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부터 7시까지의 끌레오 [태원 아트무비 할인전]
AltoDVD (알토미디어)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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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영화는 화요일 오후 5시에 타로 카드점집에서 시작한다. 카드 패를 섞고 뽑는 손이 보일뿐 화면의 주인은 카드다. 그리고는 카드 점괘를 읽어주는 목소리가 들린다. 점괘가 맞는지는 알 수 없다. 원래 점의 정확성은 듣는 사람의 주관적 해석에 달려있으니까. 끌레오가 점집을 나오자 타로 카드를 읽어주는 여자는 놀라서 같이 있는 사람에게 말한다. 저 여자는 저주받아서 암으로 죽을 거라고. 끌레오가 왜 두 시간 동안 불안해 하는 지 알려주는 말이다.  

사람이 불안할 때 무언가에 의지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신이 있고 점쟁이들이 있다. 신과 점쟁이의 공통점은 그들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다고, 우리 스스로 그들에게 권한을 부여한다. 그들이 한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 속뜻을 내 상황에 끼워 맞추는 일을 기꺼이 하면서 불안을 다독이고 위안을 받는다.  

끌레오는 타로 점에 기대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그리고는 외출을 한다. 화요일에 새 모자를 쓰면 불운하다는 엥젤의 말을 외출 전에 따랐지만 외출 할 때 그녀는 통념적 불행과 맞서기로 한다. 새 모자를 쓰고 한 시간 반 가량의 외출을 한다. 찬사대로 카메라는 종횡무진으로 움직인다. 어떤 때는 끌레오의 눈 높이고 또 어떤 때는 지나가는 행인의 눈 높이로 또 어떤 때는 신처럼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눈 높이로 60년대 파리 풍물을 담아낸다.  

주로 택시를 타고 다녔기에 늘 같은 것만 보았던 끌레오에게 몽수리 공원 산책은 일탈이다. 자신을 잘 아는 사람들은 편안하지만 때로는 공감의 한계가 있다. 인물의 특징을 단정하기 때문에 오히려 미묘한 감정의 흔들림을 무시할 수도 있다.(작곡가와 작사가가 끌레오가 좋아할 거라고 친 장난처럼) 낯선 사람에게 때로는 무거운 마음의 짐을 가볍게 이야기 할 수 있다. 신과 점쟁이는 우리를 잘 모르는 데도 우리는 자신의 고민을 술술 얘기하지 않는가!  

끌레오 역시 레바논에서 휴가 나온 군인에게 자신의 불안을 털어놓는다. 택시가 아니라 전차를 탄다. 불안을 치유하는 방법은 자신이 잘 알고 있다. 불안의 원인을 잘 아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니까. 진술이라는 발화 행위를 통해 수행이라는 또 다른 발화로 단계로 이행하는 게 치유과정인데 이야기 하면서 이 치유 과정을 겪을 수 있다. 7시에 끌레오는 의사를 만난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두렵지 않다고 말하면서 결연한 표정을 짓는다. 화요일에 새 모자를 쓰면 불행해진다는 근거없는 불안에 맞설 준비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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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31
나쓰메 소세키 지음, 오유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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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도련님이란 말이 일본어로 어떤 뉘앙스를 갖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어 도련님은 세상 물정 모른 채 곱게 자랐다는 의도가 숨어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칭찬일 수도 있고 비꼬는 말일 수도 있다. 도련님만한 나이에, 나도 도련님 같았다. 세상을 얕잡아보고(?) 코웃음치며 다 마음에 안 들었다. 불의에 파르르하고 직설적으로 말하고 성찰적이지 못한 사람들에 회의를 느끼고...이십 대 시절의 일기를 아주 가끔 다시 읽어보면 코웃음에는 깊이가 없고 물정을 몰라 비현실적이어서 귀엽다. 내 일부를 기록해 놓은 글을 보고 낯설게 느끼는 나는 더 이상 도련님의 나이가 아니다. 은희경이었을 거다. 나이를 먹는 건 자신의 좌표를 아는 거라고. 상하좌우 만나는 지점에서 몸을 한껏 웅크리고 있는 거. 세상의 모든 도련님은 상하좌우가 좁다며 이리저리 튀어다닌다.  

나쓰메 소세키의 인물들은 대체로 사색적이고 수동적인 햄릿형 인물에 가까운데 도련님은 많이 다르다. 동키호테형인 도련님은 생각이 짧고 계획을 세우는 데 부족하지만 실행력은 있고 싸움도 잘 한다고 스스로를 여긴다. 도련님의 나이 스물 넷. 그가 서른 넷이 되면 자신은 실행력도 없다는 걸 깨달을 테지만 그러기까지 십 년이란 세월이 남아있다. 경험이란 때로는 지혜를 길러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겁도 길러준다. 좌충우돌하는 도련님이 귀여운 이유는 세속적 때가 묻지 않아 겁이 없기 때문이다.  

일요일 날 친구랑 맥주 한 잔을 하면서 나는 너무 사람에 대해 겁이 많다고 했다. 친구 역시 똑같은 겁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의 비밀을 아는 걸 무서워한다. 우리가 친구인 이유는 사람에 대해 갖는 겁이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혼자 놀기의 달인들이 한 달에 한 번쯤 만나 혼자 놀았던 중 즐거운 점을 교환한다. 사람과 부딪치기를 피곤해하고 혼자 노는 즐거움이 흔들릴까봐 걱정한다. 물론 우리도 도련님 만한 때가 있었지만 이제는 도련님을 멀리서 지켜 보면서 귀엽다고 한다.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은 우리와 달리 영원히 도련님으로 남아 그 치기와 천방지축을 대대로 전해줄 의무가 있다. 우리는 도련님이었던 한 시절을 돌아보면서 위안을 받는 즐거움을 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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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정치학>을 리뷰해주세요.
와인 정치학 - 와인 라벨 이면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 '최고급'와인은 누가 무엇으로 결정하는가
타일러 콜만 지음, 김종돈 옮김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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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프랑스 북부지방을 현지 당일 패키지도 갔을 때 사과 농장이 포함돼 있었다. 사과를 재배하고 술을 만드는 과정까지 견학한 후 시음과 구매라는 일반적 프로그램이었다. 조그만 파란 사과인데 한 눈에 보기에도 맛이 없어보였다. 그리하여 이들은 사과를 술로 만들었다. 칼바도스란 사과주는 북부지방의 유명한 토산품이 되었다. 어떤 지역의 음식 문화는 기후와 토착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프랑스 북부에서는 남부만큼 안 더워 포도보다는 사과에 적합하다.  

프랑스 남부에사 와인이 대량 생산되는 건 첫째 기후 때문이고 그리고 산업 지원 측면일 것이다. 미국의 기후가 프랑스산 포도재배에 적합하지 않았을 것이고 당연히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정책적으로도 와인 산업에 대한 육성책이 프랑스와 다를 수 밖에 없다.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내가 왜 이런 책을 읽고 있는 지 의아해하면서 훑어보았다. 저자의 관점은 미국의 와인 산업을 연구자 관점이다. 세계 와인 중 미국 와인을 프랑스 와인 산업과 경쟁 구도로 보고 와인산업사에 다가간다.  제3세계의 비열혈 와인 소비자로서 이런 정보보다는 와인을 고르는 기준 등이 더 유익하다고 하겠다.

우리에게 와인은 낭만, 세련 등등의 말과 동의어다. 와인을 즐겨마신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취향 고급스럽다는 걸 암묵적으로 드러낸다. 프랑스에서야 대량 생산되니 소주나 다를 바 없이 매일 저녁 식탁에 올라온다. 석회 함량 많은 물 대신에 과일주를 마시니 장소나 분위기 보다는 실용성에 기인한다. 수퍼에서 3,4유로 정도면 사는 음료다. 우리나라 과실주(매실주, 모과주등)가 나이든 취향(?)으로 비춰진다. 그 이유인즉 술을 마시는 장소 때문인 것 같다. 매실주가 고깃집에서 주로 팔리는 반면에 우리는 (대부분 수입인) 포도주를 특별한 경우와 장소에서 마시기를 선호한다. 즉 와인 소비는 다른 문화적 기호를 소비하는 것과 같다. 시중 까페나 와인바에서 파는 와인은 맛에 비해 그 가격이 터무니 없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맛을 소비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맛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와인을 마실 수 있는 바의 분위기가 와인 품질에 우선한다.  가로수길이나 삼청동에 나가 보면 와인 소비자가 얼마나 늘었지 가늠할 수 있다.

이런 와인에 대한 문화적 취향과 기호를 부여한 게 바로 정치학이다. 와인은 맥주에 비하면 도수가 높은 술이지만 약한 술이라는 인식이 있다. 술은 못하는 데 와인은 마신다는 여자들이 많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나는 사실 이해가 안 가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한 결과는 이렇다. 맥주나 소주는 한국인 음주 습관상 벌컥벌컥 마시지만 와인은 안 그런다. 한 잔만 마셔도 되는 술이어서 대부분이 가볍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 사실 와인을 벌컥벌컥 마시면 다음 날 그 어떤 술 보다도 고통스런 두통이 찾아 온다. 하루 종일 머릿속에 딱다구리가 있는 걸 한 번 경험하면 다시는 와인을 벌컥벌컥 안 마시게 된다.-,-

책 내용이 따분해서 흰소리만 늘어놨다. 어쨌든 와인은 정치적 술이라는 것. 무역자유화로 프랑스산 와인만이 아니라 여러 나라의 저렴한 와인을 쉽게 맛 볼 수 있다. 사실 우리는 와인의 품질에 너무 무지해서 첨가물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다. 이 책이 알려준 사실을 보고 찝찌름했다. 와인 정치학은 와인이 주는 낭만을 몰아내기만 한다.  

주의-와인을 고르는 일에는 별로 도움 안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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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와인정치학'을 통해 맛본 와인의 애달픈 사연
    from 토토의 느낌표뜨락 2009-07-04 13:41 
    와인은 매혹적인 호기심으로 달콤함에 이끌리고... 정치는 권력의 내음이 물씬 풍기는 검은손의 압박에 숨이 막히는... 이 둘의 느낌을 한꺼번에 합쳐놓은『와인정치학』이란 제목이 던지는 상반된 느낌에 이끌리어 딱딱하면서도 꽤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에 위드블로그 도서캠페인에 선뜻 응했는데... 책을 읽는 내내 느낌은 제가 상상한대로였건만 결코 쉽게 읽혀지는 책은 아니었습니다. 뇌로는 눈으로 따라가는 활자에 맞춰 영상을 만들어내고 있었지만, 가슴으로는 좀..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 Sisters on the road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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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공효진과 신민아란 두 이름만으로도 영화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공효진의 촌스러운 이미지와 내지르는 듯한 발성. 신민아의 산뜻함. 신민아는 이 영화에서 배우의 깊이감을 보이기 시작한다. 극의 구성이 어떻든 두 배우를 보는 것만으로도 좋지만 영화적 완성도도 좋다.  

어머니가 같고 아버지가 다른 두 자매. 자매의 취향은 참 다르다. 서글서글해서 3초만에 다른 사람들과 쉽게 술잔을 교환할 수 있는 명주. 까칠하고 냄새에 민감하고 내 영역과 타인의 영역을 정확하게 구별하는 명은. 명은의 아버지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선 두 사람이 함께 보낸 1박2일. 사람이 가까워진다는 건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게 뭔지 아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단점을 아는 게 아닐까. 단점을 알고 싫지만 껴안는 과정을 통해 끈끈한 정이 생긴다. 혈연이 바로 그렇다. 성인이 된 자매는 서먹하기만 하다. 생선장수 싱글맘인 언니와 광고일을 하는 동생은 서로 마음에 안 들지만 가족이란 이름으로 서로의 단점을 받아들인다. 가족을 선택할 수 있었더라면 가족 구성원으로 서로를 선택하기를 망설였을 것이다.

개인의 취향과 개성이 어떻든 부모와 형제는 정해진 거고 결국은 화해할 수 밖에 없는 게 한국사회 정서다. 영화는 이 틀을 안에서 자매애와 가족애를 말한다.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지만 두 사람의 기억 조각은 각각 다르다. 1박2일간 함께 여행을 하면서 퍼즐 조각은 하나의 그림으로 서서히 맞춰진다. 기억 조각은 고통일 수 있지만 하나의 큰 그림으로 조각이 맞춰지는 순간 다른 의미를 갖는다. 가족은 그냥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을 수 있다고. 자매의 여행은 값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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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노 다케시의 위험한 일본학>을 리뷰해주세요.
기타노 다케시의 위험한 일본학
기타노 다케시 지음, 김영희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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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상황을 잘 모를 뿐 아니라 기타노 다케시의 발언 수위를 감지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이 글은 뜨악하다. 가령 건강보험 폐지, 노인은 버려도 된다는 말 이면에 담긴 뜻을 헤아리기 쉽지 않다. 노인복지에 대한 모범으로 일본의 상황을 우리는 주로 보고 들어왔는데 이 무슨 인정머리없는 발언인가. 더불어 고령화 사회의 문제점을 짐작'만'할 수 있다. 이런 지엽적 문제 제기들은 현재 일본에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왜곡할 수 있겠다. 신해철식 발언이 미국인이나 일본인들에게 뜨악한 경우와 마찬가지일테니까. 그가 풀어 놓는 이야기를 개그와 진실을 구별하려면 다케시의 화법을 최소한이라도 알아두는 게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한국을 교집합으로 묶을 수 있는 공통된 문제제기들이 있다. 미국이란 오야붕으로 받들어 세계에서 야쿠자 조직원 노릇을 하는 꼴, 은둔형 외톨이의 출현, IT혁명의 진실 등등. 논리의 비약이 낄낄거리게 만든다. 자기 방을 갖기 시작하면서 은둔형 외톨이가 생겼다는 논리를 진지한 관점에서 보면 억지스럽지만 코미디란 렌즈를 통해 보면 기발하다.  IT 혁명에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IT 혁명이란 것도, 적당히들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일상생활에 무슨 큰 변화가 있었냐 하면, 휴대전화가 폭발적으로 보급됐다는 것 정도이다.....지하철을 타면 어린 애들이 기관총을 쏘듯이 휴대전화로 문자를 치고 있다. 모두 메일을 보내거나 인터넷에 접속해 정보를 검색하고 있다" 아-멘! 

한국의 퇴근길 지하철 풍경을 보면 야릇한 생기가 넘친다. 대부분 귀에 이어폰을 끼고 한 손으로는 휴대폰이나 디엠비를 들고있다. TV를 보면서 혼자 히죽거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또 엠피3로 음악을 듣고 있는데 옆 사람에게 다 들릴 정도다. 피곤한 표정으로 조는 사람이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줄었다. 혁명은 혁명이다. 최신형 기기 이용자들은 대부분 수동적 정보 섭취자가 돼버렸다. 뇌세포를 성찰이나 숙고에 내줄 필요도 못 느낀다. IT발달은 온 국민을 점점 더 즉흥적으로 이끌고 참을성은 구식형 인간에게나 찾아 볼 수 있다고 한다. 매일 쏟아지는 업그레이드된 기기들은 숙고하면 늦는다고 광고한다. 최신형 기기사용자가 진화된 인간이라면 우리는 정말 혁명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최신형은 조급함만 불러온다. 성찰의 미덕은 사라지고.

덧. 관점에 따라서 별 다섯 개도 가능한 책이다. 내가 별 세 개를 준 이유는 지나치게 지엽적이기 때문이다. 다케시가 다룬 내용도 그렇고 다케시의 유머도 그렇다. 다케시의 유머를 즐기거나 일본을 잘 알고 있다면 통쾌한 글일 수 있다. 

또 덧. 씨네21에서 내놓은 책은 내 돈 주고 사기 아까운 책들이 대부분이다. 책은 잡지가 아니거늘 책으로 묶으면 볼 품 없는 책들만 만든다. 장사가 되니까 그렇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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