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 - Let It Rai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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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주변의 불쾌한 감정을 가진 한 여자(아가테)의 시선에서 시작한다. 오늘 부는 비바람처럼 안 반갑고 찐득찐득한 게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상황들이 펼쳐진다. 잘나가는 페미니스트 작가가 정치에 입문할 찰나에 다큐멘터를 찍기시작하면서 밥맛인 상황에 빠진다.  

촬영하는 사람들은 덜떨어졌다. 열심히 말하는 데 카메라가 오프되거나 힘들게 산을 올라갔는데 카메라 뱃터리가 없고, 또 피디 한 사람은 약속에 늦고 아주 마음에 안 든다. 와중에 남친은 자신의 위치가 뭐냐고 다그치면서 결별을 고한다.  

아가테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데만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나 상황은 지나가는 비와 같아서 곧 하늘이 개기를 기다린다. 페미니스트로 대중의 권익을 위한 정치가가 되기로 결심한 그녀다.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돌보는 데 서툰 사람이 소수자의 마을을 헤아리는 페미니스트가 어떻게 될 수 있겠는가.  

자신이 잘하는 것과 남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똑똑하고 명민해서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잘 아는 사람이 꼭 따뜻한 사람은 아니다. 대다수의 사람은 똑똑하지도 않고 명민하지도 않다. 꼭 필요한 일도 게으름이나 사소한 실수로 망쳐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따뜻한 심장을 가지고 있어서 차가운 비를 맞은 후 의지가 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물론 아가테처럼 똑부러진 사람도 따뜻한 사람이 될 수는 있지만 자신의 분야에서 두드러지려면 경쟁이 필수인데 경쟁에서 우승자가 되면서 주변을 돌보는 사람이 되는 건 사실 쉽지 않다. 영화는 다행히 아가테가 고향에서 사소한 짜증나는 일들을 겪으면서 얼어버렸던 심장을 녹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끝난다.   

현실에서는 그게 간단하지 않다. 내 이익과 명예가 먼저냐 타인에 대한 배려가 먼저냐하는 선택을 해야한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론에 따르면 이타심이 내 생존에 필요하다면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타심은 찾기 어려울 수 있다. 이타심을 소유하기 쉽다면 이타심에 대한 계몽도 필요없을 것이며 이타심을 가진 사람을 칭찬하지도 않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후배에게 물었다. "저렇게 덜떨어진 사람이 실제로 주변에 존재한다면 그래도 우리가 웃을 수 있을까?" 후배 왈, "아니오."  이 후배는 소심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를 자신의 편안함보다 우선시하는 캐릭터인데도 말이다. 우리가 가끔은 <레인>같은 영화가 필요한 이유는, 현실에서는 버겁지만 두 시간도 안 되는 시간동안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위안이 필요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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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9
장 폴 사르트르 지음, 정명환 옮김 / 민음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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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명한 사람은 뭘 해도 빛난다. 젠장. 글감이 없거나 소재가 없다고 불평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 그런 말이 쏙 들어갈 것이다. 더불어 자신의 재능 부재를 더욱 비관할 수도 있다. 유년시절에 책을 통해 세상을 접하고 습작을 한 기억을 이렇게 찬란하게 적다니. 사르트르의 어조는 실제로는 자조적이고 심해처럼 끝이 안 보이는 고독을 근사하게 묘사한다. 사르트르가 묘사한 고독이라면 견딜 수 있고, 또 견딜만한 가치가 있다고 결론 내리게 된다. 정신을 분열시킬 깊이의 고독마저도 단어들이 모여 춤을 추는 것처럼 경쾌하고 신비로운 것으로 다시 탄생시킨다.

<말>에서 추측할 수 있는 글을 쓰게된 동기는 외로워서였다. 오래 전, 소설의 기원 페이퍼를 써야했을 때다. 읽었던 책 중 마르뜨 로베르Marthe Robert가 쓴 <기원의 소설 소설의 기원Roman des origines et origines du roman>-검색해보니 번역서가 2001년에 나왔다!-에서 소설의 탄생을 프로이트 이론에 기대어 사생아batard 이론으로 설명을 했다. 내 보잘것 없는 기억력으로 지금까지 기억하는 내용인데 당시에 꽤나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아버지 세계를 부정하려는 욕구가 소설을 탄생시켰다. 마르뜨 로베르의 글이 떠오른 건 꼭 사르트르가 아버지 없이 자라서만은 아니다.  

그는 책들로 둘러싸인 서재에서 진짜 사물보다 사물에 대한 관념을 먼저 접한다. 그가 탐독한 건 모험소설이다. 실제로는 검은 글자들을 읽으면 책갈피를 넘기지만 정신은 서재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가 있는 것이다. 자신이 속한 세계를 부정하고 다른 세계를 만들려는 욕구가 그를 문학으로 이끌었다. 그가 말했듯이, 문학은 그의 신앙이고 구원이어야했다. <구토>에서 로깡땡를 둘러싼 무균질 대기가 실제 사르트르를 지배했다. 그런 그가 불균질한 모험 세계, 즉 참여문학으로 기운 것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그가 실제로 모험소설처럼 살았다면 그는 문학을 검이나 무기로 비유하기보다는 여가쯤으로 비유했을 거다. 갖지 못한 것, 도달하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은 이 천재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문학을 갖고 있었지만 문학을 벗어나고 싶어했다.  
 

또래와 단절된 채 어른들 속에서 귀여움을 받기 위해 가면을 쓰고 행동하고 글을 쓸 때만 자신의 고독과 데이트하는 거라는 표현 속에서 그는 작가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글을 쓰는 게 데이트라니! 물론 사르트르 같은 천재과도 자신이 재능이 없다고 불안해하고 끊임없이 최면을 건다. 쓰기 파트 중 많은 분량이 이 최면에 할애하고 있다. 그가 이끄는대로 최면에 걸릴 수 있다면..^^

평범한 독자로서 사르트르의 엄청난 유년기 기록을 읽으며 위안을 얻는다. 그의 비일상적 환경은 그에게 많은 불안과 좌절을 안겨주었고 이기려고 안간힘을 썼네, 나도 힘 내야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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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8-02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르트르의 구토는 저에게는 아직도 넘지 못한 '마의 장벽'과도 같은 소설인데... 이 책을 먼저 읽어야 겠군요~

넙치 2009-08-03 09:39   좋아요 0 | URL
제 개인적으로는 <구토>가 책장이 더 술술 넘어갔어요. 즐독하시길요.
 

 

 

 

 

 

 

 

미술사든 역사든 사histroy라는 건 앞선 이의 눈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미 써 놓은 자료나 책을 읽고 저자의 관점을 따라가든 말든 그건 독자의 권리이자 몫이고. 나는 왜 그림 읽어주는 책들을 기웃거리는가?하고 알베르토 망구엘 에세이를 읽으면서 생각해봤다.  

흔히들 하는 말, 그림 속에 역사가 있고 문화가 있기 때문이지만 그런 것 말고도 그림 읽어주는 글에서는 에세이스트의 관점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전문사가histrorian가 아니면 모든 그림 읽어주는 책은 에세이다. 에세이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다 고만고만하다. 간략한 시대배경, 화가의 안 알려진 사생활 등등.... 큰 차이는 이런 비슷한 정보를 지닌 저자들이 어떤 식으로 화가에게 접근했는가다.  

망구엘의 이 책은 1년 쯤 됐는데 읽기 쉽지 않았다. 먼저 화가들이 낯선데다(아는 작가라고는 피카소와 카라바지오 뿐이다-.-;;) 망구엘의 관점도 남달랐기 때문이다. 그림 얘기로 일단 시작하고는 삼천포로 빠지고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하는 편이다. 색깔있는 에세이를 쓰려고 화가들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각각이 독립된 챕터로 분리시킬 수 있어서 두고두고 읽어봐야 할 거 같다.

*조앤 미첼, 로베르 캉팽, 티나 모도티, 라비니아 폰타다, 필록 세누스, 알레이자디뉴, 피터 아이젠만등이 목차에서 보이지만 많은 화가나 건축가, 조각가들의 작품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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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0
하인리히 뵐 지음, 김연수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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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신 지 며칠이 지났을 때였다. 신문은 연일 애도와 그에 대한 찬사를 1면 머릿기사로 다루었다. 과거에 검찰 수사과정에서, 그를 파렴치한으로 몰았던 태도는 찾을 수 없었다. 파렴치한으로서 그의 이미지는 죽음으로 종식되었다. 그는 성자 반열에 올라있었다. 과거에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했는지 우리는 잊었다.

그러다 신문을 정리하다 한 달도 안 된 신문을 발견했는 데  노무현 대통령 뇌물수수에 관한 머릿기사였다. 같은 신문(경향신문)이었다. 진중권 씨는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을 타살이라고 했는데 그 증거자료를 의도치 않게 목격했다. 물리적으로 그를 죽이지 않았지만 우리 모두는 그를 죽음으로 이끈 공모자였다.

물론 신문사만이 살인 폭력에 가담한 게 아니다. 대부분의 국민이 신문의 머릿기사에 감정을 싫어 집단 폭력을 행사했다. 우리가 폭력 주체라는 걸 까마득하게 잊고는 또 다시 언론 폭력에 대해서만 광분했다. 텔레비전에 비친 애도하는 이들의 눈물은 거짓되진 않았지만 참되지도 않았다. 서럽게 흘리는 눈물 속에 반성이나 성찰에서 우러나오는 거라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우리의 기질이다. 집단 감성에 이성도 감정도 모두 동요되는.  

경향신문은 그리고나서 얼마 후에 반성 사설을 게재했다. 다른 신문과 다르다고 면죄부라도 받고 싶은 것처럼 보였지만 오히려 딱해 보였다. 난 그런 딱한 신문의 글을 읽는 딱한 독자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곱씹게 한다. 근면하고 총명한 한 젊은 가정부, 카타리나가 살인자인 줄 모르고 사랑한 사람 때문에 신문 머릿기사를 장식한다.  진실에 대한 열정보다는 한 기자의 과도한 탐욕이 카타리나의 명예만 빼앗은 게 아니라 그녀의 어머니를 죽인다. 물리적 살인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결국 카타리나는 탐욕스런 기자의 한 마디에 기자를 죽인다. 기자를 죽인 후 심문 과정이 이 책 내용이다. 결과는 기자 살해지만 살해동기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언론과 집단 폭력의 잔혹함을 마주한다. 은밀해서 쉽게 깨달을 수 없는 폭력이란 얼마나 잔인한지, 그리고 또 어떤 폭력을 낳는지... 

누군가의 행동이나 성품을 판단하는 건, 그게 선의건 악의든, 자제해야 한다. "친절하고 호의적이라고 해서 모두 선한 건 아니다." (31) 선good 역시 주관적이어서 내게는 선일 수 있지만 다른 이에게는 악이 될 수도 있다. 절대 선이나 악은 없다. 내 입장에서 선이나 악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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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인리히 뵐 -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혹은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
    from 이지적 감성 ; 독설데미 2010-08-24 22:27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 하인리히 뵐 지음, 김연수 옮김/민음사 지난학기에 같은 수업을 두개 들었던 심남이와는 결국 아무 썸씽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책을 많이 읽는다는 사람을 가까이 둔 덕에 재미있는 책을 추천받았다. 대부를 빌릴 때는 대충 말하더니(단편소설 쪽이나 찾아 보라는 무성의한 답장을 보내다니 너무함 - 대부독후감링크) 추천 받은 이 책은 꽤 재미있었기 때문에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방금 읽었어요 정말 재밌네요ㅎ"에..
 
 
 
요시노 이발관 - Yoshino's Barber Shop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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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모메 식당>으로 친숙한 오기가미 나오코 첫 장편 영화다. 바가지 머리가 전통인 한 마을에서 바가지 머리를 사수하려는 이발사 요시노와 전통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받아들이려는 신세대인 초등학생들 간의 이야기로 귀엽고 그럴 듯하기도 하다.  

요시노로 대표되는 전통주의자는 전통에 대한 다각적 고찰이란 없다. 다만 관성에 따라 습관적으로 전통 바깥 세상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게 된다. 스파게티를 본 적없는 사람이 스파게티를 먹고 싶고 싶다고 생각할 수 없는 원리와 같다. 그러나 세월은 흐르고 상황은 변환다. 아이들은 전학생을 통해 바가지 머리가 촌스럽다고 인식하기 시작한다. 바가지 머리 밖 세상이 있다는 걸 깨닫기 시작하는데 전학생이 없었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영화는 착하고 귀엽게 끝이 난다. 전통은 전설로 남기 마련이라고 바가지 머리는 이제 전설로 남기기로 한다. 요시노와 아이들은 사이좋게 지낸다. 별 이야기는 없지만 바가지 머리를 보다보면 배실배실 웃음이 나고, 어른이 아이 같은 감성을 잃지 않는 오기가미 나오코감독은 축복받은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단순한 일에 즐거워하고 화내는 거, 그리고 금방 타인에 옳다고 인정할 수 있는 걸 어른은 잘 못한다. 지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오코 감독은 어른이 잃어버린 어린 아이의 순수한 눈이 뭐였나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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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unkenBike 2009-07-02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내용 잘 보고 갑니다.

이번에 베타 서비스 오픈 기념으로 영화 '차우'에 대한 VIP 시사회가 있는데
시간 되시면 한번 참석 부탁드릴께요...

http://cooljam.tistory.com/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