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9
장 폴 사르트르 지음, 정명환 옮김 / 민음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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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명한 사람은 뭘 해도 빛난다. 젠장. 글감이 없거나 소재가 없다고 불평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 그런 말이 쏙 들어갈 것이다. 더불어 자신의 재능 부재를 더욱 비관할 수도 있다. 유년시절에 책을 통해 세상을 접하고 습작을 한 기억을 이렇게 찬란하게 적다니. 사르트르의 어조는 실제로는 자조적이고 심해처럼 끝이 안 보이는 고독을 근사하게 묘사한다. 사르트르가 묘사한 고독이라면 견딜 수 있고, 또 견딜만한 가치가 있다고 결론 내리게 된다. 정신을 분열시킬 깊이의 고독마저도 단어들이 모여 춤을 추는 것처럼 경쾌하고 신비로운 것으로 다시 탄생시킨다.

<말>에서 추측할 수 있는 글을 쓰게된 동기는 외로워서였다. 오래 전, 소설의 기원 페이퍼를 써야했을 때다. 읽었던 책 중 마르뜨 로베르Marthe Robert가 쓴 <기원의 소설 소설의 기원Roman des origines et origines du roman>-검색해보니 번역서가 2001년에 나왔다!-에서 소설의 탄생을 프로이트 이론에 기대어 사생아batard 이론으로 설명을 했다. 내 보잘것 없는 기억력으로 지금까지 기억하는 내용인데 당시에 꽤나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아버지 세계를 부정하려는 욕구가 소설을 탄생시켰다. 마르뜨 로베르의 글이 떠오른 건 꼭 사르트르가 아버지 없이 자라서만은 아니다.  

그는 책들로 둘러싸인 서재에서 진짜 사물보다 사물에 대한 관념을 먼저 접한다. 그가 탐독한 건 모험소설이다. 실제로는 검은 글자들을 읽으면 책갈피를 넘기지만 정신은 서재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가 있는 것이다. 자신이 속한 세계를 부정하고 다른 세계를 만들려는 욕구가 그를 문학으로 이끌었다. 그가 말했듯이, 문학은 그의 신앙이고 구원이어야했다. <구토>에서 로깡땡를 둘러싼 무균질 대기가 실제 사르트르를 지배했다. 그런 그가 불균질한 모험 세계, 즉 참여문학으로 기운 것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그가 실제로 모험소설처럼 살았다면 그는 문학을 검이나 무기로 비유하기보다는 여가쯤으로 비유했을 거다. 갖지 못한 것, 도달하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은 이 천재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문학을 갖고 있었지만 문학을 벗어나고 싶어했다.  
 

또래와 단절된 채 어른들 속에서 귀여움을 받기 위해 가면을 쓰고 행동하고 글을 쓸 때만 자신의 고독과 데이트하는 거라는 표현 속에서 그는 작가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글을 쓰는 게 데이트라니! 물론 사르트르 같은 천재과도 자신이 재능이 없다고 불안해하고 끊임없이 최면을 건다. 쓰기 파트 중 많은 분량이 이 최면에 할애하고 있다. 그가 이끄는대로 최면에 걸릴 수 있다면..^^

평범한 독자로서 사르트르의 엄청난 유년기 기록을 읽으며 위안을 얻는다. 그의 비일상적 환경은 그에게 많은 불안과 좌절을 안겨주었고 이기려고 안간힘을 썼네, 나도 힘 내야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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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8-02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르트르의 구토는 저에게는 아직도 넘지 못한 '마의 장벽'과도 같은 소설인데... 이 책을 먼저 읽어야 겠군요~

넙치 2009-08-03 09:39   좋아요 0 | URL
제 개인적으로는 <구토>가 책장이 더 술술 넘어갔어요. 즐독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