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지음 / 작가정신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기억이 아름다울까, 사랑이 아름다울까? 물론 기억이다. 기억이 더 오래가기 때문에 더 아름답다. 사랑은 두 사람이 필요하지만, 기억은 혼자라도 상관없다. 사랑이 지나가고 나면 우리가 덧정을 쏟을 곳은 기억뿐이다."(139) 

사랑 후일담만큼 김빠지는 게 있을까. 본인에게는 후일담이 기억이지만 타인에게 후일담은 신문 한쪽에 실리는 미담 기사같은 무게밖에 없다. 읽을 때 훈훈하고 신문을 덮는 순간 잊어버리는 정도의 무게.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난 화학반응은 이해 안 될때도 많다. 각기 다른 개체가 만났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반응 조합확률은 무궁하니까. 그럼에도 후일담에 우리가 귀를 기울이는 이유는 각기 다른 반응조합 속에서 어떤 보편성을 발견하고 맞장구를 치거나 맞장구 칠 대상이 필요할 때다. 지난 주에 결혼을 원하는 후배 둘을 만났다. 사랑이 아니라. 또 한 친구는 결혼이 아니라 사랑을 원한다. 어느 누구와도 맞장구가 쳐지질 않는다. 기억도 희미해진 내 과거 연애담을 늘어놓는 부질없는 짓 대신에 책과 맞장구를 치기로 했다.    

이 책은 소설 형식을 빌린 르포처럼 읽힌다. 사랑의 실체를 문학적 언어를 빌려 이야기한다. 알랭 드 보통의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재기 발랄을 무기로, 롤랑 바르트가 <사랑의 단상>에서 지적 통찰력을 무기로 이야기한다면 김연수는 <사랑이라니, 선영아>에서 찰라의 번뜩임을 무기로 한다.  광수, 진우, 선영의 삼각관계를 설정하고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사실은 세 사람이 바라보는 사랑관을 말한다.  

진우가 광수와 끊임없이 영혼의 질이 다른 걸 자각한 것처럼 세 사람이 갖고 있는 사랑의 질량과 무게 역시 다르다. 광수에게 사랑은 질투고 진우에게 사랑은 기억이고 선영에게 사랑은 관심이다. 사랑은 이 셋의 조합이지만 각자가 가지고 있는 건 불완전한 요소들이다. 고로 사랑은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다. 사랑이 필요한 건 세 가지를 다 가지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사랑을 통해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지극히 이기적일 수도 있지만 이기심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봉사지. 신도 신도들에게 맹목적 사랑을 강요하지 않는가.  

상투적이지 않은 연애담을 읽고 사랑을 분석하는 게 내가 사랑을 대하는 법이다. 현재는.(이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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