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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의 풍경 - Landscape in the Mist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해를 거듭할수록 시간에 대한 감각도 없고 계획이나 희망에 대한 설렘도 없다. 2009년도 2010년도 비슷한 생활 주기곡선이 있을거라는 걸 직감한다. 어떠한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독서를 취미로 삼고 있는데 내 나이쯤 되면 책을 통해 정체성이나 가치관을 정립하기 보다는 오히려 가치관 혼란을 가져온다. 삶의 반경은 책이 말하는 정의와는 거리가 멀고 편안함이 보장되면 적당히 타협하는 현실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목적지가 어딘지 모르지만 계속 움직이고 있는" 그런 적당한 삶이 올해도 이어질 것이다. 한 친구가 올해 목표가 뭐냐고 물어서 객관적으로 그럴듯한 사항을 얼렁뚱땅 만들어내서 입 밖으로 말하고 정말 내가 그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 궁금했다. 목표를 이루려면 노력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내게 그런 다부진 의지의 불꽃이 남아있는지 의문이다. 문득 정신차려보니 1월은 쏜살같이 달려가고 있다. 내가 따라가든 말든 상관치않고 시간은 여전히 빠르게 흐르고 있다.
<안개 속의 풍경>은 1월에 보기에 근사하면서도 어두운 영화다. 안개 속 멀리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두터운 안개를 뚫고 힘겹게 남매는 한발씩 내딛는다. 아빠가 있을 거라는 독일을 향해. 안개 속에 비도 내리고 일하지 않는 자 먹지말라는 차가운 어른, 도움에는 공짜란 없다는 나쁜 어른 세계를 보고 경험하지만 걸음을 멈출 수 없다. 처음, 아빠를 찾아 떠난 길은 이제 짙은 안개에 갇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도 걸음을 멈출 수 없다. 계속 가다보니 안개 너머에 도착했다. 안개 뒤에 목적지처럼 보였던 한 그루의 나무는 반갑지만 종착지가 아니라 또 다른 출발점이다. 나무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으며 나무 뒤에는 여전히 두터운 안개가 자리잡고 있다. 입김이 나올 정도로 차가운 대기 속을 달리는 기차에 쭈그리고 앉아 잠을 자거나 적막한 차도에 덩그러니 남겨진 어린 남매의 모습은, 어른 세계에 있는 희박한 희망을 비춘다. 그들이 자라도 많은 절망을 이겨야고 이따금의 선과 환희를 등대삼아 전진해야하는 인생살이.
감독의 정치적 우의가 어떻든, 녹록치않은 삶에 대한 성찰이 담긴 영화다. 삶에 대한 즐거움을 기록하는 것과 절망을 기록한 것 중 희망을 주는 건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