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밀애>로 기억되는 변영주 감독. 한 여성의 억압된 정신세계를 섬세하게 그렸는데 케이블 채널에서는 야한 영화로 자주 틀어주는 영화다. <밀애>는 표면적으로 성적 욕망을 못 누르는 여성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이면에는 소외된 한 여인이 현실에서 발버둥치며 탈출구를 찾는데 그게 공교롭게도 옆집 남자였다. 어둡고 긴 터널을 나오려는 여인의 절규를 보고 있노라면 애잔하다.

 

해서 <화차>는 좀 많이 궁금했다. 원작이 일본 스릴러 소설이라니 자극적일텐데(안 읽고 그냥 일반적 편견만을 갖고 있다) 영화를 어떤 색감으로 표현을 했을려나. 역시나 변영주 감독의 색이 나타난다. 줄거리 자체나 스릴러를 풀어가는 방식은 사실 익숙하다. 차경선을 따라다니고 그녀가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살인마로 변신하게 만든데는 사회 악이 있다. 죄 없는 한 어린 소녀가 부모의 부채로 젊음을 혹독하게 갉아내야한다. 그녀의 실종으로 연쇄 살인범으로 드러나는 그녀의 불행한 과거...줄거리는 이렇게 흘러간다. 짐작 가능한 부분도 있고.

 

 영화를 보면서 확실히 다른 점이 있다. 다른 감독이 만들었다면 좀 더 시각적 쾌락에 충실했을 터이다. 범행 동기는 살짝 표현하고 살인 광경을 분명히 상세하게 담았을 거다. 감독은 살인 광경은 상상의 영역으로 밀어버린다. 살인 후 온 몸에 피를 묻힌 주인공이 공포와 광기로 질린 표정으로 닦아도 닦아도 묻어나는 피를 볼 수 있다. 살인 장면에서 바닥에 흐르는 피 속에 파닥거리는 나비가 있다. 나비가 날려고 날개를 파닥일 때마다 붉은 피가 나비를 짓누르고 핏방물이 사방으로 튄다. 화면 한쪽에 보이는 방에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 암시한다. 이 장면은 영화의 주제를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싸이코패스를 다룬 많은 영화들이 늘 좀 재미없었던 이유는, 살인 과정을 상세하고 흥미롭게 묘사하지만 싸이코패스의 심리를 간과하기 때문이었다. 많은 액션 영화들이 지루한 이유와 비슷하다. <화차>는 싸이코패스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에서 감독만의 색깔이 묻어난다. 대사 없고 마치 어떤 내레이션의 이미지처럼 하얗게 등장하는 배우 김민희의 이미지도 한 몫한다. 그러나 배우의 연기 이전에 감독이 싸이코패스를 바라보는 관점을 명확히 했기에 김민희의 캐릭터가 나왔을 것이다. 싸이코패스의 잔인함이 아니라 잔인한 인물에 속에서 나온 생존 본능을 볼 것을 부추긴다. 죽어도 모를 약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 역시 영리한 싸이코패스가 이용한 장치다. 결국 싸이코패스는 사회적 산물이지만 사회악이 된다. 여자한테 돌을 던질 지 기구한 운명에 눈물을 흘릴 지는 전적으로 보는 이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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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3-22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차, 리뷰가 여기저기 만개하여 십인십색 반가워요.
넙치님의 리뷰도 아주 마음에 들어요^^
변감독의 '밀애'는 저도 참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김윤진이 참 연기도 잘 해줬구요.
화차,는 시적인 몇몇 장면이 돋보였는데, 나비가 파닥거리는 그 장면 압권이었어요.

넙치 2012-03-25 17:14   좋아요 0 | URL
좋게 봐 주시니 감사합니다.^^
밀애에서도 그랬지만 섬세한 심리묘사가, 저는 아주 좋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