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결혼(외) 범우희곡선 31
페데리코 가르시아로르카 지음, 정선옥 옮김 / 범우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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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카를로스 사우라의 아름다운 영화 <피의 결혼식>을 보고 로르카의 원작이 급궁금해졌다. 짧은 희곡인데 격정적이다. 간결하고 대사가 시적이다. 사랑의 격정을 이처럼 짧고 강렬하게 표현할 수 있다니...언어의 세계란 역시 매력있다. 백문이 불여일견.  

"너를 잊고자 했기에 

네 집과 내 집 사이에  

돌담을 쌓았건만,  

그렇지. 너 기억나지 않니? 

멀리서 너를 봤을 때 

내 눈에 모래를 뿌렸지. 

하지만 말을 타면  

말은 네 집으로 가곤했지 

은색 핀들로 

내 피는 검은 빛으로 변했고  

꿈이 나를 잡풀로 된 

살로 가득 채우네. 

나는 잘못이 없네. 

잘못은 대지에 있고  

네 가슴과 머리에서 나는  

그 향기에 있네."

 이미 아내가 있는 남자가 한 여인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을 말하는 대목이다.  보고싶다, 니 생각만 난다란 말을 안 사용하고 그리움이 얼마나 깊은지 말하는 게 바로 문학이란 이름이다. 카를로스 사우라의 영화나 다시 한 번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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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츠 오브 컨트롤 - The Limits of Control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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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무덤에 가야해"란 말을 실천하는 한 킬러의 여정을 담은 로드 무비. 마드리드-세비야-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작은 마을-다시 마드리드로 이어지는 동선 중에 만난 사람들인데 킬러를 주인공으로 세우고 있지만 작전을 구실로 킬러의 여행기 같다. 비장한 표정에 말 없고 더블 에스프레소가 아닌, 에스프레소 싱글 두 잔을 시켜놓고 하는 일이라고는 지나가는 사람을 관찰한다.  

"스페인어를 할 줄 아세요?"란 암호로 낡은 성냥갑을 주고 받는 간단한 접선이 끝나면 그는 골목길을 누비며 다시 호텔로 돌아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본다. 그리고 가끔 레니아 소피아 미술관에 들러 후안 그리스 그림 앞에서 표정없이 한참 서있다 돌아선다. 그의 각진 얼굴은 무표정해 보이면서도 비장해보이고 또 어떤 때는 모나리자처럼 묘한 미소가 희미하게 번지면서 슬퍼보인다. 스페인어만이 아니라 모국어도 말 할 수 없는 형에 처해진 것처럼 무언가 말할 듯하면서도 체념하는 표정이다.

그의 특별한 여행은 킬러답게 어떤 지령을 받기 위해 사람들과 접선을 하면서 전개된다. 접선자들은 암호문을 말하고 킬러가 고개를 저으면, 접선자는 탁자에 앉아 수다를 떤다. 킬러한테 영화에 관심있나요, 과학에 관심있나요, 하고 묻지만 그들이 필요한 건 그의 대답이 아니라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다. 그가 관심이 있든 없든 그들이 어떤 대상을 좋아하는 이유를 말해버리면 자리에서 일어나 가 버린다. 마드리드에서 만난 한 여자는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어떤 영화는 아무 말 없이 인물이 앉아 있어서 좋다고 말한다. 짐 자무쉬의 영화에 무한한 애정을 보내는 사람으로서, 빙고!를 속으로 외쳤다. 이 여자의 말에 동의한다면 <리미츠 오브 컨트롤>은 최고의 영화로 기억 속에 보관될 것이다.  

킬러가 뭘 하나가 영화의 중심이 아니라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표정과 좁은 골목이 만들어내는 그림자에 마음이 쏠리는 영화다. 자무쉬표 영상은 황홀하다. 스냅사진 찍듯이 인물들은 일부러 움직임을 잠깐씩 멈춘다. 킬러가 낡은 옷가방을 한 손에 들고 뚜벅뚜벅 어딘가로 걸어갈 때, 내 마음은 그의 발걸음과 함께 움직인다.  

자무쉬는 떠나는 데서 이야기를 시작하길 좋아한다. 길을 나서는 건, 익숙한 것에 대한 저항이면서도 낯선 것에 대한 설레임 내지는 허망함을 짧은 시간에 동시에 맛 볼 수 있다. 기차나 비행기 계단을 오를 때 목적지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계단을 내려오면서는 목적지는 낯설고 곧 도망고 싶은 그런 장소가 되버린다. 목적지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사람 마음이 변덕스러워서 그런거겠지. 

현재 가장 원하는 건 3개월 간의 기.차.여행이다. 어떤 목적지에 가겠다는 갈망은 희미하고 도시에서 도시로, 국경에서 국경으로 넘어갈 때 갈아타야하는 기차 기다리는 시간 또는 밤 기차 기다리면서 역에서 보내는 고생스런 시간들이 그립다. 몇 시간씩 우두커니 앉아 플랫폼 싸인이 들어오길 간절히 바라면서 보내는 축축하면서도 나른하고 고된 그런 시간들을 갖고 싶다는 갈망이 이 영화를 보면서 밀물처럼 차올랐다. 가야할 목적지가 있다는 희망은 곧 효력을 상실할테고 목적지에는 여전히 이방인으로 서성거려야하며 한없이 유쾌하고 떠들썩한 시간이 아닌 걸 깨닫고 어깨가 축 처질지라도..축 처진 어깨가 주는 기분이 달콤하다고 속삭이며 꼬득이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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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멘 - Carme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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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플라멩코로 카르멘을 구성하려고 한 안토니오는, 카르멘이 지닌 팜므파탈을 찾다 신인, 카르멘을 발견한다. 동료들은 반대하지만 안토니오는 카르멘이 지닌 숨은 치명적 매력을 발견하고 끌린다. 연습이 진행될수록 안토니오와 카르멘의 관계는 극과 구분할 수 없게 된다. 관객도 어디까지가 연습이고 어디까지가 영화의 내러티브인지 구별할 수 없다. 연습 중에도 두 사람의 팽팽한 눈길이 절도 있으면서도 강렬한 발구르기에 맞춰 오간다. 연습이 끝나고 현실에서 주고 받는 팽팽한 시선을 주고 받을 때는 비제의 카르멘이 흐른다. 플라멩코과 오페라 곡의 절묘한 교차가 만들어내는 경계와 무경계는 혼란스러운면서도 아름답다.   

2. 카를로스 사우라의 플라멩코 3부작 중 한 편이다. 그동안 본 카를로스 사우라 영화는 영상과 음악의 이중주로 이루어졌다. 눈 감고 음악만 들어도 좋고 음악을 끄고 눈으로만 봐도 즐거운 영화다. 이 영화 역시 음악이 없어도 인물의 미묘한 표정과 발동작으로 감정의 파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아주 격정적이면서도 절제된 감정 표현, 플라멩코에 절대적 지지를 보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3. 안토니오의 연습실이면서 생활 공간. 1층은 극장처럼 구며져있다. 아무런 장식없고 나무바닥이 널다란 약간 올라간 무대와 역시 아무런 무늬없는 나무로 만들어졌다는 걸 고스란히 드러내는 소박한 탁자들과 작은 의자들. 아무런 장식 없는 무대는 시선을 무용수들의 발, 발동작과 함께 움직이는 치마단의 펄럭임으로 이끈다. 노래보다 무대 장식에 집중하는 뮤지컬이 싫은 이유를 깨닫는다. 젠zen 스타일의 공간이 주는 매력에 넋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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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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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가도 하하, 하고 혼자서 크게 웃게 만드는 필력이다. 가벼우면서도 가볍지 않은 이야기이고 아주 친숙한 이야기다. 소설 속 화자가 십대일 때 나도 십대였고, 소설 속 화자가 이십대 때 나도 이십대였다. 같은 시기를 살아온 사람들이 느끼는 동지애라는 게 샘 솟는다. ㅋ 

프로 야구 원년을, 나 역시 명확히 기억한다. 론칭 행사로 리틀 회원 가입 붐이었고, 나 말고 남동생이 두산 베어스 리틀 회원으로 가입했다. 아빠와 동생은 가끔씩 야구장에 갔다가 늦게 오곤했다. 물론 야구모자와 야구잠바를 입고 폼 나는 회원증까지 지참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공짜로 나눠주는 것도 아니고 회원이란 타이틀을 부여하고는 유료 팬 확보를 위한 마케팅 전략이었지만 그 때는 유니폼만 입으면 진짜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고, 십대들은 생각했다. 스포츠 마케팅이라고 알리 없는 순진한 십대들은, 원래의 의도대로 설레면서 잘 따라갔다. 야구에 관심이 없던 나도 승률을 읊을 줄 알게 되었다. 마케팅의 힘은 대단했다.  

박민규의 시선은, 여기서 부터 시작한다. 최하위 삼미팀에 울고 웃었던 기억을 복원해낸다. 스무살을 거쳐 서른이 되서 자신이, 친구가 루저가 되었을 때 삼미는 또 한 번 부활한다. 승자의 미학은 진짜 프로는 못 되도 유사 프로는 되야한다는 분위기다.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없다. 승자의 수는 패자의 수 보다 적게 배정되어 있다. 다수 속에서 누구나 소수를 위해 할당된 자리에 누구나 노력만한다면 차지할 수 있다고, 거짓말을 듣는다. 그 '누구나'에 속하지 못하면 자책을 한다. 노력이 부족했다고, 인정하는 게 미덕인 것처럼 믿어져왔다. 왜 패자는 그냥 패자 자리에 있으면 안 되나, 삼미 슈퍼스타즈처럼.  

삼미 슈퍼스타즈가 패자의 미학을 보여주는 지점이 여기다. 모두 우승을 위해 노력하는데 패자의 위치를 굳건히 지키는 것. 영원한 리틀 슈퍼스타즈인, 화자와 화자의 친구 조성훈이 최소 생계를 위해서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신으로 온전히 소유하는 것을 실천해 패자의 미학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에서 시간이 있는 사람은 뭔가 빙충이 같아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바쁘다'라는 말을 애용한다. '바쁘다'란 말은, 참 편하다. '식사하셨어요?'란 말에 굳이 밥 먹었는지 대답할 필요없듯이, 왜 바쁜지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다 이해하는 분위기다. '한가해요'라는 말을 할 때, 사람들은 오히려 당황한다.  바쁘다란 말이 능력 부족이고 한가하단 말이 대접받는 분위기가 오면 좋겠다. 타자가 친공을 잡으려 달려가던 외야수가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 공 대신 구름을 잡는 걸 너그러이 이해하는 사회, 생각만해도 실실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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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1 14: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11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딧불이 2010-08-12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정말 재미있죠? 저도 가끔 우울할때 펼쳐보는 책이에요. 저는 야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지만(뭐는 알겠냐만서도) 선수들의 이름이야기 나올 때 소파위를 뒹굴며 웃었어요.

넙치 2010-08-12 20:46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재밌는 소설이었어요.
이름이 웃기다고 생각 한 적 없었는데 쫙 모아놓고 주를 달아놓으니, 안 웃고는 못 배기겠더라구요.^^
저는 아버지를 속이는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0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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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오래 전에 사 두었다가 밀쳐놨다. 얼마 전, 은희경이 추천한 말-낯선 언어로 낯선 곳을 여행하는 느낌-을 보고 다시 집어들었으나 다 못 읽었다. 아니, 다 못 읽겠다. 공쿠르상 수상작이란다. 알았더라면 은희경이 추천했어도 안 집어들었을 거다. 확실히 낯설다. 익숙한 문장구조가 아니고 뭘 말하려고 하는지도 인내심있게 책장을 반 이상 넘겨야 알 수 있다.  

메모나 신문 스크랩같은, 밑도 끝도 없는 조각들이 불쑥 튀어나온다. 뭐 어쩌라구..하는 말이 튀어 나온다. 스릴러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결국은 주인공이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과정을 파리 한복판 길을 걸으며 진행된다. 잘 느껴보려고 뇌 저장고에서 파리에 대한 기억을 최대한 동원했어도 글을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건 불가능하다. 서울을 방문했던 외국인이 종로의 피맛골이나 낙원상가길을 떠올리며 어떤 분위기였는 기억해내려고 애쓰는 거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번역자의 이름에 걸맞지 않는 요상한 번역도 정신을 분산시키는데 한 몫한다.  

그만 투덜거리고,  

프랑스 영화를 좋아하는 반면 소설은, 꺼리고 심지어 저주하는 편이다. 현대 소설들은 더더욱 집어들기 무섭다. 르 클레지오의 <조서>랑 같은 맥락에 있는 소설이다. 문득 프랑스인들은 자신 외에는 관심이 없는 걸까. 배경 속에 스며든 개인을 참을 수 없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 소설이 배경에 스며든 개인의 비애를 주로 다룬다면-아니 내가 주로 좋아하는 한국 소설이-프랑스 소설은 한국 소설에서 종종 존재하는 이런 존재를 참을 수 없어한다. 현실을 암호처럼 해체해 버린다. 개인이 받아들이지 않는 한 현실이란 배경은 일종의 무의미한 파편일 뿐이다. 두 소설 끝까지 안 읽어서 결국 자아 정체성을 찾았는지, 찾아서 현실과 어떤 대칭점을 이루는지 모르겠지만 그 과정은 아주 하품이 난다. 당일 배송 서비스를 모든 싸이트가 자랑하며 스마트폰에 바코드만 갖다대도 접근 가능한 모든 정보를 - 어디다 써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알 수 있는 빛의 속도와 경쟁하는 나라에 살고 있는 독자한테, 돌아돌아 자기 얘기를 하는 소설은 비호감이다. -,.- 

뒤집어보면, 빛의 속도라는 게 자신이 누구인지 성찰하고 찾아 볼 기회조차 박탈하는 수단이다. 성찰하는 법을 잊은 나라에 사는 독자에게 성찰하는 이야기가 다가올  수 없는 게 당연하고, 알고보면 슬픈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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