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로나의 침묵 - Lorna's Silenc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96년에 만들어진 <프로메제>란 영화의 속편쯤 되겠다. <프로메제>에서는 불법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과 그들을 돕지만 결국 등쳐먹는 브로커 부자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바람직한 아버지상이라면 어린 아들에게 도덕이나 윤리를 가르쳐야 마땅할 것이다. <프로메제>에 나오는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브로커의 메커니즘을 가르친다. 이주노동자를 착취하고 경찰의 눈을 속이는 법을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전수한다. 어린 아들은 아직 아버지만큼 냉정하고 비정하진 않은 게 희망이라면 모를까, 아들은 아버지의 가업을 이을 가능성이 많아 보였다.
<프로메제>가 카메라를 비추는 시점은 이주노동자가 꿈을 갖고 벨기에로 날아들었을 때이다. <로나의 침묵>은 망원렌즈를 들고 한 이주노동자의 평범하지 않은 생활을 들여다본다. 로나는 마약중독자 클로디와 위장결혼해서 시민증을 받았다. 로나의 다음 꿈은 식당을 여는 것이다. 시민증은 로나의 꿈을 앞당겨줄 돈줄이다. 시민증을 원하는 러시아인에게 돈을 받고 위장결혼을 하면된다. 그 전에 이혼을 해야한다. 마약중독자 클로디는 마약을 살 돈이 필요해서 로나와 결혼했지만 로나 때문에 마약을 끊기로 결심하고 실천했다. 가족에게도 사람취급 받지 못했던 클로에게게 로나만이 삶의 버팀목이 된다. 그러나 두 사람이 바라보는 곳은 완전히 다른 곳이다.
클로에의 심성은 로나를 괴롭힌다. 로나 역시 심성은 선하기 때문이다. 선하다는 게 시장경제에서 살아가는 데 무슨 소용인가, 하고 말하는 거 같다. 결국 죄책감을 이기지 못한 로나는 원래의 목적지에서 점점 멀어진다. 같은 배를 탔다고 생각했던 사랑하는 이도, 그녀에게 위장결혼을 알선해주는 브로커도 그녀를 각자의 목적을 위한 도구로 여겼을 뿐이다.
협력 또는 공생이란 도움을 주고 받는 이의 위치가 서로 비슷할 때나 성립한다. 로나가 그들에게 공생하기 위한 존재가치가 사라지고 기생하는 위치가 된다고 짐작해 본국 알바니아로 돌려보내려고 한다. 시장경제에서 한 순간 자본의 흐름을 거슬렀던 로나는 사람들이 도와줄거란 희망을 품으려 잠이 든다. 그리고 영화 자막이 올라간다. 자막이 올라가는 동안 그녀의 희망이 내게는 절망으로 다가왔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참 진지하다. 기교도 안 부리고 감상적으로 흐르게하는 음악도 잘 안 사용한다. 이야기 전개도 화면만큼이나 투박하다. 관객이 뭘 좋아할까, 그런거에 관심없이 관찰한 바를 그대로 카메라에 담는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면서 헛웃음이 나온다. 사소한 일에 집착하고 사소한 일에 희망을 거는 보통 사람들 이야기 한쪽에는 늘 진정성이 느껴진다.
*<프로메제>에서 어린 아들로 나왔던 제레미 레니에가 <더 차일드>에서 당혹스런 청년을 거쳐 이번에는 마약 중독자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