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본능 - 마음은 어떻게 언어를 만드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한영.문미선.신효식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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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원하는 정보는 하나도 얻을 수 없는 책이다. 책을 사고 목 빠지게 기다리면서(주문해서 내 손에 들어오는 데 폭설 여파로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언어 사용과 뇌는 어떤가..에 대한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물론 뇌와 언어사용과의 관계를 설명하지만 내가 기대했던 건 언어를 잘 사용하는 뇌였던 거 같다. 그러나 700페이지에 육박하는 내용은 인간은 태어날 때 언어 본능을 가지고 태어난다, 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그래서? 인내심있게 긴 주장을 읽은 수고가 조금 아까워지려고 한다. 길게 설명하고 있지만 저자가 허무할 정도로 간략하게 정리할 수 있다.   

언어에 관한 대부분의 시각은 문화적 산물이고 공시성과 통시성을 가지고 진화 내지는 변형한다고, 배워왔다. 생각을 문자와 소리로 나타낼 수 있는 건 인간이 유일한 존재고,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명제에 의문을 안 품는다. 저자는 이런 당연한 명제에 반기를 든다. 화성인이 지구인을 본다면 하나의 언어체계 속에 하나의 방언이 존재한다는 말로 시작해서 학습 이전에 아기들은 자체 언어프로그램 모듈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아기의 옹알이, 종류별 실어증 환자의 사례 연구를 통해 언어 기능 수행과 뇌의 상관관계를 설명한다. 말을 배우기 전에 어떤 언어도 처리할 수 있는 모듈이 있던 아기들은, 모국어 또는 환경상 주로 말해지는 언어에 빈번하게 노출되면서 무수한 언어수행관련 시냅스들이 점점 퇴화하고 주로 사용하는 말로 단순화한다고. 이런 일련의 연구결과를 국어 교재를 만드는 회사 마케터들이 두 팔 벌려 환영한다. 외국어를 어렸을 때부터 시켜야한다는 광고가 이런 결과를 재빨리 응용한 부정적 부산물이다.  

부제가 마음은 어떻게 언어를 만드는가?인데 마음이 언어를 만드는 법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 두꺼운 책이 허전한데는 언어를 잘 구사할 수 있는 뇌의 메커니즘이 아니라 보편적 언어구사의 물리적 메커니즘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언어사용의 세부적 환경이나 기능이 아니라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는데 환경이나 학습, 문화 이전에 근본적으로 한 뿌리로 보고 언어사용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말이 사람의 생각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고 애쓰는데 공감하기 힘들다. 첫째, 언어는 인간의 사유를 내포하고 있다고 오랫동안 학습받아왔기 때문이다. 둘째, 저자가 말하는 언어 본능은, 한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기 전의 기능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뇌가 태어날 당시에 보유했던 풍부한 언어 모듈이 자라면서 고착화되고 잃어버렸을 때의 차이를 설명하지 않는다.  

한 사람을 다른 사람과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유일하고 독특하게 만드는 건 그 사람이 지닌 무수한 사소하고 하찮은 습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모두 비슷한 언어본능을 지니고 태어났더라도 물리적, 자연적 습관에 따라 언어구사력이 달라진다. 그럴 때의 뇌 작용, 이런 게 난 궁금했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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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의 풍경 - Landscape in the 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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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거듭할수록 시간에 대한 감각도 없고 계획이나 희망에 대한 설렘도 없다. 2009년도 2010년도 비슷한 생활 주기곡선이 있을거라는 걸 직감한다. 어떠한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독서를 취미로 삼고 있는데 내 나이쯤 되면 책을 통해 정체성이나 가치관을 정립하기 보다는 오히려 가치관 혼란을 가져온다. 삶의 반경은 책이 말하는 정의와는 거리가 멀고 편안함이 보장되면 적당히 타협하는 현실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목적지가 어딘지 모르지만 계속 움직이고 있는" 그런 적당한 삶이 올해도 이어질 것이다. 한 친구가 올해 목표가 뭐냐고 물어서 객관적으로 그럴듯한 사항을 얼렁뚱땅 만들어내서 입 밖으로 말하고 정말 내가 그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 궁금했다. 목표를 이루려면 노력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내게 그런 다부진 의지의 불꽃이 남아있는지 의문이다. 문득 정신차려보니 1월은 쏜살같이 달려가고 있다. 내가 따라가든 말든 상관치않고 시간은 여전히 빠르게 흐르고 있다.  

<안개 속의 풍경>은 1월에 보기에 근사하면서도 어두운 영화다. 안개 속 멀리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두터운 안개를 뚫고 힘겹게 남매는 한발씩 내딛는다. 아빠가 있을 거라는 독일을 향해. 안개 속에 비도 내리고 일하지 않는 자 먹지말라는 차가운 어른, 도움에는 공짜란 없다는 나쁜 어른 세계를 보고 경험하지만 걸음을 멈출 수 없다. 처음, 아빠를 찾아 떠난 길은 이제 짙은 안개에 갇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도 걸음을 멈출 수 없다. 계속 가다보니 안개 너머에 도착했다. 안개 뒤에 목적지처럼 보였던 한 그루의 나무는 반갑지만 종착지가 아니라 또 다른 출발점이다. 나무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으며 나무 뒤에는 여전히 두터운 안개가 자리잡고 있다. 입김이 나올 정도로 차가운 대기 속을 달리는 기차에 쭈그리고 앉아 잠을 자거나 적막한 차도에 덩그러니 남겨진 어린 남매의 모습은, 어른 세계에 있는 희박한 희망을 비춘다. 그들이 자라도 많은 절망을 이겨야고 이따금의 선과 환희를 등대삼아 전진해야하는 인생살이.   

감독의 정치적 우의가 어떻든, 녹록치않은 삶에 대한 성찰이 담긴 영화다. 삶에 대한 즐거움을 기록하는 것과 절망을 기록한 것 중 희망을 주는 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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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들레르의 마지막 나날들
베르나르 앙리 레비 / 책세상 / 199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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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끝까지 읽었지만 내가 뭘 읽었다고 말할 수 없는 책이다. 기본적으로 보들레르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겠지만 그보다도 이 책은 에세이에 가깝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문장나열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머리속 생각을 주절주절 늘어놓는다.  

이 책을 펼친 이유는, 물론 벤야민 때문이다. 제목으로만 봐서는 보들레르가 죽기 전과 관련이 있는 거 같다. 관련이 있긴한데 죽기 전이니 아주 암울한 분위기만 잡아낼 수 있다. 벤야민이 수많은 시인 중 보틀레르한테 관심을 가졌는지 이해가 간다. 벤야민이나 보들레르를 읽다가는 우울증에 걸리지 쉽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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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 - Avatar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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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사이트에서 아바타가 처음 나왔을 때다. 어느날 갑자기 아바타란 이름의 사람 그림이 나와서 나 인척하고 있었다. 아바타가 태어나서 다음 사용자에게 나눠진 상태는 속옷차림이었다. 처음에는 별 생각없이 왠 그림?했지만 계속 보다보니 내가 올리는 까페에 올리는 글(당시 난 까페 운영자였다), 메일에 속옷차림의 여자가 함께 따라다니니까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마치 내 사진이기라고 한 것처럼 속옷차림의 여자 그림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하고 결국엔 옷을 사서 입혔다. 그리고는 떳떳하게 아바타를 데리고 다녔다. 사진이나 각종 이미지들을 자유롭게 링크할 수 있게 되면서 아바타는 쇠퇴했다. 영화를 보면서 이런 잡생각을 했다.  

긴 런닝타임은 멀미가 났다. 3D안경을 쓰고  한 시간동안은, 오-신기한데, 했다. 한 시간이 경과하자 눈이 아프기 시작하고 두 시간이 지나서는 안경을 벗었다. 하일라이트 전쟁신은 안경을 벗은 채 눈을 감았다 뜨곤했다. 눈을 뜨면 그림들은 몇 겹으로 보이는 아주 지루한 장면의 연속이었다. 캡슐에 들어가 실제 인물은 눈을 감은 채 움직이지 않고 자신의 유전자로 태어난 아바타가 새를 타고 날기도 하고 말을 타기도 하고 싸우기도 한다. 아바타와 실제 자신 사이에서 정체성을 혼동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관객은 입구에서 현실과 스크린을 혼동할 매개체, 검은 안경을 받고 스크린과 검은 안경 뒤에서 실제와 영화를 혼동하기로 동의한 채 배정받은 의자에 앉아있다. 꽃잎이 눈 앞에 떨어지고, 익룡같은 새를 타고 하늘을 활주하고, 떨어지는 불꽃을 맞는 거 같은 착각을 즐기면서. 영화의 결말대로 미래에 언젠가 모두 검은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볼지도 모른다. 안경없는 세상은 지루하다며 안경이 가져다주는 착시와 환각에 의존할지도.. 

이런 잡생각을 했는데도 영화는 끝나지 않았다. 2시간이었으면 좋았을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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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된 진실 - 계급.인종.젠더를 관통하는 증오의 문화
데릭 젠슨 지음, 이현정 옮김 / 아고라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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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신문에서 하워드 진 인터뷰를 읽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건 정치인이나 선거가 아니라 소시민 운동이라고. 아멘. 오바마의 대테러 대응이 실망스러운 건 오바마가 테러를 없앨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거다. 오바마 혼자서는 테러를 막을 수 없다. 테러에 대한 일반인의 시각이 바뀌어야지. 미디어에서 다루는 대부분의 경제에 관한 보도들이 많은 사람들의 일상과는 관계가 없다고. 매일 코스닥지수의 등락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건 일부 부자들이고 수출입 무역수지는 재벌기업의 관심사고. 극단적인 거 같지만 우리는 미디어에 길들여져 미디어가 만드는 분위기에 휩쓸린다. 각 개인이 좀 더 현명한 시각을 가지고 현명한 선택과 행동을 한다면 세상을 달라질 거란 말이다. 덜 경쟁적이고 덜 불안한 사회. 살기 좋은 사회란 풍족한 사회가 아니라 덜 불안해서 경쟁에 관심을 덜어낼 수 있는 사회인 거 같다.  

<거짓된 진실>은 이런 관점의 글이다. 우리 모두가 서로를 의심하고 증오하도록 세뇌당하고 있다는. 그래서? 하고 책장을 덮으면서 반문한다. 꽤 두꺼운 분량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얻을 수 있는 게 고작 반문이다. 이런 책의 한계가 어떤 사실을 바로 보게 하는 데서 그치는 거다. 이럴 때, 일반 독자는 힘이 빠진다. 책에 어떤 길이 있을 거라고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는데 결국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바로보는 게 해결을 위한 첫 단계라고만 하니. 나처럼 이중적 잣대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내가 정신차리려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만 안겨준다.  

저자 역시 자신이 찾고 있는 게 뭔지 갈팡질팡하고 독자한테 하워드 진의 말을 읽어준다. 

"우리의 문제가 시민 복종이다. 우리의 문제는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정부 지도자들의 명령을 따라 전쟁에 나갔다는 것이다. 그 복종 때문에 수백만이 죽었다. .......우리의 문제는 전세계에서 가난과 기아와 어리석음과 전쟁의 잔인함 앞에서 사람들이 복종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문제는 감옥은 좀도둑으로 넘치고 큰 도둑들은 나라를 운영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이 복종을 한다는 것이다. 그게 우리의 문제이다." 

우리의 불안의 근원을 뿌리 뽑는 일은, 우리 스스로가 헤쳐나가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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