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어스맨 - A Serious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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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the truth is found to be lies
and all the joy within you dies
don't you want somebody to love
don't you need somebody to love
wouldn't you love somebody to love
you better find somebody to love

-Somebody to Love, Jefferson Airplane
  

무언가를 믿는다는 게 뭘까. 내 방 책상은 누군가 일부러 옮기지 않으면 늘 그 자리에 있다. 내가 외출해서 돌아온 후에도 책상은 그대로 있다. 내가 외출 중에도 책상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누군가 책상이 정말 그대로 있냐고 물으면 나는 의심하지 않고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보지 않았지만 책상이 움직이지 않았다는 걸 믿기 때문이다. 이 믿음은 어디서 나오는걸까...비트겐슈타인은 이런 요상한 질문들을 던졌다. 코엔 형제는 비트겐슈타인의 질문을 극장편 영화에 옮겨 놓은 거 같다. 보지 않은 것에 대한 확신과 불확신의 경계를 카메라를 통해 탐구한다.  

삼 년 전에 죽었다는 한 랍비가 어느 부부를 찾아온다. 아내는 소문을 믿고 남편은 소문에 대한 믿음이 없다. 믿음이 확고한 아내는 랍비를 유령이라고 생각하고 확인차 랍비의 가슴을 송곳으로 찌른다. 랍비의 가슴은 피로 서서히 물들고 타이틀 롤이 올라간다.  

히브리어 수업을 하는 교실, 병원에서 누워서 엑스레이를 찍고 있는 물리학 교수 래리의 긴장한 모습이 교차한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유태계 소년, 소녀들에게 유태인 공동체의 룰을 강요하는 어른들의 믿음은, 아이들한테는 믿음이 아니고 암기해야하는 수고를 보태야하는 불확실한 것이다. 세상은 익숙한 것에 대한 믿음과 낯설지만 의무란 영역에 대한 당위성으로 카오스 그 자체다. 질서정연한 거 같아보이지만 확신과 불확신의 경계를 의식하는 순간 진앙지를 알 수 없는 진동을 감지한다.   

래리의 일상은 갑자기 균열이 생기면서 높은 강도로 진동하기 시작한다. 문제 없었던 아내는 다른 사람과 결혼할 수 있도록 이혼을 요구하며 F학점에 이의를 제기한 (한국) 학생은 촌지를 두고 간다. 영구교수직은 심사 중인데 동료는 반대하는 편지를 받았다고 하고, 자폐인 줄 알았던 동생은 도박에, 남색이란 죄목으로 경찰에 체포될 판이다. 아들은 말도 없이, 자신의 이름으로 레코드 클럽에 가입해 회비 연체 중이라 툭하면 독촉 전화를 받는다. 래리가 외치는 말은, "난 아무 것도 안 했어요" 다.  

래리의 심정이 이해되는 게 아무 것도 난 안 했는데 일이 꼬이는 것 같은 때가 정말 있다. 우리는 우연이라고 부르지만 우연과 필연의 차이는 무엇인가. 필연을 의도하고 한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필연도 우연이 된다. 또 우연이 때 맞춰 일어나면 필연이 된다. 이럴 때 거대한 우주적 관점에서 미미한 존재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래리는 랍비를 찾아간다. 젊은 랍비, 중년 랍비, 연륜만큼 현자라 만나기 힘든 랍비. 랍비들의 조언은 새로운 관점을 가져라, 사소한 우연은 무시해라, 나이든 랍비는 만나주지도 않는다. 결국 래리는 사방에 생긴 균열로 흔들리는 고통을 혼자 감당하느라 밤마다 식은 땀을 흘린다. 시간은 흐르고 진동은 서서히 가라앉는다. 균열의 틈이 다시 저절로 좁아드는 것 같다.

믿음이 흔들릴 때 흔들림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사랑할 사람을 찾으라고 한다. 명쾌한 결론이다. 코엔 형제도 나이를 드신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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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꿈꾸는 기적 : 인빅터스 - Invictus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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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며 내 영혼의 선장일지니." 

클린트 이스트우드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보내기 시작한 건 2004년 작,  <밀리언달러 베이비>를 본 후 부터다. <밀리언달러 베이비> 이전에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피부가 얇아서 엄청 주름많고 '빼빼로' 같은 몸을 지니신 노배우일 뿐이었다. <밀리언달러 베이비>에서 보여준 이스트우드 옹의 세계관은 깊은 울림을 주었고 우아한 사람의 모범을 보여준다.  

그의 영화는 광택나는 화면으로 관객을 유혹하지 않는다. 시종일관 진지하고 슬로우 템포고 기품이 있다. 오래되서 빛이 바랬지만 깨끗하게 세탁해서 정성스럽게 다림질된 셔츠를 입은 사람한테서 풍기는, 기품이 영화에 배어있다. 그의 영화들을 보면 독백같은 일기를 써 내려가는 거 같다. 담담한 어조로 서술하면서 놀랄 일은 없지, 하는 관조적 시선을 보낸다. 냉소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애잔한 시선이 심장을 따뜻하게 한다.

그는 "정치에는 관심 없고 보수주의자며 독실한 크리스천"이라고 했던 걸 읽은 적이 있다. 그의 영화 속에는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어떤지 혹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인물들이 있다. 그들은 정치에는 관심이 없지만 정의와 모순을 구별하는 분별력이 있고  기성세대나 기득권층은 사회적 약자와 더불어 살 의무가 있으니 실천한다.

<인빅터스>는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 임기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시작하지만 넬슨 만델라의 전기영화는 아니다. 27년간 투옥생활을 했던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을 바꾸는 이야기를 한다. 럭비란 스포츠를 수단으로 한다. 스포츠에 은폐된 이데올로기를 마음껏 이용하는 이야기지만 시장 경제에서처럼 자본 축적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다. 극심한 분열 상태에 있던 인종갈등을 푸는 실마리로 이용한다. 감상적인 면이 분명히 있지만 감상적 태도 너머에 투박하지만 부조리에 대한 통찰이 선행되서 불쾌한 스포츠 영화로 흘러가는 걸 막는다.   

<그랜 토리노>에서 백인 할아버지나 <인빅터스>에서 흑인 대통령처럼 가진 자(혹은 가진 것처럼 보이는 자)가 올바른 시선을 가질 때 세상은 희망으로 넘친다. 윤리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메시지지만 이스트우드의 진지함이 터무니없는 희망을 비웃지 못하게 한다. 진심으로 꿈을 믿는 사람을 우리는 비웃을 수 없다. 존경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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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 - A Prophet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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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겨울이 끝나갈 무렵 혹은 겨울이 시작될 무렵, 길에서 추격신을 본 적이다. 굵은 웨이브 머리를 한 남자가 쫓기고 있었다. 남자는 슬리퍼를 신고있었고 통통한 볼이 발갛게 상기되어 헉헉거리며 뛰고 있었다. 뒤에는 세 명의 제복을 입은 경찰관들이 허리를 휘청이면서 따라갔다.남자의 슬리퍼 한 짝이 벗겨졌다. 몇 미터 맨 발로 뛰다가 곧 땅에 쓰러졌다. 한 경찰관이 모로 누운 남자한테 왔다. 영화에서라면 남자는 벌떡 일어나야했다. 그러나 남자는 숨을 몰아쉬기만 할 뿐이다. 허공으로 나온 가쁜 입김이 남자가 일어날 수 없다는 걸 알려주었다. 남자한테 온 경찰은 남자의 손을 뒤로 꺾는 것도 힘겨워보였다. 곧 두 경찰관도 합류해서 상황은 일단락 됐지만 네 사람의 얼굴에는 고통이 스며있었다. 횡단보도 바로 앞에서 목격했는데 깜짝 놀랐다. 영화에서는 별 힘들어 보이지않고 골목을 누비거나 대로를 누비는 박진감이 실제 상황에서는 없었다. 네 사람이 달리는 속도는 슬로우 모션같았고 쫓는 이와 쫓기는 이의 얼굴은 똑같았다. 누아르 영화에서 봐 왔던 멋진 추격신은 현실에는 없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끝날 때까지 초조했다. 그 이유는 범죄영화를 코미디나 휴머니즘을 결합시킨 한국영화, 영웅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는 미국영화에 길들여져있어서 다른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걸 보면서 아주 낯설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말리크의 거친 삶을 영화처럼 말하는 게 아니라 현실처럼 말한다. 그의 얼굴과 몸 전체에 흉터 자국, 불안할 때마다 흔들리는 눈동자는 2년 전 봤던 퍼머 머리 한 남자가 수갑을 찬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영화는, 11살 때 학교를 그만두고 소년원을 들락거리다 19살이 돼서 소년원이 아니라 감옥으로 가는 말리크의 성장과정을 다룬다. 감옥은 그에게 학교보다 더 많은 걸 가르쳐준다. 배우다 말았던 프랑스어를 다시 배우면서 단순과거 시제 사용에 깜짝 놀란다. 사람들이 단순과거란 시제를 쓰는 걸 감옥에서 처음 배우는 것 처럼 그저 좀 도둑이었던 말리크는 감옥에서 마피아 조직의 똘마니로 들어가 형기를 마치고 나올 때 똘마니를 거느린 조직의 보스가 돼서 나온다. 감옥에서 살인을 처음 해 보고 마약도 처음 해 본다. 감옥에서 두목의 심부름을 하려고 외출을 허가 받고 처음 비행기도 처음 타본다. 뭐든 처음 해보는 시기가 사람한테는 있다. 처음 시제를 배우고 친구를 사귀는 곳은 학교고, 일을 하기 시작하는 곳은, 크든 작든 합법적 조직이 일반적이다. 이런 일반적 과정을 거치지 못한 아랍 출신의 젊은이한테 감옥은 학교고 회사다. 뒷거래를 하는 법을 배우고 사람을 돈으로 매수하고 위협하는 법을 배운다.   

감독의 관점은 진지하고 조직의 의리라든가 액션에 관심이 없다. 소외된 한 아랍 청년이 마피아 조직의 중간 보스가 되는 과정은 아랍 청년의 현실이고 생존기다. 갱생의 공간이 본래의 목적과는 다른 갱생 공간이 되는 모순을 마주할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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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3-28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1시간 30분쯤 보다가 너무 마음이 힘들어져서 그냥 나와버렸어요. 아... 뒷 이야기가 궁금하긴 했지만.. 너무 감정이 힘들어지더라구요. 원래 이런 류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영화평이 너무 좋아서 보다가..ㅠㅠ

정말로 갱생의 공간이 본래의 목적과는 다른 갱생 공간이 되지요? ㅠㅠ 넙치님.


넙치 2010-03-29 00:06   좋아요 0 | URL
지독하게 진지해서 저도 힘들었어요.ㅜ.ㅡ
 
잔느 딜망 - Jeanne Dielman, 23 Quai du Commerce, 1080 Bruxel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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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설. <나는 영국왕을 섬겼다>를 검색하려고 영국을 쳤더니 그동안 검색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영국에서 제작되거나 영국 합작 영화들이 주르르 떴다. 호기심에서 프랑스를 쳤더니..세상에나..감독 이름이나 배우 이름으로 찾을 수 없는 영화들이 한가득이다.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게 억울하기도 하고 철지난 옷에 무심코 넣어뒀다 생각지도 못하게 발견한 지폐처럼 즐겁기도 하다. 로랑 캉테의 <더 클래스>, 고다르의 영화 몇 편. 게다가 샹탈 애커만의 <잔느 딜망>이라니! 201분이라는 압박스런 런닝 타임에 3일에 걸쳐서 일 끝나고 봤다.  

브뤼셀의 께 뒤 꼬메르스Quai du Commerce 23번지에 잔느라는 과부가 있다. 그녀는 집에서 매춘을 해서 생활비를 벌고 아들을 키운다. 카메라는 삼일 동안 끈질기게 그녀를 지켜본다. 좁은 집안에서 그녀를 조용하지만 짖궂을 정도로 밀착해서 따라다닌다. 좁고 어두운 복도, 그녀가 주로 시간을 보내는 주방에서 카메라는 그녀를 기다린다. 프레임 안으로 그녀는 들어왔다가 나간다. 프레임 밖으로 잔느가 나가도 마루바닥에 닿아 나는 발소리가 분주하다는 걸 알려주고, 설거지를 할 때 물소리가 그녀가 아직 어디 있는지 알려준다. 음악보다는 주전자 물 끓는 소리, 발걸음 소리, 엘리베이터 작동하는 소음 등이 그녀의 신경과 관객의 신경을 긴장시킨다.

잔느는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고 장을 본다. 장보고 집에 오는 길에 똑같은 카페에 들러 같은 자리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집에 돌아와 저녁식사 준비를 하고 아들과 최소한의 대화만을 나누고 잠자리에 든다. 소름끼칠 정도로 그녀의 일상은 지독한 쳇바퀴다.  

그러나 권태보다는 긴장감이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 둘째 날, 신경이 예민해질대로 예민해진 잔느는 아침에 아들 구두를 손질하다 구두솔을 떨어뜨리고 매춘 후, 첫날과 다르게 헝클어진 머리를 그대로 하고 있으며 잠옷 가운 단추도 다 채우는 걸 잊는다. 똑같은 일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미세한 오차가 그녀의 초조한 심리를 전달한다. 장을 보러갈 때도 카메라는 길에서 그녀를 기다린다. 그녀가 물건을 사러 들어가도 그 자리에서 빈 거리를 보여준다. 조금 기다리면 그녀가 가게에서 나오고 카메라는 그녀의 뒤를 따라간다.  

셋째날에, 잔느의 심리는 더 고조된다. 커피를 두 번이나 탔지만 곧 쏟아버리고 양복 단추를 찾아 동네를 돌지만 단추는 없다. 설상가상으로 카페에 들렀더니 늘 앉던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아있다. 침대 시트 정리 같은 사소한 일에도 각을 잡고 베개에 난 구김을 털어내는 그녀의 손동작 속에 전력투구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다. 표정은 굳어있고 옷매무새가 검소하지만 흐트러짐이 없는 그녀는 목으로 올라오는 일상의 권태를 꿀꺽 삼키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삼키는 게 더 이상 힘들어질 때, 게워내기 마련이다. 잔느가 보낸 이틀을 두 시간동안 보내고 있으면 삼일 마지막에 게워낸 잔느의 행동에(궁금하신 분은 보시길) 놀라기보다는 공감을 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른다.   

건조한 프레임에서 정교하게 짜 넣은 공감의 힘에 박수치고 싶다. 수다스럽지 않게 일상의 힘겨움을 다룬다. 때론 일상이 축복이지만 일상은 대부분은 투쟁의 대상이다. 사소해서 싸우고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래서 곧 자신과의 싸움이 돼버린다. 가사 노동만이 그 대상이 아니라 밥벌이를 위한 일정한 노동도 반복적이다. 아주 가끔 보람 비슷한 게 찾아오는 거 말고는, 대부분의 날들 동안 연봉에 맞는 노동력을 제공하려고 애쓰다 보면 자아 따위의 개념은 우주여행 중이시다. 발을 딛고 있는 건 피곤한 육신이고 투덜거릴 기력조차도 없다. 힘든 요즘이다..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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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3-28 2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힘든 요즘이다..흑 ㅠㅠ

저두요..ㅠㅠ


근데 이 영화는 못 보았어요. 꼭..반드시.. 찾아보야겠네요.... 저도..잔느의 행동에 놀라기보다는 공감을 할 것 같아요..

넙치 2010-03-29 00:05   좋아요 1 | URL
최근 본 영화 중에서 제일 좋았던 영화에요,
근데 <예언자> 보는 거 힘드셨음, 이 영화도 지켜보기에 만만치않게 힘들어용.-.-;;
 
베라 드레이크 - Vera Dr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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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할 권리>에서 김연수는 미국에서 만난 한 젊은 친구와 하루키를 이야기하면서 나이도 국적도 다른 공통점이라곤 하나도 없는 사람들끼리 하루키를 좋아하는 게 신기하다고 신나게 이야기한다. 하루키의 문장만으로도 두 사람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급친해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분명히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코드가 존재한다. 마이크 리 감독의 영화를 몇 편 안 봤지만 그의 영화적 언어에서 공감을 느낄 수는 없다, 고 말할 수 있다. 저렇게 밖에 표현이 안 되나..안타깝기까지 했다. 꽤 좋은 평을 받은 영화라도 마음을 끌어당기는 구석이 거의 없다. -.-

전반부는 베라 드레이크의 성실함과 행복을 다룬다. 유능한 가정부로 맡은 일에 성실한 소시민이다. 늘 같은 길, 같은 시간표로 일상을 살아가지만 베라 드레이크는 늘 콧노래를 부를 정도로 여유있다. 영화가 전개되는 시점은 1950년으로 낙태가 금지된 시기다.(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베라는 원치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에게 낙태시술을 한다. 베라가 낙태시술을 하는 목적은 젊은 여성을 돕는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돈을 챙기거나 법을 어기고 있다는 생각 따위보다는 겁에 질린 여성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기쁨이 더 컸다. 모든 기쁨은 끝이 있는 법이다. 베라의 시술이 잘못돼서 죽을 뻔한 여자의 엄마가 신고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후반부는 낙태시술이라는 불법행위에 대한 제도권의 태도와 베라의 태도를 배치해 보여준다. 먼저 베라는 정신세계 속에 위생, 불법 등등에 대한 개념이 없다. 베라는 "도와주기 위해서"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무지에서 비롯되서 선의라고 착각한 행동에 대해 베라는 그저 공포스럽기만 할 뿐이다. 형사나 검사, 판사들은 그녀의 의도를 보는 게 아니다. 그들은 베라의 행동만을 떼 놓고 본다. 행위가 행위자의 의도를 빠져나와 사람의 입이나 글로 진술될 때, 얼마나 다른 일이 될 수 있는지...법이나 정의의 객관성은 사람의 생각을 거추장스러워해서 싹뚝 잘라버리니 진정한 정의는 과연 존재하는지. 

뭐,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다. 실내 장면이 많고 카메라는 굉장히 좁은 공간만을 사용한다. 인물의 클로즈업, 모여앉은 인물들을 한 앵글에 잡을 때도 그렇다. 어쩌면 미국식 카메라 팬잉fanning에 익숙해서 정지된 카메라가 낯설고 답답한지도 모르겠다.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베라가 좁은 골목길을 왔다가갔다 할 때다. 캡쳐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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