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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장씨, 400년 명가를 만들다
김서령 지음 / 푸른역사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음식을 만드는 법이란 한낱 부엌의 소사(小事)가 아니었다. 가풍(家風)과 예지의 축적이었다. 여인들 사이에 장구하게 흐르는 정신의 유산이었다. 부녀들이 어찌 이 도(道)에 무심하단 말인가. 이것은 경세의 운용과 같으며 학문의 궁구와도 같다. 이 도에 매진함을 어찌 가벼이 볼 수 있을 것인가.
p. 336
나는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글 잘 쓰는 작가로 이문열을 꼽는다. 이제는 흘러간 작가, 보수를 넘은 수구 꼴통의 대명사 같은 작가가 되어 그 책이 분서(焚書)당하는 수모도 여러차례 겪은 분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진짜 글 잘 쓰는 소설가다.
『사람의 아들』, 『젊은 날의 초상』,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으로 김승옥을 잇는 젊고 빼어난 작가로 한 시대를 군림하던 이 소설가에게 보수도 못 되는 수구 꼴통의 멍에를 씌우는 작품은 1997년 나온다. 《음식디미방》의 저자 안동 장씨를 화자로 내세운 소설 『선택』 말이다.
97년 3월에 이 책이 출간되고 문단을 중심으로 한 문화계의 논쟁은 어마어마 했다. 중편을 약간 넘는 분량의 소설 한편이 가져온 파장이 어마어마 했으니 그 소설이 담고 있는 사상에 대한 호불호는 차치해 두고라도 일단 최고의 베스트셀러이기는 했다. 이문열의 다른 작품들이 그러했듯이.
“세상의 슬픈 딸들에게” 라는 말로 서두를 떼는 이 소설은 발칙하게도
나를 수백 년 세월의 어둠과 무위 속에서 불러낸 것은 너희 이 시대를 살아가는 웅녀(熊女)의 슬픈 딸들이었다. 너희 성난 외침과 괴로운 부르짖음이 나를 영겁의 잠에서 깨웠고 삶을 덧없어하는 한숨과 그 속절없음에 쏟는 넋두리가 이제는 기억에서 아련해진 내 한 살이[生]를 돌아보게 하였다.
(중략)
하지만 진실로 걱정스러운 일은 요즘 들어 부쩍 높아진 목소리로 너희를 충동하고 유혹하는 수상스런 외침들이다. 그들은 이혼의 경력을 무슨 훈장처럼 가슴에 걸고 남성들의 위선과 이기와 폭력성과 권위주의를 폭로하고 그들과 싸운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이혼은 <절반의 성공>쯤으로 정의되고 간음은 <황홀한 반란>으로 미화된다. 그리고 자못 비장하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외친다.
이문열, 『선택』, 민음사, 1997, p. 7-9
라고 이야기의 포문을 연다. 아이고 맙소사. 이건 대 놓고 싸우자 덤비는 꼴 아닌가. <절반의 성공>은 1988년 이경자의 연작소설집 『절반의 실패』(사회적 약자로서의 여성을 드러낸 12편의 연작 소설. 페미니즘 작품으로 평가된다)를 빗댔음이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공지영(선택이 출간될 당시 공지영은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을 한 작가로 유명했다.)의 1993년 동명 소설을 비웃은 거니. 공지영의 소설 역시 이혼이 주요 소재로 쓰인다. 당시 여성계를 비롯한 여류작가 군단과 한판 붙어보자고 쓴 게 아니고서야.
400년 전 여성을 화자로 내세운 이 소설은 이문열의 말대로 “사건 서술은 한줌도 되지 않고 현대 소설론의 관점에서 보면 부차적 요소만 장황한 그런 얘기 방식”(이문열, 『선택』-작가의 말, 민음사, 1997, p. 225)을 취하고 있지만 뜻밖에 술술 읽힌다. 소설가로서의 이문열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대놓고 싸우자 판 깔고 덤비는 꼴일 것 같은 이 소설이, 400년 전 여성 화자의 고리타분하기 짝이없는 훈계조의 이 소설이, 재미있다니 또 한번 하느님 맙소사. 소설가는 타고나는 게 맞다니까요. 이문열은 악마적 재능, 맞아요.
그리고 13년 뒤, 안동 출신의 저술가 김서령이 같은 사람의 일생을 소재로 “소설과 전기의 중간 형태”(책 머리에, p.14)의 책을 써 낸다. 재령 이씨 이문열이 혈통으로 그녀와 닿아있다면 안동 출신의 김서령은 “고향이 ‘안동’이며 기왓골이 낡은 옛 기와집에서 ‘큰으매(할머니)’의 무릎 아래 앉아 《천자문》을 배웠다는 문화적 공통점”(p.7)으로 그녀와 잇대인다. 거기에 “여성적 연대감의 본질”(p. 8)이 끼어든다.
김서령은 서문에서
장계향은 아직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 어지럽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제 몫의 아픔을 뜨겁게 껴안고 가는 후배들에게 가부장의 잣대로 호통이나 치는 선배 역할은 그의 몫이 아니다. 한 가문의 자랑으로 매몰되거나 자식교육에 올인한 어머니의 성공사례쯤으로 재단 돼서도 안 된다.
책 머리에, p. 15
라고 (아마도 작가 이문열을 향한) 당찬 포문을 연다. 오호라.
둘 다 안동 장씨, 장계향의 출생부터 죽음까지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지만, 이문열이 장계향의 한 집안의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그 집안의 남자들을 어떻게 보필하며 살았나에 집중한다면 김서령은 《음식디미방》의 저자로서의 장계향의 삶에 집중한다.
밥과 죽과 술과 떡은 수십 시간 노동 끝에 불과 일 각(刻)도 되기 전에 눈앞에서 사라지는 허망한 물건이 아니었다. 거기 들이는 정성어린 노동이야 말로 인간의 목숨을 이어나가는 근본이었다. 위기지학의 근본이 경(敬)이었다면 경을 실천하는 근본은 부엌 안에 있었다. 계향은 바로 그것을 어머니 대신 부엌에 들어간 지 두 해 만에 화들짝 깨달았다.
p. 115
이문열의 안동 장씨가 극기로 자신의 집안을 위해 헌신을 한다면 김서령의 안동 장씨는 스스로의 깨달음으로 자신의 문재(文才)를 버리고 부엌의 도를 닦는다. 어차피 400년 전 죽은 안동 장씨, 장계향은 침묵할 뿐이고. 그 장계향의 침묵 속에 저자 김서령의 문재는 빛을 발한다. 소설을 천명하고 나온 『선택』 보다 소설과 전기의 중간 형태가 될 것이라던 이 책이 훨씬 소설적인 재미로 넘쳐난다. 아, 물론 실존인물들을 다루는 관계로, 인물이 하나같이, 음. 오. 아. 예...... 하게 되긴 하지만. 그 실존의 굴레 안에서도 김서령의 글은 술술 읽힌다.
내가 몹시 좋아하는 작가의 반열에 김서령을 추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김서령 작가는 2018년 작고하였다. 소설가 정미경이 작고한 이듬해, 시인 허수경과 같은 해에. 맙소사. 나의 서가는 누가 채워준단 말인가.
표지와 제목의 고리타분함 때문에 망한 책이다, 이 책은. 푸른 역사, 반성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