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타클의 사회 - 문화교양 7
기 드보르 지음, 이경숙 옮김 / 현실문화 / 199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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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조하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삶은 더욱 하찮아진다."  
   
 
왜 하찮아지는가에 대한 답이 이 책에 들어있다. 한마디로 요약해본다면 수동성 때문이다. 기획자가 서문에 이런 말을 써 놨다.  
 
"제대로 물들어 본 적도 없는 총체화하는 사유와 유토피아적 열망에 사이비 피곤함을 느끼는 그 박약한 정신들은 오직 자본주의적 문화 속에 편히 누워 그 문화를 비판적으로 즐기는 데만 골몰하며 자신들의 래디컬하지 못함을 최신 유행의 래디컬한 사상을 소비하는 것으로 은폐한다...." 
 
뜨끔하다. 학문에도 유행이 있어서 기 드보르를 잘 안 읽는다. 철지난 담론처럼 보이지만 낡은 유행으로 묻어두기에는 현재진행형에 부합하는 통찰력이 있는 책이다. 더불어 관조하는 내 삶을 더위 속에서 더욱 맥을 못추게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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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 지식의 최전선 1
피터 조셉 지음, 김종돈 옮김 / 노마드북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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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은 게 아니라 피터 조셉 감독이 만든 영화를 봤다. 알라딘에는 이 영화정보가 없는데 검색했더니 영화를 책으로 묶은 게 나왔다. 영화는 꽤 길다. 1부가 종교와 9.11을 이야기를 한다. (두 시간인데 절반만 봤다) 고대 종교과 기독교의 유사성 조목조목 짚어가면서 인간의 의식을 어떻게 세뇌했는지 살펴본다. 현대에 이르러 테러리즘은 일반 대중을 지배하기 위하는 장치다. 즉 종교가 했던 역할을 대신한다. 그리고는 부록addendum(역시 두 시간이지만 흡입력이 있다)에서 화폐를 신으로 숭배하는 화폐주의를 해부한다. 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이들도 명쾌한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자본주의가 기대고 있는 교환경제 내지는 시장경제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다큐에서 대안을 제시한다. 자본주를 부정하고 완벽하진 않지만 덜 결함이 있는 대안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비너스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시장경제를 부정한다. 시장경제는 희소성을 기제로 작동하고 개인의 탐욕을 숙주로 삼아 현대 자본주의로 발전했다. 시장경제의 최고 권력자는 이윤이다.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결정할 때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가, 이다. 물론 그 가치는 각자의 입장에서 바라본다. 우리는 이런 걸 합리적이라고 배웠고 당연히 여긴다. 교환경제 과정에서 생긴 화폐에 길들여졌고 화폐경제를 기반으로 한 시장경제에 문제가 있지만 교환경제에 대한 대안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힘들다.  

'비너스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사람들은 자원중심주의인 테크놀로지 사회를 대안으로 내놓는다. 태양열, 풍력, 조력등의 대체 에너지들 개발 기술은 이미 상당히 진전됐지만 이용가능성이 없다는 건 자본의 관점이라고 한다.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외면 당하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테크놀로지가 일상화되려면 시장경제의 버팀대인 희소성과 탐욕을 제거해야한다. 모두 기부자가 되야한다고 하는데...흥미롭게 보다가 이 부분에서 별 세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처럼 아득하게 들렸다. 마지막에 개인이 변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세상을 바꾸는 일보다 더 힘든 일이 난 개인이 변하는 게 아닌가, 싶다. 탐욕에 깊이 길들여진 수 많은 개인들이 탐욕이란 감시망을 안전망이 아니라고 인식하고 탈출하는 게 태양, 바람, 파도를 개발하는 일보다 더 오래 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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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눈물 - 서경식의 독서 편력과 영혼의 성장기
서경식 지음, 이목 옮김 / 돌베개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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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기웃거리는 이유 중 하나는 다른 사람들은 무슨 책을 읽나 궁금해서다. 서경식 선생의 책은 아직 한 권도 안 읽었지만 서경식 선생은 무슨 책에 대해 적었을까 궁금해서 읽었다. 또 사적 독서기록이 앞으로 서경식 선생이 쓴 책과 인연도 점칠 수 있다. 행간에서 드러나는 깊은 사려심은 다른 책들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대부분 일본작가들의 작품과 인용구여서 그 미묘한 속뜻까지 알아채는 게 불가능하지만 크게 선생이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장애가 되지는 않는다.  

이 책은 아주 사적인 기록인데도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굴곡 심한 한국의 현대사를 살아 온 가족의 이야기는 소년의 눈물이자 우리의 눈물샘이다. 60,70년대 한국사는 인내심을 갖고 읽어야한다. 겪지 않고 읽는 한국사는 세계사의 한쪽처럼 멀고 아득하게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시기를 산 소년의 경험은 훨씬 설득력이 있다. 물론 이 책은 역사책은 아니지만 소년이 성장하면서 접한 책의 범위나 깊이는, 생활이나 가치관과 자연스럽게 어깨동무를 한다.  글은 영혼을 드러낸다고, 나는 믿는다. 서경식 선생의 문장에서 본 영혼의 결은 부드러워서 자꾸 다가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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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나의 침묵 - Lorna's Silenc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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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에 만들어진 <프로메제>란 영화의 속편쯤 되겠다. <프로메제>에서는 불법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과 그들을 돕지만 결국 등쳐먹는 브로커 부자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바람직한 아버지상이라면 어린 아들에게 도덕이나 윤리를 가르쳐야 마땅할 것이다. <프로메제>에 나오는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브로커의 메커니즘을 가르친다. 이주노동자를 착취하고 경찰의 눈을 속이는 법을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전수한다. 어린 아들은 아직 아버지만큼 냉정하고 비정하진 않은 게 희망이라면 모를까, 아들은 아버지의 가업을 이을 가능성이 많아 보였다. 

 
<프로메제>가 카메라를 비추는 시점은 이주노동자가 꿈을 갖고 벨기에로 날아들었을 때이다. <로나의 침묵>은 망원렌즈를 들고 한 이주노동자의 평범하지 않은 생활을 들여다본다. 로나는 마약중독자 클로디와 위장결혼해서 시민증을 받았다. 로나의 다음 꿈은 식당을 여는 것이다. 시민증은 로나의 꿈을 앞당겨줄 돈줄이다. 시민증을 원하는 러시아인에게 돈을 받고 위장결혼을 하면된다. 그 전에 이혼을 해야한다. 마약중독자 클로디는 마약을 살 돈이 필요해서 로나와 결혼했지만 로나 때문에 마약을 끊기로 결심하고 실천했다. 가족에게도 사람취급 받지 못했던 클로에게게 로나만이 삶의 버팀목이 된다. 그러나 두 사람이 바라보는 곳은 완전히 다른 곳이다.  

 
클로에의 심성은 로나를 괴롭힌다. 로나 역시 심성은 선하기 때문이다. 선하다는 게 시장경제에서 살아가는 데 무슨 소용인가, 하고 말하는 거 같다. 결국 죄책감을 이기지 못한 로나는 원래의 목적지에서 점점 멀어진다. 같은 배를 탔다고 생각했던 사랑하는 이도, 그녀에게 위장결혼을 알선해주는 브로커도 그녀를 각자의 목적을 위한 도구로 여겼을 뿐이다. 

 
협력 또는 공생이란 도움을 주고 받는 이의 위치가 서로 비슷할 때나 성립한다. 로나가 그들에게 공생하기 위한 존재가치가 사라지고 기생하는 위치가 된다고 짐작해 본국 알바니아로 돌려보내려고 한다. 시장경제에서 한 순간 자본의 흐름을 거슬렀던 로나는 사람들이 도와줄거란 희망을 품으려 잠이 든다. 그리고 영화 자막이 올라간다. 자막이 올라가는 동안 그녀의 희망이 내게는 절망으로 다가왔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참 진지하다. 기교도 안 부리고 감상적으로 흐르게하는 음악도 잘 안 사용한다. 이야기 전개도 화면만큼이나 투박하다. 관객이 뭘 좋아할까, 그런거에 관심없이 관찰한 바를 그대로 카메라에 담는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면서 헛웃음이 나온다. 사소한 일에 집착하고 사소한 일에 희망을 거는 보통 사람들 이야기 한쪽에는 늘 진정성이 느껴진다.

 

*<프로메제>에서 어린 아들로 나왔던 제레미 레니에가 <더 차일드>에서 당혹스런 청년을 거쳐 이번에는 마약 중독자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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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2 2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지음 / 작가정신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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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아름다울까, 사랑이 아름다울까? 물론 기억이다. 기억이 더 오래가기 때문에 더 아름답다. 사랑은 두 사람이 필요하지만, 기억은 혼자라도 상관없다. 사랑이 지나가고 나면 우리가 덧정을 쏟을 곳은 기억뿐이다."(139) 

사랑 후일담만큼 김빠지는 게 있을까. 본인에게는 후일담이 기억이지만 타인에게 후일담은 신문 한쪽에 실리는 미담 기사같은 무게밖에 없다. 읽을 때 훈훈하고 신문을 덮는 순간 잊어버리는 정도의 무게.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난 화학반응은 이해 안 될때도 많다. 각기 다른 개체가 만났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반응 조합확률은 무궁하니까. 그럼에도 후일담에 우리가 귀를 기울이는 이유는 각기 다른 반응조합 속에서 어떤 보편성을 발견하고 맞장구를 치거나 맞장구 칠 대상이 필요할 때다. 지난 주에 결혼을 원하는 후배 둘을 만났다. 사랑이 아니라. 또 한 친구는 결혼이 아니라 사랑을 원한다. 어느 누구와도 맞장구가 쳐지질 않는다. 기억도 희미해진 내 과거 연애담을 늘어놓는 부질없는 짓 대신에 책과 맞장구를 치기로 했다.    

이 책은 소설 형식을 빌린 르포처럼 읽힌다. 사랑의 실체를 문학적 언어를 빌려 이야기한다. 알랭 드 보통의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재기 발랄을 무기로, 롤랑 바르트가 <사랑의 단상>에서 지적 통찰력을 무기로 이야기한다면 김연수는 <사랑이라니, 선영아>에서 찰라의 번뜩임을 무기로 한다.  광수, 진우, 선영의 삼각관계를 설정하고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사실은 세 사람이 바라보는 사랑관을 말한다.  

진우가 광수와 끊임없이 영혼의 질이 다른 걸 자각한 것처럼 세 사람이 갖고 있는 사랑의 질량과 무게 역시 다르다. 광수에게 사랑은 질투고 진우에게 사랑은 기억이고 선영에게 사랑은 관심이다. 사랑은 이 셋의 조합이지만 각자가 가지고 있는 건 불완전한 요소들이다. 고로 사랑은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다. 사랑이 필요한 건 세 가지를 다 가지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사랑을 통해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지극히 이기적일 수도 있지만 이기심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봉사지. 신도 신도들에게 맹목적 사랑을 강요하지 않는가.  

상투적이지 않은 연애담을 읽고 사랑을 분석하는 게 내가 사랑을 대하는 법이다. 현재는.(이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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