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 연대기 - 은유, 역사, 미스터리, 치유 그리고 과학
멜러니 선스트럼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2010년 8월, 어느 날 아침 일어났더니 목이 안 돌아갔다. 잠을 잘 못 자서 그런게지 하고 파스를 삼 일 정도 붙였다. 삼일이란 시간은 목 근육이 다시 움직이는데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목을 옆으로 돌릴 때는 물론이고 바닥에 있는 물건을 집기 위해 팔을 뻗어도 목의 통증은 계속 됐다. 단순 근육통이 아닌 것 같아 동네 정형외과에 갔더니 디스크라며 목에 신경주사를 줬다.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 목만 아픈 게 아니라 허리까지 아픈 총체적 난국으로 접어들었다. 디스크 전문병원, 한의원을 다니며 침을 맞았지만 목 통증은 허리 통증을 친구라도 삼으려는지 둘이 번갈아서 찾아왔다. MRI결과,목도 허리도 퇴행성으로 건강한 사람보다 근육이 없긴하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불쾌한 통증은 종종 찾아왔다. 목에 혈액 순환이 잘 안 돼서 그런지 심한 어지럼증으로 한동안 고생을 했다. 몸이 아프니 모든 일에 에너지가 생기지도 않고 일 할 때 빼고는 식물인간처럼 누워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극장에 두 시간을 앉아있는 것도 힘겨울 정도였다. 뭐가 문제인지 나는 궁금했다. 의사들이 한결같이 자세가 나빠서라고 말해서 자세를 고치려 애썼고 밤에 자면서 자는 자세까지 신경쓰게 되었다. 한의사는 몸이 허약하니 몸을 보해야한다고 해서 체중을 늘리려고 애썼다. 시간이 흐르면서 완치란 개념보다는 몸을 관리한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서 지금은 더 이상 나빠지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요즘은 팔도 쑤시고 엉덩이와 고관절도 뻐근하다. 통증이 더 가까이 있는 것 같기도 한데 내 통증의 뿌리를 설명할 수 없어 답답했는데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경추에 문제가 있어 관절염, 회전골개근 염증 등등으로 통증과 8년간 살아온 사람이다. 자신의 통증 때문에 통증을 공부하고 통증에 관한 책을 냈다. 요약하면 이렇다. 통증은 인지 영역이다. 그래서 MRI상으로 경추나 척추의 마모나 손상정도가 비슷해도 인지하는 통증의 정도가 각각 다르다. 통증은 뇌 신경과 관련이 있어서 생물학적, 유전적, 정서적 이유로 신경이 반응하는 걸 자각하는 증세다. 따라서 개인마다 통증의 강도가 다르다. 현대의학으로 알 수 있는 신경기능의 범위는 지극히 제한적이라고 한다. 가령 디스크가 나와 신경을 압박할 경우, 수술로 디스크를 잘라주면 압박 받았던 신경은 더 이상 압박하지 않아 통증이 없어지만 디스크 주변의 신경이 다른 신경을 건드리거나 자라서 섞일 수 있다. 그래서 처음 아팠던 곳이 아니라 다른 곳이 아플 수 있다. 그러니까 디스크 수술은 어떤 특정 부위의 통증만을 경감시킬 수 있는 아주 제한적 수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디스크 수술을 해도 얼마 지나면 다시 통증을 호소하는 이유기도 하다. 뭐 이런 원리를 알게 되었다.

 

통증을 달고 사는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저자 본인의 경험, 인류학적 관점과 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요모조모 서술한다. 내 관심사는, 그래서 통증은 어떻게 끝내나, 였다. 책이 어떻게 끝맺을지 궁금했다. 통증은 인지에서 온다는 말은 많은 생물학적 사실과 심리적 현상을 내포하고 있다. 신체는 통증을 억제하는 물질(엔돌핀등등 같은)을 자체적으로 생산한다. 그러나 스트레스 호르몬 코티솔이 분비되면 엔돌핀 같은 유익한 호르몬이 분비되지 않는다. 만성 통증을 앓는 사람은 위약효과(플라시보)에 걸리지 않을 확률이 높다(심리적으로 의사나 약의 성능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같은 약을 써도 사람에 따라 그 효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내가 나아갈 길은-_-;,

자주 스트레칭하는 걸 포함해서 근력 운동으로 근육을 키우고 단백질 섭취 강화(근육이 단백질로 이루어지므로), 천연 진통제인 엔돌핀 분비를 위해 스트레스 받지 말고(절대 쉽지 않지만) 가끔 약이나 침을 이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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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 이전의 침묵 - The Silence Before Bach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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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개봉했을 때 보고 싶었던 영화인데 놓쳤는데 아트시네마에서 볼 기회를 가졌다. dvd가 나와 있어서 dvd로 볼까 했는데 극장에서 안 보면 dvd로는 끝까지 안 보거나 봐도 건성으로 볼 영화다. 영화가 시작하면서 하얀 벽과 마루 바닥을 따라 카메라가 유연하게 움직이면서 바흐의 곡이 이어진다. 영화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봤기 때문에 무슨 이야기인가 궁금했다.

 

제목이 말해 주듯이 바흐 이전에도 세계는 존재했지만 공허한 울림이라는 목소리를 담아내는 영화다. 바흐와 그의 음악을 중심에 두고 시간을 횡단한다. 대형 트럭을 운전하는 현대인들에게 지루한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바흐는 고속도로를 연주회장으로 만든다. 또 바흐의 무덤을 찾고 바흐의 작업실을 찾는 관광객들한테 바흐는 마음의 향수다. 또 비기독교인이 합창단에서 성가곡을 부르면서 신에 대한 믿음을 얻게 되는 자연스러운 교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한때 바흐의 칸타타를 자장가로 삼았던 때가 있었는데 가사를 보고 깜짝 놀랐었다. 아름다운 목소리가 애절하게 때로는 차분하게 부르는 노래가 신이여 사랑합니다, 이런 내용이어서. 가사는 간결해서 독어가 아니었다면 가사 때문에  칸타타를 좋아할 수 없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또 무반주 첼로곡들은 시끄러운 도시의 소음을 대신할 수도 있다.

 

바흐가 죽은 지 50년이 지나서야 푸줏간 주인이 바흐의 악보로 고기를 싸면서 바흐가 재발견되었다는 전설이 있단다. 푸줏간 주인이 아니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바흐를 영영 모를 수도 있었을테니 푸줏간 주인의 무지함이 오히려 고마울 따름이다.

 

내가 아주 유심히 본 건 (아무래도 요즘 피아노를 배우고 있는 중이라) 아버지가 아들에게 프렐류드를 가르쳐주는 장면이었다. 감정없이 음표대로 건반을 눌렀을 때랑 음표의 진행을 이해하면서 어떤 이야기인지 이해하면서 건반을 누를 때랑은 아주 소리가 다르다는 걸 보여준다. 또 파이프 오르간은 그 울림을 지속하려고 페달을 사용하는데 페달은 지금과는 많이 달라서 손과 발이 함께 연주해야한다. 페달도 건반과 거의 유사해 보였다! 베토벤이 피아노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넓은 음역대를 사용했다면 바흐는 손의 엇갈림을 사용했다. 손이 크로스돼서 손가락이 날개달린 듯이 가볍게 건반 위를 날아다니는 장면은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라고 해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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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피아노 플레잉
죠르지 샨도르 지음, 김귀현 외 옮김 / 음악춘추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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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피아노 레슨 받은 지 1년 7개월 째로 접어드니 여전히 잘 못 치지만 달라진 점이 있다. 피아노가 내는 소리에 귀가 예민해졌다. 내가 두드리는 건반 소리와 선생님이 두드리는 건반 소리는 너무 달라서 피아노가 다른 것 같다. 음악적 요소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소리를 달리 내는 게 근육의 강약 조절이라는 선생님 말을 듣고 피아노와 몸의 움직임을 검색했더니 이 책이 나와서 주문했다.

 

손가락 힘이 아니라 팔의 힘으로 쳐야한다고, 늘 들었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이 책을 읽으니 완전 이해됨ㅋ. 역시 이론은 일정 부분 필요하다. 토요일 밤에 이 책을 펼쳐들고 읽고 있자니 동생 왈, 화장을 책으로 배우냐? 피아노 연습을 해야지 책만 읽는다고 피아노를 잘 치냐, 하고 비웃었다. 그러나 발췌해서(꼼꼼하게 읽기에는 너무 책이 두껍다-_-) 읽고 나니 피아노 연주의 다른 세상에 도달한 것 같은 기분이다. 뭐 그렇다고 내 손가락 움직임이 빨라지거나 유연해지거나 하는 건 결코 아니다. 그러나 내가 손가락을 움직일 때 가능하면 윗팔을 움직이려고 한다는 것이 달라졌다.

피아니스트들이 연주를 하면서 각자의 방식으로 몸을 이리 저리 움직이는 게 흥에 겨워 도취된 것만이 아니라 손가락 낙하와 속도에 따라 근육이 움직이는 방법이었던 거다!

 

이 책의 주제는 효율적 연습을 위한 피아노와 신체에 대한 이해다. 연주를 위해 곡을 기억하는데 네 가지 기억력을 사용한다고 한다. 시각적 기억, 청각적 기억, 근육 움직임을 통한 기억, 지적/분석적 기억. 내가 주로 사용하는 기억의 단계가 시각과 분석적 기억 두 가지다. 한 악절을 연주하면서도 나는 한 마디는 바르게 치고 다음 마디는 틀리고 또 그 다음 마디는 바르게 치고 다음 마디는 틀리는 아주 고른 규칙을 보여준다.-_-;; 이 원인이 두 가지 기억 영역만 사용해서 그런 거 같다. 피아노는 타악기로 손가락의 낙하 속도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그 말은 근육의 민첩한 협동과 조절을 요구한다고 하겠다. 어린 아이들이 빨리 악기를 배우는 이유도 바로 이 근육 조절에서 어른 피아니스트보다도 더 자연스러운 수행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고 생각해보니 나는 뭐든 활자로 먼저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손을 움직이는 일은 고작 컴퓨터 자판을 치는 정도가 전부다. 이제 글씨를 손으로 써 볼까, 하고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손글씨를 안 쓴지 너무 오래돼서 자음과 모음의 균형을 맞추는 일도 굉장히 어색하게 느껴진다. 연습은 안 하고 이렇게 분석만 하는 게 내 주특기.ㅋ 아무튼 아주 유익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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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의 돌 - 아트 라이브러리 19 아트 라이브러리 19
존 러스킨 지음, 박언곤 옮김 / 예경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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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따르면 지은이, 존 러스킨은 고딕 예찬론자다. 고딕식 건축의 순수 특성을 규정하려고 무지 애쓴 챕터가 종종 등장한다. 비잔틴과 고딕 양식의 모호함을 구분하려고도 하고. 감상자로서 이런 구분은, 사실 좀 지루하다. 많은 건물들이 하나의 양식이 아니라 여러 가지 양식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런 이유로 고유한 건축물이 되기도 하니까. 내 주관적 감상은 이렇다. 어떤 한 공간과 시간에 위치 했을 때 감정이 아교처럼 작용해 두 눈으로 보고 두 발로 디뎠던 공간을 기억하게 만든다.

그러니 러스킨이 찬양하고 심혈을 기울인 고딕식 특징이 유레카를 외치게 하진 못한다. 하지만 베네치아에 대한 내 나쁜 기억을 조금을 잊게 해 준다.

 

"당신은 아마도 산 마르코의 출입구 앞에서 일출 때부터 일몰 때까지 이리저리 거닐다가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위로 올리고 표정이 밝아질지도 모른다. 성직자와 속인, 군인과 일반인, 부자와 거지의 구별 없이 동등하게 그곳을 지나간다. 포치의 바로 그 움푹 들어간 곳까지 도시의 가장 비천한 상인들은 그들의 판매대를 끌고 온다. 아니 오히려 열주들의 토대 자체가 좌석이다. 교회 앞은 제물을 위한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의 자리가 아니라 장난감들과 만화들을 파는 행상인의 자리가 된다. 교회 앞 광장 둘레에는 거의 카페들이 줄지어 있는데, 그곳은 중류층의 한가한 베네치아인들이 어슬렁거리거나 별 내용 없는 잡지를 읽는 곳이다. 저녁 예배시간 동안에는 광장 중앙에서 오스트리아인 밴드가 연주를 한다. 오르간 건반에 맞추어 진동하는 군악과 그들 주위를 둘러싼 가라앉은 군중들이 있다. 포치의 움푹 들어간 곳에는 일자릴 잃고 맥이 빠진 하층류 사람들이 하루 종일 도마뱀처럼 햇볕을 쬐며 누워 있다. 소외된 아이들(그들의 어린 눈은 절망과 잔인한 악행으로 가득하며 그들의 거친 목소리는 온갖 욕설을 내뱉는다)은 매시간 교회 포치의 대리석 바닥에 성한 곳 없는 자신들의 동전을 던져대며 도박을 하고 싸우고 으르렁대고 잠을 잔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천사들의 형상이 계속해서 그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다."(138)

 

 

마치 사진같은 묘사다. 책의 많은 부분이 고딕 건축 양식에 관한 설명인데 나의 뇌는 이렇게 느낌만 찾아낸다.-_-; 러스킨이 직접 그린 그림도 종종 삽입되어 있다. 그림, 글 모두 시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공통점이 있긴 하지만 그림과 글 모두에 능하다니 감탄스럽다.

 

베네치아에 갈 일이 있을 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중에 혹시 가게 된다면 이 책을 꼭 가져가야겠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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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월 1주

과거는 떠나보내야 한다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연말이면 송년회란 의식을 치루곤하죠. 그런데 과거는 정말 보낼 수 있을까요? 아니요. 한 살 더 먹으니까 과거에 대한 여러분들의 말이 떠오르네요. "미래는 과거 기억의 부분들로 이루어져있고 현재는 과거가 될 부분들"이라구 프루스트가 말했어요. 과거는 현재와 미래에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는 말이잖아요. 과거를 잊으려하기 보다는 어떤식으로 기억하는지가 새해에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해서 과거를 기억하는 시선이 담긴 영화를 세 편 골랐어요. 세 편 모두 죽음을 소재로하고 있네요. 새해부터 왠 죽는 이야기냐, 재수없다 하실까봐 망설여졌지만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죽음은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작은 출발점이라 생각해 주세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여름의 조각들>, 그리고 <러브 스토리>

 

 

 아내의 죽음으로 남자는 새로운 삶, 아니 새로 태어납니다. 일상적인 공에서 샌드위치 만드는 일도 낯설기만합니다. 아내가 살아 있을 때 후지산을 보고 싶어했지만 남편은 들은 척도 안 했죠. 아내가 과거 속으로 사라질 줄 몰랐던 탓이죠. 갓난 아기가 엄마 품을 떠나 방황하는 것처럼 남자는 후지산을 보러 갑니다. 아내가 왜 후지산을 보고 싶어했는지, 아내가 없지만 아내가 느꼈을 감정을 대신 체험해봅니다. 벚꽃이 비처럼 뿌리는 길에서 남자는 혼자 서성입니다. 과거에 아내가 남자 옆에서 이런 심정이 아니었을까요...아내의 마음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남자는 과거와 다르게 살지 않을까요. 타인에 대한 무관심을 겪어보면서 미래에 남자는 타인에 대한 관심으로 바뀔 수 있을 거 같은 희망을, 저는 봤어요.

 

 

 

이 영화는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해서 자식들이 어머니의 유품을 처리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기억은 물질에서 비롯된다고, 프루스트가 말했습니다. 마들렌느 과자를 한 입을 베어 무는 순간 어린 시절로 여행을 할 수 있다고요. 마들렌느 과자가 타임머신인거죠.

 

어머니의 유품을 처리하는 방법을 두고 형제들이 모여 의논을 합니다. 각자만의 생활이 있어 오래 고민할 시간도 없고 물질적 기억에는 관심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유품 처리할 때 가장 슬퍼했던 사람은, 집안일을 도와주는 분이었습니다.  그 물건에 간직된 이야기가 사라지는 것이니까요. 많은 골동품들이 결국 오르세 박물관으로 갑니다. 어머니의 유품들이 전시실에서 유리상자를 입고 있는 모습이 있습니다. 자식들이 그 전시품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장면이 있는데 어머니의 과거는 그 자식의 것이 되지 못하고 불특정 다수의 사람의 것이 됩니다. 불특정 다수는 물건에 깃든 이야기를 활자와 도슨트 같은 걸로 전해 들으면서 개성에 맞는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해가겠죠. 그러니 자식들이 매정하기만 한 건 아닌 거 같아요. 

 

 

 

말이 필요없는 영화기도 하죠. 저 어렸을 때, <나 홀로 집에>만큼 자주 텔레비전에서 방영하곤 했었습니다. 무슨 때만 되면 볼 수 있었던 영화였는데 십대, 이십대, 삼십대마다 느낀 점이 조금씩 다르더군요. 십대 때는 눈싸움 장면이 주로 남았고, 이십대 때는 혼자 남겨진 올리버 때문에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삼십대 때는 여름날 뉴욕 브라이언트 파크에서 야외상영으로 봤습니다. 공원은 연인과 친구들로 가득했습니다. 피크닉 준비해서 담소도 나누고 맥주와 와인도 홀짝이며 다들 영화를 봤죠. 저는, 여행객으로 혼자 스크린을 말 없이 스크린에만 집중했죠. 아니 실은 집중이 안 됐죠. 몇 번이나 본 영화기도 하지만 날씨 좋은 피크닉장에 준비없이 혼자 간 뻘쭘한 기분을 영화 보는 내내 느꼈답니다. 결국 영화를 끝까지 못 보고 공원에서 떠났습니다. 그리고는 다음 번에는 <러브 스토리>를 함께 볼 사람을 꼭 만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 결심은 아직도 미래 시제랍니다. 올리버가 제니와 함께 했던 과거로 과거와는 다른 올리버로 살 것처럼 저도 이 영화에 엮인 짧은 과거 에피소드로 어떤 미래를 열어두었습니다. 써 놓고 보니 출발과 맞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네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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