어느해인가의 설날 아침 시댁에서 시어머니가 떡국을 끓이러 부엌으로 들어가자 부리나케 따라 들어가 "어머니, 떡국은 다인엄마더러 끓이라고 하세요." 라고 말을 할 정도다.(아들이란 키워봐야 다 이런다. 그래서 난 딸만 낳았다. 아, 참 잘했다. ^_______^) 우리 시어머니, 결혼하고 첫해 설날, 우리 아들들은 떡국을 싫어해, 라더니 웬걸 형님 말씀을 들어보니 아주버님도 충무공만큼이나 떡국을 좋아한단다. 그러니까 어머님의 아들 둘은 어머님의 떡국을 싫어했나보다.  피식.

3. 사실은 나도 친정엄마의 떡국을 싫어했다. 친정에서는 멸치다시물로 떡국물을 쓴다. 그나마도  어렸을때 설이라고 집에서 떡국을 먹은 기억은 별로 없고, 잘사는 외가집이나 가야 떡국을 먹을 수 있었다. 외숙모 떡국의 국물 베이스가 멸치였는지 소고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반드시 있었던 게 소고기를 볶아 만든 고명이었다. 어렸을 때는 국물에 풀어지는 그 소고기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똑같은 계란인데도 황백 지단으로 부쳐 놓은 계란은 그지없이 화려했고. 어느해엔가 내가 하도 떡국을 잘 먹어 굳이 떡국떡을 조금 얻어와서 집에서 먹으라 끓여주었더니 먹지도 않는다고 등짝을 얻어맞기도 했다. 엄마의 떡국은 멸치비린내가 너무 강했고,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소고기 고명도 없었다. 어린마음에, 그 소고기 고명은 부유한 외가의 상징 같았다.   

4. 나는 양지로 국물을 내서 떡국을 끓인다. 나의 떡국은 시어머니의 것과도 친정엄마의 것과도 외숙모의 것과도 다르다. 나는 최고급 양지를(난 좋은 고기를 보면 떡국을 끓이고 싶어한다.) 작게 썰어 달군 냄비에 참기름을 조금 두르고 달달 볶아 물을 붓고 국간장으로 간을 한 뒤 푹 끓여 국물이 우러나면 거기에 떡국을 집어 넣고 계란을 풀고 파를 썰어넣어 끓인다. 먹기 전에 구운 김을 바수어 넣어준다. 충무공은 내 떡국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재작년 8개월간 혼자 외국생활을 하며 두달에 한번씩 집에 돌아올 때, 무조건 한두끼는 떡국을 먹기를 원했을 정도다. 계절이나 세시에 관계없이. 우리집은 떡국을 아무때나 먹었다. 한국에선.

5. 이곳에서는 1++ 등급은 고사하고, 양지다운 양지를 구할 수가 없다. 한우가 얼마나 우월한 품종의 소인지, 외국에 나와보면 알게된다. 특히 국을 끓여보면, 소고기 특유의 누린내가 핏물을 빼도 빼도 빼도 지워지지가 않는다. 이것저것 사다가 시도해 보았으나 매번 실패였다. 한국에서 끓이던 것처럼, 달군 냄비에 소고기를 달달 볶아 물을 부어 끓이는 방법으로는 도저히 먹을만한 떡국이 나오지를 않았다. 결국 양지(라고 짐작되거나 점원들이 주장하는 부위)를 뭉근하게 고아 육수를 내고, 거기에 소고기를 볶아 고명을 올렸다. 남편도 나도 떡국 국물에 풀어진 소고기의 깔깔함이 싫었다. 한때는 그렇게 맛있었던 소고기 고명이, 어쩌면 그렇게 맛이 없는지.  

6. 외가에 가서 떡국을 먹을때면, 국물에 떡만 담긴 그릇이 나오고 고명이 담긴 그릇 네개가 상 위에 놓여있었다. 황백지단과 볶은 소고기와 김. 나는 볶은 소고기를 양껏 푹푹 덜어넣어 먹고 싶었지만 외숙모의 눈치가 보여 그러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마음 좋고 우리 자매들을 특히 예뻐했던 외숙모, 게다가 음식 인심까지 좋았던 외숙모가 까짓 소고기 고명 따위로 눈치를 준다거나 했을리는 없을텐데 혼자 그렇게 눈치를 봤다. 그 소고기 고명, 이제는 넘치도록 먹을수가 있게 되었는데, 양력설이 보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집 냉동실에 그대로 있다. 아무도 안먹는다. 내일은 우리 애 밥 볶아 먹일때나 넣어먹여야 겠다.  에이 참. 맛도 없다.

추어탕은 내게 가을의 풍성함과 함게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결핍감을 동시에 일깨우는 음식이 되었다. 추어탕을 먹을 때면 기쁨과 슬픔을 함께 먹는 기분이 든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토지를 물려받지 못한 가난한 할아버지의 작은아들의 딸이다, 작은집 애다. 작은집들은 추어탕을 별로 안 끓여 먹는다. 더구나 딸만 있는 작은집이니. 추어탕은 아들 많은 큰집들에서 끓인다. 가을 저녁이면 세상의 큰집들은 아들들이 잡아온 미꾸라지로 추어탕을 끓이느라고 부산하다. 

p. 232

 

그때, 멸치비린내 가득하던 엄마의 떡국을 그냥 좀 참고 먹을 걸.


댓글(8)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고양이 2011-01-15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갑자기 떡국 먹고 싶어요... 거기다
아시마님의 페이퍼를 읽으니, 맛없는 떡국을 먹는 우리 신랑이 너무 불쌍해지는걸요. 이긍. 그러고 보면 울 신랑은 마누라 잘못 만난 듯... 어제두 다퉜는뎅.

아시마 2011-01-15 20:42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저의 떡국은 저희 신랑이나 맛있다고 하는 거죠. 아마 마녀고양이님의 신랑은 마녀고양이님의 떡국이 세계최고인줄 알고 계실겁니다. 내심 나 회사 관두면 우리 마나님 떡국집 셔터맨 또는 배달맨 해야지, 하는 꿈을 꾸실지도.

떡국 참 맛있죠, 여기서는 떡도 맛난게 없고 고기는 아무리 최고급 호주산 와규라고 해도 누린내가 나요. 한우 먹던 입으로는 괴롭습니다. ㅎㅎㅎ 한국서 구워먹을땐 호주산이라도 국끓일 때랑 애들 이유식은 꼭 한우 썼더니, 저희 따님들, 호주산으로 소고기 무국 끓여주면 쳐다도 안보십니다. -_-;;;;;;;

저희도 맨날 다투고 화해하고 그렇죠 뭐. 신랑들은 다들 철이 없으셔서리.

덕수맘 2011-01-19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시마님은 요리도 잘하시는 군요^^*ㅋㅋ저는 늘상 요리할때 되면 재미있기는 한대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해서 제가 생각할떄는 맛나는데..ㅋㅋ우리신랑이 요리를 더 잘해서인지...ㅋ
제가 요리하면 좀 뭔가 부족한가봐여..헤헤 근데 저도 떡국 완전 사랑해요..근데 시댁할머님께 떡국 좋아한다고 말했다가..ㅋㅋ매번 떡국을 해주셔서..ㅋㅋ힘들었던 기억이...새록새록 나네요~

아시마 2011-01-30 18:33   좋아요 0 | URL
요리를 잘 하지는 못하고... ^^ 시어머니가 워낙 음식을 못하시는 관계로다, 요리를 잘 하는 척은 하고 삽니다. 뭘 만들어도 시어머니가 만든것보단 무조건 맛납니다. -_-;;; 게다가 남편은 대학때부터 집을 떠나 살았던지라, 뭔가 가정식 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의 맛의 기준이 제가 만들어 준 음식이 되어버린듯 해요. ㅎㅎㅎ 시어머니 음식솜씨가 한정식집 수준인 친구가 있는데, 그것도 참 괴로운 일이더군요. ^^

전 떡국 완전 사랑해요. 아마 일년내내 떡국만 매 끼니 먹으라고 해도 별로 어려워하지 않고 먹을걸요. 문제는 제 입맛에 맞는 떡국은 저만 끓인다는 거. -_-+ 전 맛없는 떡국은 혐오합니다.

따라쟁이 2011-01-24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떡국은 별로 좋아라 하지 않는데. 뭔가 글을 읽으니까. 한그릇 먹어 줘야만 할것 같군요. 음... 내일 점심은 떡만두국으로 하겠어요!

아시마 2011-01-30 18:36   좋아요 0 | URL
전 떡국은 좋아하지만 떡만두국은 별로더라구요. 떡국도 좋아하고 만두국도 좋아하는데 떡만두국은... 흠... -_-;;;

제가 자란 경상도 지방은 설에 만두를 빚지 않거든요. 만두를 설에 빚는 전통은 아마 경기 이북 지방에서만 그러는 것 같더라구요. 그러니까 경기, 서울 개성 이런 지방은 만두를 꼭 빚어 먹고, 당연히 떡국이 아닌 떡만두국을 먹는 것 같던데.... 그러고보면 입맛이란 참 보수적인듯.

답글이 늦었지만, 떡만두국은 맛나게 드셨나요, 새신부님? ^^

양철나무꾼 2011-02-01 0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에서 음식의 정갈함이 배어나는 듯 해요.

저희 시댁에선 고기를 아주 많이 넣은...떡국에도 미역국에도 그만큼의 고기가 들어가줘요.
전 멸치로 국물내고,그 위에 양지머리 결대로 찢어 올리고,황백 계란 지단 붙여올린 그 떡국을 끓여내고 싶은데 말이죠.

한국이 아닌 곳에 계신가 보죠,
한국 식으론 명절인데...떡국 드실 수 있으려나요?
어찌 되었건 명절 잘 지내세요~^^

아시마 2011-02-04 11:31   좋아요 0 | URL
명절 잘 지내셨나요? ^^
전 어제 떡국 잘 먹었습니다. ㅎㅎㅎ 양지머리 대신 치마살로 국물을 냈죠. 치맛살은 그나마 결대로 쪽쪽 찢어지니까요. 남편은 여전히 투덜대더군요. 이맛이 아니야, 이 맛이 아니야, 이래가며. 한대 때려 주고 싶은거 참느라 힘들었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