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제목이 삼부작(Trilogy)인가 의아했는데 일반적으로 삼부작으로 알려져있다. <나의 어린시절>, <나의 가족>, <집으로 가는 길>.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다. 70년대 에딘버러의 작은 탄광촌에서 태어나서 자란 소년의 유년기와 청년기를 이야기한다.
가난과 가정폭력, 정신병원에 있는 엄마, 마마보이인 아빠, 엄마를 저주하는 친할머니, 생기없이 유령처럼 앉아있는 외할머니, 같은 처지의 사촌. 이보다 안 좋을 수가 할 정도 척박한 환경에서도 소년은 성장한다. 구세군에서 잠시 지내면서 획일적 취향을 강요받기도 하지만 교육을 받기도 한다. 소년이 학교와 집 둘 중 선택할 때가 되었을 때, 소년은 결국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집은 전보다 더 누추하고 아빠와 친할머니는 소년의 노동력만이 필요할 뿐 소년이 필요한 애정이나 보살핌을 줄 수 없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있다. 소년은 죽음을 생각하다 입대해서 이집트로 간다. 군생활을 하면서 만난 친구는 소년의 태도를 바꾼다. 염세와 비관으로 일관한 제이미가 영화 감독이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제대를 한다.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 어린 소년이 감당해야하는 비참한 환경이 영상으로 옮겨지는 방식은 독특한다. 이 세 편의 영화는 독립영화여서 적은 제작비로 사용해서 미니멀한 표현 방식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단점이 영화의 큰 장점이 되어 명작 반열에 올린다. 극도의 고독하고 우울한 심리를 인물의 무표정을 클로즈업으로 종종 잡아낸다. 인물보다 카메라가 오래 머물거나 미리 자리잡는 롱테이크, 사운드가 인물보다도 먼저 등장해서 인물의 심리를 유추케하는 방식을 인상적으로 사용한다. 세 시간 삼십 분이란 긴 상영시간동안 긴장을 늦출 수 없게 한다.
너무 좋은 장면이 여러군데 있지만 한 가지만 적어보면, 이집트 사막에서 군캠프를 벽돌을 일렬로 배열한다. 사방이 같은 모래로 이루어져있는 곳에서 상징적 선을 그어서 그냥 사막과 군캠프를 만든다. 군캠프로 사막이고 선 밖도 사막이지만 선으로 한쪽을 막사라고 정하면서 사막은 더 이상 사막이 아니라 막사가 된다. 가시 많은 청어 통조림을 앞에 두고 제이미의 삐딱하게 앉아 허공을 응시하자 친구가 가시를 발라내는 법을 배우면 된다고 말한다. 제이미가 겪은 일들이 당시 탄광촌에서 드물지 않았을 터이고 그 기억과 경험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가 영화의 결말이었다. 빌 더글러스 감독은 유년기의 우울과 무기력을 바탕으로 훌륭한 영화를 만들었다. 누군가의 유의미한 우울은 때로 참 많은 위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