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0
하인리히 뵐 지음, 김연수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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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신 지 며칠이 지났을 때였다. 신문은 연일 애도와 그에 대한 찬사를 1면 머릿기사로 다루었다. 과거에 검찰 수사과정에서, 그를 파렴치한으로 몰았던 태도는 찾을 수 없었다. 파렴치한으로서 그의 이미지는 죽음으로 종식되었다. 그는 성자 반열에 올라있었다. 과거에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했는지 우리는 잊었다.

그러다 신문을 정리하다 한 달도 안 된 신문을 발견했는 데  노무현 대통령 뇌물수수에 관한 머릿기사였다. 같은 신문(경향신문)이었다. 진중권 씨는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을 타살이라고 했는데 그 증거자료를 의도치 않게 목격했다. 물리적으로 그를 죽이지 않았지만 우리 모두는 그를 죽음으로 이끈 공모자였다.

물론 신문사만이 살인 폭력에 가담한 게 아니다. 대부분의 국민이 신문의 머릿기사에 감정을 싫어 집단 폭력을 행사했다. 우리가 폭력 주체라는 걸 까마득하게 잊고는 또 다시 언론 폭력에 대해서만 광분했다. 텔레비전에 비친 애도하는 이들의 눈물은 거짓되진 않았지만 참되지도 않았다. 서럽게 흘리는 눈물 속에 반성이나 성찰에서 우러나오는 거라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우리의 기질이다. 집단 감성에 이성도 감정도 모두 동요되는.  

경향신문은 그리고나서 얼마 후에 반성 사설을 게재했다. 다른 신문과 다르다고 면죄부라도 받고 싶은 것처럼 보였지만 오히려 딱해 보였다. 난 그런 딱한 신문의 글을 읽는 딱한 독자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곱씹게 한다. 근면하고 총명한 한 젊은 가정부, 카타리나가 살인자인 줄 모르고 사랑한 사람 때문에 신문 머릿기사를 장식한다.  진실에 대한 열정보다는 한 기자의 과도한 탐욕이 카타리나의 명예만 빼앗은 게 아니라 그녀의 어머니를 죽인다. 물리적 살인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결국 카타리나는 탐욕스런 기자의 한 마디에 기자를 죽인다. 기자를 죽인 후 심문 과정이 이 책 내용이다. 결과는 기자 살해지만 살해동기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언론과 집단 폭력의 잔혹함을 마주한다. 은밀해서 쉽게 깨달을 수 없는 폭력이란 얼마나 잔인한지, 그리고 또 어떤 폭력을 낳는지... 

누군가의 행동이나 성품을 판단하는 건, 그게 선의건 악의든, 자제해야 한다. "친절하고 호의적이라고 해서 모두 선한 건 아니다." (31) 선good 역시 주관적이어서 내게는 선일 수 있지만 다른 이에게는 악이 될 수도 있다. 절대 선이나 악은 없다. 내 입장에서 선이나 악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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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인리히 뵐 -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혹은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
    from 이지적 감성 ; 독설데미 2010-08-24 22:27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 하인리히 뵐 지음, 김연수 옮김/민음사 지난학기에 같은 수업을 두개 들었던 심남이와는 결국 아무 썸씽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책을 많이 읽는다는 사람을 가까이 둔 덕에 재미있는 책을 추천받았다. 대부를 빌릴 때는 대충 말하더니(단편소설 쪽이나 찾아 보라는 무성의한 답장을 보내다니 너무함 - 대부독후감링크) 추천 받은 이 책은 꽤 재미있었기 때문에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방금 읽었어요 정말 재밌네요ㅎ"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